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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로마사
가족과 도시 국가
목차
접기로마인들의 일상 생활
상고기에 로마의 주민들은 일상 생활에서 언제나 종교행위와 연관되어 있었다. 그래서 가정신 숭배는 그들에게 있어서 도시국가의 중요한 신들의 숭배와 거의 동등한 위치를 차지했다.
기원전 3세기까지 로마인은 농민으로서 생활해왔다. 일출에서 일몰까지 들판에서 열심히 일했으며 치즈, 올리브, 물을 섞은 포도주 등과 함께 삶은 야채, 보리죽, 과일 등으로 이루어진 음식물이 주식이었다. 의복은 조잡한 형식으로 가정 내에서 여자들과 노예들이 직접 만들어 입었다.
그들이 거주한 가옥도 또한 매우 소박했다. 시골에는 짚과 나뭇가지로 엮어서 만든 지붕과 초벽칠을 한 벽으로 건립된 작은 가옥들이 있었다. 도시에서는 에트루리아인들이 로마인들에게 주방, 식당, 침실의 기능을 동시에 수행할 수 있는 장방형의 내실, 아트리움(Atrium) 등을 포함하고 있는 장방형의 가옥을 건립하는 방법을 가르쳐주었다. 또한 빗물을 모아두기 위한 장방형의 저수조(Impluvium)와 가정에서의 제사의식 거행을 위한 제단도 있다. 가구는 대체로 몇 개의 의자들과 목제 상자, 한 개의 책상, 매우 간소한 침대 등으로 한정되어 있었다.
가족 생활
로마의 가족은 절대적인 권위의 가부장 제도가 기본 바탕이 되었다. 부친은 출생한 자식을 유기하거나 그의 마음대로 결혼을 시킬 수도 있었다. 만일 자식이 죄를 저지른다면 사형에 처할 수도 있었다.
아이가 태어나면 탄생 후 1주일을 보낸 후에야 비로소 부친은 아이를 인정하고, 그에게서 악운들을 제거하기 위한 정화의식을 치른다. 이렇게 해서 가문에 등재된 어린 로마인은 후에 가문명과 이 가문에서 파생된 분가들 중의 하나임을 나타내는 명칭(Cognomen) 앞에 기재되는 이름을 부여받는다. 그러나 딸은 씨족명칭을 여성형으로 변형시킨 이름을 부여받았다. 가령 율리우스(Julius) 가문인 경우에 딸은 율리아(Julia)로 지칭되었다.
결혼은 가족 생활에서 중요한 행사였다. 결혼의 법정 연령은 여자는 12세, 남자는 14세로 정해져 있지만 대개 훨씬 많은 나이에 결혼했다(남자는 35세). 결혼식 전날에 어린 딸은 하얀색 튜닉을 걸치고 가정의 수호신에게 그녀의 인형을 바친다. 다음날에 그녀는 희생물들을 가정의 수호신에게 바치고 부친의 집의 아트리움에서 엄숙하게 가족들과 이별을 한다. 그 다음에 어린 남편은 그의 아내를 약탈해오는 것처럼 가장하여 양친과 친구들의 행렬을 이끌면서 새로운 집까지 그녀를 데려와야 한다. 그러나 이런 강력한 가부장제와는 상반되게 로마는 이혼을 인정했다.
노인은 로마에서 특별히 존경받았다. 죽은 사람에 대해서도 사람들은 다소 경외롭게 대했다. 왕정 시대에는 장례식이 밤에 거행되었지만 곧 낮에 시행되었고, 살아왔던 시대의 기억을 남겨서 죽은 사람의 권위를 고양시켰다. 그리고 나서 죽은 사람은 로마의 촌락과 큰 도로를 따라 시외 지역에 매장하도록 되어 있다. 로마인들은 신으로 간주된 조상, 즉 죽은 사람의 영혼을 진정한 마음으로 숭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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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와 로마를 중심으로 한 고대 지중해 세계의 역사를 재미있는 에피소드와 함께 이야기 식으로 풀어냈다. 신화가 아닌 역사에 중심을 두고, 고대 지중해 세계의 역사를 ..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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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가족과 도시 국가 – 이야기 그리스로마사, 신선희 외, 청아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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