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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화단을 지배한 위대한 화원

안견

안가도(安可度), 安堅
요약 테이블
출생 미상
사망 미상
대표작 〈몽유도원도〉 등
시기 조선 초기

한국적 산수화풍을 창출했으며, 이후 조선 회화에 큰 영향을 끼쳤다.

안견은 조선 초기에 활동한 화원으로, 한국적 산수화풍을 창출한 조선 시대 최고의 화가로 꼽힌다. 그가 활동하던 당시부터 조선 중기 이후까지 조선 시대 화원 대부분이 그의 화풍을 이어받았을 정도로 우리나라 회화사상 영향력이 가장 큰 인물이다. 신분이 낮은 화원 출신이었기 때문에 그의 생애에 대해서는 확실히 알려진 바가 없어 조선왕조실록이나 다른 기록들에서 잠깐 언급되는 것으로 추정하는 것이 전부이다. 전해 오는 그림 역시 매우 적으며, 그의 작품인지도 확실하지 않다. 그의 작품으로 확실하게 인정되는 것은 〈몽유도원도(夢遊桃源圖)〉가 유일한데, 조선 초기는 물론, 조선 시대 전체를 대표하는 그림 중 하나로 꼽힌다. 그 밖에 안견의 작품으로 여겨지는 것은 〈사시팔경도(四時八景圖)〉, 〈소상팔경도(瀟湘八景圖)〉, 〈적벽도(赤壁圖)〉, 〈산수도(山水圖)〉, 〈연사모종도(煙寺暮鐘圖)〉 등이 있다.

안견은 1400년 혹은 1418년에 태어난 것으로 여겨지나 확실하지 않다. 세종 시기에 활발히 활동했으며, 세조 시기까지 활동했으리라고 추정된다. 자는 가도(可度), 득수(得守), 호는 현동자(玄洞子), 주경(朱耕)이며, 자나 호가 지어진 배경이나 그 의미도 밝혀진 바가 없다. 본관은 충청남도 지곡으로 알려져 있다.

안견은 조선 시대에 그림 그리는 일을 담당하던 관청인 도화원(성종 때 도화서로 개칭)에 소속된 화원으로, 젊은 시절부터 산수, 묵죽, 장송, 노안도 등 못 그리는 그림이 없었으며, 산수화에 있어서는 필적할 이가 없다고 평가받았다. 신숙주는 그에 대해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우리 조정에 유명한 화가 한 사람이 있는데, 안견이라 한다. 성이 총민하고 정박(精博)하며, 옛 그림을 많이 보아 그 요체를 모두 얻고 여러 대가들의 좋은 점을 모아 총합하고 절충하였다. 옛것으로부터 빌었지만 그와 필적할 만한 사람은 얻기 어렵다.”

안견이 위대한 화원이 될 수 있었던 데는 타고난 재능도 작용했겠지만, 이에 더해 안평대군과 교유하며 화가로서의 안목을 기르고 그의 비호를 받은 덕분이기도 하다. 안평대군은 세종의 셋째 아들로, 조선 시대의 대표적인 예술 후원자였다. 시와 글씨, 그림에 능했고, 중국 고전 회화에 박학했으며, 수많은 서화를 수집했다. 안평대군이 25세 때 안견이 그의 초상을 그렸다는 기록이 있는 점으로 미루어 일찍부터 안평대군과 교유하며 총애를 받은 것으로 보인다.

1445년경 안견은 정4품인 호군(護軍)의 벼슬에 올랐다. 화원이 정4품의 지위에 오른 것은 그가 최초이다. 화원은 세종 시기에 최고 5품까지 오를 수 있었고, 성종 시기에는 종6품 별제까지 오를 수 있는 지위였다. 안견이 1400년경 출생했다면 40대, 1418년생이라면 20대인데, 어느 쪽이든 젊은 나이에 화원의 한계를 뛰어넘을 정도로 안정적인 실력과 세력을 갖추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성종조인 1478년에는 아들 안소희가 문과에 급제했다. 비록 대신들의 반대에 부딪혀 높은 관직을 얻지 못했으나 화원의 아들이 신분 제한을 뛰어넘어 대과인 문과에 급제했던 것은 예외적인 일로 아버지 안견의 명망이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당시 안견의 위상이 어느 정도인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예다.

안견은 최고의 후원자였던 안평대군이 형 수양대군에 의해 희생된 계유정난에서도 살아남았으며, 세조(수양대군) 시대에도 그 명성은 빛이 바래지 않았다. 일반적인 경우라면 안평대군이 희생된 후 그 역시 죽거나 몰락하는 것이 당연했을 것이다. 여기에 대해 윤휴의 《백호전서》에 한 가지 재미있는 일화가 전한다.

안평대군은 안견을 특히 아껴 집으로 불러 그림을 그리게 하고 한시도 집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했다. 그러나 안견은 시절이 수상한 것을 감지하고 안평대군의 집 밖으로 나올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어느 날 안평대군이 중국에서 귀한 용매먹(龍煤墨丸)을 구해 안견에게 그림을 그리게 했는데, 외출했다 돌아오니 용매먹이 사라져 있었다. 이에 종들을 다그치자 그들은 안견을 지목했고, 안견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소맷자락에서 먹이 떨어졌다. 이를 본 안평대군은 진노하여 안견을 내쫓고 다시는 집에 들이지 않았다고 한다. 안견은 이후 자신의 집에서 두문불출했고, 얼마 후 계유정난이 일어나 안평대군을 비롯해 그 집에 드나들던 사람이 모두 죽임당하거나 화를 입었다고 한다.

안견은 안평대군을 비롯해 사대부들과 교유하며 많은 그림을 그렸으며, 도화원 화원으로서 의궤도(궁정과 조정의 각종 행사를 그린 그림)도 많이 그렸다. 〈대소가의장도(大小駕儀仗圖)〉, 〈중묘조서연관사연도(中廟朝書筵官賜宴圖)〉, 〈과거도(科擧圖)〉, 〈기영회도(耆英會圖)〉 등을 그렸다고 하나 현재 전하는 것도, 안견의 작품이라고 확증된 것도 거의 없다. 유일하게 확증된 것이 〈몽유도원도〉이다.

〈몽유도원도〉는 1447년(세종 29) 음력 4월 20일 밤 안평대군이 꿈속에서 도원경을 거닐며 본 바를 안견에게 이야기해 주고 그리게 한 그림으로, 사흘 만에 완성했다고 한다. 이 그림은 안평대군이 발문을 썼으며 신숙주, 박팽년, 정인지, 최항 등 세종 대의 고사(高士) 21명이 친필로 찬문을 썼다. 이 작품은 한국 회화사뿐만 아니라 문학사, 서예사에서 큰 가치를 지닌다.

〈몽유도원도〉

덴리 대학 부속 덴리 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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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유도원도〉는 구성부터 독창적이다. 동양 회화에서는 화면이 흔히 우측에서 시작되어 좌측에서 끝나는 것이 통상적이나 이 그림은 왼편 하단부부터 오른편 상단부로 대각선을 따라 전개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크게 네 장면으로 구성되었는데, 왼편은 현실 세계, 오른편은 꿈속의 도원경이다. 안평대군이 박팽년을 데리고 꿈속 유랑을 나서는 데서 시작하여, 복숭아 숲과 험준한 산을 지나 도원에 도착한 후 다시 현실로 돌아오는 총 네 단계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그림의 시점 역시 독특하다.

현실 세계는 정면에서, 도원경은 위에서 내려다보는 듯한 부감법으로 구별해 표현했는데, 이는 산으로 둘러싸인 도원을 보다 효과적으로 보여 주기 위해서이다. 기기묘묘하게 뻗어 있는 산세, 복숭아 꽃밭이 늘어선 갈래길, 먼 산을 감싼 안개 등 꿈속 환상의 세계가 몽환적이고도 고요하게 표현된 작품이다. 필묵법에 있어서는 산수화를 완성했다고 평가되는 중국 북송 시대 화가 곽희의 영향을 받았음을 부정할 수 없으나, 공간감을 표현한 방식이나 구도, 구성, 세부 묘사에 있어 독자적인 화풍을 창출했다고 평가받는다.

〈몽유도원도〉는 조선 초기 시, 서, 화의 정수가 결집된 작품으로 평가되며, 중국의 도원도(桃源圖)각주1) 들과 확연히 구별되는 특징을 지녀 조선 시대 산수화에 큰 영향을 미쳤다. 안견의 화풍은 화원들은 물론, 사대부 계층까지 폭넓게 전파되어 조선 후기에 정선의 진경산수화가 등장할 때까지 조선의 화단을 지배했다. 또한 일본 수묵화의 거장 슈분(周文)이 조선에 사절단으로 와 그의 그림을 배워 간 영향으로 인해 무로마치 시대 수묵화에서도 안견의 화풍을 엿볼 수 있다.

안견은 1464년(세조 10) 김시에게 대나무 그림을 그려 주었다는 기록으로 보아 이때까지 작품 활동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세조 시기가 끝나 갈 무렵 점차 화원으로서의 활동이 축소되었으며, 아들 안소희가 과거에 급제하던 성종 시대에는 안정된 노년기를 보냈으리라 여겨진다. 1470년대 말에 사망했다고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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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은 집필자 소개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하고 대학원에서는 미술 이론을 공부했다. 미술관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했고, 많은 작품을 직접 만나기 위해 미술관, 박물관을 찾아다녔다. 해외 미술 서적들을 국내에 번역해 소개하..펼쳐보기

출처

미술사를 움직인 100인
미술사를 움직인 100인 | 저자김영은 | cp명청아출판사 도서 소개

미술사에 큰 영향을 끼친 100인의 예술가를 소개한다. 회화, 판화, 조각 등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들을 소개하며 그들의 삶과 작품을 통해 역사와 예술의 관계의 흐름을 ..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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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외(13세기∼현대) 창조성과 예술성을 모두 갖춘 화가, 조토 디 본도네 미술에서 르네상스 미술로의 전환, 마사초 이탈리아 미술에 혁신을 불러오다, 도나텔로 그리스도의 소명을 회화로 표현하다, 프라 안젤리코 플랑드르 회화를 확립한 선구자, 얀 반 에이크 종교화에 인간의 감정을 불어넣다, 로히어르 판 데르 베이던 회화에 수학적 기법을 입히다,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 일본 산수화를 집대성하다, 셋슈 도요 이탈리아 베네치아 화파의 창시자, 조반니 벨리니 성스러운 괴물, 산드로 보티첼리 악마의 화가, 히에로니무스 보스 르네상스 시대 최고의 천재, 레오나르도 다 빈치 르네상스의 정신을 구현한 전인, 알브레히트 뒤러 르네상스 시대의 위대한 예술가,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풍경화로 미술에 혁신을 일으키다, 조르조네 베네치아 미술계의 거장, 베첼리오 티치아노 서양 미술사의 고전적 규범, 라파엘로 산치오 독일 르네상스 시대를 대표하는 초상화가, 소 홀바인(한스 홀바인) 강렬하고 역동적인 작품 세계, 틴토레토 농민의 화가, 대 피터르 브뤼헐 강렬하고 독창적인 개성의 발로, 엘 그레코 중국화의 계보를 정리하다, 동기창 바로크 회화를 완성하다, 안니발레 카라치 관념적인 화풍을 파괴한 혁신가, 카라바조 절제된 고전적 전통과 대비되는 격렬함, 페테르 파울 루벤스 웃음의 화가, 프란스 할스 프랑스 근대 회화의 시조, 니콜라 푸생 진정한 리얼리티를 구현한 화가, 디에고 벨라스케스 빛과 어둠의 마술사, 렘브란트 문인화에 독창적인 양식을 결합하다, 팔대산인 우아하고 섬세한 필치로 빛을 그리다, 요하네스 베르메르 상류사회의 일상을 화폭에 옮기다, 장 앙투안 와토 다채로운 프레스코 천장화를 선보이다, 조반니 바티스타 티에폴로 나의 회화는 나의 무대, 윌리엄 호가스 일상의 사물을 신비롭게 표현한 화가, 장 바티스트 시메옹 샤르댕 가장 영국적이고 독창적인 화가, 토머스 게인즈버러 사랑을 노래한 로코코 화가, 장 오노레 프라고나르 근대 회화의 아버지, 자크 루이 다비드 전쟁의 참상을 화폭에 담다, 프란시스코 호세 데 고야 강렬하고 화려한 우키요에의 대가, 가쓰시카 호쿠사이 화필을 든 신비주의자, 카스파르 다비드 프리드리히 미술사상 가장 위대한 풍경화가, 조지프 말러드 윌리엄 터너 신고전주의의 선구자, 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 사회적 리얼리스트, 테오도르 제리코 자연과 교감하며 풍경을 담은 화가, 장 밥티스트 카미유 코로 19세기 프랑스 낭만주의 회화의 대표, 외젠 들라크루아 현실을 직시한 사실주의의 혁명, 귀스타브 쿠르베 농민의 일상을 대변한 바르비종파 화가, 장 프랑수아 밀레 현대적인 디자인의 시작, 윌리엄 모리스 인상주의의 아버지, 에두아르 마네 인상파를 창시한 수련의 화가, 클로드 모네 독자적인 노선의 인상파 화가, 에드가르 드가 근대 회화의 아버지, 폴 세잔 가장 위대한 근대 조각가, 오귀스트 로댕 인생을 따뜻하게 바라본 아름다운 화가,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 관습을 무시한 천진난만한 화가, 앙리 루소 원시로의 회귀를 주장한 회화계의 이단아, 폴 고갱 해바라기의 화가, 빈센트 반 고흐 20세기 회화의 새로운 장을 열다, 조르주 피에르 쇠라 예술을 일상으로 끌어들인 아르누보의 대가, 알폰스 무하 황금의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 개성이 뚜렷한 자유로운 화가, 툴루즈 로트레크 작품에 내면을 드러낸 표현주의 화가, 에드바르 뭉크 미국 근대 사진의 개척자, 앨프리드 스티글리츠 순수 추상화를 탄생시킨 미술사의 혁명, 바실리 칸딘스키 독일 프롤레타리아 회화의 선구자, 케테 콜비츠 야수파 운동을 주도한 20세기 회화의 혁명가, 앙리 마티스 수직선과 수평선으로 구성된 기하학적 세상, 피에트 몬드리안 현대 추상 조각의 선구자, 콘스탄틴 브랑쿠시 꿈같은 이미지의 창조자, 파울 클레 20세기 미술을 지배한 천재, 파블로 피카소 몽마르트르의 보헤미안, 아메데오 모딜리아니 가장 멕시코적인 화가, 디에고 리베라 현대 미술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다, 마르셀 뒤샹 색채의 마술사, 마르크 샤갈 점과 선으로 내면의 환상을 표현한 소박한 거장, 호안 미로 철학자로 불린 화가, 르네 마그리트 실존의 고뇌를 표현한 조각가, 알베르토 자코메티 20세기 가장 독창적인 천재, 살바도르 달리 고통스런 삶을 그림으로 승화시킨 화가, 프리다 칼로 일그러진 인간상을 끊임없이 탐구하다, 프랜시스 베이컨 미국 미술의 자존심, 잭슨 폴록 미술의 위계질서에 도전장을 던진 팝아트 작가, 로이 릭턴스타인 팝아트의 제왕, 앤디 워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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