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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아트의 제왕

앤디 워홀

Andy Warhol
요약 테이블
출생 1928년경
사망 1987년 02월 22일
국적 미국
대표작 〈캠벨 수프 통조림〉, 〈2달러 지폐들〉, 영화 〈첼시의 소녀들〉 등

매스미디어에서 소재를 찾아 작품을 대량 생산하면서 미술계에 혁명적인 변화를 일으켰다.

“나는 그저 언제나 내게 아름다워 보이던 것들, 우리가 깨닫지 못한 채 매일같이 쓰고 있던 물건들을 그린 것뿐이다.”

미술계 최초의 팝스타, 생전에 이미 전설이 된 현대 미술의 아이콘 앤디 워홀. 그는 캠벨 수프, 코카콜라, 엘비스 프레슬리, 마릴린 먼로 등 등 대중에게 익숙하고 유명한 이미지들을 모티프로 20세기 미국의 문화적 정체성을 표현했다. 그는 대량 소비 사회의 일상적 오브제들을 예술품으로 승화시켰으며, 실크 스크린, 스텐실, 에피스코프, 데칼코마니 같은 혁신적인 기법을 사용하여 작품을 대량 생산하면서 순수 미술과 상업 미술의 경계를 무너뜨렸다. 이런 시도들에 담긴 함의는 포스트모던 미술에 전반적인 영향을 끼쳤으며 워홀은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미술가로 꼽힌다.

워홀은 1928년경 미국 펜실베이니아 피츠버그에서 태어났다. 본명을 앤드류 워홀라이다. 아버지는 석탄 광산에서 일하던 체코슬로바키아 이민자로, 그가 14세 무렵 오염된 물 때문에 병으로 죽었다고 한다. 이런 가정환경은 후일 워홀을 아메리칸 드림의 표상으로 만들었으며, 워홀은 여기에 몇 가지 소문을 더하여 인생 내력을 포장해 마케팅 수단으로 활용했다. 그는 개인적인 내력을 모두 감추거나 부정했는데, 출생증명서가 위조라고 주장할 만큼 객관적인 기록조차 모두 부정했다. 그는 사생활을 지키고자 무척 신경을 썼으나, 이 역시 단순한 사생활 보호가 아니라 자기 인생에 대한 신비화 작업의 일환이기도 했다.

워홀은 피츠버그의 카네기 공과대학에서 산업 디자인을 전공했으며, 1949년 뉴욕으로 올라와 잡지 일러스트레이터 및 광고 디자이너로 일했다. 1950년대 〈보그〉, 〈하퍼스 바자〉 등의 잡지와 광고에 삽화를 그렸으며, 아트 디렉터로 각종 상업 광고물을 제작했다. 그는 아트 디렉터 클럽 어워드, 아트 디렉터 클럽 메달 등을 수상하고, 뉴욕 현대미술관의 〈최근의 드로잉, 미국〉 전에 초청되었다. 또한 〈라이프〉 지도 그의 삽화들을 출판하는 등 젊은 나이에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나 워홀은 늘 ‘위대한 예술가’로 성공하기를 꿈꿨으며, 르네상스 시대의 작품들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 이때도 그는 미래의 예술적 행보를 꿈꾸면서 자신의 이미지를 만들었다고 한다. 가령 그는 자신의 진지한 성격과 취향을 백치미가 넘치는 백금발의 가녀린 외모 뒤에 숨겼으며(이는 그가 숭배했던 마릴린 먼로가 스타가 된 행보와 유사하다), 옷차림과 장신구에 무척 관심을 기울였고,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1950년대 말, 워홀은 캔버스에 작품을 그리기 시작했으며, 광고와 뉴스 표제 기사, 연재 만화 등 매스미디어에서 소재를 찾았다. 그리고 1960년대 초 배트맨, 딕 트레이시, 슈퍼맨 등 만화 속 인물에 대한 연작을 제작하면서 팝아트 운동에 동참했다. 그러나 그 이전에도 대중 만화와 광고에서 소재를 찾은 아티스트들은 여럿 있었다. 또한 워홀의 작품 제작 방식 역시 당대의 다른 팝아트 작가들을 모방하여 대량 생산된 이미지에 물감을 뭉개거나 흘린 것으로 신선하다고 할 수 없었다. 때문에 이때만 해도 그는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다. 무엇보다 그는 자신과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제재를 가지고 다른 방식으로 작업한 로이 릭턴스타인의 작품을 보고 대중 만화를 모티프로 삼기를 포기했다. 곧 그는 일상적인 소비재, 달러 지폐, 유명인의 초상화 등을 제재로 삼았으며, 기법도 실크 스크린으로 바꾸었다.

1962년, 워홀은 〈캠벨 수프 통조림〉, 〈2달러 지폐들〉을 실크 스크린 기법을 사용해 제작하면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그리고 소비 사회의 물품들에서 마릴린 먼로, 엘리자베스 테일러, 엘비스 프레슬리 등 대중문화의 아이콘이 된 할리우드 스타들의 스틸 사진을 잘라 다양한 크기에 다양한 색깔을 입혀 대량으로 복제했다. 워홀은 인물의 내면이나 성격을 드러내는 ‘초상화’의 기능을 수행하는 데 관심이 없었으며, 그의 작품 속에서 인물들은 대중문화와 소비문화의 산물, 그 자체로 보였다.

앤디 워홀이 실크 스크린 기법으로 제작한 〈마릴린 먼로〉가 담긴 우표

ⓒ 청아출판사 | 저작권자의 허가 없이 사용할 수 없습니다.

또한 이 시기 〈제트기에서 129명 사망(비행기 추락사고)〉, 〈피로 물든 인종 폭동〉과 같이 신문의 보도사진을 활용한 실크 스크린 작품을 제작했는데, 이 사진들은 그의 작품 속에서 ‘사건’이 지닌 비극성과 진실을 보여 주는 대신 회화적이고 시각적인 이미지로만 기능했다. 그럼으로써 워홀은 실제 사건에 대한 미디어의 태도에 존재하는 취약성을 그대로 폭로했다.

그런 한편 사형 제도를 고찰하게 하는 전기의자 연작들과 케네디 대통령 저격 사건 직후 재클린 케네디의 이미지를 복제하면서 시대 상황 및 그에 대한 함의를 담은 작품도 제작했다. 워홀이 만들어 낸 아름다운 영부인에서 미망인이 된 재클린 케네디의 이미지들은 그 어떤 보도사진보다 대중에게 강한 충격을 주었다.

1962년, 워홀은 후일 ‘팩토리’라고 불리는 다락방을 임대했다. 그는 자신의 작품이 공장에서 대량 생산하듯 만들어진다는 것을 이미지화하여 작업실에 팩토리라는 이름을 붙였고 실제로 그는 ‘아트 워커’를 고용해 작품을 대량 복제했다. 이곳에서 그해부터 2년간 약 2천 점이 넘는 작품이 제작되었다고 한다.

팩토리는 단순히 작업실이 아니라 사교의 장소이자 워홀의 이미지를 생산해 내는 곳이기도 했다. 이곳에서 워홀은 믹 재거, 트루먼 카포티, 에디 세즈윅 등과 함께 머물렀고, 끊임없이 파티를 열어 당대의 유명인사들을 불러들였다. 이곳은 당대 예술 현장의 중심이 되었다. 또한 영화, 음악 등 다양한 작업들이 이곳에서 이루어졌다. 워홀은 1963년 팩토리에서 전위 영화 〈잠〉과 〈엠파이어〉를 제작했으며, 이듬해에는 75편의 영화를 만드는 엄청난 기록을 세웠다.

할리우드 스타들에 대한 관심만큼 영화 제작에 열을 올린 나머지 1965년에는 영화 제작에 몰두하기 위해 회화를 포기하겠다고 선언하기도 했다(그러나 실제로 그가 회화 작업을 하지 않은 것은 몇 년 되지 않았다). 그가 만든 영화는 총 250여 편에 달하며, 그중에는 〈첼시의 소녀들〉과 같이 상업적인 성공을 거둔 작품도 있다. 또한 1965년에는 전위 음악을 하는 밴드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프로듀싱과 재킷 디자인을 했다.

앤디 워홀과 극작가 테네시 윌리엄스

ⓒ 청아출판사 | 저작권자의 허가 없이 사용할 수 없습니다.

1968년, 워홀은 팩토리에서 작업하던 중 직원이었던 발레리 솔라나스에게 저격당했으나 극적으로 살아남았다. 솔라나스는 “그가 내 인생을 지배하고 있다.”라고 저격 이유를 밝혔다. 워홀은 여기에서 영감을 얻어 작품 〈해골〉을 만들었으며, 이 사건으로 팩토리는 더욱 유명세를 탔다.

1970년, 〈라이프〉 지는 워홀을 비틀스와 함께 1960년대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로 선정했다. 1970년대에 워홀은 미술 사업가로 변신했으며, 잡지 〈인터뷰〉를 창간했다. 또한 유명인의 초상화를 주문받아 실크 스크린으로 제작했으며, 닉슨의 중국 방문에 맞춰 〈마오〉 연작을 제작했다.

1980년대에는 카무플라주 패턴을 활용한 〈요셉 보이스〉, 심리학자 헤르만 로르샤흐가 개발한 심리 테스트용 형상에서 모티프를 얻어 얼룩을 활용한 추상 작품 〈로르샤흐〉를 제작하는 등 실험적인 시도를 했다. 또한 1972년부터 시작한 〈마오〉 연작에서는 실크 스크린으로 작업한 뒤 수작업으로 표현한 부분을 강조했는데, 이런 경향은 1980년대에 더욱 심화되어 〈르네상스 회화의 부분〉 연작처럼 캔버스에 아크릴이라는 정통적인 방식으로 작품을 제작하기도 한다.

워홀은 도발적인 멋쟁이, 팝아트의 제왕, 최초의 예술가 스타로 화려하고 사치스러우며 도발적인 삶을 살았다. 총격 사건 때도 두 달간의 투쟁 끝에 살아난 그였으나, 죽음은 생각보다 어이없이 찾아왔다. 1987년 2월 21일, 워홀은 뉴욕 코넬 의료센터에서 담낭 수술을 받았다.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으나 워홀은 다음 날 페니실린 알레르기 반응으로 인한 심장발작을 일으켜 사망하고 말았다.

앤디 워홀의 무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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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은 집필자 소개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하고 대학원에서는 미술 이론을 공부했다. 미술관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했고, 많은 작품을 직접 만나기 위해 미술관, 박물관을 찾아다녔다. 해외 미술 서적들을 국내에 번역해 소개하..펼쳐보기

출처

미술사를 움직인 100인
미술사를 움직인 100인 | 저자김영은 | cp명청아출판사 도서 소개

미술사에 큰 영향을 끼친 100인의 예술가를 소개한다. 회화, 판화, 조각 등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들을 소개하며 그들의 삶과 작품을 통해 역사와 예술의 관계의 흐름을 ..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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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외(13세기∼현대) 창조성과 예술성을 모두 갖춘 화가, 조토 디 본도네 미술에서 르네상스 미술로의 전환, 마사초 이탈리아 미술에 혁신을 불러오다, 도나텔로 그리스도의 소명을 회화로 표현하다, 프라 안젤리코 플랑드르 회화를 확립한 선구자, 얀 반 에이크 종교화에 인간의 감정을 불어넣다, 로히어르 판 데르 베이던 회화에 수학적 기법을 입히다,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 일본 산수화를 집대성하다, 셋슈 도요 이탈리아 베네치아 화파의 창시자, 조반니 벨리니 성스러운 괴물, 산드로 보티첼리 악마의 화가, 히에로니무스 보스 르네상스 시대 최고의 천재, 레오나르도 다 빈치 르네상스의 정신을 구현한 전인, 알브레히트 뒤러 르네상스 시대의 위대한 예술가,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풍경화로 미술에 혁신을 일으키다, 조르조네 베네치아 미술계의 거장, 베첼리오 티치아노 서양 미술사의 고전적 규범, 라파엘로 산치오 독일 르네상스 시대를 대표하는 초상화가, 소 홀바인(한스 홀바인) 강렬하고 역동적인 작품 세계, 틴토레토 농민의 화가, 대 피터르 브뤼헐 강렬하고 독창적인 개성의 발로, 엘 그레코 중국화의 계보를 정리하다, 동기창 바로크 회화를 완성하다, 안니발레 카라치 관념적인 화풍을 파괴한 혁신가, 카라바조 절제된 고전적 전통과 대비되는 격렬함, 페테르 파울 루벤스 웃음의 화가, 프란스 할스 프랑스 근대 회화의 시조, 니콜라 푸생 진정한 리얼리티를 구현한 화가, 디에고 벨라스케스 빛과 어둠의 마술사, 렘브란트 문인화에 독창적인 양식을 결합하다, 팔대산인 우아하고 섬세한 필치로 빛을 그리다, 요하네스 베르메르 상류사회의 일상을 화폭에 옮기다, 장 앙투안 와토 다채로운 프레스코 천장화를 선보이다, 조반니 바티스타 티에폴로 나의 회화는 나의 무대, 윌리엄 호가스 일상의 사물을 신비롭게 표현한 화가, 장 바티스트 시메옹 샤르댕 가장 영국적이고 독창적인 화가, 토머스 게인즈버러 사랑을 노래한 로코코 화가, 장 오노레 프라고나르 근대 회화의 아버지, 자크 루이 다비드 전쟁의 참상을 화폭에 담다, 프란시스코 호세 데 고야 강렬하고 화려한 우키요에의 대가, 가쓰시카 호쿠사이 화필을 든 신비주의자, 카스파르 다비드 프리드리히 미술사상 가장 위대한 풍경화가, 조지프 말러드 윌리엄 터너 신고전주의의 선구자, 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 사회적 리얼리스트, 테오도르 제리코 자연과 교감하며 풍경을 담은 화가, 장 밥티스트 카미유 코로 19세기 프랑스 낭만주의 회화의 대표, 외젠 들라크루아 현실을 직시한 사실주의의 혁명, 귀스타브 쿠르베 농민의 일상을 대변한 바르비종파 화가, 장 프랑수아 밀레 현대적인 디자인의 시작, 윌리엄 모리스 인상주의의 아버지, 에두아르 마네 인상파를 창시한 수련의 화가, 클로드 모네 독자적인 노선의 인상파 화가, 에드가르 드가 근대 회화의 아버지, 폴 세잔 가장 위대한 근대 조각가, 오귀스트 로댕 인생을 따뜻하게 바라본 아름다운 화가,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 관습을 무시한 천진난만한 화가, 앙리 루소 원시로의 회귀를 주장한 회화계의 이단아, 폴 고갱 해바라기의 화가, 빈센트 반 고흐 20세기 회화의 새로운 장을 열다, 조르주 피에르 쇠라 예술을 일상으로 끌어들인 아르누보의 대가, 알폰스 무하 황금의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 개성이 뚜렷한 자유로운 화가, 툴루즈 로트레크 작품에 내면을 드러낸 표현주의 화가, 에드바르 뭉크 미국 근대 사진의 개척자, 앨프리드 스티글리츠 순수 추상화를 탄생시킨 미술사의 혁명, 바실리 칸딘스키 독일 프롤레타리아 회화의 선구자, 케테 콜비츠 야수파 운동을 주도한 20세기 회화의 혁명가, 앙리 마티스 수직선과 수평선으로 구성된 기하학적 세상, 피에트 몬드리안 현대 추상 조각의 선구자, 콘스탄틴 브랑쿠시 꿈같은 이미지의 창조자, 파울 클레 20세기 미술을 지배한 천재, 파블로 피카소 몽마르트르의 보헤미안, 아메데오 모딜리아니 가장 멕시코적인 화가, 디에고 리베라 현대 미술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다, 마르셀 뒤샹 색채의 마술사, 마르크 샤갈 점과 선으로 내면의 환상을 표현한 소박한 거장, 호안 미로 철학자로 불린 화가, 르네 마그리트 실존의 고뇌를 표현한 조각가, 알베르토 자코메티 20세기 가장 독창적인 천재, 살바도르 달리 고통스런 삶을 그림으로 승화시킨 화가, 프리다 칼로 일그러진 인간상을 끊임없이 탐구하다, 프랜시스 베이컨 미국 미술의 자존심, 잭슨 폴록 미술의 위계질서에 도전장을 던진 팝아트 작가, 로이 릭턴스타인 팝아트의 제왕, 앤디 워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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