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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가집과 황토는 금상첨화
한옥의 기본은 기와집과 초가집이지만 우리나라의 기후나 자연 환경에 가장 잘 어울리는 것은 초가집이다. 초가집은 한국인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민초들의 집이기 때문이다.
근대 과학은 초가집이 가장 합리적인 에너지 절약형 주택이라고 말한다. 초가집의 기본은 나무로 집의 뼈대를 세운 뒤 추수를 마친 볏짚을 이용해 지붕을 만들고, 우리나라 어디에서나 발견되는 진흙으로 두껍게 벽을 쌓고 창호지 문을 설치하는 것이다. 이렇게 단순하게 보이는데도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다는 점에서 선조들의 슬기를 느낄 수 있다.
짚은 보통 벼를 수확하고 남은 줄기를 가리키는 말로 알려져 있지만 짚의 의미는 보다 폭넓다. 대백과사전을 보면 벼, 밀, 보리, 조 따위의 이삭을 떨어낸 줄기라고 적혀 있다. 그러므로 벼의 경우 볏짚, 보리의 경우 보릿짚, 콩의 경우 콩짚, 밀의 경우 밀짚이라고 한다. 한 가지 특이한 것은 반드시 곡식에만 짚이라는 단어를 쓴다는 점이다.
짚의 역사는 곡식 재배와 함께하기 때문에 시작은 농경 생활로 거슬러 올라간다. 우리나라에서는 신석기 후기부터 곡식을 재배했으므로 이때부터 짚 문화가 발달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윤나오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짚 문화는 '집'이라는 단어에서 찾을 수 있다고 적었다. 초가집은 말 그대로 '볏짚으로 이은 집'이라는 뜻이다. 잘 마른 볏짚을 모아 엮어 지붕으로 얹기만 하면 초가집이 된다는 설명이다.
짚으로 만든 지붕은 가벼워서 기둥에 거의 압력을 주지 않으므로 기둥이 쓸데없이 굵지 않고, 비가 오거나 눈이 녹아도 짚의 결을 따라 흘러내려 잘 새지 않는다. 또 지붕 위에 얹힌 볏짚은 단열재 역할을 하므로 추운 겨울과 여름을 나기에 매우 유용하다. 이는 볏짚과 보릿짚을 잘라 단면을 비교하면 알 수 있다. 보릿짚은 짚 가운데에 구멍 하나만 크게 뚫려 있는 빨대 모양이다. 그러나 볏짚은 크고 작은 구멍이 여럿 모여 있는 다공성 구조다.
단열재란 열을 전달하지 않는 재료로, 원리는 재료가 비어 있는 공간을 많이 갖도록 한 것이다. 양철지붕이나 돌 지붕보다 초가가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한 것도 짚의 단열성 때문이다. 선조들은 볏짚으로 돗자리를 만들기도 했는데 다른 짚으로 만든 것과는 다르게 푹신했기 때문이다.
짚은 한국인들이 가장 중요시한 농사 뒤에 얻은 부산물이며, 대표적인 생활 용구는 망태기다. 새끼를 가늘게 꼬아 그물처럼 성글게 엮어 끈을 매단 것인데 현대식으로 따지면 산에 나무를 하러 갈 때, 또는 들로 꼴을 베러 갈 때 둘러메고 다니는 다용도 가방이다.
또한 농촌에서 중요시한 것은 가마니로 곡식을 운반, 보관, 저장하는 데 안성맞춤이다. 사실 가마니처럼 과학적인 용구도 없다. 통풍이 잘되고 습기를 막아줄 뿐만 아니라 병충해 방제 효능까지 있기 때문이다.
가마니가 얼마나 과학적인지는 설탕이 세계를 석권할 때의 문제점을 보아도 알 수 있다.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후 설탕은 유럽인들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그런데 문제는 설탕을 남아메리카에서 유럽으로 운반하기 위해 머나먼 대서양을 건너야 한다는 점이었다. 열대 지방을 통과하면 습기 때문에 설탕이 녹아버려 이만저만한 골칫거리가 아니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유럽에서 현상금을 걸었는데, 채택된 아이디어는 설탕 봉지에 환기가 될 수 있는 조그마한 구멍을 여러 개 뚫는 것이었다. 설탕을 가마니에 넣었다면 번거로운 문제가 애초부터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짚으로 만든 용구로는 우장과 짚신도 있다. 우장에는 도롱이와 접사리가 있으며 농부들이 비 올 때 걸치는 최고의 우비였다. 도롱이는 어깨에 두르고 삿갓을 쓰는 차림으로 서양의 망토와 비슷하다. 접사리는 머리부터 뒤집어쓰는 것이다.
볏짚의 활용은 짚신으로 완성된다고 볼 수 있다. 한국인의 전 생애는 짚신으로 시작해 짚신으로 끝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과거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집에 짚신 틀과 짚신골을 비치해 두고 가족의 신발을 손수 삼았다. 드라마에서 먼 거리 여행을 떠날 때 여러 켤레의 짚신을 갖고 다니는 것을 보았을 것이다. 짚신은 사람만 신은 것은 아니다. 소에게도 짚신을 신겼으며 이를 쇠신이라 했다. 추운 겨울 눈길이나 뜨거운 여름 자갈길을 걸어가는 말 못하는 소의 괴로움을 모를 리 없으므로 신긴 것이다.
초가집에서 짚을 받쳐주는 소나무의 역할도 만만치 않다. 소나무의 겉은 연질이지만 속심에는 송진이라는 썩지 않는 성분이 있어 겉은 썩더라도 속심은 멀쩡하다. 오래된 집이라 지붕이 기우뚱해도 넘어지지 않는 것은 이 때문이다. 진흙으로 된 두꺼운 벽도 초가집의 중요한 요소다. 일반적으로 흙을 갤 때 짚을 넣거나, 수수깡 또는 대나무를 심재로 넣어 흙이 무너지는 것을 막는다.
두꺼운 벽은 낮에 비추는 태양열을 흠뻑 받아들여 차가운 저녁에 실내로 방출하는 역할도 한다. 우리나라 기후는 여름에는 고온다습이고 겨울에는 저온저습이므로 여름에는 습기로 인해 불쾌지수가 높고 겨울에는 살을 에듯 춥다. 이런 기후에는 열기와 냉기를 차단해주는 자재가 적합하며 그것이 흙이다.
더구나 초가집은 두꺼운 흙이 저절로 습도를 조절해주기 때문에 가습기가 필요 없다. 사람이 가장 쾌적하게 느끼는 습도는 평균 60~65퍼센트이지만 한국의 여름 장마철에는 종종 습도가 80~90퍼센트를 오르내려 불쾌지수를 느낀다. 황토는 여름철의 습기를 흡수했다가 건조할 때 내주는 일종의 에어컨이다. 저절로 습도를 조절해주기 때문에 가습기가 필요 없으며 습기가 차지 않아 결로 현상도 없다. 또한 초가집은 도시형 주택보다 30퍼센트 정도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다.
초가집을 황토로 지으면 금상첨화다. 황토는 아주 가는 모래가 모여 만들어진 흙으로 다양한 광물 입자로 구성되어 있으며, 황토 1그램에는 약 2~5억 마리의 각종 미생물이 살고 있다. 황토의 분해력과 정화력은 미생물 덕분이다. 미생물들이 숨 쉬고 있는 황토는 식물의 영양 공급원인 동시에 인간의 질병을 치료하는 약품으로도 활용된다.
옛날에 배탈이 나면 황톳물을 마셨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는 민간요법이다. 독충에 물린 자리에도 황토를 발라 독을 뺐고, 장이 약한 사람에게는 황토 찜질을 권했다. 이런 민간요법이 효과를 본 까닭은 인체에서 나오는 독성을 중화하는 황토의 성질 때문이다.
흙은 성분과 색깔에 따라 적토, 황토, 흑토, 백토 등으로 나뉜다. 이 가운데 황토가 인체의 생리 작용과 가장 잘 맞는다고 하지만 황토라고 모두 같은 것은 아니다. 『동의보감』과 『향약집성방』에는 황토라도 방향과 위치에 따라 약성이 달라진다고 기록되어 있다.
동 황토는 해 뜨는 동쪽을 향한 양지 바른 동산에서 100년 이상 직각으로 햇볕을 쬔 흙을 말한다. 서 황토는 해 지는 서쪽을 향해 역시 직각으로 햇볕을 받은 동산의 흙을 가리킨다. 반면에 남 황토와 북 황토는 아무런 효용이 없다고 한다. 황토를 햇빛을 받은 시기에 따라 구분하기도 한다. 경주 석굴암이 있는 토함산 부근의 황토는 100년 황토라 한다. 지리산의 흙은 1,000년 황토, 경남 양산의 가락국 왕궁 터에 있는 흙은 2,000년 황토라고 부르는데 벽돌을 만들거나 집 등에 사용하는 주거용 황토는 100년 정도면 충분하다고 한다.
황토의 광물 조성은 다음과 같다. 석영 60~70퍼센트, 장석과 운모 10~20퍼센트(세 가지 성분을 합하면 화강암이 됨), 탄산염은 5~35퍼센트까지 함량이 다양하게 변하며 약 2~5퍼센트의 인회석, 흑운모, 석류석, 휘석, 지르콘 등이 포함된다. 0.02밀리미터 이하의 세립질 크기에서는 몬모릴로나이트, 일라이트, 캐올리나이트 등과 같은 점토 광물이 많이 포함된다.
또한 황토에는 카탈라아제, 프로테아제, 다이페놀 옥시데이스, 인버테이스 등 인체에 유익한 효소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다. 특히 카탈라아제는 흙이 갖고 있는 효소 중에서 가장 높은 활성을 보인다. 노화 현상을 불러오는 과산화 지질이라는 체내 독소를 중화 내지 희석해 젊음을 유지시켜주는 효능도 갖고 있다.
초가집이 건강에 좋은 이유는 볏짚에 있는 누룩곰팡이와 황토 속에 있는 카탈라아제가 결합하면서 체내 과산화 지질의 분해를 돕기 때문이다. 복룡간(伏龍肝)은 30~40년 이상 된 부뚜막 바닥 40센티미터 깊이 부근의 황토를 말한다. 『동의보감』에서는 복룡간의 효험을 다음과 같이 적었다.
"맛에는 매운 기가 있고, 부인의 산후 출혈, 토혈을 다스리고, 해소를 멎게 한다. 지혈 작용이 있으며, 각종 종기와 독기를 없앤다."
사람들이 초가집의 단점으로 지적하는 것도 알고 보면 장점 가운데 하나다. 초가집에 사는 사람들이 겪는 불평 중의 하나는 굼벵이 배설물, 소위 '굼벵이 똥물'이다. 초가집 어디에나 굼벵이가 살고 있으며 이들의 배설물은 비가 오기만 하면 까만색 물처럼 흘러내린다. 초가집에 사는 주민들은 비가 오지 않을 때도 뚝뚝 떨어진다고 말하는데 근래에는 오히려 이를 반긴다. 굼벵이가 간에 좋다는 말이 있어 소위 특효약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초가집에 살더라도 굼벵이 때문에 호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제주도에서 특산품으로 판매하고 있다는 것으로도 알 수 있다.
굼벵이가 초가집에 있다는 것은 생태계가 그대로 유지될 수 있는 요건이라는 뜻도 된다. 초가집에는 굼벵이나 참새 등이 기생하면서 지네나 모기 같은 해충을 잡아먹는다. 그런가 하면 사람을 해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한 구렁이가 참새나 지네 등을 견제한다.
구렁이는 사람의 눈에 잘 띄지 않은 채 집을 보호해 선조들은 업구렁이를 주요한 집 지킴이로 받들었다. 구렁이가 기어 나오면 주인은 머리를 조아리고 손을 비비며 "볕을 쪼이셨으니, 이만 들어가시지요"라고 축원한다. 업구렁이가 밖으로 나가면 집의 재운도 사라진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황토에는 원적외선이 축적되어 있을 뿐 아니라 마이너스 이온도 들어 있다. 마이너스 이온은 구름과 비가 결합할 때 형성되며 노화의 원인이 되는 과산화 지질을 용해하는 성질이 있다. 그래서 마이너스 이온을 많이 함유한 황토가 건강에 좋다고 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유용한 황토는 볶은 콩가루처럼 밝은 노란색을 띠거나 물에 젖었을 경우 약간 갈색 빛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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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 ・ 꿈꾸는 과학, 『뒷간에서 주웠어, 뭘?』(열린과학, 2007)
- ・ 황훈영, 『우리 조상들은 얼마나 과학적으로 살았을까』(청년사, 1999)
- ・ 홍석화, 『토종 문화와 모듬 살이』(학민사, 1997)
글
출처
역사가 남긴 신비로운 공간이자 과학이 담긴 지혜로운 공간인 한국의 전통 마을. 민족 특유의 역사와 문화, 과학까지 총체적으로 담겨 있는 우리 전통 마을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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