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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한 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실제적인 요구와 표현욕구를 충족시키는 건물을 설계하고 짓는 예술, 또는 그 기술.
이같은 요구사항들을 해석하고 구조적·미학적 변수들을 복합적으로 배열하여 하나의 건축물 형태로 엮어내는 사람들이 바로 건축가이다. 건축가들이 원칙으로 삼는 것은 외부공간을 분명하게 정하고 내부공간을 나누어 칸을 짓는 것이다. 또한 이들은 장식의 미학적인 요인들과 구조의 복잡한 기술적인 해결책도 제시해야 한다. 이 2가지 요소가 통합될 때 건축은 한 사회의 문화적·상징적 이상을 보여준다.
건축작품은 몇 가지 기준에 맞아야 한다. 사회가 요구하는 용도에 알맞아야 하며, 안정성이 있어야 하고, 형태를 통해 설계자의 경험과 개념을 전달해야 한다. 그러나 건축물의 안정성이라는 기준은 변함이 없지만, 용도를 충족시킨다거나 설계자의 개념을 전달한다는 기준은 건물의 기능에 따라 중요한 정도가 달라진다. 예를 들어, 공장의 기능은 주로 실용적인 데 있고 개념을 전달하는 일은 비교적 덜 중요하지만 교회나 정부 청사 같은 건물은 실용성과 개념·상징의 전달이 똑같이 중요하다.
용도
건축유형
건축에는 여러 유형이 있으며 이 모든 유형은 사회제도가 요구하는 대로 결정된다.
건축의 유형은 주거건축, 종교건축, 관청건축, 휴양건축, 복지와 교육 건축, 상업과 공업 건축이 있다.
주거건축은 개인·가족·씨족과 같은 사회적 단위를 위해서, 또는 부양하는 사람이나 기르는 동물을 위해서 지어진다. 건축은 생활에서 가장 기본적인 육체기능을 위한 쉼터를 제공하고 안락함을 주며, 때로는 사회적 단위가 아닌 가족단위에서 이루어지는 상업·공업·농업 활동을 위한 공간도 제공한다.
보통 사람들은 경제적인 부담 때문에 자기 집에 대한 요구를 자기 시대의 기술수준보다 낮게 잡는다.
설계와 건설 분야의 각종 실험과 혁신들은 오랫동안 사용되던 전통적인 기술들에 비해 훨씬 많은 비용이 들기 때문이다. 부유한 문화 속에서는 주거건축이 뚜렷한 기능을 갖춘 별도의 공간뿐 아니라 위생·조명·난방설비 등 편의시설을 갖추게 되며 이런 시설을 장려한다. 이러한 사치품들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필수품으로 바뀌기도 한다.
주거건축의 특별한 유형으로 '힘'을 나타내는 건축이 있다.
사회구성원들 몇몇은 자신들의 집이나 궁전, 별장, 정원, 휴양을 위한 장소를 건설하는 데 공공재원을 사용할 수 있다. 이들은 대개 경제·종교·계급상 특혜를 누리며, 주거의 구조·규모·장식을 통해 특권을 나타낸다. 그러므로 이러한 힘의 건축들은 주인의 사회적 지위를 타인에게 알리는 역할을 하며, 주거이면서 동시에 공공성도 지니게 된다. 예를 들어 고대 로마의 플라비아누스 황제의 궁전은 당시 국가와 사법제도의 기능을 결합한 것이며, 베르사유 궁전은 그 자체가 하나의 도시를 이루면서 그곳에 있는 수천 명의 모든 계층 사람들이 사용할 필수품과 사치품을 생산하는 동시에 루이 14세가 프랑스를 통치하는 중심지였다.
집단주거는 주거건축의 3번째 유형으로, 개별단위가 아닌 집단에 맞추었기 때문에 사적인 특성과 더불어 공적인 특성도 지닌다.
개인이나 가족은 많이 공급되어 있는 복합주거나 단독주거에서 산다. 그러나 집단주거는 많은 사회에서 많은 목적에 따라 지어지는데, 공산국가에서는 생활수준을 평준화할 목적으로 공급하기도 하며 봉건사회에서는 한 계급의 구성원들을 집단적으로 수용하기 위해 공급하기도 했다. 현대의 집단주거는 로마 제국의 경우처럼 도시문제의 1가지 해결책으로 제시되고 있다.
건축의 역사는 주로 종교건물과 관계가 있다.
과거 대부분의 문화에서 종교는 보편적이고 고양된 모습을 지녔기 때문에 교회나 사원은 사회에서 가장 표현력있고 영구적이며 영향력있는 건물이었다. 종교건축은 주거건축과 같은 기본적인 요구조건이 없고 문화적 유형에 따라 그 용도가 변하기 때문에 매우 다양한 구조로 나타난다.
사원이나 교회는 숭배를 위한 장소이자 성상(聖像)·유물을 안치하고 의식을 거행하는 신성한 장소이기도 하다.
오래된 종교의 사원들은 공적인 용도로만 지어진 것이 아니었다. 고대 이집트나 인도에서 사원은 신이 사는 집이었으며, 성소(聖所)의 입구는 성직자들에게만 개방되었다. 성소는 기적이 일어났던 장소이거나 종교의 창시자나 신, 성인과 교류하기 위한 장소였다. 그러나 최근의 건축사에서 성소는 그렇게 중요한 의미를 띠지 않는다.
장제건축(葬祭建築)은 사후세계에 대해 유물론적인 믿음이 있는 사회에서 생겨났으며, 자신이 이 세상에서 위대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영원히 남기고 싶어하는 개인들이 만들기도 한다.
기념비적 무덤건축은 고대 이집트의 피라미드를 비롯하여 헬레니즘 시대 그리스 건축인 할리카르나소스에 있는 마우솔루스의 웅장한 무덤(여기에서 '마우솔레움'이란 단어가 나옴), 고대 로마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무덤, 르네상스 시대 미켈란젤로가 피렌체에 만든 메디치 예배당이 있으며, 아시아에서는 인도 우타르프라데시 주 아그라에 있는 타지마할을 꼽을 수 있다.
통치의 기본적인 기능은 종교의 기능보다 훨씬 광범위하며 거의 모든 사회에서 비슷하게 행정·입법·사법적 기능을 갖는다.
그러나 건축에 대한 요구는 통치자와 피통치자의 관계에 따라 다르다. 통치의 기능이 한 개인에게 집중되는 곳에서는 이 기능이 비교적 단순하며 통치자의 집에서 이루어질 수 있다. 반면 여러 사람이 통치기능을 나누어 갖고 고유한 활동분야가 있을 때에는 대개 그 기능은 복잡해지며 독자적인 구조를 요구한다. 그러나 관청건축을 위한 기본적인 형식이나 단일한 해결책이 있는 것은 아니다.
통치를 위한 실제적 요구는 토의와 행정을 집행할 안락한 공간이면 어디서든 충족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 도시국가나 중세 자유도시처럼 단순한 수준의 민주주의 사회에서 관청건축물의 크기는 주거건축물 정도였으나, 로마 제국과 그 이후의 군주국에서는 궁전과 통치기능을 행하는 장소가 거의 구별되지 않았다.
19세기에 들어 의회정치가 널리 퍼지고 국가의 규모와 기능이 커짐에 따라 관청건물들은 매우 다양해졌으며 어떤 건물은 완전히 새로운 용도를 위해 건립되었다. 이러한 사회변화에 대응하여 새로 생긴 건물은 지방의회당·법원·의회의사당 등이다. 관청 업무를 수행하는 인원이 늘어나고 여기에 쓰이는 기계화된 보조장비가 점차 복잡해지면서 기존의 구조물로는 이들을 수용할 수가 없을 때 새로운 해결책으로 우체국이나 대사관건물, 연구소 같은 특수한 건물 형태가 탄생한다.
휴양시설들은 휴양이 사회적으로 관행이 되기 전에는 특별히 건축적인 해결이 필요없었다.
그러나 휴양이 관행화되면서 휴양건축은 별도의 기능을 갖추게 되었다. 예를 들어 운동경기·연극·음악공연 등을 위한 장소일 경우에는 능동적 참여와 수동적 참여를 모두 보장하는 기능을 갖춰야 하며, 목욕장·박물관·도서관의 경우는 근본적으로 개인의 만족을 위해 기능하면서도 공공의 참여 공간을 제공해야 한다. 대부분의 문화에서 휴양시설은 종교의식에 기원을 두고 있으나 곧 독립성을 지니게 되었으며 종교적 표현은 제한되거나 삭제되었다.
공공의 복지를 도모하는 중요한 기구들은 교육, 건강, 공공의 안전, 공익을 위한 기능을 제공한다.
이 기능들 가운데 일부는 교회나 국가에서 담당하기도 하지만 이러한 기능들은 본질적으로 종교성·정치성을 띠지 않기 때문에 별개의 건축적 대안을 필요로 하며 특히 도시환경 속에서는 더 그러하다.
무역·수송·통신·제조·발전시설들은 상업과 공업의 기본 요구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과거에는 이러한 요구조건이 전문화되지도 않았으며, 보통 규모만 클 뿐 주거건물과 다름없었다. 이런 기능들은 건축상 서로 다른 형식을 요구하지만 일반적으로 크기나 동선이 기계나 인간 가운데 어디에 중점을 둔 계획인가에 따라 크게 두 부류의 형식으로 나뉜다.
건축계획
건축가들은 보통 대지가 선정되고 건물의 유형과 비용이 결정되면 작업을 시작한다.
따라서 계획은 구체화하는 과정이며 궁극적으로 환경조건과 용도, 경제력을 조화시키는 과정이다. 대지와 관련하여 볼 때 여러 가지 자연환경은 인간의 일정한 육체 조건에 부합되어야 한다. 사회적으로 공인된 일반 형태와 전혀 다른 유형의 건물일지라도 그 자체의 독특한 기능에는 반드시 적합해야 한다.
한편 건축에 쓰일 땅, 노동력, 재료를 합친 비용이 예산에 맞아야 한다.
환경계획은 시각·촉각·청각 등의 감각에 안락함을 제공하고 호흡과 같은 생리작용을 원활히 하기 위한 것이다.
건축가는 건물을 설계할 때 화재 지진·홍수와 같은 천재지변도 고려해야 하고 환경을 통제하는 방법도 건축의 표현요소들을 고려하면서 다루어야 한다. 건물 전체나 부분들의 위치와 방향은 태양·바람·비와 같은 자연요소의 영향을 통제하는 장치가 된다. 건축형태 설계 또한 자연의 힘을 조절하는 방법이 되며 가령 처마·몰딩·돌출부·안뜰[中庭]·포치 등은 그늘을 드리우고 비를 막아준다. 색은 표현을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태양광선을 반사하거나 흡수하는 역할도 한다.
더위와 추위, 빛과 소리 같은 요소들은 공간을 계획하고 특별한 조절장치를 설치함으로써 더욱 쉽게 완화시킬 수 있다.
이런 요소들은 내부 공간의 크기, 모양, 공간의 상호관련성에 따라 조절할 수 있으며 바닥·벽·천장·가구의 재질로도 영향을 줄 수 있다(→ 실내장식). 19세기에 기계와 전기설비가 등장하기 전에는 난로가 온도를 조절하는 유일한 수단이었다. 또한 연료를 사용하는 등잔은 이동시킬 수 있어야 했고 건축보다는 가구분야에 속했다. 태피스트리와 벽걸이 장식천은 음향과 통풍을 조절하는 목적으로 사용되었다.
용도계획은 주로 편리한 동선과 안락한 휴식을 제공하는 것과 관련된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기능에 따라 공간을 나누고 이 공간들 사이에 동선체계를 부여하며 사람이 쉽게 움직일 수 있도록 설계해야 한다.
건축기술
건축의 역사는 구조 문제의 해결책을 찾으면서 이루어진 발전적인 변화를 반영하고 있다. 가장 원시적인 오두막집의 지붕과 단순한 트러스 구조가 수직기둥과 수평보(인방)로 변화한 것은 문명이 시작된 때부터 고대 그리스 문명에 걸쳐서였다. 로마 시대에는 아치·볼트·돔을 만들어냈고 건물의 무게를 받쳐주는 조적내력벽이 광범위하게 사용되었다. 중세 후기에는 중심이 뾰족하게 치솟은 첨두(尖頭) 아치와 리브, 피어가 나타났다. 이 시기에 벽돌과 돌을 사용한 조적구조의 문제들은 모두 해결되어 장식분야 말고는 산업혁명까지 아무런 발전이 없었다. 19세기에 주철과 철골구조 개발과 함께 새로운 건축시대가 열려 더욱 넓고 높으며 가벼운 건물들을 짓기 시작했다. 20세기에 접어들어 기술이 발달하면서 캔틸레버와 같은 새로운 구조공법들이 폭넓게 사용되었다.
통일적이고 조직적인 건축기술의 궁극적 목적은 안전한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건축에서 건축기술이란 어느 특정 재료를 이용해 구조를 만들 때 사용하는 방법을 일컫는다. 건축기술은 재료의 유용성과 특성에 영향을 받을 뿐 아니라, 한 사회의 전반적인 기술수준에 의해서도 달라진다.
기술발달을 좌우하는 것은 경제성과 표현에 관한 욕구이다. 경제성은 최소한의 재료와 노동력으로 최대한의 안정성과 내구력을 얻으려 하며, 표현욕구는 의미있는 형태를 추구한다. 경제적 욕구가 새로운 표현형태를 원하고, 새로운 표현형태가 새로운 건축기술의 발달을 요구할 때, 기술은 빠르게 발전한다.
구조는 전체를 이루는 각 부분들이 서로 균형을 이룰 때 안정상태가 된다. 즉 특정 부재의 모양을 변화시키려는 힘(부수거나 갈라놓거나 구부리려는 힘)들이 균형을 이루어 안정된 상태가 유지되었을 때 전체 구조도 안정된다. 부재 자체에도 압축력·인장력·응력 등 형태 파괴에 저항하는 힘들이 있다. 결국 모든 부재들이 평형상태를 이루는 전체 구조의 안정성은 모든 하중을 아래방향으로 돌려 지반의 내구력으로 떠받치게 함으로써 유지된다.
건축재료
건물재료는 간단하고 부서지기 쉬운 재료들, 즉 원시적으로 풀로 엮은 초가라든지 나뭇가지로 만든 틀, 아카시아나무에 진흙을 바른 허술한 벽 같은 것으로부터 시작하여 내구성이 강한 점토·벽돌·돌·시멘트와 같은 재료로 발전되어 왔다.
현대에 들어서면 철근 콘크리트를 비롯하여 철골·구리·알미늄·유리·구조섬유·플라스틱 등 여러 재료를 사용해 더욱 대담한 구조물을 세우게 되었고, 재료 자체의 고유한 성질을 잘 활용하여 완전히 새로운 장식계획에 이용함으로써 아름다운 많은 형태들을 만들었다.
건물재료 가운데 중요한 것으로는 돌, 벽돌, 나무, 철과 강철, 콘크리트를 들 수 있다.
자연에서 얻는 재료들은 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점차 가공재료로 바뀌었지만 전적으로 대체된 것은 아니며, 구조적·장식적으로 사용하게 되었다.
돌을 쉽게 구할 수 있는 지역에서는 보통 기념비적인 건축에 쓸 재료로 어떤 건축재료보다도 돌을 많이 사용했다. 돌의 장점은 내구성이 있으며, 표면에 조각하기 쉽고 자연상태로도 건축하기에 적당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채석과 운반, 가공처리가 어렵고 인장력이 약해서 보·인방·바닥구조물로 쓰기에는 한계가 있다.
가장 간단하고 값싼 방식으로는 막쌓기를 들 수 있으나, 기념비적인 건축에 맞는 가장 강하고 적합한 방법은 규칙적으로 돌을 잘라 쌓은 다듬돌쌓기이다. 외장재를 제외한 다른 용도에는 돌보다 더 값싸고 효율적인 가공재료가 쓰이게 되었지만, 돌은 석기시대 이래 각종 건물에 꾸준히 쓰인 재료이다.
벽돌은 하중을 지탱하기에는 너무 작고 가벼우며 울퉁불퉁하기 때문에 반드시 모르타르와 같이 사용해야 한다.
때로는 독특한 구조나 표현에 걸맞도록 그 형태를 특수하게 가공하여 사용한다. 그 예로 아치에 사용되는 쐐기 모양의 벽돌을 들 수 있다. 벽돌은 BC 4000년경부터 사용되었고 고대 근동지방에서는 가장 흔히 쓰이던 건축재료였다. 중세를 거치면서 보편화된 벽돌은 특히 16세기 이후 북부 유럽에서 널리 쓰였다. 20세기에 들어서도 널리 쓰이고 있으며, 보통 철골구조체에서 힘을 받지 않는 비내력벽을 쌓는 주재료로 쓰인다.
나무는 다른 자연재료들에 비해 구하기도 쉽고 운송과 가공도 쉽다.
대단히 큰 구조물이나 기초부분을 제외하면 건물의 어떤 부분에도 효과적으로 나무를 사용할 수 있다. 그러나 나무는 불에 타기 쉽고 흠집이 생기기 쉬우며 해충의 피해를 입는 단점이 있다. 서구에서는 기념비적인 건축에 나무를 사용한 예가 드물지만 중국·한국·일본과 북유럽·북아메리카의 주거건축에서는 그 목조구조의 역사가 길다. 오늘날에도 여러 가지 건축기술에 쓰이고 있는데 합성보나 대들보의 형태로 무거운 구조틀을 만들기도 하고, 합판형식으로 내부와 외부 마감재로 쓰이기도 하며 얇은 판으로 잘라 아치나 트러스를 만드는 일에 사용되기도 한다.
주철(무쇠)과 강철은 돌·벽돌·나무보다 적은 양으로 훨씬 튼튼하고 높은 구조물을 만들 수 있다.
또한 별도의 지지체가 없어도 개구부나 내부·외부 공간을 크게 만들 수 있다. 주철은 이미 1779년부터 다리건설에 사용되었다. 주철은 인장력보다는 압축력에 훨씬 강하기 때문에 보와 같은 인장재보다는 소규모의 기둥에 사용하는 것이 좋다. 19세기경에는 인장력과 압축력에 똑같이 강하고 유연하여 작업하기 쉽고 저항력이 좋은 강철이 등장했다. 철골구조는 단단하고 연속성이 있으며, 용접기술이 발달한 덕택에 부재들의 접합부도 부재만큼 견고하며 하중을 보와 기둥으로 분산시킨다.
콘크리트는 시멘트와 모래와 자갈을 물로 혼합한 가공재료로 빠르게 굳어 돌처럼 단단하고 물과 불에 잘 견디며 압축력에도 강한 응고체가 되지만 인장력에 약하다.
액체상태에서 형틀에 부어 넣을 수 있기 때문에 연속적인 형태를 만들 수 있으며 다른 재료들과 쉽게 혼합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또한 경제적이어서 전통적 재료들을 대신하게 되었다.
콘크리트는 고대 이집트와 로마에서 주로 돔과 볼트, 하수도시설, 다리 등에 쓰였다. 철근 콘크리트는 1860년대 콘크리트의 압축력에 강철의 인장력을 결합하려는 목적으로 발명되었다. 형틀 속에 강철을 올가미처럼 얽어놓고 콘크리트를 부어 만드는데, 일단 응고된 상태에서는 두 재료가 똑같이 반응한다.
건축방법
벽체에는 2가지 유형이 있다.
바닥과 지붕의 하중을 지탱하는 내력벽(耐力壁)과 자체 무게만을 지탱하고 주로 공간을 나누는 역할을 하는 비내력벽으로 나뉜다. 돌이나 벽돌로 쌓은 내력벽은 지지해야 하는 하중에 비례해 두꺼워진다. 대개 벽의 윗부분일수록 두께가 얇아지는데 그 이유는 아래쪽으로 내려갈수록 하중이 더해지기 때문이다. 옆에서 작용하는 힘을 견디기 위해서는 벽전체의 두께가 두꺼워지거나 힘이 집중되는 특정 부위가 두꺼워야 하므로 부축벽을 쓰기도 한다.
어떤 벽을 어느 곳에 세울까 하는 문제는 바닥과 지붕을 받쳐주는 방식에 따라 결정된다.
가장 널리 쓰이는 방식은 보를 이용한 것으로, 보는 양쪽 끝이 벽과 붙어 있는 수평부재이기 때문에 결국 보의 최대 허용길이가 내력벽 사이의 거리를 결정하게 된다.
비내력벽은 구조틀을 이루는 부재에 얹혀 있거나 매달려 있는 것이므로 일종의 커튼이 칸막이와 같다. 따라서 무거운 목조나 그밖의 골조 등 여러 부재가 하중을 지탱하는 곳에서만 비내력벽이 가능하다. 비내력벽에는 전통적인 재료들이 흔히 쓰이지만 유리 플라스틱·합금(合金)·나무도 마찬가지로 효과적이다.
최근에는 이같은 다양한 재료들을 사용하여 표현이 더욱 자유롭고 광범위하며 창조적이 되었다.
구조물에서 하중과 지지의 관계를 가장 간단하게 나타내 주는 것이 가구식 구조이다. 이 구조는 각종 형태의 2개의 수직기둥 위에 수평으로 얹혀진 제3의 부재(인방, 보나 대들보, 서까래)를 떠받치고 있다. 인방은 변형되거나 부서지지 않으면서 하중을 견딜 수 있어야 한다.
또한 기둥은 인방과 인방에 작용하는 하중을 떠받치면서 꺾어지거나 휘어져서는 안된다. 따라서 이때 사용하는 각각의 재료는 대단히 강하고 응집력이 높아야 한다.
선사시대로부터 로마 시대에 이르기까지 가구식 구조는 건축설계의 기본으로, 이집트 사원 내부와 그리스 사원 외부에서 기둥(column) 위에 돌 인방이 얹혀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고대에도 기둥과 인방은 세련되게 사용되었으며 주철기둥이 나타날 때까지 근본적으로 변화가 없었다.
주철기둥은 공간을 적게 차지하면서도 대단히 큰 무게를 지탱할 수 있으므로 건물의 덩치와 무게를 크게 줄였다. 오늘날에는 철골과 콘크리트 구조에서도 가구식 구조방식을 다시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철골조는 대단히 강한 구조로 기둥과 인방을 일체화하여 응력을 분산시킴으로써 가구식 구조의 기본 개념을 탈피했다.
아치는 원호 모양으로 휜 인방이라고 할 수 있다.
아치 기술을 발명함으로써 작고 가벼운 돌들을 쐐기 모양으로 자른 뒤 이어 쌓는 방식으로 개구부를 넓힐 수 있게 되었다. 이때 아치를 구성하는 돌들은 서로 이웃한 돌의 전 표면을 단단히 압착하여 그 부분의 하중에 대해 동일하게 작용하는데 아치 내부의 응력은 원호를 따라 바깥쪽으로 향하도록 압착하고 있는 셈이다. 이때 하중이 실리면 응력은 아래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추력(推力)이라 부르는 사선 방향의 힘을 내는데 이 힘을 적당히 받쳐주지 않으면 아치가 무너진다.
이론적으로는 무한히 큰 아치를 만들 수 있으나 아치가 커질수록 추력도 커지므로 아치를 만들거나 받쳐주기가 더욱 어려워진다.
아치는 이집트와 그리스에서 널리 알려져 있었으나 기념비적 건축에는 부적합하다고 여겨졌다. 로마 시대에 이르러 다리와 수로에 충분히 이용되었고 중세와 고딕 건축에서는 아치의 플라잉 버트레스와 첨두 아치 등 새로운 형태와 쓰임이 발견되었다.
20세기에 들어와 철골과 콘크리트, 얇은 나무합판으로 만든 아치들은 아치의 개념과 기술을 바꾸었다.
구성 요소도 쐐기 모양의 돌과는 완전히 다르며 매우 견고하여 수직 방향으로만 지탱해도 되고 반쪽 아치 모양을 따로 만들어 경첩으로 붙일 수도 있다. 또한 얇은 슬래브나 다른 부재들(철근 콘크리트 구조에서 가능)로 만들 수도 있는데 이럴 때 응력은 분산되어 가벼운 지지체만 있어도 아치의 장점에 인방의 장점을 합친 구조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개혁으로 설계의 영역은 크게 넓어졌고 하부구조를 크고 무겁게 만들지 않고도 큰 공간을 덮을 수 있게 되었다.
볼트의 기본형인 반원통형 볼트(barrel vault)는 고대 이집트와 근동지방에서 나타난 것으로 간단히 말하자면, 깊이가 있는 3차원적 아치라고 할 수 있다.
반원통형 볼트도 아치와 마찬가지로 추력을 발생시키기 때문에 두꺼운 벽으로 받쳐주어야 하며 벽에 만드는 개구부의 크기와 수를 제한해야 한다. 그러므로 반원통형 볼트는 환기와 채광이 잘 안된다는 결점이 있다.
교차 볼트(groin vault)는 2개의 반원통형 볼트가 직각으로 교차한 것이다. 로마인들이 개발한 이 볼트는 길이에 구애받지 않고 계속 반복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리브 볼트(rib vault)는 고딕 건축가들이 만든 것으로 볼트의 양쪽 가장자리를 따라 아치를 떠받치는 갈빗대 같은 기둥인 리브가 뻗어 올라 천장에서 대각선으로 교차함으로써 이루어진다.
이 볼트는 위에 돌이나 벽돌이 놓여도 무게를 견딜 수 있다(→ 고딕 건축).
플라잉 버트레스가 개발됨으로써 벽의 두께는 얇아지게 되었고 조적벽 대신에 더욱 넓은 면적의 유리창을 낼 수 있었다. 플라잉 버트레스는 가장 큰 힘이 작용하는 지점에 볼트의 높이만큼 외부용 반(半) 아치를 설치하여 추력에 저항하는 반추력을 생기게 하는 장치이다.
19세기에 들어와 유리 같은 가벼운 재료를 쓰기 위해 거대한 철골 볼트가 생겨났으며 이를 이용해 런던의 수정궁 같은 건물이 지어졌다.
또한 슬래브를 굽히거나 곡선으로 주조하여 철근 콘크리트를 이용한 셸 볼트를 만들었는데, 이것은 더 이상 하중을 벽으로만 전달할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며 볼트 설계가 훨씬 자유로워졌다.
돔은 볼트와 마찬가지로 아치에서 발전한 것이다. 돔의 가장 간단한 형태는 한 점을 중심으로 일련의 아치들을 돌아가며 계속 만든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돔도 전체 둘레를 따라 추력이 생긴다. 초기에 기념비적인 건축에 쓰인 돔은 육중한 벽으로 받쳐주어야 했고, 이 때문에 중세 후기의 경쾌하고 수직적인 양식에는 부적당하여 쓰이지 않다가 르네상스와 바로크 시대에 들어와서 널리 사용되었다.
르네상스 시대의 건축가들은 돔을 세우기 위해 고딕식의 리브 구조를 채택했고 높은 드럼(원통벽)을 만들거나 돔의 만곡부를 다양하게 만들기 위해 하중과 추력을 줄이는 새로운 수단들을 개발했다. 지오데식 돔은 20세기 R. 버크민스터 풀러가 고안한 것인데, 3면체나 다면체로 가벼운 골조나 평면을 이룬 구(球)의 형태로 아치의 기본원리를 벗어나 구조물 자체로 힘을 분산시킨다.
이 돔은 가벼운 벽으로도 받쳐줄 수 있으며, 완전한 구조체로서 땅 위에 직접 세울 수도 있다.
트러스는 3각형의 각 변의 길이가 달라지지 않으면 결코 모양도 달라지지 않는다는 기하학적인 원리를 이용한 것이다. 그러므로 강한 재질로 만든 3각형 틀은 바람의 압력같은 외부 힘에도 강하다. 적당한 크기의 부재 3개만으로는 만들기 곤란한 큰 규모의 트러스 구조를 조립할 때 작은 3각형을 여러 개 연결하여 큰 3각형을 대신하는 방식을 택한다.
어떤 재료로 조립된 구조라도 바닥이나 벽에 기대지 않고 설 수 있는 튼튼한 골조가 있을 때 안전해진다.
조적식 골조는 벽이 없으면 고정될 수 없기 때문에 골조 구조가 아니다. 반면에 나무·철강·철근 콘크리트 등은 압축과 인장 모두에 강하므로 골조구조에는 가장 좋은 재료이다.
무거운 목재구조에서는 보가 충분히 강하기 때문에 상부층과 지붕이 저층의 기둥 경계선보다 밖으로 나올 수 있다. 상부층과 지붕의 돌출은 공간을 넓히고 비바람을 막아주는 역할을 한다. 이런 구조의 부재들은 대개 외부로 노출되어 있다. 중국·한국·일본의 건축에서 골조 사이의 공간들은 가벼운 칸막이로 둘러싸여 있으며 북유럽에서는 얇은 버팀대로 구획하기도 하고, 합판·패널·벽돌로 구획하기도 한다.
이 구조법이 선사시대에서 19세기 중엽에 이르기까지 동아시아와 북유럽에서 가장 일반적으로 쓰였다.
그뒤 무거운 목재구조 방식은 미국식의 가벼운 목골조(balloon frame) 방식으로 대체되었다. 골조는 작은 부재들로 촘촘히 구성되어 있으며 시간이 오래 걸렸던 과거의 이음방식이나 맞춤방식 대신 못으로 각 부재를 연결하므로 다루고 조립하기가 쉽다. 가벼운 목골조는 수직·수평의 합판재나 널빤지로 감싸는데 비바람을 막기 위해 서로 연결하고 중첩시킨다.
이런 작업은 골조를 꽉 조이고 보호하는 역할도 한다. 따라서 철골구조와는 달리 구조적으로 독립되어 있지 않다.
철골구조는 재료가 대단히 강해 적은 부재로도 훨씬 견고하므로 전체적으로 무척 단순하다. 철강은 하중 지지력이 좋아 다른 재료로 지은 건물보다 몇 배 높이 지을 수 있다.
표현
개요
건축양식은 한 문화의 전망과 그 문화에 속한 건축가의 개념을 나타낸다.
내용과 형태는 양식을 전달하는 표현의 요소이다. 양식의 범위는 여러 가지 서로 다른 양상으로 나타난다. 예를 들어 일본과 마야 양식처럼 국가적이고 지리학적인 것으로 구분할 수도 있고 이슬람 양식처럼 종교에 따라 나누거나 르네상스 양식처럼 지성을 기준으로 삼을 수도 있다. 그밖에 뚜렷한 언어·인종·민족 단위를 기준으로 삼기도 한다. 또한 같은 범위 안에서도 지역·마을·집단 건축가·수공업자의 독특한 양식에 따라 전혀 다른 표현들이 나타난다.
양식을 창조하는 근본적인 힘은 과거 건축에 대한 전통적 경험, 같은 시대 상황 속에서 서로 다른 문화적 환경이 주는 영향, 그 문화나 건축가로 하여금 새로운 계획을 세우도록 하는 혁신이나 창조적인 기여 등이다.
내용
내용은 건축에서 중요한 문제로, 건물의 기능을 설명하는 특별한 의미를 전달한다.
따라서 건축은 사회의 실질적인 요구를 만족시켜야 하고 건물을 사용할 단체의 포부도 전달해야 한다. 더욱이 건축 형태가 평면·입면·장식을 통해 내용을 담는 도구가 될 때 형태는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연상에 의해 상징성을 띠게 된다(예를 들면 교회에서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첨탑).
건축 평면이 상징적으로 쓰일 때는 형상을 통하여 의미를 전달한다.
선사시대로부터 많은 문화를 거치면서 원(圓)은 행성을 암시하거나 자연을 표시하는 것으로서 상징적이고 신비스런 의미를 나타냈으며 주택, 무덤, 종교건축물의 평면에 사용되었다. 그뒤 점차로 동서양 모두에서 성소나 영웅 숭배를 위한 장소에 쓰이기 시작했다. 건축기술이 발달하면서 원의 상징성은 돔의 모습으로 자주 나타났다.
고대 로마인들과 그리스도교인, 그리고 인도의 불교신자들 사이에서 돔은 우주적인 힘을 의미했다.
르네상스 시대에 이르러 돔은 종교건축물뿐 아니라 궁전과 관청건물에도 쓰였으며 어느 정도 힘을 암시했다. 미국의 국회의사당도 돔으로 덮여 있는데, 우주적인 힘이라는 본래 의미는 사라지고 절대적 힘이라는 상징성만 남아 있다.
원시적인 자연 의식에 기원을 둔 탑은 항상 힘을 상징해왔다.
중국의 큰 불탑도 일반적 의미의 탑에 중심 평면의 상징성을 확대한 것이다. 북유럽의 고딕 교회에는 많은 탑과 첨탑이 세워졌으며, 중세 이탈리아의 도시에는 자신의 권위를 드러내고자 하는 귀족들의 끊임없는 경쟁으로 말미암아 탑으로 숲을 이루었다. 탑의 의미는 오늘날 마천루로 이어졌으며 흔히 마천루의 효율성이나 아름다움보다 그 높이가 더 큰 자랑거리가 되었다. 장식은 건축의 내용을 가장 쉽게 인식시키는 매체로 건축적 요소나 조각·회화·모자이크·스테인드글라스 같은 미술을 통해 의미를 전달한다.
장식으로 쓰이는 건축요소는 보통 건축기술에서 비롯되었으며, 시간이 흐름에 따라 구조적 의미는 사라지고 상징만 남기도 한다.
많은 근대건축에서 사실상 전통적인 상징들이 사라지고 있다. 회화나 조각 등 여러 예술과 마찬가지로 근대건축은 추상화되고 있으며 상징을 통해 친숙한 개념들을 전달하기보다는 형태의 특성을 강조한다.
내용의 2번째 측면은 재료와 건축방법이 갖는 구조상의 의미를 전달하는 것이다.
비내력벽에서 매끄러운 표면은 약해 보인다. 건축 과정에서 돌이나 벽돌 같은 석재는 재료끼리 닿는 부분을 뚜렷이 드러나게 쌓고 많은 양의 모르타르를 사용함으로써 강조된다. 또한 때때로 무거운 목재구조 방식처럼 구조를 노출시켜 건축방법을 강조하는 수도 있다.
그러나 많은 양식에서, 구조를 이루는 각 부재들은 기능보다는 설명적 측면을 강조해 설계함으로써 구조방식을 나타낸다.
예를 들어 그리스의 기둥은 중간 높이 바로 아래에서부터 곡선으로 폭이 줄어들어 윗부분이 바닥보다 가늘다. 이것은 하중을 견디는 억센 힘을 표현한 것이다. 이런 표현은 기둥 대신 쓰인 사람 형상의 여상주(女像柱)나 로마네스크식 현관에서 기둥을 떠받치는 짐승, 난쟁이 형상에서 더욱 분명하게 나타난다. 근대식 철골구조 건물에서는 숨겨진 골조의 형태가 정면에서 반복되어 나타나게 함으로써 건축기술을 꿰뚫어볼 수 있게 하며 유리 등의 재료로 만든 얇은 표면으로 커튼 월의 가벼움과 독자성을 드러내기도 한다.
이같은 기술적인 내용표현은 20세기 건축이론의 기초를 이루었으며, 이는 19세기의 상징적인 내용 표현에 대한 반작용을 나타낸다.
형태
형태를 표현하는 과정에서 건축가는 의미있는 형태를 창조하는 방식을 자유롭게 전달한다.
의미있는 형태란 작품의 물리적인 모양, 크기, 매스뿐만 아니라 작품의 미학적인 구조와 구성에 관련된 요소들(공간이나 매스)을 포함한다. 공간과 매스를 정돈된 형태로 조직하는 과정을 구성이라고 부르며, 이 과정에서 표현하는 성질을 주는 기본 수단으로 규모·빛·질감·색감 등이 있다.
한 사람이 어느 공간에 들어서면 자신이 어느 만큼 어떻게 움직일 수 있고 움직일 수 없는가 하는 것을 기준으로 공간을 가늠하게 된다.
예를 들어 고딕 성당의 네이브에서는 양 옆에 늘어선 높은 벽이 관찰자의 움직임을 제한하여 제단 쪽을 향한 자유 공간을 따라 나아가도록 유도한다. 이러한 압박감 때문에 관찰자는 머리 위의 볼트와 빛을 올려다보게 된다. 고딕 공간이 주는 이러한 경험은 사람에게 윗 방향만을 강요하기 때문에 상승감을 준다.
한편 르네상스 건축 공간은 사람이 균형있게 움직이도록 한다.
관찰자를 중심점으로 유인하고, 그곳에서 모든 방향으로 움직임이 균형잡혀 있다고 느끼게 하며 압축과 이완이 상충된 효과를 알 수 있게 한다. 결과적으로 르네상스 건축 공간은 고딕 성당의 느낌과는 정반대라 할 수 있는 안식의 느낌을 준다.
대부분의 근대 건축은 공간을 자유롭게 조절하는 과정에서 가변성을 요구한다. 근대적 기술은 압력에 대한 느낌을 약화시켜 과거의 무거운 벽과 지지체들을 없애도록 했다.
건물의 매스를 이해하려면 공간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움직임에 의존해야 한다.
그러나 이 움직임은 예상된 움직임이 아니라 반드시 물질적 움직임이어야 한다. 왜냐하면 가장 간단한 건물이라도 한 곳에서 관찰할 때는 건물의 어떤 부분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일부 건축물들은 공간 표현보다 매스 표현에 많은 비중을 두기도 한다. 1가지 예로 이집트의 피라미드에서 내부 공간은 아무 의미가 없으나 기능과 건축기술 면에서 건축적이며, 표현에서 조각적이다.
공간과 매스는 건축형태를 이루는 기본 요소이다.
건축가는 이 두 요소에서부터 각각을 전체로 조직해내는 구성을 통해 정연하고도 창조적인 표현을 한다. 가장 간단한 건축요소인 면은 매스와 공간을 구분하는 2차원적인 표면이다. 면 가운데 가장 간단한 것은 방을 이루는 벽이다. 면에 문이나 창 같은 다른 요소가 첨가되면 반드시 비례를 고려해야 한다. 처음에는 벽에 대한 단일한 요소로서 창이나 문의 비례를 고려하고 그뒤 각 요소끼리의 비례를 고려한다. 줄지어 있는 창문과 같은 경우 연속성(리듬)이 비례의 관계나 마찬가지로 한 요인이 된다.
더구나 벽면은 깊이감을 주기 위해 불규칙하게 만들거나 표면을 파낼 수도 있고, 표현적 형태의 일부인 상징물을 덧붙일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전체적인 구성이 3차원적으로 완성되려면 지붕과 여러 벽, 그밖의 면과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만약 구성이 여러 요소들간의 관계를 조직하는 것일 뿐이라면 그 과정은 창조적인 것이 아니라 기계적인 것이 될 것이며 세상의 모든 건축은 똑같이 좋은 것 아니면 나쁜 것으로 인식될 것이다.
구성의 목적은 특정한 개념이나 경험을 표현하는 것이다. 가령 관찰자들이 공간을 통과하거나 건축물 전체의 둘레를 움직일 때는 각 요소들이 바로 앞뒤에 있는 다른 요소들과 관련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그 모든 것들이 건물 전체의 내용을 증진시킨다고 느끼도록 만들어야 한다.
마찬가지 방식으로 사람이 건축물의 어느 한 부분에서 움직일 때도 전체적인 매스의 구성이 갖는 의미가 드러난다.
예를 들어 고딕 성당의 각 부분들은 저마다 다른 특징을 지니고 있으므로 이들에 대해 서로 다르게 경험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경험은 오직 전체의 표현형태가 총체적으로 인식될 때만 충분한 의미를 갖는다. 근대 건축에서 이같은 구성의 균형과 대칭 개념은 각 부분끼리의 차이 제거, 전체적인 연속성을 함축하는 원칙으로 대체되고 있다.
척도는 자기 자신의 기준과는 달리 건축물의 비례를 측정하려는 관찰자와 건축구성 비율을 조화시키려는 시도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로마 건축과 르네상스 건축에서는 부분적으로 그리스의 오더를 장식요소로 사용해 마냥 크기만 한 매스를 받아들일 만한 여러 부분으로 나누어버렸다. 가장 성공적인 근대의 마천루들은 일정한 모듈을 계속 되풀이하는 방법을 써서 엄청난 크기를 지녔음에도 받아들일 수 있는 척도를 유지하고 있다. 이런 이유로 골조가 벽 뒤에 숨겨졌다 해도 바깥으로 튀어나오게 표현하는 것이다.
빛은 매우 강한 표현수단이다.
빛은 움직이면서 사물의 특징을 변화시키고 광원과 함께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것으로 건축이라는 움직이지 않는 덩어리에 활기를 불어넣어 준다. 건축가들은 건물 외부보다는 내부의 빛을 더 잘 조절한다. 유리와 그밖의 투명 재료들은 빛을 변화시켜 색채와 명암을 만들어 구조체에 의미를 덧붙여준다. 더구나 빛은 형태를 분명하게 만들기보다는 해체시키면서 환상적으로 만들기도 한다. 이러한 실례로서는 이스탄불의 하기아 소피아 사원를 들 수 있는데, 빛이 돔을 받치고 있는 기단부에 비치면 그 부분이 사라지는 것처럼 보여 마치 둥근 덮개가 공중에 떠 있는 듯한 인상을 준다.
건축에서 질감은 이중 역할을 한다.
재료의 성질을 표현하는 동시에 빛을 비추었을 때 특별한 성질을 전달한다. 재료의 질감이 촉각적이라면 빛의 질감은 시각적이다. 모든 재료들 속에 존재하는 촉각적인 질감은 표현적 성질을 주기 위해 변형되기도 한다. 자연상태로 남아있는 돌은 불규칙한 모양을 하고 있으나 끌로 다듬어 거칠거나 부드러운 질감을 내기도 하고 아주 반질반질하게 갈기도 하여 힘찬 느낌부터 세련된 느낌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느낌을 준다. 시각적 질감은 표면에 리듬을 부여함으로써 움직임을 연상시킨다.
건물의 재료는 우선 구조적인 가치에 맞춰 선택하므로 색감이 좋아 선택되는 재료들은 대개 외장재로 쓰인다.
이런 재료로는 안료를 비롯하여 얇은 돌이나 나무판재, 인조재료 등이 있다. 색채에 빛을 반사시키면 다른 표현을 얻을 수 있다. 빛을 반사하는 색채는 관찰자의 눈에 앞으로 나온 것처럼 보이며 빛을 흡수하는 색채는 뒤로 물러나 있는 것처럼 보인다.
장식
장식은 3가지 범주로 뚜렷이 구분된다.
첫째는 모방 장식으로 특별하거나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 형태이다. 둘째는 응용 장식으로 단순히 아름다움을 더하기 위한 의도를 갖는다. 셋째는 유기적 장식으로 건물의 기능이나 재료 자체에 들어 있다.
모방 장식은 원시문화와 고대문화 전반에 걸쳐 가장 흔히 나타난 장식 유형으로 새로운 재료와 기술을 가지고 과거의 쓰임새와 친숙한 모양, 성질들을 재생산하려고 노력한 결과였다. 건축의 모방 장식 대부분은 종교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 종교에서는 특정한 형태들이 신성시되었으며 상징적 가치 때문에 보존되고 재생산되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단순히 변화를 싫어하는 보수주의적 경향 때문에 모방 장식이 생겨나기도 한다.
응용장식은 상징적 의미가 부족하고 장식이 놓여 있는 구조와도 별로 관련성이 없다. 반면에 유기적 장식은 건물의 본래 기능이나 사용된 재료로부터 나온다. 중세를 통해 교회는 하늘을 상징하는 으뜸가는 실재로 인식되었다. 교회의 건축 장식은 아무리 다양하고 사치스러워도 문제가 되지 않았으며 상징성을 강조하기 위해 끊임없이 디자인되었다.
금도금을 한 것이든 아무리 복잡하거나 다양성을 띤 것이든 그 모든 것들은 전체적으로 영광을 표현하는 것이었으며, 건축 형태의 한 부분이었다.
건축이론
일반적인 철학사와 마찬가지로 건축철학의 역사는 전세대 사람들이 건물과 구조에 관해 어떤 생각을 했는지 가르쳐준다.
건축철학에 관한 일관된 논의를 위해서 우선 2개의 상호 배타적인 건축이론을 구분해야 한다. 첫번째 이론은 응용예술인 건축을 다룬 철학을 특정 유형의 예술에 관한 일반 철학으로 보는 입장이다. 이와 정반대인 2번째 이론은 건축철학이 다른 예술이론과 많은 공통성을 갖고 있지만 일반적으로 완전히 다르다고 여기는 입장이다.
첫번째 이론은 일반적인 예술이론이 존재하며 건축 이론은 일반 예술이론이 특수하게 확장된 것으로 본다.
이 이론은 16세기 이후 주로 영어권 이론가들 사이에 널리 퍼졌다. 17, 18세기에 프랑스 문화의 영향을 받아 순수예술의 개념이 적용되고 1750년경 미학 이론이 발달하자 이 이론은 더욱 신뢰를 얻었다. 따라서 많은 사람들은 건축이란 예술의 거대한 스펙트럼에 펼쳐진 한 측면으로 이해했다. 미학적인 사고에 따르면 기능과 무관하게 미에 관한 이론을 정립할 수 있다. 1790년 독일의 철학자 이마누엘 칸트가 주장한 말에 따르면 건축은 이른바 종속적 미를 가지고 있으며 구조물의 총체적 조화를 이루게 하는 요소인 설계·규칙성·대칭을 통해서만 이 아름다움을 인식할 수 있다고 한다.
2번째 이론으로서 건축철학이란 독특한 것이며 건물 예술과 특별한 관련이 있을 때만 발전한다는 이론은, 1485년 이탈리아 인문주의자 레온 바티스타 알베르티가 처음 소개했다.
알베르티는 건축이란 단순한 응용수학이라고 주장한 1세기의 로마 건축기술자 비트루비우스의 이론을 거부하여 이 이론을 내놓았다. 그러나 건축이 건물의 예술로서 독특하게 인정받은 것은 16세기 프랑스의 건축가 필리베르 들로름이 이해했던 것처럼 중세 석공의 거장들에게서 비롯된 프랑스 전통인 듯하다.
18세기 이전의 건축이론은 주로 개인이나 대중들에게 중요한 건물, 교회나 궁전을 다루었다.
왜냐하면 이 건물들에 나타난 기술수준이 대단히 높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부가 폭넓게 분배되고 건축의 전문성이 증가하는 등 다양한 요인들이 건축가들에게 압력을 가하기 시작했으며 결국 건축가들은 실제적 관심을 가진 토목기술자와 예술을 하는 건축가로 분류되었다. 이러한 차이는 두 전문직에 지원한 학생들을 교육하는 방식에 따라 더욱 벌어졌다. 토목을 공부하는 학생들은 전체 구조물을 설계하지 않아도 되지만 건축을 공부하는 학생들은 전체 구조물을 설계하는 일부터 시작하여 점점 복잡한 구조물을 설계한다.
토목기사들은 경제법칙에 영향받고 수학적인 계산에 따라 우주와의 조화를 이루지만, 건축가들은 형태를 배열하는 순수 창작활동을 통해 실질적 미를 성취한다.
그러나 건축은 장식을 추가한 토목기술로 잘못 이해되고 있으며, 더구나 조화보다는 미에 중점을 둠으로써 토목기술과 건축이라는 두 전문분야의 위치가 더욱 벌어지기도 한다. 건축이론은 경제성보다는 특정한 이상에 도달하는 것에 관심을 갖지만, 표준화 같은 개념을 통해 경제적 요구도 만족시키는 아름다운 구조를 창조할 수도 있게 만들어야 한다.
형강(型鋼)을 표준화하고 재사용이 가능한 거푸집 속에 콘크리트를 부어 넣음으로써 재정을 절약한 것은 조화·대칭·비례와 경제성을 결합한 훌륭한 보기이다.
르네상스 시대 이후에는 좋은 건물의 인간주의적이고 골동품적인 측면들이 거의 인정받기는 했지만 고딕 복고운동과 미학이 결합하여 르네상스적 사고를 압도하면서 비로소 건축과 건물 간의 뚜렷한 차이에 중요한 의미를 두기 시작했다.
18세기까지 건축이론은 근본적으로 구조적 안정성, 적절한 공간조절, 시선을 끄는 외관이 주관심사였으나 1750년 이후 많은 건축가들이 이 견해를 바꾸기 시작했다.
구조는 옛날 석공들이 믿었던 중력의 법칙을 무시하는 것처럼 만들어졌으며 과학적인 연구를 통해 적절한 공간조절을 위한 경제·음향·온도·빛 등 결정 요인들이 바뀌었다. 또한 미의 개념은 점차 개인의 취향에 따라 결정된다.→ 서양건축사, 한국의 건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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