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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에 비해 회화는 카롤링거 왕조의 예술을 더욱 잘 표현한 매체이다. 특히 궁전학교의 교육개혁과 고대미술의 관계는 이 장르를 통해서 잘 드러난다. 남아 있는 작품의 양도 비교할 수 없이 많다. 세밀화나 삽화 등은 고대 혹은 선진미술과의 연관성과 당시 회화의 연구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선진미술을 구가하던 비잔틴의 세밀화와의 관계를 살펴볼 때, 선이 강조되는 인물의 의상 묘사나 비교적 인물의 사실적인 재현 등은 비잔틴과 4, 5세기경 후기 로마 미술의 영향을 제외하고는 생각하기 힘들다. 더 나아가 비잔틴 미술을 통한 고대미술과의 접목은 카롤링 왕조 시기의 미술을 더욱 풍부하게 하는 요소이다. 회화 작품으로는 성경 등에 삽입된 수많은 세밀화와 벽화를 들 수 있다.

고대와 비잔틴의 선진미술의 영향력에도 불구하고, 이 시대의 회화는 매우 다양한 양식적 특징들을 보여준다. 이는 당대 지역마다 독특한 화파들이 존재했음을 의미한다. 지금까지의 연구 결과로, 카를 대제와 그 뒤를 잇는 반세기 동안 아헨 등 많은 도시에는 궁전학교를 비롯한 여러 학교가 설립되었으며, 그곳에서 나온 필사본들은 제각기 다양한 양식의 삽화를 남기고 있음이 확인되었다. 그래서 각 양식을 정리하는 방식으로 학교 중심의 화파를 지칭하게 되었고, 대표적인 것으로는 궁전 화파, 랭스 화파, 투르 화파 등이 알려져 있다.

〈궁전 복음서(Hofschule, Aachen, 820년경)〉는 전형적인 궁전학교 양식을 보여주는 복음서의 표지 그림으로 4명의 복음서 저자들이 화면에 원근법이 무시된 채 배치되었다. 산과 하늘이 있는 자연풍경은 매우 초현실적이다. 필사에 전념하고 있는 4명의 사도는 모두 로마시대 귀족의 복장인 백색 튜닉을 입고 마치 고대 철학자와 같은 자세를 취하고 있다. 화가는 네 사도들의 성격과 특성을 살려내려고 노력했는데, 각 인물들이 보이는 자세 · 나이 그리고 다양한 위치의 선정 등은 바로 그러한 노력을 대변한다. 사도들 옆에는 각각의 상징물들이 약간 작게 그려져 있다.

좌측에서부터 천사(혹은 사람)는 마태오, 독수리는 요한, 황소는 루카 그리고 사자는 마르코를 상징한다. 이러한 사도들의 상징은 이미 초기 그리스도교 시기에서부터 정해진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최초로 그려진 것으로는 340년 마르쿠스(마르첼리누스) 카타콤에 그려진 한 벽화로 알려지고 있다. 그림의 틀은 금과 보석으로 장식된 책표지를 모방한 것으로 보인다. 이 복음서 그림의 화가는 이탈리아 출신인 것으로 추정된다.

궁전복음서, 820년경, 아헨성당의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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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의 대관식 복음서(Wiener Kr ungsevangeliar, 800년경)〉는 궁정학교의 양식과는 달리 상당히 회화적이다. 건축배경 혹은 알레고리나 상징물들 대신 자연풍경이 뒤에 그려져 있다. 앞에 보이는 백색 튜닉 복장의 인물은 복음서의 저자 중 하나인 마태이다. 자세와 복장 그리고 주위의 소품들로 미루어보아 고대의 전통을 따랐음이 분명하다. 눈여겨볼 것은 그림을 싸고 있는 틀이다. 금색으로 물결치는 듯한 나무줄기 문양은 고대건축의 장식물과 비교할 만하다. 그래서 이 시대의 그 어느 다른 작품들보다도 고대미술에 가장 가까운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화가는 그리스나 이탈리아 출신으로 추정된다.

빈의 대관식복음서(마태오), 800년경, 아헨성당의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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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주교 에보의 복음서(Evangeliar des Erzbischofs Ebo, 835년 이전)〉는 간단히 ‘에보 복음서’라 불리며 이 작품은 카롤링 시대 회화의 다른 면모를 보여준다. 회화성이 강하며, 스케치하듯이 잡아낸 윤곽선들은 표현적이라고 할 만하다. 빈의 ‘대관식 복음서’에 비해 그 회화성이 더 발전된 인상을 준다. 파도치는 듯한 옷 주름과 배경의 처리는 상당히 모던하다고 볼 수 있다. 이 그림은 고대의 형상을 빌려와서 유럽인들의 미적 취향에 맞게 개선시킨 양식을 극적으로 보여주는 명작이다.

대주교 에보의 복음서, 835년 이전, 에프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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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당시의 그림을 감상하면서, 당시 화가들의 시각을 추적해 보면 매우 재미있는 사실을 하나 발견할 수 있다. 바로 원근법에 관한 문제이다. 그림들은 중세적인 특성으로 ‘뒤바뀐 원근법(역원근법)’을 보여주고 있다. 먼 곳을 오히려 크게 그리거나 자의적으로 사물과 인물의 크기를 바꾸는 것은 이미 고대 후기에서부터 기인하는 미술의 퇴행이라고 알려져 왔다. 그러나 자세히 관찰해 보면 이러한 ‘뒤바뀐 원근법’에도 일종의 법칙이 작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 원근법의 주체는 감상자가 아니다. 즉, 그림 속에 그려진 인물의 시점에서 본 원근법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보는 이에게 가까운 사물은 오히려 그림 속의 인물에게는 멀리 떨어져 있다. 이러한 원근법은 오늘날과 다른 관점에서 그림이 그려졌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암시해 준다.

아다 복음서, 790년경, 시립도서관, 트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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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원 집필자 소개

독일 뮌헨대학교 박사학위 취득(서양미술사학). 이화여자대학교 박사연구원, 현대미술사학회 회장 역임. 서양미술사학회 등 다수의 미술사학회 임원, 현 인천가톨릭대학교 조형예술대학교 교수.

김정락 집필자 소개

독일 프라이브르크대학교 박사학위취득(서양미술사학), 카이스트 강의교수, 서양미술사학회 등 다수의 미술사학회 임원. 현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교수.

윤인복 집필자 소개

이탈리아 로마국립대학교 '라 사피엔자' 박사학위 취득(서양미술사학). 국제인천여성미술비엔날레 본전시 운영위원장 역임. 현 인천가톨릭대학교 조형에술대학 교수.

출처

유럽의 그리스도교 미술사
유럽의 그리스도교 미술사 | 저자김재원 | cp명한국학술정보 도서 소개

그리스도교를 뿌리로 삼은 유럽의 문화와 예술을 이해하고, 미술사적 변화를 알아본다. 그리스도교의 탄생 이후 전개된 그리스도교 미술의 세계를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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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회화〉 필사본유럽의 그리스도교 미술사, 김재원, 한국학술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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