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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민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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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1919년 11월 서울에서 대지주들이 중심이 되어 조직한 친일단체. 박영효를 배후로 삼고 교육진흥과 경제개발 등을 표방하면서 여론 사이에 친일감정을 조성하고 노농운동이 있으면 파괴했다. 1921년에는 박영효의 주도로 조선인산업대회를 개최하여 유민회가 민족의 이익을 위해 앞장선다는 명목을 세우기도 했다. 이후 1923년 국민협회와 조선교풍회 등과 함께 친일연합체인 각파유지연맹의 결성을 주도했다.

박영효

조선 말기의 문신, 정치인, 사상가

ⓒ Lawinc82 / WIKIPEDIA | Public Domain

직업적인 친일분자인 고희준이 조선총독부의 인가를 받아 이용태(李容泰)를 대표로 하여 발족했다. 간부로는 박병철(朴炳哲)·이풍재(李豊載)·송진옥·유병룡 등이 참여했는데, 실질적인 배후인물은 박영효(朴泳孝)였다.

설립 후 교육진흥·경제개발·생활안정 등을 표방하면서 민원식의 국민협회와 함께 친일여론의 조성과 노농운동의 파괴에 앞장섰다. 1921년에는 박영효의 주도로 조선인산업대회를 개최했고, 강령을 통해 조선인 본위의 산업정책 확립, 농업을 토대로 한 상공업 발달 등을 주장했다. 이는 유민회를 총독부의 일본인본위 산업정책의 비판자이자 민족의 이익을 옹호하는 단체로 위장하기 위한 것이었다.

유민회는 1923년 9월부터 김명준(金明濬)이 주도한 국민협회와 송병준이 주도한 조선교풍회·조선소작인상조회 등과 함께 사회주의세력에 대항하기 위한 친일단체들의 연합체인 각파유지연맹의 결성을 주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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