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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로마사
원정의 원인과 경과
알렉산더 대왕(알렉산더 3세)은 아버지 필립포스 2세의 유지를 받들어 동방원정을 추진했지만, 그 본래의 목적은 페르시아 전쟁 중 페르시아 대왕 크세르크세스가 그리스의 신들에 가한 모독행위에 복수를 하는 것이었다. 그는 원정에 앞서 기원전 335년 봄, 북쪽의 트라키아인과 서쪽의 일리리아인에 대한 지배권을 확립하고, 그 사이 반란을 꾀한 테베에 대해서는 본보기로 전 도시를 파괴하고 시민들을 노예화했다.
그는 사선전법을 터득해 페르시아를 격파할 때까지 3번의 전투를 치렀다. 기원전 334년 이른 봄 알렉산더는 대군을 이끌고 헬레스폰토스를 건넜다. 5월에는 그라니코스 강변에서 처음으로 페르시아군과 싸워 승리를 거두고 소아시아로 나가는 길을 열었다. 그는 소아시아 서안을 따라 남하해 사르디스, 에페소스, 밀레토스, 할리카르나소스를 점령·함락해 그 땅을 평정했다. 이어 기원전 333년 11월초 이수스에서 벌어진 전투의 양상은 폼페이에서 출토된 한 장의 모자이크 그림에 묘사되어 있다. 이 싸움에서 크게 승리한 뒤, 원정군은 시리아 연안을 따라 남하해 이집트로 들어갔다. 거기서는 자신의 이름을 따서 알렉산드리아라는 도시를 건설하였는데, 이 도시는 헬레니즘 시대에 소아시아의 페르가몬이나 프리엔네와 함께 가장 번영한 도시로 유명했다.
유프라테스 강 서쪽의 땅을 평정한 알렉산더가 치른 최후의 전투는 기원전 331년 10월 티그리스강 쪽의 가우가멜라에서 벌어졌다. 이 전투에서 그는 페르시아군을 결정적으로 괴멸시키고, 페르시아 제국의 주요 도시를 점령했으며, 페르세폴리스의 웅장한 궁전을 불태웠다. 그 결과, 다리우스 3세는 페르시아 대왕으로서 실권을 완전히 잃었다. 페르시아 전쟁에 대한 보복으로 원정도 일단 그 목적이 달성된 셈이었다. 하지만 알렉산더 대왕의 정복욕은 그칠 줄 몰랐다. 그는 새로이 군대를 편성해, 기원전 330년 여름 엑바타나를 출발했다. 한편 도망 중이던 다리우스 3세는 부하의 변절로 최후를 맞았다. 그로써 아케메네스 왕조의 페르시아는 기원전 330년 7월에 명실상부하게 멸망했다.
알렉산더 대왕은 기원전 327년 봄까지 3년간 박트리아, 소그디아나 지방을 포함해 전 이란 땅을 평정했다. 그가 다음에 눈을 돌린 곳은 인도로, 기원전 327년 초여름 대군을 조직해 박트라에서 출발했다. 이듬해 봄 인더스 강을 건너 히타스페스(오늘날의 옐룸 강) 강변에서 포로스왕의 군대와 싸워 격전 끝에 격파하고, 기원전 325년 7월까지 히타스페스 강 유역의 부족들을 평정했다. 그가 펀잡 너머의 인도에 대해 얼마나 많이 알고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군대의 항명사건이 아니었더라면 더 동쪽으로 진군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마지못해 회군에 동의했고 인더스 강 하류 쪽으로 내려와서, 일부 병력을 이끌고 게드로시아를 통과해 철수하기 시작했다. 알렉산더 대왕은 기원전 323년 6월 13일에 열병 때문에 바빌론에서 숨을 거둘 때까지 10년 동안, 서쪽으로는 아드리아 해의 동안에서 동쪽으로는 인더스 강 유역, 북으로는 다뉴브 강에서 남으로는 이집트에 이르는 무려 3대륙에 걸친 방대한 제국을 건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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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와 로마를 중심으로 한 고대 지중해 세계의 역사를 재미있는 에피소드와 함께 이야기 식으로 풀어냈다. 신화가 아닌 역사에 중심을 두고, 고대 지중해 세계의 역사를 ..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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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원정의 원인과 경과 – 이야기 그리스로마사, 신선희 외, 청아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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