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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로마사
마케도니아 왕국의 그리스 제패
마케도니아의 왕 필립포스의 최종적인 목표는 페르시아를 정벌하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필립포스는 부국강병의 기치를 세우고, 전면적인 군제 개혁을 단행하고 외교력과 군사력을 발휘하여 마케도니아의 세력을 확장시켜 나갔다.
총 네 차례의 신성 전쟁을 통해 그리스 세계를 차츰 정복해나간 필립포스는 이윽고 전 그리스 도시의 대표들을 모아 범그리스 연맹을 결성했다. 도시 내부의 당쟁과 도시 간의 무력 갈등을 금지하면서, 도시의 자치를 인정한다는 것이 주요 원칙이었다. 이를 통해 그리스 세계는 평화를 이룩했지만, 동시에 폴리스 특유의 정치적인 활동도 사라지게 되었다.
마케도니아의 왕 필리포스
필립포스(필립 2세)는 어린 시절 테베에 인질로 보내져 생활하던 중, 그곳에서 에파메이논다스의 사선대형 전법을 익힌 바 있었다. 그래서인지 필립포스는 기원전 359년 마케도니아의 왕위에 오르자마자, 곧 바로 부국강병책의 기치 아래, 그 일환으로 전면적인 군제개혁을 단행했다. 그 결과 마케도니아의 국력은 비약적으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또한 필립포스는 국제 정세에 대한 정확한 판단을 기초로 노련한 외교수완과 탁월한 군사력을 발휘해서 왕국의 판도를 계속 넓혀갔다. 트라키아를 복속시켜 판가이온 금광을 손에 넣어 왕국 재정을 튼튼히 했는가 하면, 기원전 348년에는 칼키디케 연방의 올린토스 시를 포위·함락하고 그 주민을 노예로 매각 처분하기도 했다. 아테네는 올린토스의 지원 요청에 겨우 용병을 파견했으며, 시민군을 파견했을 때에는 이미 함락당한 뒤였다. 이 사건은 당시 아테네가 비록 에우보이아를 지키는 데 총력을 기울였지만, 올린토스를 중시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동시에 필립포스의 행동방식을 그리스인에게 충격적으로 깨우쳐 준 사건이었다. 즉 그는 침략을 감행하면서, 아테네와의 동맹에 별로 구애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필립포스는 중부 그리스에서도 포키스가 델포이의 아폴론 신전 영역의 땅을 경작한 사실에서 실마리를 얻어 제3차 신성전쟁에 개입해, 테살리아를 지배하에 두고 테르모필레로 달려갔다. 그러나 아테네가 파견한 군단을 무리해서 돌파하지 않고, 마케도니아로 철수했다. 트라키아로 다시 방향을 바꾼 필립포스는 페리안토스를 포위했지만, 페르시아의 개입으로 실패했다. 그러나 이는 훗날 페르시아 원정으로 나가는 사전 포석 중 하나였다.
카이로네이아의 결전
아테네가 훨씬 더 두려워하던 사태가 결국 터지고 말았다. 곡물을 자급자족할 수 없었던 아테네는 곡물의 대부분을 흑해 방면에서의 수입에 의존하고 있었다. 그 수송로 상의 요충지인 비잔티온과 에우보이아에 필립포스의 손길이 뻗쳐왔던 것이다. 기원전 340년 필립포스가 비잔티온 부근에서 곡물수송단을 나포하면서 마케도니아와 아테네는 교전상태에 돌입했다. 다행히도 아테네는 에우보이아와 비잔티온을 필립포스로부터 지킬수 있었다.
하지만 이듬해 필립포스는 암피사 시를 응징하기 위한 제4차 신성전쟁에 개입해 그곳을 점령했다. 이어 델포이에서 보이오티아의 레바데이아를 향해 진군했는데, 테베는 그런 필립포스의 움직임에 깜짝 놀랐다. 그래서 테베는 숙적 아테네에 설득되어 서둘러 동맹을 맺고 공동대응을 꾀했다. 그리하여 기원전 338년 8월, 카이로네이아에서 그리스 세계의 운명을 건 결전을 치르게 된다. 필립포스의 기묘한 책략과 18세의 왕자 알렉산더의 활약에 힘입어 마케도니아는 그리스 연합군을 패주시켰다. 테베는 곧 바로 항복했고, 그곳에 친 마케도니아 정권이 수립되었다. 아테네에 대한 필립포스의 조치는 관대했지만, 아무튼 그리스에 대한 필립포스의 패권은 확고해졌다.
범 그리스 연맹 결성
필립포스는 독립을 표방하면서 마케도니아의 패권을 인정치 않는 스파르타를 무시한 채, 전 그리스 도시들의 대표들을 코린토스에 모아 회의를 개최했다. 그 결과 범그리스 연맹이 결성되었다. 이 연맹은 각 도시의 자치독립 보장, 기존 정치 체제의 고착화, 빈민의 슬로건이던 부채 말소와 토지 재분배 같은 사회·경제 질서의 혁명적 변화 금지, 그리스 도시들 간의 무력 갈등 금지 등을 주요 원칙으로 삼았다. 한편 각 도시는 연맹의 밖에 서서 연맹군을 총 지휘하는 필립포스와 개별적으로 동맹을 맺었다. 이로써 그는 자신의 최종 목표인 페르시아 정벌을 위한 병력공급원을 확보했다. 그리스 제패는 이 궁극적 목표의 전제요 출발점에 불과한 것이었다. 아테네에 대한 관대한 조처 역시 그 해군력의 활용을 염두에 두었기 때문이다.
기원전 337년 범그리스 연맹은 페르시아 전쟁을 복수한다는 명분하에 페르시아 원정을 결의했다. 범그리스 연맹은 그리스 세계가 앓아 온 두 가지 중병, 즉 도시들 간의 끊임없는 전쟁 상태와 도시 내부에서의 고질적인 당쟁을 치유하고, 마침내 전반적인 평화 상태―그 당시 그리스인들의 표현을 빌면 '보통 평화(Common Peace)'―를 이룩했다. 하지만 부유층에 유리한 기존 체제의 고착화와 당쟁의 금지는 시민들의 평등을 추구하는 운동이 더 이상 불가능하게 했다. 예컨대 아테네에서는 부유층을 시달리게 한 악몽과도 같은 공공봉사 제도(leiturgia)가 폐지되었다. 그러나 이는 동시에 정치적으로 그리스에 특유한 폴리스 사회의 생명력을 앗아가버린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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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와 로마를 중심으로 한 고대 지중해 세계의 역사를 재미있는 에피소드와 함께 이야기 식으로 풀어냈다. 신화가 아닌 역사에 중심을 두고, 고대 지중해 세계의 역사를 ..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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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마케도니아 왕국의 그리스 제패 – 이야기 그리스로마사, 신선희 외, 청아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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