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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은 촌락, 부락, 취락 등과 같은 의미로 쓰이며 일반적으로 '외부로부터 은폐되고 자연 울타리인 골을 테두리로 같은 물을 사용하면서 공동체 생활을 하기 편리한 행정적 단위 공간'으로 정의한다. 그러므로 전통 마을은 선조들의 삶과 문화가 공간 속에 배어든 토속적 문화 경관의 표상이라 할 수 있다. 경관이란 보이는 대상으로서의 '경(景)'과 보는 주체로서의 '관(觀)'이 결합된 단어로 경치와 사람의 상호 관계 속에서 성립되는 개념이다.

근대 한국의 개발 신드롬을 생각하면 고대부터 내려온 전통이 보존되기를 기대하는 것은 헛된 꿈이나 마찬가지다. 최소한 30~100여 호 이상의 마을에서 길, 외부 공간, 조경을 훼손 없이 보존하려면 개인이나 가족 차원의 노력만으로는 힘들기 때문이다. 그런 불가능할 것 같은 역경을 이겨내고 아직까지 과거 환경을 보존하고 있는 전통 마을들이 있음은 놀랄 만한 일이다.

한필원 교수는 우리의 전통 마을을 사상, 문화, 사회, 환경이라는 측면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위와 같은 명제로 정리해나간다면 한국 전통 마을의 실체를 파악할 수 있다는 뜻인데, 이들 전체가 과학을 전제로 함은 물론이다. 전통 마을에 과학이라는 잣대를 동원하면 이해하기 쉽다는 뜻이다.

과학이 있는 한국의 전통 마을은 지속 가능한 장소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어떤 곳이 그런 장소일까. 답을 찾기 위해 전통 마을의 설계 방법을 제시한 책을 살펴보자. 『택리지』, 『산림경제』, 『임원경제지』, 『경국대전』, 『주자가례』 등이다.

과학이 있는 한국의 전통 마을은 지속 가능한 장소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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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환이 『택리지』에서 제시한 주거지 선정의 기준은 자연 환경에 해당하는 지리(地理), 지역 경제 기반으로서의 생리(生利), 풍속과 공동체 의식 등 사회적 인자로서의 인심(人心), 인간과 자연의 심리적 조화를 강조한 휴양 공간으로서의 산수(山水) 등 4가지다.

유토피아 사상은 서양의 지리관을 반영해 이상향을 기하학적 도형 위에 설계된 평면 공간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하다. 이에 비해 이중환의 가거지(可居地)는 우리 국토를 지형의 기복이 있고, 기후가 다른 자연 지역 위에 존재하는 역사적 공간으로 보고 있다. 이중환은 각 지방이 지닌 개성과 질을 중요시했으므로 결코 모든 지방을 하나의 획일적인 틀에 맞추려 하지 않았다.

그는 전국적인 인구 증가에 따른 경지 확장과 이로 인한 산지의 황폐화를 주목해, 임상의 파괴로 발생하는 토양 침식이 하천에 미치는 영향을 관찰했다. 침식된 토양은 강을 타고 하류로 운반되어 하상에 퇴적되기 때문에 강의 수심이 얕아진다고 추론했다.

이로 인해 한강 하구부터 마포, 용산에 이르는 수로가 토사로 매몰되어 수심이 얕아지고, 결국은 조수가 미치지 못해 선박의 통행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하고 있음을 지적했다. 놀라운 과학적 지식의 산물이라 볼 수 있다.

이중환의 특별함은 산수가 좋은 곳은 생리가 박한 곳이 많음을 볼 때, 입맛에 맞는 지속 가능한 거주지를 찾는 것이 간단하지 않다는 것을 갈파했다는 점이다. 그는 거주의 기본으로 기름진 땅뿐 아니라 사람과 물자가 모여들어 물품을 상호 교환할 수 있는 경제적 측면과 자급자족할 수 있는 환경적 측면을 강조했다. 특히 가까운 곳에 마음 내키는 대로 감상할 만한 산수가 없으면 정서를 확장하지 못한다고 하면서도 경제적인 측면을 먼저 고려한 후 여가를 생각하라고 했다. 이중환의 생각은 간단하다. 경제 활동이 기본이 되는 조건을 우선적으로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홍만선(1613~1715)은 주자학을 비판하고 실용후생 학풍을 일으킨 선구자로 『농사직설』, 『농가집성』, 『지봉유설』 등을 참고해 『산림경제』를 편찬했다. 이 책은 18세기 이후 조선 사회의 농업 기술 보급 및 농서 발간에 크게 기여한 대표적 향촌 경제 기술서로 평가된다. 그는 집터를 선정할 때는 반드시 지세의 기운이 모이고 전면과 배후가 안온한 곳을 가려야 한다고 기술했다.

전통 마을의 설계 방법을 제시한 『택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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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마을의 설계 방법을 제시한 『산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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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마을의 설계 방법을 제시한 『임원경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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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주택 자리를 잡을 때는 풍기(風氣)의 장취(藏聚)와 앞뒤가 안온한가, 집을 오래 보존할 수 있는가를 고려해야 하며, 북쪽을 바라보고 있는지 남쪽을 바라보고 있는지 살필 것을 권했다. 집터는 넓고 윤택하며 건조하고 양기가 흐르는 곳과 후고전저의 지형 조건, 서쪽과 남쪽의 대로를 권하고 있다.

특히 이 책에서는 정주지의 환경 계획 밑그림이라 할 수 있는 계획안을 소개하고 있는데, 동양 철학의 원리인 역(易)에 바탕을 둔 하도각주1) 와 낙서각주2) 를 기본 형태로 하고 있으며 동양의 고대 공간 계획 원리인 만다라(중심과 본질을 뜻함) 도형에 바탕을 두고 있다.

서유구의 『임원경제지』는 『임원십육지』라고도 불리며, 정주지 환경 조건을 제시하면서 입지론과 토지 이용, 정관 등에 관한 규범적 원칙을 광범위하게 언급하고 있다.

"두르고 있는 산은 험준하지 않되 가라앉지 않으며 동산은 완만하게 이어지면서도 집중되지 않고 들판은 너르고 양명한 곳을 골라야 한다. 잘 자란 나무를 심으며 물이 잘 빠져나가게 하고 집 곁에는 남새밭이나 기장과 벼를 심을 수 있는 논밭이 있어야 하며 물고기를 잡거나 관개할 수 있는 시냇물이 있어야 한다. 시냇물 너머에는 아름다운 산록이 있어 조망할 수 있어야 한다."

한편 서유구도 집을 향해 들어오는 길은 곡선이어야 좋고 수로나 산의 맥이 직선으로 들어오는 것은 충파(衝破)라 해 좋지 않다고 했다. 대로 앞에 교차로나 정자형 도로가 있거나 집의 서면이 도로로 에워싸인 곳은 흉하다는 것이다.

서유구가 강조한 것은 풍수적 의미의 사상(四象)이 결여되었을 경우의 대안이다. 그럴 경우 동쪽에는 복숭아나무와 버드나무, 남쪽에는 매화나무와 대추나무, 서쪽에는 치자나무와 느릅나무, 북쪽에는 사과나무와 살구나무를 심는 것이 좋다고 했다. 수목의 기능적인 측면과 생태적인 특성을 복합적으로 고려한 마을 설계가 필요하다는 점을 역설한 것이다.

또한 서유구는 『택리지』를 준용해 지리, 생리, 인심, 산수는 마을의 자리 잡기 같은 택리에서 상호 밀접한 필요충분조건으로 작용해야 함을 강조했다. 이런 조건이 충족되어야 살 만한 땅, 즉 낙토각주3) 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선조들이 견지했던 터 잡기 논리는 자연 순응적이며 친환경적인 토지 이용을 기본 전제로 생태적인 접근을 지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낙토로서의 마을 자리 잡기와 가꾸기 과정은 오늘날 공간에 대한 이해와 평가, 잠재력 및 대안 제시 등 경관 설계 과정과 일맥상통한다. 온고지신의 의미를 일깨우는 환경 설계 논리인 것이다.

그러나 한국인의 장점은 규례가 현실과 다소 동떨어질 경우 이를 과감히 버리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창출하는 것을 게을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주자가례』에서는 사당을 안채의 동쪽에 두라고 했지만 한개마을은 사당을 안채의 서쪽에 두었다. 이는 조상들이 과학에 입각한 현실을 얼마나 민감하게 생각했는지 보여준다.

공간은 인간에게 더 쾌적한 환경이어야 하고, 이를 위한 원천적인 문제는 과학이 해결한다. 전통 마을을 답사하면 과학적인 아이디어를 수시로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마을을 잘 분석하면 그 마을의 문화가 형성된 배경뿐 아니라 마을을 조성한 사람들의 과학적 속성까지 읽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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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 ・ 김봉렬, 『김봉렬의 한국 건축 이야기(1)』(돌베개, 2006)
  • ・ 권정화, 「이중환의 국토 편력과 지리 사상」, 『월간 국토』, 1999년 2월호.
  • ・ 한필원, 『한국의 전통 마을을 찾아서』(휴머니스트, 2011)
  • ・ 이종호, 『과학 한국을 이끈 역사 속 명저』(글로연, 2010)
  • ・ 신상섭, 『한국의 전통 마을과 문화 경관 찾기』(도서출판 대가, 2007)

이종호 집필자 소개

고려대학교 건축공학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프랑스 페르피냥 대학교에서 공학박사 학위(Dr. Ing.)와 '카오스 이론에 의한 유체이동 연구'로 과학국가박사(Dr. d..펼쳐보기

출처

과학문화유산답사기2
과학문화유산답사기2 | 저자이종호 | cp명북카라반 도서 소개

역사가 남긴 신비로운 공간이자 과학이 담긴 지혜로운 공간인 한국의 전통 마을. 민족 특유의 역사와 문화, 과학까지 총체적으로 담겨 있는 우리 전통 마을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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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전통 마을과학문화유산답사기2, 이종호, 북카라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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