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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이센 공령(公領)과 프로이센 왕국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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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이센 지역 튜튼 기사단의 마지막 단장인 호엔촐레른가의 알브레히트는 루터파로 개종하고 1525년에 자신의 봉토를 기사단에서 분리하여 자신이 직접 다스리는 공작령으로 만들었다.

알브레히트(Albrecht)

독일의 귀족으로, 호엔촐레른 왕가 출신 초대 프로이센 공작이며, 37대 튜턴 기사단의 단장이었다.

ⓒ Lucas Cranach the Elder/wikipedia | Public Domain

이때부터 1701년까지 이 공작령(동프로이센)은 프로이센 공령으로 불리게 되었다. 알브레히트의 아들로서 이 공령을 상속받은 알베르히트 프리드리히가 1618년 자식이 없이 죽자 공령은 그의 맏사위이자 브란덴부르크의 호엔촐레른 선제후(選帝侯)인 요한 지기스문트에게 넘어갔다.

프로이센 공령과 브란덴부르크의 결합은 호엔촐레른 왕가가 유럽 강국의 대열에 끼기 위해 반드시 이룩해야 할 과제였다. 요한 지기스문트의 손자인 프리드리히 빌헬름 대선제후(1640~88 재위)는 스웨덴-폴란드 전쟁(1655~60)이 벌어지는 동안 군사 개입과 외교 노력을 통해 폴란드와 올리바 강화조약(1660)을 맺어 프로이센 공령에 대한 종주권을 포기하게 했다.

이렇게 해서 호엔촐레른가는 프로이센 공령에 대한 주권을 획득했으나 브란덴부르크를 비롯해 독일 안에 있는 다른 영토는 독일 제국 일부로서 신성 로마 제국 황제가 이들 지역에 대해 명목상의 종주권을 갖고 있었다. 프리드리히 빌헬름은 이와 더불어 중앙집권화된 행정체계를 확립했으며 귀족들에게서 공국의 재정적 수입원에 대한 통제권을 빼앗았다(제1차 북방전쟁). 대선제후의 아들인 프리드리히(1688~1713 재위)는 1701년 1월 18일 리니히스베르크에서 스스로 왕위에 올랐는데, 그가 이룩한 가장 중요한 업적은 스스로를 '프로이센의 왕 프리드리히 1세'라 부르며 왕의 위엄을 확고히 갖춘 일이다.

호엔촐레른가의 다른 영토는 명목상으로는 독일 제국의 테두리 안에서 신성 로마 제국 황제가 종주권을 갖고 있었으나 얼마 안 되어 사실상 프로이센 왕국에 속하는 영토로 인정받게 되었다.

프리드리히 1세의 아들인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는 위트레흐트 조약이 체결되기 얼마 전인 1713년 왕위에 올라 뫼즈 강 연안에 있는 북부 헬데르란트 지역뿐만 아니라 프랑스와 스위스 국경지대에 있는 뇌샤텔과 발랭장 공국을 양도받았다.

그는 '대북방전쟁'에도 가담하여 포메른 서부지방의 상당 부분을 얻었다(1720). 또한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는 프로이센의 군대와 관료제를 획기적으로 발전시켰다. 그는 행정조직의 개편을 통해 군사·재정·경제 분야의 협조체제를 한층 더 강화했으며 국가의 모든 일을 다루었다. 그의 전제적인 통치 성향과 일에 대한 몰두는 절대주의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아들인 프리드리히 2세(1780~86 재위)는 유럽 최고의 훈련을 받은 군대와 800만 탈러(독일의 옛 화폐단위)에 이르는 재정자금, 그리고 대규모의 식민 사업(특히 동프로이센)을 통해 개발한 비옥한 영지등과 함께 근면·검소하고 양심적인 관료들을 부왕에게서 물려받았다.

프리드리히 2세는 프로이센이 막 이룩한 국력을 이용해 야심적이지만 위험스런 외교정책을 벌여나갔다.

볼테르는 프리드리히 2세를 가리켜 계몽주의의 이상인 평화를 구현하는 '철학자 왕'이라고 갈채를 보냈으나, 그는 왕위에 오른 지 7개월도 안 된 1740년 11월 슐레지엔을 공격하여 전유럽을 놀라게 했다. 이같은 대담한 공격으로 인해 오스트리아 왕위계승전쟁이 일어났고, 그뒤에도 슐레지엔에 대한 오스트리아와 프로이센의 분쟁은 몇 차례 불안한 휴전을 거치면서 계속되다가 1763년 7년전쟁이 종결되면서 끝났다.

슐레지엔은 여러 도시들이 번성하여 경제적으로 발전된 지방이었기 때문에 프로이센으로서는 이곳을 얻었다는 것이 상당히 중요한 의미가 있었다. 프리드리히 2세는 두 차례의 전쟁을 통해 군사적 천재로서의 명성을 확고히 했을 뿐만 아니라 프로이센을 유럽 강대국 대열에 끼게 했다. 그는 슐레지엔말고도 북해 연안에 있는 동(東)프리슬란트를 획득했고, 1772년에는 제1차 폴란드 분할에 참가해 서프로이센, 즉 폴란드에 속했던 프로이센 왕령을 차지해 동프로이센(프로이센 공령)과 서쪽에 있는 나머지 영토를 지역적으로 서로 연결했다.

프리드리히 2세는 선왕이 만들어놓은 행정 조직을 바꾸지 않았으나 사법제도와 교육제도를 개선하고 과학과 예술을 장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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