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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응희 申應熙
    장관, 황해도장관, 중추원 칙임관 대우 참의 등을 지냈다. 1928년 2월 12일 사망했다. 생애 및 활동사항 가숙(家塾)에서 한학을 배웠다. 김옥균(金玉均)과 박영효(朴泳孝)의 권유로 1883년 5월 서재필(徐載弼), 서재창(徐載昌), 박응학(朴應學), 정행징(鄭行徵), 임은명(林殷明), 신중모(申重模), 윤영관(尹泳觀...
    시대 :
    근대/일제강점기
    출생 :
    1859년(철종 10) 11월 5일
    사망 :
    1928년 2월 12일
    경력 :
    전라남도관찰사, 함경남도장관, 중추원 참의
    유형 :
    인물
    관련 사건 :
    갑신정변, 을미사변, 군대해산, 3·1운동
    직업 :
    관료, 친일반민족행위자
    성별 :
    분야 :
    역사/근대사
    본관 :
    평산(平山)
  • 서재필 과연 진정한 독립운동가인가
    일본어를 배우고 돌아왔을 때에 조정의 촉망이 그에게 쏠렸다. 당시는 개화파가 한창 기세를 올리고 있었다. 그도 개화파의 한사람으로 김옥균, 서광범, 박영효, 홍영식 등과 어울려 개화사상에 깊이 빠져 있었다. 그들은 묵은 제도를 뜯어고치고 근대화를 이룩하려고 정열을 바쳤다. 곧 청년지식인 그룹의 한 사람으로...
    출생 :
    1864년
    사망 :
    1951년
  • 유민회 維民會
    인가를 받아 이용태(李容泰)를 대표로 하여 발족했다. 간부로는 박병철(朴炳哲)·이풍재(李豊載)·송진옥·유병룡 등이 참여했는데, 실질적인 배후인물은 박영효(朴泳孝)였다. 설립 후 교육진흥·경제개발·생활안정 등을 표방하면서 민원식의 국민협회와 함께 친일여론의 조성과 노농운동의 파괴에 앞장섰다. 1921년...
    도서 다음백과 | 태그 일제강점기
  • 동아일보 東亞日報
    자본금 100만 엔을 목표로 사업에 착수하여 1919년 10월에 〈동아일보〉라는 제호를 결정한 후 1920년 1월 4일부로 총독부의 허가증을 받았다. 김성수·박영효·장덕준 등 발기인 77명을 주축으로 주식을 공모해, 제1회 불입이 끝나기 전에 신문을 발간했다. 주식회사 발기인 대표 김성수, 사장 박영효, 편집감독에...
    도서 다음백과 | 태그 신문
  • 유혁로 柳赫魯
    이명은 혁로. 아버지는 하급무인이던 상오이다. 1882년(고종 19) 수신사 박영효의 수행원으로 일본에 다녀왔다. 무과에 급제한 후 1884년 갑신정변 때 행동대원으로 참가하여 통신연락과 정찰을 맡았다. 갑신정변이 실패한 후 일본으로 망명하여 유학생 기숙사인 친린의숙을 경영하면서 박영효와 김옥균의 신분보호를...
    출생 :
    1863(철종 14), 충남 아산
    사망 :
    1940
    국적 :
    일제강점기, 한국
    도서 다음백과 | 태그 행정
  • 박문국 博文局
    내용 박영효(朴泳孝)의 건의에 따라 같은 해 8월에 설치되었다. 조미수호통상조약 체결 직후 조선은 시대적 요구에 응하여 여러가지 부국책을 추진하였는데, 박문국은 통리교섭통상사무아문(統理交涉通商事務衙門)의 산하기관인 동문학(同文學)의 신문발행 업무를 담당하기 위하여 설치되었다. 명칭은 유길준(兪吉濬)이...
    시대 :
    근대
    성격 :
    관청
    유형 :
    제도
    시행일 :
    1883년(고종 20) 8월
    폐지일 :
    1888년 7월
    분야 :
    역사/근대사
  • 이준용 李埈鎔
    연립정권을 구성해 전면에 나서자 그의 국왕 옹립이 계획되었다. 내부협판 겸 친군통위사, 이어 내무대신서리로 임명되어 인사권과 군사권을 장악했으나 박영효 등 군국기무처 내 개화세력의 반발로 실패하고 내무협판에서 물러났다. 대원군이 정계에서 은퇴하고, 그는 주일특명전권공사로 임명되었다. 부임하지 않고...
    출생 :
    1870(고종 7)
    사망 :
    1917
    국적 :
    한말, 한국
    도서 다음백과 | 태그
  • 위정척사운동과 갑신정변 甲申政變
    이 때문에 정부가 추진한 개화정책에 역행하는 걸림돌이 되었다. 위정척사운동과는 반대로 개화사상의 선각자인 박규수·유홍기 등의 지도를 받은 김옥균, 박영효, 유길준은 개항을 전후하여 하나의 정치세력으로 성장하여 개화파를 이루었다. 이들 가운데 김홍집, 김윤식은 민씨 정권과 결탁하여 점진적 개혁을 추진...
    시대 :
    19세기 후반
  • 이주회 풍영(豊泳), 李周會
    고종 18)경 일본에 다녀온 적이 있다. 1895년 1월 영관(領官)으로 병정 600명을 지휘하여 일본군과 합동으로 순천의 동학군을 공격하였다. 이 공적으로 박영효(朴泳孝)가 추천하여 군부감독·경리국장·군부협판이 되고, 군부대신서리를 지냈다. 박영효가 역적혐의로 일본에 망명한 뒤 이 직위에서 물러났다. 민비시해를...
    시대 :
    근대
    출생 :
    1843년(헌종 9)
    사망 :
    1895년(고종 32)
    경력 :
    군부대신서리
    유형 :
    인물
    관련 사건 :
    민비시해
    직업 :
    관료
    성별 :
    분야 :
    역사/근대사
  • 김옥균 고균, 金玉均
    되었다. 그는 한두 해 전부터 개화통상론자이며 정계의 거물이던 박규수의 사랑방에 드나들면서 유대치(劉大致), 오경석(吳慶錫) 등의 지도를 받고, 박영효(朴泳孝), 서광범(徐光範), 홍영식(洪英植) 등과 교유하면서 개화 사상을 접했다. 이 과정에서 그는 뜻이 맞는 인물들과 교류하면서 일종의 정치적 결사체를 조직...
    출생 :
    1851년
    사망 :
    1894년
  • 명성황후 시해 사건, 을미사변 乙未事變
    고종을 포로로 삼고 반일의 핵심인 왕후 세력을 권력에서 밀어낸 뒤 일본이 요구하는 개혁안을 통과시켰다. 이후 1년 남짓 동안 일본은 김홍집(金弘集), 박영효(朴泳孝) 등으로 구성된 친일 내각을 조종하며, 두 차례의 갑오개혁을 통해 청나라 간섭 배제, 왕권 약화, 근대적 내각제도 확립 등의 개혁안 수백 건을 제정...
    시대 :
    1895년
  • 이주회 李周會
    본명은 풍영. 1895년 1월 영관으로 일본군과 합동, 군사 600여 명을 지휘해 순천에서 동학군을 공격했다. 이 공로로 박영효의 추천을 받아 군부감독·경리국장·군부협판, 군부대신 서리 등을 지내던 중 박영효가 고종폐위음모사건으로 일본에 망명하자 관직에서 물러났다가, 8월 미우라 고로[三浦梧樓] 일본공사가...
    출생 :
    1843(헌종 9)
    사망 :
    1895(고종 32)
    국적 :
    조선, 한국
    도서 다음백과 | 태그 행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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