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과사전 상세 본문

출처 다음백과

계몽운동의 영역

다른 표기 언어

요약 1905~10년 개화파의 부르주아적 개혁론을 계승한 문명개화론자들의 국권회복운동이 사회 내 참여한 분야와 역할.

교육활동

계몽운동의 가장 기본적인 영역은 학교설립을 통한 교육운동이었다. 각 지역을 연고로 설립된 각종 학회는 그 연고지의 교육을 개척하기 위한 것이었다. 1910년 통계에 의하면, 일제의 힘이 강하게 미친 관공립학교가 81개교, 준공립이 65개교인데 비해, 사립학교는 2,250개교였다. 교육내용은 수신이나 도덕과목을 중시하면서 애국주의를 불어넣는 것이었다. 또한 기독교의 선교활동의 일환으로 설립된 기독교계 활동은 유교적 사고의 타파와 서양문명 보급에 이바지하였으나, 반일항쟁을 위해 민중의 역량을 이끌어내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언론활동

계몽운동가들은 〈황성신문〉·〈대한매일신보〉·〈제국신문〉·〈만세보〉·〈대한민보〉등을 발행하여 사회근대화를 국민에게 계몽하고, 일제 침략상을 폭로하였다. 신문지법 등 사전검열제에 의해 반일독립여론을 조성하거나, 통감정치 자체를 부정하는 데까지 이르지는 못했으나 또한 한국전래의 위인아나 외국침략에 저항한 인물의 전기를 출판하여 애국심을 고취시키기도 했다.

식산흥업

계몽활동은 식산흥업활동을 통하여 실력을 양성하고 자강을 추구하고 있었다. 이 운동을 담당했던 계층은 관료층, 지주층, 봉건적인 특권상인층이었다. 지주제를 자본축적의 골간으로 유지하면서 외자를 도입하여 산업을 진흥시키려고 한, 개화파가 주장한 식산흥업론의 연장선이었다. 식산흥업활동은 서울은 물론 계몽운동단체의 각 지회를 매개로 지방의 지주층·상인층을 중심으로 활발히 전개되었다. 이후 식산흥업은 한말의 활동을 바탕으로 특히 1910년대와 1920년대를 거치면서 전성기를 맞이했다. 이는 1920년대 이후 지주경영의 이익이 보장되지 않는 가운데 회사령 철폐후 전개된 일본 자본의 침투에 자극되면서 찾았던 활로였다.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으로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출처

다음백과
다음백과 | cp명Daum 전체항목 도서 소개

다양한 분야의 전문 필진으로 구성. 시의성 이슈에 대한 쉽고 정확한 지식정보를 전달합니다.

TOP으로 이동
태그 더 보기


[Daum백과] 계몽운동의 영역다음백과, Daum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으로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