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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과학적 탐구의 과정에 포함된 요소(관찰과정·논증형식·형이상학적 전제 등)를 설명하고, 형식논리학과 실제로 통용되는 방법론·형이상학 등의 관점에서 그 요소들의 타당성을 검토하는 철학.
오늘날 과학철학자들은 대체로 존재론적인 경향을 갖는 입장과 인식론적인 경향을 갖는 입장으로 나뉜다. 전자의 경우 과학이 다루는 실체의 문제에 관심을 보이는 반면, 후자의 철학자는 자연현상과 인간의 행동을 탐구하기 위해 채택된 개념과 방법을 분석하고 평가하는 데 주력한다.
일반적이고 추상적인 수준에서 과학철학은 형이상학과 인식론으로부터 분명히 구분되지는 않는다. '과학철학에서 논리적 분석방법만 올바른 것인가', '과학철학의 주제가 어느 지점에서 인지심리학이나 과학사, 인식론의 주제와 중복되지 않는가' 하는 문제를 둘러싸고, 과학철학자들은 논리학을 제외한 어느 학문분야와도 연계하지 않으려는 입장과 폭넓은 역사적 연관을 고려하려는 입장으로 나누어져 있다.
역사
과학이 다루는 방법과 실체에 관한 문제는 고대 그리스의 자연철학에서 시작된다.
BC 600년경 이오니아 지방과 남부 이탈리아 지방에서 처음으로 전통적인 신화적 관점을 넘어서 자연을 합리적으로 설명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소크라테스 이전의 자연철학자들의 입장은 엘레아 학파를 이끌었던 파르메니데스의 존재론(존재를 불변의 실재로 보았다)으로부터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것은 생성변화한다'고 주장한 에페소스 지방의 헤라클레이토스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전개되었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실제 사례에 대해 더 정확히 고려하기는 했지만 그들의 견해 역시 존재론적·인식론적·경험적 요소들이 뒤섞여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자연에 관한 문제는 플라톤의 '티마이오스'와 아리스토텔레스의 '물리학'에서 다루어지고 있다.
여기서 다루어지고 있는 문제는 순수하게 형이상학적이라고 할 수도 경험적이라고 할 수도 없는 성격을 띠지만, 근대의 과학철학과 유사한 방법론적인 측면을 가지고 있다. 특히 기하학에서 빌어온 개념과 유형을 가지고 과학의 근본이론을 구성한 플라톤의 입장은 데카르트와 프레게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한편 생물학에 바탕을 둔 아리스토텔레스는, 수학적 실재나 수학적 관계는 너무 일반적이고 실제 경험과 유리(遊離)되어 있어서 경험적인 실재의 세밀한 성질을 설명할 수 없다고 보았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입장은 이후의 과학철학에서 계속 반복되었으며, 오늘날의 논의에서도 논리학에 바탕을 둔 플라톤적 입장과 과학사에 근거하고 있는 아리스토텔레스적 입장으로 대립상을 보여준다.
기하학자 유클리드(에우클레이데스) 이전의 시기와는 대조적으로, 헬레니즘 시대와 중세에는 과학의 방법론과 설명에 대한 이해가 별로 나아진 점이 없다. 중세는 지식을 통해 자연을 지배할 수 있는 가능성이 철저히 부정된 시기였고, 과학적 지식은 그 방법론에 의해서가 아니라 신의 은총에 의해 보장되었다.
따라서 과학철학의 중심문제는 신학의 옷을 입고 나타났고, 신의 진지함과 인간의 제한된 지식의 관계에 대한 문제로 파악되었다.
르네상스 시대에 들어서서도 철학과 신학의 고리가 하루 아침에 단절된 것은 아니다. 당시의 대표적인 학자인 데카르트·뉴턴·라이프니츠 등은 자신들의 입장이 신학과 양립가능함을 논증하려고 했다. 예를 들면 데카르트의 신의 성실성을 통한 외부사물의 존재에 대한 인식의 확실성 증명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 두 입장은 2가지 의미에서 자립성을 얻게 되는데, 첫째 과학철학의 문제는 신학적 프리즘을 통해 굴절되지 않고 직접 제기되었고, 둘째 경험에 기초한 자연이론에 근거를 둠으로써 새로운 의미를 획득하게 된 것이다.
1600~1800년에 벌어진 과학철학논쟁은 과학 자체의 논쟁과 떼어서 생각할 수 없다. 베이컨은 경험적으로 관찰된 사실을 모든 과학이론의 출발점으로 보았다. 베이컨은 자연의 '형상'(形相)을 드러내기 위해 과학자가 탐구중인 경험현상의 모든 사례를 열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소위 이러한 베이컨의 '귀납법'(歸納法)과는 대조적으로 데카르트는 유클리드 기하학으로 논증될 수 있는 자명하고 정합적인 이론의 연역체계를 구성하는 문제에 주안점을 두었다. 베이컨이 경험을 중시함으로써 아리스토텔레스의 권위에 의존하고 있는 스콜라주의에 반기를 들었다면, 데카르트는 수학을 강조함으로써 16세기 인문주의자들의 회의주의에 대항했다.
베이컨과 데카르트 이후 150년간 갈릴레오와 뉴턴 등 많은 과학자들이 당시의 철학자들이 요청한 새로운 물리학을 구성했지만, 이들이 요구한 형태 그대로의 것이 아니었다.
뉴턴의 사고과정에서 베이컨의 귀납법을 찾아보기는 힘들며, 프린키피아의 운동, 중력이론이 데카르트의 수학적 방법론에 영향을 받은 것은 분명하지만 뉴턴은 그 전제가 자명하고 타당한 것임을 증명하려고 하지는 않았다.
18세기 중반에 들어서면서 뉴턴의 개념들은 의심없이 받아들여지게 되었고 이제 철학자들은 어떻게 뉴턴이 그러한 개념을 얻게 되었는가 하는 질문을 던지게 되었다.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둘러싸고 경험론·합리론·칸트주의로 입장이 나뉘게 된다.
경험론은 뉴턴의 이론적 논증이 가지고 있는 연역적 엄격성을 정당화하는 데 실패했고 합리론은 뉴턴 체계의 수학적 통일성을 엄격하게 논증할 수 없었다.
그리하여 3번째 대안으로 유클리드 공리(公理)가 과학에 요청될 뿐만 아니라 마음의 인식구조를 자세히 보여준다고 하는 칸트주의가 등장한다. 그러나 칸트의 견해 역시 오늘날에는 옳지 않은 것으로 평가된다. 20세기 천체물리학과 양자역학의 비(非)유클리드적·비(非)뉴턴적 개념을 계승해서 자연현상을 경험적으로 설명해내고 있기 때문이다.
19세기말과 20세기초에 에른스트 마흐, 하인리히 헤르츠, 막스 플랑크, 피에르 뒤엠 등은 20세기 과학철학의 새 장을 열었다.
경험비판론으로 유명한 마흐와 아베나리우스는 흄의 경험론을 이어받아 과학적 지식이 감각인상에 기초할 때 인식론적 타당성을 갖는다고 보았고, 이런 환원주의적(還元主義的) 태도에 반대해서 플랑크는 외적 자연의 지속적인 실재에 대한 신념이 없이는 과학이론을 개선시키려는 모든 시도가 쓸데없는 것이라고 하여 실재론을 옹호한다.
20세기에 들어와서 뉴턴과 유클리드의 권위에 전면적으로 도전한 것은 상대성 이론이었다. 이를 계기로 빈 학파의 논리실증주의자들과 양자역학자들 사이에 새로운 교류가 이루어진다.
이 시기에는 이론물리학·생화학·심리학과 같은 과학 내부에서의 주목할 만한 변화가 일어났다.
예를 들어 고전적인 뉴턴 물리학이 하이젠베르크의 양자역학에 의해 대체되었으며, 이것은 인과성과 결정론에 대한 새로운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1940년대 이후 철학적 논쟁은 행동과학을 중심으로 방법론적으로 전개된다. 심리학·사회학·인류학 등에서도 20세기는 가히 방법론적 논쟁의 시기라고 할 수 있다.
과학활동의 요소
자연과학은 아래와 같은 측면을 포함한다.
첫째는 경험적 요소이다. 과학의 과제는 자연의 실제사건·과정·현상을 설명하는 것이다. 어떤 이론적 개념의 체계나 기술적 용어, 수학적 과정도 경험적인 사실을 파악하거나 알기 쉽게 해주는 것이 아니라면 과학적인 것으로 인정받을 수 없다.
둘째는 개념적 요소이다. 모든 과학은 독특한 용어나 설명, 해석의 기술 등을 채택하고 있다. 이런 개념적 요소들은 현상을 알 수 있게 해주는 열쇠이다.
마지막으로 모든 자연과학은 형식적이고 수학적인 요소, 혹은 수학적인 요소만을 포함한다. 프레게와 같은 플라톤적인 전통에 있는 철학자들은 형식적인 요소를 특히 강조하며 개념의 순수형상을 사용한다고 말한다.
1920년대와 1930년대의 과학철학의 문제는 제반 과학에서 사용하는 개념에 대한 논리적·언어적 문제로 환원되었다. 오늘날의 중심적인 철학적 과제는 과학자가 해석의 정당성을 결정할 수 있는 기준의 문제와 새로운 해석을 위해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해석을 포기하는 것의 정당성의 문제에 집중되어 있다. 이런 식으로 과학의 명제에서 과학 자체의 개념으로 관심이 이동하는 것은, 과학철학자들의 이론적 이해가 경험결과의 재해석을 포함하고 있다는 것을 의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과학개념 변화의 문제는 이론해석의 과정과 개념적 판단의 과정에 대한 문제를 수반한다. 과학개념의 변화를 방법론적 원리에 따르는 정당한 것으로 보는 사람은 새로운 견해가 여전히 기존 과학개념의 틀 안에서만 이해될 수 있는 것으로 파악하는 한편, 자연과학의 모든 측면이 역사적으로 고찰될 수 있다고 보는 입장에서는 과학개념의 변화를 단절적이고 혁명적인 것으로 파악한다.
과학적 사고의 운동
'과학이 합리적인 이유는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답을 둘러싸고 과학철학자들은 형식주의 혹은 실증주의적 입장과, 다른 한편으로는 낭만주의 혹은 비합리주의적인 입장으로 양극화된다. 헝가리 태생의 과학자이자 철학자인 마이클 폴라니와 같은 반실증주의자는 과학적 과정의 합리성에 대한 선입견은 상상의 날개를 꺾어버리고 과학자를 전형화된 과정에 한정시키려는 생각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에 논리실증주의자와 같이 주관적인 과학적 직관에 얽매여서는 안되며, 그러지 않기 위해 우리는 낭만주의적인 반합리론을 수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실이 과학적 개념의 변화를 정당화해준다고 생각하는 실증주의자 또는 경험론자들은 예측과 확증을 과학의 핵심적인 단계로 간주한다. 그러나 만일 이론적 법칙과 순수한 경험적 보고가 다양한 개념의 집합을 통해 표현된다면 어떤 일반적인 과정도 연역적으로 이끌어낼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론은 사실을 단순히 일반화한 것이라기보다는 재해석한 것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이론물리학자 피에르 뒤엠을 계승하는 구성주의자들은, 사실이란 그런 해석을 다른 해석과 구분지어주는 상대적인 것뿐이라고 주장한다.
한편 제1·2차 세계대전 이후 오토 노이라트를 중심으로 하는 빈의 논리실증주의자들은 '통일과학운동'을 주도했다. 이들에 의하면 과학의 통일적인 기반은 일반공리·가정, 모든 자연현상에 적용할 수 있는 원초 명제들의 단일집합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곧 난점에 봉착하는데, 예를 들어 유기체의 진화론은 환원불가능한 역사적 차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통일과학의 테제는 실제적인 문제에서도 난점을 노정하고 있다. 과학이론의 통합은 그 형식에서만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니고, 모든 새로운 유형의 이론적 해석의 발전을 필요로 한다. 그런 의미에서 개념적이고 방법론적인 통일이 실제로 과학적 사고의 운동방향을 보여주고 있기는 하지만, 그 논리형식은 미리 말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과학이론의 철학적 지위
과학이론의 인식론적 지위는 3가지 관점으로 대별된다. 첫째, 강한 실재론적 입장에서는 과학의 모든 명제가 자연에 관한 경험적인 사실의 집합을 보고하며, 보편적 사실에 관한 객관적인 거울의 역할을 하고 있다. 둘째, 강한 규약주의적 입장에서는 관찰언명은 자연세계에 대한 과학자들의 개념적 그림을 형성시켜주는 유형을 반영한다. 셋째, 두 입장의 중간적인 관점으로 조작주의적인 입장이 있는데, 이 입장에서는 조작적인 의미를 갖는 이론 명제(命題)를 유의미하다고 간주한다.
존재론적으로 볼 때에도 대체로 3가지 입장을 구분해볼 수 있는데 첫째, 실재론자는 여기서도 과학이론의 기술적 용어를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실재의 이름으로 본다. 둘째, 도구주의자들은 모든 이론적 개념을 과학자 자신의 이론구성에 의해 만들어진 지적인 가공물(加工物)로 본다. 마지막으로 현상론자들은 이론적 실재의 존재에 관한 논쟁은 무의미한 것으로 간주한다.
1920년대 이후 양자역학의 전개와 더불어 과학자들 사이에서 철학적인 논쟁이 활발해졌다고 할 수 있는데, 인식론적으로 볼 때 양자역학적 설명의 통계적인 성격은 인간지식의 지위와 한계에 관한 몇 가지 기본적인 질문을 제기했다. 철학적인 논의가 인공언어나 이상언어의 한계 안에 제한되는 한, 이론적 실재나 확증이론에 관한 일반적인 딜레마의 해결전망은 불투명할 수밖에 없다.
과학과 문화의 관계
오늘날의 인문학이나 사회과학에서는 그동안 자연과학이 이론적 지식의 원천임을 자처하면서 이론과 실천을 완전히 분리해낸 점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이런 비판은 특히 이론과 실천의 통일을 주장해온 신마르크스주의와 실존주의 등에서 볼 수 있다. 키에르케고르 같은 실존철학자는 칸트의 보편적인 윤리학 체계를 실제윤리적 문제와 결정의 개별성을 무시했다고 비판한다. 이에 따라 사회적이고 실천적인 결정을 과학기술전문가들의 판단에 맡길 수 있는 기술적인 문제로 보려는 입장은 일반적으로 거부되고 있다.
최근에는 괴테 등의 낭만주의 운동을 계승하는 반과학적인 견해도 다시 활발해지고 있다. 이들은 20세기 군사기술의 중요한 역할을 지적하고 과학자들이 윤리적으로 중립적인 태도를 취하려는 것에 대해 비판적이다. 한편 과학과 종교를 포괄하는 유일한 세계관을 구성하려는 인간의 야심은 이전에 비하면 오늘날의 지적인 생활에서는 중요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신학자가 종교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불리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과학의 한계는 다른 방식으로 노정된다. 이것은 과학적 절차의 성격 자체가 사회문제와의 관련하에 그 결과를 제한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런 식의 접근방법의 변화는 과학의 특징이 과학자가 접근하는 대상과 사건의 유형에 놓여 있는 것이 아니라 그의 탐구가 채택하는 지적인 절차, 그리고 문제의 성격에 놓여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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