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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우리는 ‘여행’이라는 말을 ‘관광(觀光)’이라는 의미로 이해한다. 그러나 여행이라는 말이 담고 있는 의미는 관광이란 말보다 그 범위가 훨씬 풍부하고 넓다. 관광이라는 말은 정주지로 다시 돌아오는 것을 전제로 한 주유(周遊), 즉 근대에 이르러 서구에서 나타난 ‘투어리즘(tourism)’의 뉘앙스가 강하다. 이에 비해 여행은 유람만이 아니라 일을 목적으로 하기도 하며 정주지로 돌아오지 않는 경우까지도 포함한다. 또한 주유를 하는 사람의 자발적인 의지에 의해 이루어지는 관광과 달리 여행의 경우 여행하는 이의 의지와 무관하게 타의에 의해서 시작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사실 여기에서 다루는 여행 중 상당수는 자발적인 의지에 따른 것이라기보다는 전쟁으로 인한 피로(被虜)와 이산, 풍랑에 의한 표류, 경제적 이유에 따른 이향(離鄕) 등 선택의 여지가 없는 불가항력에 의한 것이었다. 다소 논란이 될 수 있을 ‘여행’이라는 말을 제목에 담은 것은 이 말이 이처럼 복합적인 의미를 포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근대 이전 나라 밖으로의 여행은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경험할 수 있었다. 중국을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 문명에 속해 있던 조선에서는 조천(朝天)이나 연행(燕行), 그리고 통신사행(通信使行)이 외부의 세계와 이어지는 거의 유일한 통로였다. 공식적인 외교사절로 선발되지 못했던 박지원이나 홍대용이 실사구시(實事求是)의 길에 들어설 수 있었던 것도 ‘자제 군관’이라는 직함을 걸치고 연행길을 다녀올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정이 이러하였기에 이 같은 기회조차 얻지 못한 많은 지식인들은 지도와 책을 통해 간접적으로 바깥 세상을 경험할 수 있었다. 조선에서 제작된 가장 오래된 지도인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가 담고 있는 와유(臥遊)로서의 세계여행에 대한 소개로 시작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한글로 번역되기도 한 『노걸대』의 경우 원래 중국어 학습을 위한 교재로 씌어진 것이지만 생생한 중국 여행 가이드북이기도 했다. 화이론(華夷論)적 질서의 가장 바깥쪽으로 향했던 조선통신사의 여행은 좀더 복잡했다. 총 열두 차례 사행길의 역사 자료들은 우월감으로 넘쳐 있던 조선 사람들의 태도를 보여줄 뿐만 아니라, 화려하고도 재빠르게 변하는 일본의 풍속을 목격하고는 겉으로 드러낼 수 없는 일종의 열패감을 마음속에 품게 되는 복잡한 심경을 묘사한다.
19세기 말 이후 문호를 개방하면서 조선 사람의 세계여행의 대상과 목적은 달라지기 시작한다. 여행의 범위가 동아시아의 바깥으로 확장되는 한편, ‘관광’으로서의 성격을 지닌 여행도 본격화된 것이다. 조선 최초의 세계일주 사행 기록인 『환구일록』이나 그때의 감회를 읊은 세계일주 시집인 『환구음초』는 이 시기의 변화의 다면성을 잘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다. 국가의 공식적인 외교사절 활동의 일환으로 이루어진 여행이었지만, 비판적인 시선으로 외국 문물을 대하는 태도가 생겨났고, 이는 조선 사회를 향후 질적으로 변화시킬 단초가 될 만한 것이었다.
또한 조선이 일본에 의해 강제병합된 이후에 씌어진 사회주의 운동가 여운형의 여정은 고비사막의 추위와 바람을 뚫고 가면서 스파이들의 감시를 받는 것이었기에 오늘날의 ‘여행’과는 사뭇 다른 것이었지만, 그로 인해 근대 한국은 자유주의와 사회주의 그리고 민족주의 사이에서 좀더 풍부한 사유를 할 수 있었다. 신여성 나혜석은 조선의 여류화가로서 이름을 드러냈을 뿐만 아니라 그 드문 세계일주 경험을 함으로써 다시 한번 조선 사회에 이름을 알렸다. 풍부한 감수성과 냉철한 눈으로 서구의 제도와 여성의 지위를 조선에 견주어 관찰한 그의 글은 한 세기가 지난 오늘날에도 생생한 울림을 준다. 당대의 지성 이순탁의 세계여행기에는 새로운 세계에 대한 감격은 물론 식민지 지식인이 겪어야 했던 모순과 갈등도 중첩되어 표현되고 있다.
그러나 조선 바깥으로의 여행과 그 기록은 이때까지도 극히 일부의 사람들에게만 한정된 것이었다. 이런 점에서 근대 초기에 발간된 『한성순보』는 일반인들에게 새로운 세계를 향한 창(窓)으로서의 역할을 담당했다고 할 수 있다. 오랫동안 보통 사람들은 바다 위에서 풍랑을 만나거나, 전쟁 포로나 공녀가 됨으로써 나라 밖의 세계와 접할 수 있었다. 15세기 이래 조선 지식인들에게 신비의 공간이었던 강남(江南) 땅의 풍물을 그린 최부의 『표해록』은 목숨을 건 표착(漂着)의 결과물이었던 것이다.
고려시대 이래로 공물로 진상된 공녀(貢女)의 경우 가족과의 생이별을 강요받고 이국에서 쓸쓸한 삶을 마감한 경우가 대부분이었지만, 황제의 총애를 받은 몇몇 후궁과 그 가족들의 경우 제국의 그늘 속에서 특권을 누린 예도 있었다. 또한 생존을 위해 고향을 등질 수밖에 없었던 조선 농민들의 처절한 고투(苦鬪)의 현장을 그리고 있는 일련의 만주 관련 기행문과 문학작품은 우리로 하여금 현재진행형이기도 한 재만조선인 디아스포라(diaspora) 문제의 근원을 성찰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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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세계를 향한 조선 사람들의 여정과 그 기록. 여말선초부터 식민지 시기까지 근 600년 동안 이뤄진 다양한 형태의 세계여행을 12가지로 선별하여 소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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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새로운 세계를 향한 조선 사람들의 여정과 기록 – 조선 사람의 세계여행, 전용훈, 글항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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