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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의 선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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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약의 발명과 뒤를 이어 1350년경 배에 대포가 처음으로 설치됨으로써 군함상선의 차이가 커지게 되었다. 14세기에는 큰 변화가 없었지만, 15세기에는 상당한 변화가 있었다. 1400년의 배는 돛대와 돛이 1개씩이었으나 1450년에는 돛대와 돛이 각각 3개인 배도 출현했다.

15세기말까지 가장 큰 배는 4개의 돛대에 8장의 돛을 단 것이었다. 15세기초의 선박 목록에 따르면, 배의 크기는 놀라울 정도로 컸다. 헨리 5세 소유의 배는 용골의 길이가 34m, 전장이 57m, 폭이 14m나 되는 배였다. 이 배는 완성되지 못했으며, 1418년에 건조된 '그라스듀호'는 이보다 컸다. 15세기말의 중형 선박에는 3개의 돛대에 5장의 돛, 즉 3개의 돛대에 달린 3장의 돛과 선수사장(舟首斜檣) 밑에 달린 2장의 돛이 있었다. 그 예로서 콜럼버스의 '산타마리아'가 있다. 한편 대포를 설치하는 시대의 추세에 따라 대형 대포가 갑판 위에 배치되어 선측에 뚫린 포문을 통해 발사되었는데, 이러한 형태는 범장군함(帆檣軍艦 : 돛이 있는 군함) 시대 이후에도 계속 사용되었다. 이 포문은 1501년 프랑스의 조선공에 의해 발명되었다고 전해진다. 선미의 모양에도 변화가 일어났다. 선수처럼 뾰족한 선미에 키를 받쳐주기 위해 곧은 러더 스톡(rudder stock : 키의 軸材)을 사용했고, 특히 선미 상부의 폭은 가로보(선미량)로 넓히고 그 위에 선미루를 세웠다. 그 결과 선미의 모양은 비대해지고 아래쪽은 마치 구(球)를 4등분한 것과 같은 모양이 되었다. 남방의 비교적 작은 배가 시초라고 생각되는 새로운 모양의 배인 카라벨선은 밑바닥이 평편하고 폭이 좁으며, 흘수가 작고 속도가 빨라서 연안 항해에 적합했다(→ 카라벨). 그 다음으로 등장한 갈레온선은 주로 군용으로 쓰였는데, 길이가 길고 폭이 상대적으로 작았다(→ 갈레온선). 배의 길이가 긴 이유는 보다 민첩한 기동력을 얻고 뱃전에 되도록 많은 포를 배열하기 위해서였다. 16세기초에는 각국이 경쟁하여 갈레온형 배가 많이 건조되었는데, 스코틀랜드의 '그랜드미카엘호', 잉글랜드의 '그레이트해리호', 포르투갈의 '상주앙호' 등이 있다. 엘리자베스 1세 시대의 가장 큰 배인 '트라이안후호'는 용골의 길이가 30m, 폭이 12m에 달했다. 한편 인도 항로가 개발됨에 따라 포르투갈에서는 대형 국유상선이 건조되기 시작했는데, 앞의 포르투갈 대형 선박이 그 예에 속한다. 17세기에 들어 영국과 네덜란드가 동시에 해상력을 신장시켜나갈 무렵 양국 모두 대형 선박을 채용하기 시작했고, 특히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의 배는 그당시 군함보다 더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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