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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1905~10년 개화파의 부르주아적 개혁론을 계승한 문명개화론자들의 국권회복운동이 여러 곳으로 전파되는 시기.
계몽운동의 이념(영웅주의·애국주의·국가주의)
민중층을 오직 계몽되어야 할 집단으로 설정할 때, 나라를 구하고 민중을 지도할 영웅의 존재는 필연적이었다.
그들이 거론한 영웅은 알레산데르 대왕, 나폴레옹, 이탈리아건국의 3걸, 제갈공명, 광개토대왕·을지문덕 등 국가독립이나 국력팽창·외침극복과 관련있는 인물이었다. 영웅주의는 곧 국가를 최우선시하는 논리로 발전했다. 영웅을 매개로 국권회복이라는 기치하에 국가를 위해서만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그들은 개인의 인권신장보다는 국권회복과 독립의 수단으로서 새로운 입헌체제를 구상했다. 이때 개인의 인권은 오직 국권을 위해서만 존재하는 것이다. 한편 제국주의와의 경쟁에서 살아남고 부국강병을 추구하여 제국주의 국가로 성장하는 것이 최상의 목표였기에, 그들이 강조한 민족주의도 민족은 곧 국가로 간주되었다.
계몽단체 활동
계몽단체 활동은 1904년 보안회의 황무지개척반대운동에서 비롯되었다. 이 활동은 일제의 탄압으로 곧 해산되었고, 의회제도의 실현을 목표로 한 헌정연구회가 설립되었으나 이 역시 정치결사라는 이유로 해체되었다.
그리고 사회문화활동·교육활동·산업진흥을 목표로 한 대한자강회, 그 후신인 대한협회, 그리고 서우학회·한북학회·서북학회·기호흥학회·호남학회등 여러 단체가 결성되고 기관지로서 학보도 발간하는 등 활발히 활동했다.
그러나 반식민지체제하에서 정치단체의 활동은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일제가 보안법을 공포하는 등 탄압을 가하자 합법적인 활동이 어려워졌으며, 계몽운동은 자연히 비밀결사화했다. 그 결과 조직된 단체가 신민회였다.
계몽운동의 방법(준비론·실력양성론·외교론)
계몽운동가들은 국권상실의 원인을 실력부족으로 생각하고, 국권회복을 위해서는 실력을 준비하고 양성하는 방법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한편 준비론·실력양성론은 국권회복을 외교관계로 해결하려는 입장으로 나아갔다. 이들은 국가흥망이 외교관계에서 기인하고 외교를 잘하는 것이 국권을 회복하는 가장 좋은 방법으로 인식했다.
국권회복을 주장하면서도 물질적인 기반이 약하다고 생각될 때 항상 거론되는 것이 정신이었다. 애국주의·민족주의·민족정신·국민정신 등의 강조만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믿었다. 여기에서 이 운동의 영역은 자연스럽게 교육과 식산(殖産)으로 한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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