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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제1·2차 세계대전 사이 북쪽으로 발트 해, 동쪽으로 리투아니아, 남쪽과 서쪽으로 폴란드와 자유시 그다인스크에 접했다. 제2차 세계대전 후에는 소련과 폴란드에 각각 분할되었다. 1815년부터 프로이센 왕국의 동쪽 끝 주에 동프로이센이란 이름이 부여되었다. 주의 경계는 제1차 세계대전 때까지 변하지 않았다. 1919년 베르사유 조약으로 메멜 영토가 독일에서 떨어져나가 1924년 리투아니아에 합병되었고, 솔다우 지방은 폴란드로 넘겨졌다. 서프로이센 주에 속했던 마리엔베르더 섭정구가 동프로이센에 합쳐지면서 동프로이센은 폴란드 회랑지대와 그다인스크에 의해 나머지 독일과 분리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폴란드와 소련에 분할되면서 골다프·바르텐슈타인·브라운베르크 북쪽으로 두 나라의 국경이 그어졌다.
제1·2차 세계대전 사이 북으로 발트 해, 동으로 리투아니아, 남과 서로 폴란드와 자유시 그다인스크에 접했다. 제2차 세계대전 후에는 소련과 폴란드에 각각 분할되었다.
프로이센이란 이름은 언어학적으로 발트어에서 유래했다. 튜튼 기사단의 기사들에게 전멸당한 고대 주민들이 자신들을 프루시로 불렀다. 1308년 기사들이 폴란드 주 포모제를 정복하면서 프로이센이란 이름은 서쪽으로 확대되어 튜튼 기사단이 지배하는 전영토를 지칭했다. 1466년 폴란드는 포모제를 되찾았다.
그날부터 1701년(브란덴부르크 選擧侯가 프로이센의 왕이 된 해)까지 그 지방은 폴란드 왕이 직접 다스렸고 폴란드의 봉신으로 기사들이 소유한 땅과 구별하기 위해 왕령(王領) 프로이센으로 불렸다. 기사들이 소유했던 땅은 1525년 세속 공국이 되었고 웰라우 조약(1657)으로 폴란드 종주권에서 벗어났다. 1815년부터 프로이센 왕국의 동쪽 끝 주에 동프로이센이란 이름이 부여되었다. 주의 경계는 제1차 세계대전 때까지 변하지 않았다.
당시의 면적은 3만 6,995㎢였고 인구는 1910년에 206만 4,175명이었으며 대부분 루터교를 믿었다. 그로부터 오랫동안 광대한 토지를 소유한 군인 귀족들인 프로이센 융커들의 본거지가 되었다.
베르사유 조약(1919)으로 인해 메멜 영토가 독일에서 떨어져나가 1924년 리투아니아에 합병되었고, 솔다우 지방은 폴란드에게 넘겨졌다. 한편 이전 서(西)프로이센 주에 속했던 마리엔베르더 섭정구(攝政區)는 동프로이센에 합쳐졌다. 이로써 동프로이센은 폴란드 회랑지대와 그다인스크에 의해 영토상 나머지 독일과 분리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폴란드(남부)와 소련(북부)에 분할되었고 골다프·바르텐슈타인·브라운베르크 북쪽으로 두 나라의 국경이 그어졌다. 북부는 리투아니아에 재합병된 클라이페다 영토를 제외하고 러시아 연방에 합병되어 러시아인들이 이주해 살았다. 쾨니히스베르크는 칼리닌그라드, 인스터부르크는 체르냐호프스크, 틸지트는 소베츠크가 되었다. 남부에는 약 40만 명의 토착 폴란드인들이 남아 있었고 1939년 이전에 폴란드에서 온 이주민들이 1944년에 탈출했거나 1945년에 다른 곳으로 옮겨진 독일인들을 대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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