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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에서는 신고전주의가 우위를 점하고 있다가 나폴레옹이 권좌에 오르면서 로마의 양식들에 이집트의 모티프들이 가미되었다. 이것이 프랑스에서는 앙피르(Empire) 양식으로, 영국에서는 리전시(regency) 양식으로 알려졌다. 프랑스 제국 시절에는 가구들이 부피가 크고 당당해졌으며, 검고 화려해지기도 했다.
곡선은 모든 가구에서 사라졌으며, 비대칭적 곡선이 대칭 장식으로 바뀌었다. 독일에서는 물질적 번영의 증거로 비더마이어 양식의 견고하고 간소한 가구가 등장하게 되었고 이 특징 가운데 많은 것이 장차 빅토리아풍으로 영국에서 널리 쓰이게 되었다. 그동안에는 리전시 양식이 우아함을 추구하면서 널리 유행하여 많은 걸작을 낳았다.
18세기 후반에는 산업혁명이 서서히 진행되고 있었고, 많은 실내장식품의 기계 생산이 증가하고 있었다. 19세기초에는 양식에 우열의 차이가 없다고 하는 절충주의적 사고의 새로운 인식이 형성되고 있었는데, 이것이 서로 다른 양식을 혼합해서 나쁠 것이 없다는 관념으로 이어지고 이러한 사고가 19세기의 전기간에 걸쳐 유행했고 20세기까지도 계속되었다. 유럽 주요국가들의 실내장식은 갈수록 중후하고 정교해졌으며, 대담한 무늬가 있는 밝은 색상의 벽지들이 널리 쓰였고 방들은 가구로 빽빽해졌다.
1830년대 로코코 양식이 부활되고 여기에 중국·일본 양식과 유사한 장식이 제한적으로 가미되었다. 프랑스에서는 로코코가 퐁파두르 양식으로 부활하고 신르네상스 시대가 출현했으며, 영국에서는 디자이너이자 작가인 윌리엄 모리스가 중세적인 착상으로 되돌아갈 것을 주창했다(→ 미술공예운동). 그렇기 때문에 기계 제품들의 가능성을 인정하려고 하지 않았다. 1890년대에 발전된 아르 누보(Art Nouveau) 양식은 고딕 양식을 상기시키면서 최근에 수입된 일본 예술을 함축했다. 그것은 뚜렷하게 비대칭적이었고 꽃 장식을 주로 했으며 곡선을 강조했고 장식 모티프들을 어울리지 않게 병렬하는 데서 효과를 끌어내었다. 이러한 장식은 훗날의 아르 데코(Art Deco) 양식에 영향을 미쳤다. 이 시기가 끝날 무렵 가구를 빽빽이 채우고 지나치게 공을 들여 꾸민 실내에 대한 반동의 기미가 강해지면서 흰색이나 아주 가벼운 색깔을 입힌 무늬없는 실내벽, 자연 그대로의 목재, 단순한 문과 벽난로 등이 20세기 전반에 일어난 변화의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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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19세기와 20세기 초 유럽의 실내장식 – 다음백과, Da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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