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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의사실 공표, 어떤 죄인가

〈형법〉 제126조(피의사실공표)

검찰, 경찰 기타 범죄수사에 관한 직무를 행하는 자 또는 이를 감독하거나 보조하는 자가 그 직무를 행함에 당해 지득한 피의사실을 공판청구 전에 공표한 때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5년 이하의 자격정지에 처한다.

피의사실 공표죄는 수사기관이 범죄자를 기소하기 전에 피의사실을 언론 등을 통해 알렸을 때 성립한다. 방식은 수사기관이 기자회견을 열거나, 보도 자료를 배포하는 것, 공식적인 내부절차를 거친 뒤 알리는 것뿐 아니라 수사기관 종사자가 비공식적으로 사실을 확인해주는 것도 포함된다. 피의사실 공표죄가 성립하려면 피의자가 특정되어야 한다. 성명을 밝히지 않은 경우라도 그 표현의 내용과 주위 사정을 종합해볼 때, 그 표시가 피의자를 지목하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이면 피의자가 특정됐다고 볼 수 있다.

이 죄는 수사상 기밀 유지, 피의자의 인권 보호 등을 위한 것이다. 피의사실 공표는 재판을 열기도 전에 피의자가 사실상 유죄로 단죄된다는 점에서 피해는 막심하다. 또한 은연중에 법원으로 하여금 유죄의 심증을 갖게 만든다는 점도 부인할 수 없다.

피의사실 공표는 상위법인 헌법의 무죄추정의 원칙(27조 4항)에도 어긋나는 행위이다. 형사소송법(198조 2항)도 수사기관 종사자에게 "피의자의 인권을 존중하고 수사 과정에서 취득한 비밀을 엄수"하도록 수사기관의 준수 사항을 명시하고 있다.

그런데 이 죄로 사실상 처벌받는 사례를 찾아보기 힘들다. 최문순 의원이 법무부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05년부터 2009년까지 이 죄로 기소되거나 징계를 받은 사람이 한 명도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 이후로도 공식적으로 확인된 사례는 없다. 기소권을 가진 검찰이 자기 식구를 기소하지 않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대신 법원은 민사재판에서 언론 보도로 인한 손해배상 책임을 물을 때 수사기관이 피의사실 공표죄를 저질렀는지를 판단하고 있다.

이러한 피의사실 공표는 명예훼손으로 직결된다. 하지만 개인의 명예는 다시 국민의 알 권리와 충돌하며 복잡한 양상을 띤다. 그렇다면 언론 보도에서 개인의 명예 보호와 표현의 자유의 경계는 어디쯤일까. 법원의 판단은 다음과 같다.

"언론매체가 개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행위를 한 경우에도 그것이 공공의 이해에 관한 사항으로서 그 목적이 오로지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일 때에는 그 기사 등 보도내용의 진실성이 증명되거나 그 입증이 없더라도 행위자가 그것을 진실이라고 믿을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 경우에는 위법성이 없다."
(대법원 1996. 5. 28. 선고 94다33828호 판결 등)

쉽게 말하자면 언론 보도가 공익을 위한 것이고, 내용이 진실하거나 진실이라고 믿는 데 상당한 이유가 있다면 명예훼손의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말이다.

주로 문제가 되는 것은 '진실이라고 믿는 데 상당한 이유가 있었는지'이다. 대법원은 "적시된 사실의 내용, 진실이라고 믿게 된 근거나 자료의 확실성과 신빙성, 사실 확인의 용이성, 보도로 인한 피해자의 피해 정도 등 여러 사정을 종합해 행위자가 보도 내용의 진위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적절하고도 충분한 조사를 다했는가, 그 진실성이 객관적이고도 합리적인 자료나 근거에 의해 뒷받침되는가 하는 점에 비추어 판단해야 한다"(대법원 2002. 5. 10. 선고 2000다50213 판결)고 판시했다.

이와 관련된 사례가 고(故) 이내창씨 의문사 보도이다. 1989년 중앙대 안성교정 총학생회장이었던 이내창씨는 수배 중 거문도에서 의문사를 당했다. 〈한겨레〉는 그가 숨지기 직전 안기부 직원이 동행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안기부 관련 의혹을 보도했다. 이 기사를 쓴 기자는 명예훼손 혐의로 재판을 받았다. 대법원은 무죄를 선고했다. 이 기사가 공익에 관한 것이고 기사 내용 중에 일부 허위 사실이 포함됐더라도, 사건의 목격자가 석연치 않은 이유로 그 진술을 번복한 탓에 기자가 진실하다고 믿은 데에 상당한 이유가 있다는 까닭에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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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국 집필자 소개

서울중앙지법, 동부지법, 가정법원, 고양지원 등에서 법원공무원으로 10년 넘게 일하고 있다. 2009년 '아는 만큼 보이는 법'이라는 글을 연재, 20회 만에 조회수 100만을..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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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법률 해법사전
생활법률 해법사전 | 저자김용국 | cp명위즈덤하우스 도서 소개

법을 바르게 알고 제대로 판단하게 돕는 친절한 법률 안내서. 평소 궁금하지만 어딘가 물어볼 곳이 없어 답답했던 법률 지식부터, 감추기 급급했던 민감한 사안들까지 생생하..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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