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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조선 사람의
세계여행

외국어 학습서, 노걸대로 떠나는 여행

다른 표기 언어 동의어 물건 팔러 떠났다 풍속까지 섭렵한 고려 상인의 중국 여행기

외국어 교재가 담아낸 생생한 중국 체험기

조선시대에 나라 밖을 여행한 사람은 흔치 않았다. 국제무역을 했던 상인, 외교 업무를 수행했던 사신, 이들의 통역을 맡은 역관 등 대외 교류에 직접 종사한 이들이나 표류, 납치, 조공 등에 의해 예기치 않게 해외로 가게 된 이들 말고는 가까운 중국이나 일본조차 조선 사람들은 여행할 기회를 갖기 어려웠다. 그리하여 당시 조선 바깥 나라의 실상을 알 방법이라고는 기록이나 책, 구술 등을 통한 간접경험뿐이었을 것이다. 특히 여행기의 성격을 지닌 책들은 그 나라를 간접적으로 경험하고 엿볼 수 있는 창(窓)의 역할을 가장 충실하게 했을 것인데, 그중 대단히 특이한 존재로 『노걸대(老乞大)』가 있었다.

『노걸대』, 조선전기, 규장각한국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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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걸대』는 조선시대에 가장 널리 사용되었던 한어(漢語) 학습서였다. ‘중국인씨(中國人氏)각주1) ’ 또는 ‘중국통(中國通)각주2) ’이란 뜻의 『노걸대』는 중국으로 말, 모시, 인삼 등을 팔러 간 고려 상인이 여행과 교역을 하면서 겪는 여러 가지 일들을 회화체로 꾸민 책이다. 말하자면 회화체로 서술된 중국 여행기라는 독특한 성격을 지녔다. 이 책은 중국의 풍물과 생활문화에 관한 이야기를 역시 회화체로 꾸민 『박통사(朴通事)』와 함께 고려말기에 당시의 한어를 학습할 목적으로 편찬되었는데, 이들은 조선시대 들어 사역원(司譯院)의 한어 교재로 채택되면서 여러 차례 개수(改修)되고 한글로도 번역되어 널리 쓰였다.

『노걸대』가 『박통사』와 함께 조선초기부터 줄곧 중국어 학습 교재로 애용되었던 것은 무엇보다 그 실용성 때문이다. 우선 『직해소학(直解小學)』처럼 문어체로 된 이전의 교재들과는 달리, 이 책들은 회화체로 쓰여 있어 중국어를 배우는 데 좀더 실용적인 교재가 되었다. 오늘날 대부분의 외국어 교재들이 여러 상황에 맞게 대화로 구성되어 있는 것과 대단히 유사한 모습이다. 더구나 『노걸대』는 일상 회화를 주로 한 초급 단계의 회화 교재로, 『박통사』는 다채롭고 수준 높은 어휘를 담은 고급 단계의 회화 교재로 활용됨으로써 꽤 효율적인 중국어 학습이 이루어졌을 듯하다.

한편 『노걸대』는 언어적 지식뿐 아니라 여행자나 상인, 역관 등 여러 목적으로 중국어를 학습하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상식을 제공하는 역할도 했다. 예컨대 중국 여관에 드는 방법, 중국에서의 상거래 관행, 우리나라 상품에 대한 중국인의 기호, 당시의 물가 등에 대한 정보를 이 책을 통해 얻을 수 있었다. 이런 점에서 『노걸대』는 중국 여행과 교역의 길잡이이기도 했다.

외국어 학습 교재로서 『노걸대』가 지닌 또 하나의 강점은 회화 교재이지만 일정한 스토리가 있어 이야기책 못지않게 흥미롭고 실제 일어나는 일처럼 생생하다는 점이다. 『노걸대』는 그것이 지닌 언어적·역사적 가치는 접어두고라도 일단 읽기 시작하면 멈추기 힘들 정도로 그 내용이 흥미진진하다. 숙박비나 물건 값을 깎기 위해 옥신각신하는 대목, 중국인에게 전해 듣는 노상강도 사건, 하자 있는 말을 무르는 장면, 위조지폐를 받지나 않을까 걱정돼 중개인에게 보증을 요구하는 장면, 싼값으로 물건을 구입해 고려에 가서 비싸게 되파는 일, 귀국 날짜를 택일하기 위해 점쟁이를 찾는 장면 등이 주인공 일행의 여정을 따라 차례로 펼쳐진다.

더구나 상황에 따른 대화가 너무나 사실적이고 생생해서 마치 한 편의 로드무비를 보는 듯하다. 아니, 14세기로 가서 그들과 같이 중국 대륙을 여행하는 듯한 느낌마저 든다. 『노걸대』의 내용이 이렇게 현실감 있게 쓰인 것은 이 책이 실제로 14세기 중엽에 중국을 여행한 고려인의 저술로 여겨지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실제 경험에 바탕을 두지 않고서는 상황 설정이 이렇듯 구체적이고 세밀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이처럼 『노걸대』는 회화 교재이면서 중국 여행과 교역에 관한 생생한 체험기였던바, 조선 사람들은 『노걸대』를 통해서 중국어를 배우는 동시에 간접적으로나마 중국을 여행하고 그 풍물을 맛보는 경험을 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이 경험한 중국 여행은 어떠했으며 당시의 중국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이제 『노걸대』와 함께 14세기의 중국으로 떠나보자. 『노걸대』에는 많은 이본과 한글 번역본들이 있는데, 이 글에서는 17세기 중엽 간행된 한글 번역본 『노걸대언해』를 바탕 삼아 여행을 떠나려 한다.

고려 상인, 중국 상인을 만나 북경으로 동행하다

『노걸대』는 고려 상인이 도중에 만난 중국 상인과 함께 중국을 두루 돌아다니며 물건을 팔고 다시 고려에 갖다 팔 물건을 산 후 귀국길에 오르기까지의 긴 여정을 106개의 상황으로 설정해, 그에 맞는 대화를 꾸미며 내용을 전개한 책이다.

『노걸대언해』, 1670, 규장각한국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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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는 어느 고려 상인(주인공)이 사촌 이씨와 김씨, 같은 마을의 조씨와 함께 말, 인삼, 모시, 삼베 등을 팔러 개경을 출발하여 북경(北京)으로 가던 중 요양(遼陽)을 지날 때 중국 상인 왕씨를 만나 동행하게 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노걸대언해』에 실린 다음의 내용이 그것인데, 이 자료는 중국어와 함께 당시 국어의 모습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언어적인 가치도 상당히 크다.([漢]은 대화의 주체가 중국 상인, [高]는 고려 상인임을 가리키며 옆의 작은 글씨는 현대역이다.)

[漢] 큰 형아, 네 어드러로셔브터 온다(형님, 당신들은 어디서 왔소?)
[高] 내 高麗王京으로셔브터 오롸(나는 고려의 서울에서 왔소.)
[漢] 이제 어드러 가한자다(이제 어디로 가시오?)
[高] 내 北京으로 향한자야 가노라(나는 북경 향하여 가오.)
(…)
[高] 큰 형아 네 이제 어듸 가한자다(형님, 당신은 이제 어디로 가시오?)
[漢] 나도 北京 향한자야 가노라(나도 북경 향하여 가오.)
[高] 네 이믜 北京을 향한자야 갈 쟉시면 나한자 高麗ㅅ사한자이라 漢ㅅ 한자한자니기한자니디 못한자엿노니 네 모로미 나를 한자려 벗 지어 가고려(당신이 이미 북경 향하여 가신다면 나는 고려 사람이라 중국 땅에 익숙하게 다니지 못하니 당신이 모름지기 나와 동행하여 가 주시구려.)
[漢] 이러면 우리 한자한자 가쟈(그렇다면 우리 함께 갑시다.)
[高] 형아 네 셩이여(형님 당신의 姓은?)
[漢] 내 셩이 王개로라(내 성은 왕가라오.)
[高] 네 집이 어듸셔 사한자다(당신은 어디서 사시오?)
[漢] 내 遼陽 잣 안해셔 사노라(나는 요양성 안에 살고 있소.)
[高] 네 셔울 므슴 일 이셔 가한자다(당신은 서울(북경)에 무슨 일이 있어서 가시오?)
[漢] 내 이 여러한자 가져 한자라 가노라(이 몇 마리의 말을 가져다가 팔러 가오.)
[高] 그러면 한자장 됴토다 나도 이 여러 한자 한자라 가며 이 한자한자 실은 져근 모시뵈도 이믜셔 한자고져 한자야 가노라(그렇다면 매우 잘됐군요. 나도 이 몇 마리의 말을 팔러 가며 또 말에 싣고 있는 많지 않은 모시도 이제 팔고자 하여 갑니다.)
[漢] 네 이믜한자 한자라 가거든 우리 벗 지어 가미 마치 됴토다(당신들이 이제 말을 팔러 간다니 우리 동행하는 것이 마침 좋겠군요.)

위의 대화에서 고려 상인 일행이 중국 상인을 처음 만나 인사를 나누면서 행선지와 여행 목적이 같음을 알고 동행하자고 청하는 상황이 잘 드러난다. 대화가 대체로 기본 인사법으로 이뤄져 있어 초급 회화 교재의 성격에 적절하게 들어맞는다.

동행을 시작하면서 이들은 말이나 베의 시세가 어떠한가에 대한 정보를 교환하고 숙박할 곳을 의논하는 등 앞으로의 교역과 관련한 대화를 주고받는다. 이 가운데 고려 상인의 통상적인 교역 내용, 즉 말이나 베를 판매한 후 북경에서 다시 어떤 물품을 구입해 고려에 가서 되파는지, 통상 어느 정도의 이익을 남기는지에 대한 대화는 특히 흥미롭다.

고려 상인의 말에 따르면 보통 산동(山東) 지역에 가서 깁과 능(綾), 무늬 있는 비단과 솜을 구입하는데, 깁은 1필당 3돈에 사서 2돈을 들여 염색한 후 고려에 가서 은 1냥2돈에 팔며 능은 1필당 2냥에 사서 아청(鴉靑)색은 3돈, 분홍색은 2돈을 들여 염색하여 각각 은 3냥6돈, 은 3냥에 판다고 하면서(솜은 원가와 비슷한 수준으로 판매하였다) 합산하면 중개료와 세금을 제하고도 5할 이상의 큰 이익을 남긴다고 한다.

원가의 몇 배나 되는 값으로 판매되는 물건이 흔하디흔한 오늘날의 가격 구조에 비추어보면, 더구나 수입품으로 이 정도의 이윤을 얻는 것은 그리 대단치 않아 보이지만, 당시의 경제체제에서는 꽤 남는 장사였던 것 같다. 그리고 이러한 교역 행위가 약 1년을 주기로 이루어진다는 것, 즉 북경에서 물건을 팔고 사는 데 9~10개월, 고려에 와서 물건을 팔고 사는 데 2~3개월이 걸린다는 대화가 이어진다.

흥정하고 바가지 쓰고…

이렇게 함께 북경으로 향하게 된 일행은 도중에 여관에 투숙하고 민박도 하면서 우여곡절 끝에 목적지에 도착하는데, 그 과정에서 겪는 갖은 일들이 당시 중국의 세태와 인심, 생활문화의 일면을 엿볼 수 있게 한다.

베나 비단을 팔고 물을 길어 나르는 등 중국의 각종 직업 전문가들을 묘사한 그림

중국 상인들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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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북경까지 300킬로미터 좀 못 되는 지점에 있었던 듯한 와점(瓦店)이라는 곳에 처음 투숙하는데, 여관 주인은 중국 상인 왕씨와 안면이 있었지만 말 사료 값을 너무 비싸게 받아 왕씨와 시비를 벌인다. 또 식사도 제대로 준비해놓지 않아 나그네들이 손수 음식거리를 사다가 만들어 먹게 한다. 그러나 왕씨가 사료며 밀가루 등을 모두 이 집에서 샀으니 가격을 좀 깎아달라고 요구하자 총 500돈의 가격에서 50돈을 흔쾌히 깎아주기도 한다. 지금으로 치면 10퍼센트 에누리를 해준 것이다. 물건을 같은 집에서 여러 개 구입할 경우 좀 깎아줄 것을 기대하고, 실제로도 그렇게 인심을 베푸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다름없는 관행인 듯하다. 어쨌든 왕씨의 도움으로 무사히 하룻밤을 보내긴 했지만 고려 상인들에게는 적잖이 힘든 하루였다.

이튿날에는 길을 가는 도중 날이 저물어 한 민가를 찾아 투숙을 부탁했는데, 인심이 까다로운 집주인은 낯선 사람이라 믿지 못하겠다며 이들에게 숙박을 허락하지 않는다. 결국 일행의 간곡한 부탁에 중국인 왕씨와 고려 상인의 신원을 캐물은 다음에야 마지못해 수레 두는 헛간을 잠자리로 내준다. 게다가 식사 대접은커녕 저녁 지을 쌀을 좀 팔라고 해도 손을 내젓다가 겨우 죽을 쑤어 먹을 만큼의 쌀을 비싼 값으로 판다. 북경에 도착한 일행이 여장을 푼 순성문(順城門) 관점(官店)이라는 여관에서도 인심은 여전히 각박하다. 여관 주인은 바쁘다는 이유로 손님에게 방 안내도 하려 하지 않고, 식사도 알아서 해 먹으라고 그릇만 빌려준다.

『점석재화보』 제20호(1884. 11)에 실린 소주에 있는 여관 풍경

주인공 일행은 북경까지 향하는 여정 중에서 한 여관에 머무는데, 그곳에서 여러 가지 우여곡절을 겪는다. 이 그림은 역사 속 중국 여관의 한 모습을 짐작할 수 있게 한다. 다만 이 그림에선 아편 등을 하는 비교적 근대의 모습이 담겨 있는 것이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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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일행이 여로에서 겪는 이런 각박한 인심은 보통의 중국 사람들의 인심이라기보다는, 그해 연이은 가뭄과 홍수로 흉년이 든 시대 상황에서 기인한 듯하다. 이로 인해 당시 중국에서는 노상강도가 횡행하고 낯선 사람을 경계하는 등 사회 분위기가 무척 흉흉했던 것 같다. 처음 묵었던 여관의 주인은 새벽에 길을 떠나려는 일행을 말리며 노상강도 이야기를 해준다.

한 나그네가 전대에 종이 한 권을 넣어 허리에 매고 길가 나무 밑에서 자다가 강도를 만나 큰 돌에 머리를 맞아 죽은 일, 또 한 나그네가 당나귀에 대추를 싣고 가다가 강도가 쏜 화살에 등을 맞고 당나귀를 빼앗긴 일(그 강도는 자신을 쫓는 포졸까지 활을 쏘아 맞혔다) 등은 일행의 간담을 서늘하게 한다.

또한 이튿날 저녁에 주인공 일행이 찾은 민가의 주인은 관아에서 인가에 낯선 사람을 들이지 못하도록 엄중하게 감시하고 있다는 것과, 어느 집에서 나그네 몇 사람을 몽골인인 줄 모르고 재웠다가 그들이 도망가는 바람에 주인도 함께 연루되어 낭패를 보았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재워달라는 부탁을 한사코 거절한다. 이러한 내용들은 원나라 말기의 어수선하고 혼란스러운 사회상을 알려주고 있다.

「수선전도」, 작자미상, 117.5×65.8cm, 숭실대 한국기독교박물관

북경 시가지 지도로 사각의 성곽 안에 황제의 성과 가옥, 하천, 도로망 등이 자세히 그려져 있다. 주인공 일행은 북경에 도착해서 북경 사람들의 인심을 겪고, 또 그곳의 풍속들을 하나하나 경험해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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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 중에는 후한 인심으로 일행을 감동시킨 이도 있었다. 와점에서 첫 숙박을 한 다음 날 일행은 길에서 점심을 지어 먹을 쌀을 구하려고 한 인가에 들르는데, 집주인은 자신들이 먹으려고 지어놓은 밥을 선뜻 내주고 밖에서 말을 지키고 있는 이에게까지 하인을 시켜 음식을 보내는 훈훈한 인정을 베푼다. 이 대목에서는 특히 상황에 딱 들어맞는 중국 속담들이 인용되고 있는 점이 흥미롭다.

예컨대 자기도 여행자가 되면 언제든 같은 처지가 될 수 있다는 주인의 말에 왕씨가 ‘일찍이 여행에 익숙한 자는 특별히 나그네를 동정하며 자기가 술을 탐하면 취한 사람을 아낀다’는 속담을 인용한다거나, 오히려 찬이 없는 밥을 먹게 했다는 주인의 겸사(謙辭)에 대해 왕씨가 ‘배고플 때에 한 입 얻어먹는 것이 배부를 때의 한 말보다 낫다’는 속담으로 화답한다거나, 일행의 감사 인사에 대해 주인이 ‘천 리를 여행하는 나그네를 좋게 돌봐주면 그 이름은 만 리에 옮긴다’는 속담을 인용해 답하고 있는 것이다. 직접적인 말보다 상황을 더욱 효과적으로 드러낼 수 있는 속담을 써서 그 나라의 풍습이나 전래까지 알 수 있게 배려한 흔적이 묻어난다.

한편 북경까지의 여로에서 이들이 경험하는 일상은 당시 중국과 고려의 생활문화 일면을 엿보게 한다. 가령 주인공 일행이 처음 묵은 여관에서 바쁜 주인을 도와 음식을 준비할 때 고기볶음을 할 줄 모르는 고려 상인에게 중국 상인이 그 방법을 자세히 일러주는 장면, 북경에 거의 다다라 들른 음식점에서 고려 상인이 아침으로 물국수 먹기를 꺼리는 장면 등에서 고려와 당시 북방 중국의 식생활의 차이를 엿볼 수 있다. 끼니마다 돼지고기나 양고기 등의 고기볶음을 떡(餠)각주3) 이나 면과 함께 먹는 중국인들과 달리 고려인들은 고기볶음이나 물국수 등을 별로 먹지 않았다는 것, 나아가 말여물로 쓸 짚을 써는 일과 콩을 삶는 일도 서투르고 물긷기도 여자들이 주로 해서 자신들은 익숙하지 않다는 고려 상인의 말로부터 요리를 비롯한 대부분의 가사 일을 고려에서는 여성들이 주로 맡았음을 알 수 있다.

「매장도(賣漿圖)」, 요문한, 청대

송·원 교체기의 간편하게 먹을 것을 파는 곳의 모습을 그린 그림이다. 『노걸대』의 주인공 역시 길을 가던 중 음식점에 들렀다가 중국인의 독특한 식문화를 알게 되고 또 고려와의 차이점을 비교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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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콧물 흘리는 말은 물러달라”

우여곡절 끝에 북경에 도착한 주인공 일행은 가져온 말을 판매하는 일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교역에 들어가는데, 이 부분은 이야기의 가장 중심이 되는 곳으로 장면마다 매우 생생하고 역동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일행은 여관 주인의 소개로 찾아온 중국 상인들에게 말을 파는데 양쪽이 제시하는 말 값이 너무 차이가 나서 한참을 옥신각신하다가 즈름(중개인)의 중개로 결국 말 15마리를 모두 100냥에 우수리 5냥을 얹은 가격으로 판다. 140냥을 기대했던 고려 상인은 적이 실망하지만 좋은 은으로 값을 지불해달라는 요구로 거래를 수용하면서 다음과 같은 계약서를 작성한다.

요양성(遼陽城) 안에 사는 왕 아무개가 (…) 붉은색의 불깐 말 한 마리를 파는데 나이는 다섯 살이고 왼쪽 뒷다리 위에 낙인찍힌 표시가 있다. 북경 양시(羊市) 시장 거리의 북쪽에 살고 있는 장삼(張三)을 의거하여 중개인으로 삼고 산동(山東) 제남부(濟南府) 객상(客商)인 이오(李五)에게 팔아주어 영원한 소유자가 되게 하리니, 양쪽의 말로 의논하여 시가로 십푼(十分) 은자 열두 냥에 정하고 그 은자를 계약서를 작성한 날에 모두 일시불로 하여 따로 외상은 없게 할 것이다. 만일 말의 좋고 나쁨에 대하여는 산 사람이 스스로 보았으며 만일 말의 내력이 분명하지 않은 일일랑 판 사람이 혼자 그 책임을 지기로 한다. 흥정이 끝난 다음에 각자 무를 수는 없다. 만일 먼저 무르자고 한 사람은 관은(官銀) 5냥을 벌금으로 내어 무르자고 하지 않은 사람을 주어 쓰도록 하여도 할 말 없으리라. 후에 믿을 곳이 없을까 하여 일부러 이 문기(文記)를 작성하여 쓰고자 한다.

모년모일(某年某日)
계약인 왕객(王客) 서명(署名)
중개인 장삼(張三) 서명(署名)

이 계약서는 지금 봐도 꽤 구체적이고 합리적이다. 판매 물품에 대한 정확한 정보와 가격, 판매인·중개인·구매인의 신원뿐 아니라, 상품 하자 및 계약 파기에 대한 책임 소재와 벌금 액수까지 규정해놓음으로써 이후에 있을지도 모를 분쟁을 조정할 근거를 마련해둔 것이 인상적이다. 이어지는 대화를 통해서 세금과 중개료에 대한 관행도 언급되는데, 세금은 산 사람이, 중개료는 판 사람이 부담하며 각각 판매액의 0.03퍼센트를 지불한다는 내용이다. 그리고 계약 직후 말 구매자는 콧물을 흘리는 말 한 마리를 무르겠다면서 계약서의 내용대로 실제로 5냥의 벌금을 내고 말을 무른다. 이러한 내용은 당시 중국에서의 상거래 관행에 대한 꽤 유용한 정보를 제공했을 것이다.

「구마도(九馬圖)」, 임인발, 비단에 먹과 채색, 원나라, 미국 넬슨 갤러리

북경에서 말을 사고파는 데는 까다로운 계약서가 작성되었다. 하자가 있는 말일 경우 그에 대한 책임 소재를 물을 뿐 아니라 계약 파기에 대한 벌금 액수까지 상세히 적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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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판매한 후 고려 상인은 탁주(涿州)각주4) 에 가서 팔 물건을 사러 가는 중국 상인 왕씨를 따라다니며 양, 옷감, 활과 화살, 식기 등을 구입하는 것을 본다. 흥미로운 것은 중국에 가서 물건을 살 때는 부르는 값의 반을 깎아야 한다는 우스갯소리가 660여 년 전의 중국에도 그대로 적용된다는 점이다. 다섯 마리의 양을 은자 3냥에 팔겠다는 양 장수의 말에 왕씨가 터무니없다는 반응을 보이면서 2냥으로 흥정하는 장면이 단적인 예인데, 양 장수 스스로도 ‘부르는 값은 거짓이고 지불하는 것이야말로 진짜 값’이란 속언(俗言)을 인용하며 순순히 흥정에 임하는 것이 재미있다. 일단 높은 값을 부른 후 상대의 반응을 봐가며 에누리를 해주는 중국 상인들의 관행은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은 듯하다.

이후 나머지 물건도 만족스러운 가격에 구입한 왕씨와 일행은 활쏘기 내기 시합도 하고 음식을 만들어 잔치를 벌이기도 한다. 술을 많이 마신 왕씨는 술병이 나서 의원의 치료를 받는데, 맥을 짚고 약(빈랑환, 檳瑯丸)을 처방하고 유의 사항을 알려주는 장면에서 당시 중국 의술의 일면도 엿보인다. 겨우 몸을 회복한 왕씨는 마침내 탁주로 장사를 떠난다.

「황도적승도권(皇都積勝圖卷)」, 작자미상, 견본설채, 32×2182.6cm. 명나라 만력 37년(1609)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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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도적승도권(皇都積勝圖卷)」, 작자미상, 견본설채, 32×2182.6cm. 명나라 만력 37년(1609) 경

북경의 번화한 시가지와 사회생활의 정경을 그린 그림이다. 여기저기에서 서로 물건을 흥정하고 구입하고 파는 풍속이 생생히 묘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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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처세하며 살 것인가

전체적인 이야기의 줄거리와 다소 동떨어진 내용이 실려 있는 이색적인 부분도 있다. 이 부분은 여행 중에 일어난 일이 아니라 사람의 도리, 처세의 방법 등을 설교식의 산문체로 서술함으로써 회화체로 이어지던 스토리 전개가 잠깐 끊기는데, 아마도 원래는 없었던 내용을 나중에 삽입한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해마다 달마다 날마다 즐겁게 인생을 즐기고 춘하추동 하루라도 버리지 말자. 우리 사람이 오늘 죽을지 내일 죽을지 모르는 것이니 편안할 때 즐기지 아니하면 참으로 어리석은 사람이다. 죽은 후에는 아무것도 가리지 못하고 모두 자기 마음대로 못하는 것이니 잘 달리는 말도 다른 사람이 타고 좋은 옷도 다른 사람이 입으며 좋은 마누라도 다른 사람이 얻으니 살아 있을 때에 무슨 이유로 쓰지 않겠는가?

이처럼 인생을 유쾌하게 즐기라는 내용으로 시작하지만 이어서 자식 교육의 중요성, 친구 사귀는 방법, 상전을 모시는 도리 등 처세에 관한 내용과, 좋은 가문에 태어나서 부모가 이루어놓은 가법(家法)과 명성, 재산을 지키지 않고 나쁜 친구들과 어울려 방탕한 생활을 하다가 가산을 탕진하고 결국은 남의 말고삐나 잡아주면서 밥을 얻어먹는 하인의 신세가 되는 어느 귀공자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결국 인생을 즐기며 살되 도리와 분수에 맞게 처세해야 함을 강조한 것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여기서는 귀공자의 방탕한 일상과 함께 사치스러운 의생활, 식생활이 자세히 묘사되고 있어 당시 지배층의 생활문화를 엿볼 수 있다. ‘소매 없는 윗옷’을 가리키는 ‘탑호(搭胡)’나 금과 옥 등의 보석으로 장식한 허리띠, 화려한 모자, 가죽 신발 등은 일반 한인(漢人)의 의상이 아니라 몽골인의 옷차림인바, 당시 지배 민족인 몽골인의 복식 문화를 연구하는 자료가 된다. 또 귀공자는 아침 식사로 해장국(醒酒湯)이나 간식(작은 만두)을 조금 먹은 후 밀가루 떡에 양고기 삶은 것을 먹는데, 이 또한 북방 유목 민족의 음식 습관을 반영하는 것이다.

1830년대 중국의 치료 시설의 모습

주인공인 고려 상인은 중국에서 물건을 구입하는 것뿐만 아니라 술병이 난 왕씨를 동행하면서 중국의 치료시설도 목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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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국 준비와 작별

왕씨가 탁주로 떠나자 주인공 일행은 아직 팔지 못한 인삼과 모시, 삼베를 팔아 거금을 마련한다. 여기서도 당시에 가장 상품(上品)으로 인정받았던 주인공의 신라 인삼을 중국인 구매자가 중품(中品)으로 폄하한다거나 원래 말한 것보다 무게가 적다, 모시의 짜임새와 폭이 고르지 않다며 트집을 잡는 등 옥신각신하는 장면이 나온다. 또 고려 상인이 구매자가 지불하는 은자에 대해 중개인에게 보증을 요구하는 장면도 나오는데, 가짜 은에 자주 속는다는 고려 상인의 말에서 당시에도 위조화폐 문제가 큰 골칫거리였음을 알 수 있다.

‘중통원보교초(中統元寶交鈔)’

상거래를 할 때 쓰였던 원나라 때의 지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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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건을 다 처분하고 나서 일행은 때맞춰 탁주에서 돌아온 왕씨의 도움을 받아 고려로 돌아가서 팔 물품을 구입하는데, 이때 사들인 것은 비단과 서적, 그리고 바늘, 화장품, 장식품 등의 잡화였다. 고려에서 중국으로 간 물품은 말, 인삼, 모시, 삼베 등 주로 농수산물이나 간단한 가공품이었던 데 반해, 중국에서 고려로 건너온 물품은 장식품이나 잡화 등의 고도의 완제품이 주류였다는 점에서 양국 간 상품 경제 수준의 차이를 파악할 수 있다. 또한 어떤 물품을 사갈까 고민하는 고려 상인에게 왕씨가 고려에서는 고급품이 오히려 잘 안 팔리고 적당히 싼 물건이 잘 팔린다는 조언을 해주는 장면은 실소를 자아낸다. ‘싼 게 비지떡’이라는 속담도 있지만 지금도 여전히 싼 것을 좋아하는 우리네 속성을 참으로 잘 짚어낸 말이 아닌가.

중국에서 생산된 장식 그릇과 비단신

고려, 조선의 상인이 중국에서 들여오는 것은 고도의 완제품으로서, 우리나라의 말, 인삼, 모시 등을 팔고 구입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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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중국에서의 모든 용무를 마친 주인공 일행은 귀국 길일을 잡기 위해 근방에서 유명한 점집을 찾아가서 자신의 사주와 돌아갈 날을 점친다. 점쟁이로부터 주인공은 팔자가 매우 좋고 장사와 여행 운이 순조로우며 금년에 특히 대운이 달하여 재산이 많이 모인다는 점괘와 귀국 길일을 받는다. 생생한 대화 내용을 통해 당시에도 중요한 일을 앞두고 점을 보는 풍토가 성행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정해진 날 주인공 일행이 왕씨와 작별 인사를 하고 마침내 귀국길에 오르는 것으로 이야기는 끝이 난다.

『노걸대』는 한 권의 중국어 학습 교재일 뿐이지만 경험을 토대로 한 정교한 스토리와 생생한 장면 묘사로 그것을 읽는 내내 실제로 주인공과 함께 14세기의 중국 대륙을 여행하는 듯한 느낌, 바로 옆에서 그들의 대화와 행동을 직접 보고 듣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되는 독특한 책이다. 이런 점에서 『노걸대』는 당시의 조선 사람들에게 간접적이지만 너무나 사실적인, 색다른 중국 여행 경험을 제공하는 존재였음에 틀림없다. 그리고 현대의 우리에게도 당시 중국의 사회상, 생활문화, 경제 등을 연구할 수 있는 역사적 자료로, 또한 어학 교재라는 성격에 걸맞게 그 시대 중국어와 국어의 구어적 모습을 살필 수 있는 언어 자료로 귀중한 문헌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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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외국어 학습서, 노걸대로 떠나는 여행조선 사람의 세계여행, 전용훈, 글항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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