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과사전 상세 본문
상선의 선체가 비교적 가늘고 긴 형태로 된 것은 19세기 중반 쾌속범선(clipper)의 출현 및 그 발전과 관련되어 있다. 나폴레옹 시대의 최대 상선은 동인도회사의 선박 중에서 볼 수 있지만, 이 배는 군함과 별로 다르지 않았고 실제로 군함으로 사용되었다. 그중 가장 큰 것은 1,200t급으로서 전장 50m, 폭 13m였다. 1833년 동양에 대한 동인도회사의 독점무역이 끝나자, 그때까지 이 회사에 선박을 공급했던 선주들은 제각기 무역을 개시하고 보다 효율적으로 화물을 운송하기 위해 다투어 배를 건조하기 시작했다.
이 당시 초창기 배는 아직 비교적 소형이었지만, 1842년에 건조된 '프란스오브웰즈호'는 1,200t에 달했고, 전장은 54.6m, 폭이 11.9m로 이전보다 길이는 증가했지만 폭이 좁은 것이 특징이다. 이미 그당시부터 쾌속범선이 주종을 이루었는데, 주로 중국에서의 차(茶) 운송, 1848년 캘리포니아에서 금이 발견된 후부터 미국 동부에서 샌프란시스코까지의 여객 운송, 오스트레일리아에서의 양모 운송 등에 사용되었다.
이 배가 이전의 배보다 빠른 이유는 배 모양이 홀쭉하고 돛의 크기가 커졌다는 점도 있지만, 가장 큰 원인은 배의 폭에 비해 길이가 매우 컸기 때문이었다. 보통 이같은 선박설계는 특히 이전의 동인도 무역선 경쟁으로 시작된 쾌속범선으로 촉진되었다. 또한 선박구조와 돛의 모양도 많이 개량되었다. 19세기에 새로운 늑골구조가 도입되었지만, 목선의 길이가 일정 길이 이상이 되면 건조가 힘들었다. 그러나 이 문제는 철의 사용으로 해결되었으며, 이같은 변화가 진행되고 있을 무렵 범선군함은 급속히 사라졌다.
스크루프로펠러가 군함에 일단 사용되자 1850년 이후에는 순수한 범선군함이 건조되지 않았으며, 상선에서도 기선과 범선의 사용량의 차이가 분명해졌다. 재화중량(載貨重量)을 증가시키기 위해 선체를 보다 크게 늘린 배가 출현해 속도를 증가시키기 위해 폭을 좁게 한 쾌속범선에서의 재화중량 손실을 충분히 보충할 수 있었다.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으로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조선/해양과 같은 주제의 항목을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