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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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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폴란드어로 씌어진 작품의 총체.

폴란드 문학은 10세기 이후 나타나기 시작했으나, 진정한 폴란드어를 통해 본격적인 폴란드 문학을 시작한 사람은 16세기 문학가 미코우아이 레이였다. 이후 폴란드는 잦은 외세의 침략과 지배를 받는 어려움을 겪음으로써 18세기 말에 이르러서는 많은 민중적 애국시인들을 탄생시켰다.

19세기 낭만주의 시기에 이르러 폴란드 문학은 가장 빛을 발하여, 아담 미츠키에비치와 율리우슈 수오바츠키 등의 위대한 작가를 낳았다. 낭만주의 운동 가운데 함축되어 있던 정치성은 1863년의 봉기를 일으켰고, 이후 실증주의가 대두하면서 자연스럽게 산문이 유행하게 되었다.

1918년 독립 이후 폴란드는 다른 유럽 문학과 다양한 접촉이 이루어졌다. 또 제2차 세계대전의 경험과 1945년 폴란드 인민공화국의 건설이라는 정치적 여건은 폴란드 문학에도 큰 영향을 미쳐 수많은 망명작가들을 양산했다.

중세 폴란드 문학

초기 작품으로는 수사나 사제들이 쓴 성자전과 연대기가 있다. 라틴어가 교회의 민중교화라는 특별한 목적에 부합하지 못하면서 폴란드어의 사용이 허용되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폴란드어 시는 기교적인 언어와 운율을 사용해 성모 마리아를 예배한 〈보구로지차 Bogurodzica〉이다.

산문은 〈거룩한 십자가의 설교 Kazania świętokrzyskie〉로 13세기말이나 14세기에 씌어졌는데, 1890년에야 재발견되었다. 1455년 부아디수아프 2세의 미망인 소피아 왕비를 위해 번역된 성서의 일부도 전해진다. 세속문학은 15세기 후반에 모습을 나타냈다.

여기에는 종교개혁파인 오제이 가우카가 교황을 비판하며 쓴 시(1449경)가 있으며, 대화체의 교훈시 〈거장 폴리카르프와 죽음이 나눈 대화 Rozmowa mistrza Polikarpa ze Śmiercią〉는 높은 문학 수준을 이룩했다. 1364년 크라쿠프대학교를 설립한 카슈미에슈 3세 치세 때 문학이 크게 발전했다.

르네상스 시대의 폴란드 문학

폴란드에서 르네상스는 비교적 늦은 시기에 시작되었지만 외부적 안정과 헌법의 강화, 종교개혁 등으로 문학의 황금시대를 열었다. 이탈리아의 영향을 받아 라틴어로 글을 쓴 제1세대 작가로는 얀 단티셰크(요한네스 단티스쿠스), 안제이 크지츠키 (크리기우스), 농민 출신의 독창적인 시인 클레멘스 야니츠키(야니키우스) 등이 있었다.

진정한 폴란드어를 구사한 나구오비체의 미코우아이 레이는 '폴란드 문학의 아버지'라고 일컬어진다. 그의 칼뱅교 설교집과 이상적인 귀족을 그린 〈정직한 사람의 생애 Zywot człowieka poczciwego〉(1568)는 중요하다. 인문주의 시인의 제2 세대를 대표하는 얀 코하노프스키는 지방 대지주의 아들로서 풍자시뿐 아니라 고전적 비극을 폴란드어로 쓰려고 했던 최초의 작가이다.

서유럽의 대표적인 시와 비견할 만한 작품으로 꼽히는 그의 〈비애 Treny〉(1580)는 폴란드 문어가 성숙했음을 깨닫게 해주는 신호였다. 16세기의 산문 역시 시만큼 광범위하며 활력 있다. 라틴어를 사용한 안제이 프리츠 모제프스키는 〈모세5경에 나타난 공화국 개혁에 관한 해설 Commentariorum de republica emendanda libri quinque〉(1554)에서 대담한 사회적·정치적 체제를 이끌어냈는데, 이는 신(神)과 법 앞에서의 평등의 원칙에 기반을 둔 것이었다.

마르친 크로메르의 저서 〈궁정 신하와 수사의 대화 Rozmowy dworzanina z mnichen〉(1551~54)는 가톨릭교를 변론한 것으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많은 역사적·논쟁적 작품과 성서 번역이 이 시기에 출판되었다.

바로크 시대의 폴란드 문학

바로크 시대는 매우 일찍 시작되었고 상당한 양의 문학 작품이 나왔으나 반면 전쟁도 끊이지 않았다. 바로크 시의 선구자는 미코우아이 솅프 사르진스키이다. 그는 영국의 형이상학적 시와 유사한 종교시를 썼다.

풍자시와 전원시는 이 시기에 가장 인기를 끌었고 전원시인 사무엘 트바르도프스키는 〈월계수나무가 된 다프네 Daphnis drzewem bobkowym〉(1638)와 신성하고 세속적인 사랑 이야기인 로맨스 〈파스콸리나 시장 Nadobna Pasqualina〉(1655)을 썼는데, 바로크 문학은 여기에서 가장 화려하게 다듬어졌다. 이와 나란히 시골생활을 찬미하는 소박한 시 외에도 영웅시가 많이 나왔는데, 그 동기는 스웨덴·러시아·투르크와의 전쟁, 국내 반란, 헌법을 개혁하려는 노력 등 일련의 역사적 사건으로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피오트르 코하노프스키가 번역한 이탈리아의 시인 토르콰토 타소의 〈해방된 예루살렘 Gerusalemme liberata〉(1581)은 민족적 주제의 서사시에 관한 창작 욕구를 불러일으켰으며 특히 바추아프 포토츠키의 〈호킴의 전쟁 Wojna chocimska〉(1670, 출판 1850)에 큰 영향을 주었다.

이 시기 산문의 수준은 시만큼 높지 않았다. 지주이며 군인인 얀 흐리조스톰 파세크의 회고록과 얀 3세 소비에스키가 왕비에게 보낸 편지 등이 주목할 만하며 또하나 흥미있는 것은 '상스러운 희극'(komedia rybautowska)으로 대표되는 익명의 대중문학의 발전이다. 익명의 작품 30여 편이 현존하는데, 민중 풍습과 익살스러운 상황을 담고 있으며 '공식적' 문학의 고상한 주제를 희화화하면서 사회적 불평등에 대해 간접적으로 저항하고 있다.

그밖에 최초의 여성 작가의 등장 및 교육·문학·정치체제를 개혁한 중요 인물 스타니수아프 코나르스키의 활동이 주목된다.

폴란드 계몽주의 시대

서유럽과의 긴밀한 접촉은 폴란드 계몽주의 시대의 문학을 특징지었다. 폴란드의 작가들은 분할된 상황과 외세의 지배로부터 민족문화를 구하려는 열망에 불타고 있었다. 이 시기는 드라마의 성장, 정기간행물과 장편소설의 도입, 최초의 폴란드어 사전 출판, 시부문에서 발라드(dumy)의 도입 등으로 나타났다.

1765년 바르샤바에 개관된 국립극장에서 프란치셰크 보호몰레츠, 보이치에흐 보구수아프스키, 프란치셰크 자부오츠키 등 3명의 주요 드라마 작가들이 활동했다. 알렉산데르 프레드로의 극은 몰리에르와 카를로 골도니의 영향을 보여준다. 이들은 모두 훌륭한 '유형'의 인물을 제시하고 독창적인 구조를 사용하며 탁월한 운율적 재능을 발휘한 작가들이다.

이 시대 산문작품은 교훈적 성격을 띤다. 근대적인 정기간행물 〈모니토르 Monitor〉(1765~85)가 등장했고 폴란드어 사전이 1807~14년에 간행되었다. 주교 아담 나루셰비치의 연대기 같은 시적 작품들은 바로크에서 고전주의로의 전환을 반영한다. 가장 중요한 시인인 주교 이그나치 크라시츠키는 유럽적인 시각에 회의론적인 지성인으로서, 간결한 표현과 우아한 형식, 재치가 뛰어나다. 그밖에 탁월한 시인은 유려한 문체의 본보기인 스타니수아프 트렘베츠키와 자유사상가이자 악명 높은 풍자로 가장 유명한 카예탄 벵기에르스키가 있다.

서정시는 계속 발달했다. 프란치셰크 카르핀스키와 프란치셰크 디오니지 크니아지닌은 문체의 발전에 공헌했다. 율리안 우르신 니엠체비치의 글은 애국심과 개혁에의 열망으로 쓴 것이다. 그는 〈텡친에서 온 얀 Jan z Tęczyna〉(1825)으로 폴란드에 역사소설을 소개했고 희극 〈의원 돌아오다 Powrót Posła〉(1790)로 이 시기 가장 뛰어난 드라마를 남겼다.

1795~96년 러시아·오스트리아·프로이센의 한 지역으로 폴란드가 3분할되면서 독립을 상실하자 애국시의 전통은 나폴레옹 휘하 폴란드 연대의 망명군인 시인들이 이어나갔고 그 가운데 유제프 비비츠키가 쓴 민중적 애국시 〈돔브로프스키의 마주르카 Mazurek Dąbrowskiego〉(1797)는 1918년 국가로 채택되었다.

19세기의 폴란드 문학

19세기에 폴란드는 비록 심각한 정치적 위기를 겪었으나 문학을 통해 이웃 나라에 영향을 끼쳤다.

낭만주의 시기는 폴란드 문학에서 가장 위대한 시기이다. 작가들은 독립의 상실과 동시에 발생한 낭만주의를 자신들의 심경의 표현으로 받아들였다. 3명의 위대한 작가, 즉 아담 미츠키에비치, 율리우슈 수오바츠키, 지그문트 크라신스키는 망명중 글을 쓰면서 독립 폴란드 재건의 신념을 지켰고 폴란드 낭만주의 문학에 힘과 정열을 주었다. 미츠키에비치는 위대한 시인이자 낭만주의 문학의 기수였다.

〈시 Poezye〉(2권, 1822~23) 제2권과 〈조상의 이브 Dziady〉 2, 4장에서 그는 민간전승과 신비스러운 환경을 결합해 새로운 종류의 낭만주의를 창조했다. 1830~31년의 봉기에 대한 탄압으로 엘리트들이 프랑스로 망명했다. 진정한 의미의 낭만주의자였던 수오바츠키는 바이런의 문체를 본뜬 이야기체시와 서정시를 썼다. 그의 섬세한 시 〈스위스에서 W Szwajcarii〉(1839)는 폴란드어로 씌어진 가장 아름다운 서정시일 것이다.

드라마적 형태를 띤 그의 작품 대부분은 공연을 목적으로 한 것이 아니라 가상의 무대를 설정하고 씌어진 것이지만 폴란드 비극의 토대가 되었다. 그의 희극은 프랑스 낭만주의극, 셰익스피어, 고전 비극, 칼데론의 영향을 보여준다. 그는 민족정신의 본질을 구현하고자 민중의 역사를 그린 서사시 〈영혼의 왕 Król-Duch〉(1847)을 쓰는 데 말년을 바쳤으나 완성하지 못했다.

크라신스키는 23세 때 익명으로 귀족과 빼앗긴 민중들의 적대적 투쟁을 그린 유럽 최초의 작품 〈비(非)신곡 Nieboska komedia〉(1835)을 출판했다.

〈새벽 Przedświt〉(1843)에서 그는 폴란드의 역사를 구세주적 관점으로 해석했고 '국가들의 그리스도'로서 폴란드를 설정한 개념을 〈미래 시편 Psalmy przyszłości〉(1845)에서 더욱 심화시켰다. 키프리안 노르비트의 재능은 20세기까지도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다.

그 이유는 아이러니한 지적 침묵 때문이다. 생전에 출판된 작품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으로는 미학에 관한 대화체 운문 〈프로메티디온 Promethidion〉(1851)으로, 존 러스킨보다 앞서 예술의 사회적·윤리적 기능에 관한 이론을 전개한 책이다. 제대로 된 그의 서정시 모음집 〈바데 메쿰 Vade-mecum〉은 1947년에야 처음 출판되었다. 노르비트는 자유시와 말의 운율을 시험했으며 나아가서는 시적 개념을 제시하는 유추방법으로 프랑스 상징주의를 예고했다. 그밖에 중요한 망명 작가로는 지그문트 미우코프스키(필명은 테오도르 토마슈 예즈), 요아힘 렐레벨, 그리고 비평가 마우리치 모흐나츠키가 있다.

산문은 망명 작가들보다 폴란드 내의 작가들에게 더욱 인기있었으며 19세기 중반에는 사실주의적 경향의 징후가 나타났다.

산문작가 중 돋보이는 인물은 유제프 이그나치 크라셰프스키로·소설·역사서·민족지·비평 등을 포함해 수백 권에 이르는 책을 썼다. 상상력이 풍부한 그의 작품들은 오랜 문필 생활을 하면서 문학 양식이 변화하고 있음을 반영한다. 그는 1863년 추방당했으나 국내외의 폴란드 작가들에게 지속적인 영향을 주었다. 낭만주의 운동이 함축한 정치성은 결국 1863년 봉기를 고무했고 폴란드는 러시아의 한 주로 편입되었다.

1863년 봉기 이후 실증주의가 대두했고 자연스럽게 산문이 우세하게 되었다. 알렉산데르 시비엥토호프스키는 바르샤바파 작가들과 함께 자신의 주간지 〈프라브다 Prawda〉에서 반교권적이고 반귀족적인 견해를 표명했다. 폴란드의 소설가이자 저널리스트인 볼레수아프 프루스(알렉산데르 구오바츠키)는 〈인형 Lalka〉(1890)에서 바르샤바 부르주아들의 복잡한 삶을 그렸으며 〈파라오 Faraon〉(1897)에서는 현대적인 소설의 형태로 출판할 수 없었던 정치적 문제를 강렬한 고대 이집트 정취로 가장했다.

사회개혁을 주창한 엘리자 오제슈코바는 여성 해방과 농민의 무지, 유대인 문제 등을 다루었다. 헨리크 솅키에비치는 1905년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유명한 〈쿠오 바디스 Quo Vadis?〉(1896)는 네로 치하의 로마를 배경으로 한 역사소설로서 세계 각국어로 번역되었다. 세기말에 자리를 잡은 보다 유연한 자연주의는 아돌프 디가신스키의 소설 등에서 볼 수 있다.

이 시기 중요한 실증주의 시인으로는 형식에 능숙한 서정시인 아담 아스니크와, 압박받는 자의 상황을 쓴 마리아 코노프니츠카를 들 수 있다.

20세기의 폴란드 문학

청년 폴란드 운동

'청년 폴란드' 운동은 실증주의에 반대해 문학에서 상상력을 되찾으려는 서로 다른 그룹의 모임으로, 신낭만주의라고도 한다.

선구자들 가운데에는 시인 안토니 랑게, 상징주의 평론지 〈히메라 Chimera〉의 편집자 제논 프제스미츠키(필명은 미리암)가 있다.

카지미에슈 테트마예르는 향수어린 〈시 Poezje〉(1891~1924)로 인기를 얻었으며 농민 출신 시인 얀 카스프로비치는 긴 서정시 구조를 사용해 연상과 인용, 음악적 반복, 그리고 T.S.엘리엇 등의 초기 양식을 예고하는 자유운 등의 기술을 도입했다.

타데우슈 미친스키는 표현주의와 초현실주의의 기수로서 철학적이고 난해한 시와 희곡을 썼다. 스타니수아프 프지비셰프스키는 이 운동의 새로운 미학 이론을 주도하며 문학지 〈지치에 Zycie〉'삶'를 편집했다. 스테판 제롬스키의 작품은 사회 정의와 민족 자유에 대한 열정적인 관심을 표현해 널리 읽혔으나 사실 기록의 지나친 사용으로 종종 후기 작품의 힘을 약화시켰다.

농민 출신의 부아디수아프 스타니수아프 레이몬트는 자연주의 기법을 사용해 농민의 삶을 서정적인 연작 장편소설 〈농민 Chłopi〉(4권, 1904~09)으로 표현해 1924년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이 시기 가장 인상적인 소설은 유제프 베이센호프가 쓴 〈지크문트 포드필립스키의 삶과 생각 Zywot i myśli Zygmunta Podfilipskiego〉(1898)으로, 이기적인 사람의 아이러니컬한 초상을 그리고 있다. 바추아프 베렌트의 상징주의 소설 〈겨울 옥수수 Ozimina〉(1911)는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즈 Ulysses〉(1922)의 복합적 구조와 서술 기법 보다 앞선 것이다.

카롤 이지코프스키가 쓴 〈노파 Pałuba〉(1903)는 서유럽에서 씌어진 정신분석적 장편소설보다 수년이나 앞선 과감한 실험이었다. 비평가로도 활동한 그는 〈10번째 뮤즈 Dziesiąta muza〉(1924)를 통해 예술적 형태로서의 영화에 처음 관심을 기울인 사람이다.

탁월한 비평가 스타니수아프 브조조프스키는 비평은 당대의 도덕 의식을 표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젊은 폴란드의 전설 Legenda Młodej Polski〉(1909)에서 그는 당시 문학의 취약성을 분석하고 물리적·기술적·지적·예술적인 모든 작업의 통합에 관한 견해를 표현했다. 스타니수아프 비스피아인스키는 천재적인 미술가이자 극작가였다. 그의 희곡은 고전 비극과 신화, 폴란드의 낭만주의 희곡, 민족의 역사에서 따온 요소를 종합적인 전체로 만들어낸다.

〈결혼 Wesele〉(1901)은 폴란드의 과거, 현재, 불확실한 미래를 그린 공상적인 우화로서 강렬한 암시, 비극, 해학의 걸작이다.

재건 폴란드 문학

1918년 독립을 되찾은 이후 1939년까지의 시기는 풍부함과 다양성, 수많은 번역서의 출판을 통한 다른 유럽 문학과의 접촉으로 특징지어진다.

1918년 이후 10년간은 서정시가 지배적이었다. 바르샤바의 몇몇 시인은 현대적 삶에 조율된 시적 언어를 만들어내려는 열망으로 스카만데르라는 그룹을 만들었다. 이 그룹에는 율리안 투빔, 얀 레호인, 카지미에슈 비에진스키(둘 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외국에서 죽음), 안토니 수오님스키, 야로수아프 이바슈키에비치 등이 있었다.

중요한 작가인 볼레수아프 레시미안의 상징주의적 표현주의 시는 어휘 창조, 감각적인 이미지, 철학적 내용으로 주목할 만하다. 그는 20세기 가장 탁월한 폴란드 서정시인으로 인정받고 있다. 그밖에 미래주의 등 실험적 운동이 뒤이어 일어났다. 타데우슈 페이페르가 이끈 아방다르다 크라코프스카라는 그룹은 매우 적은 작품을 남겼으나 시의 기교를 쇄신하는 데 광범위한 영향을 끼쳤다.

이를 지지한 두 사람, 율리안 프지보시와 아담 바지크는 이 운동에 직접 간여하지는 않았으나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최고 시인에 속한다. 유제프 체호비치 역시 주목할 만한데, 그는 전통적·지방적 요소를 새로운 형식으로 흡수시켰다.

이후 10년간은 산문이 우세했다. 여성심리를 파헤친 조피아 나우코프스카, 역사소설로 유명한 조피아 코사크 슈추츠카, 심리소설을 쓴 마리아 쿤체비초바가 등의 여성작가가 활동했다. 율리우슈 카덴 반드로프스키는 〈검은 날개 Czarne skrzydła〉(1928~29)·〈마테우슈 비그다 Mateusz Bigda〉(1933)에서 실험적인 사실주의를 사용해 사회·정치 문제를 다루었다.

미하우 호로마인스키의 〈질투와 약 Zazdrość i medycyna〉(1933)은 주인공을 임상적으로 분석한 것이 특징이다. 〈계피 가게 Sklepy cynamonowe〉(1934)의 작가이자 지각 작용의 미묘함을 반영하는 데 뛰어났던 브루노 슐츠는 카프카를 연상시키는 산문을 썼다. 작가이자 문학비평가, 프랑스 문학 번역가인 타데우슈 젤레인스키(필명 보이), 그리스와 로마의 고전문화를 다룬 수필을 쓴 얀 파란도프스키, 지적 사회적 관습을 공격한 비톨트 곰브로비치, 〈밤과 낮 Noce i dnie〉(4권, 1932~34) 연작을 쓴 마리아 돔브로프스카 등이 주목할 만하다.

드라마는 이 시기 문학 형식 중 가장 미약했으나 스나티수아프 이그나치 비트키에비치의 실험 드라마는 반사실주의 미학 이론을 표현한 것으로 흥미를 끈다.

1945년 이후의 문학

제2차 세계대전의 경험, 1945년 폴란드 인민공화국의 건설은 폴란드 문학의 특성에 영향을 미쳤고 제1·2차 세계대전 사이에 명성을 얻은 수많은 망명작가들을 양산했다.

그 가운데 프랑스를 거쳐 미국으로 망명한 체수아프 미우오슈는 〈권력 찬탈 Zdobycie władzy〉(1955)로 유럽 문학상을 받았고 1980년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많은 망명작가들이 포로수용소와 강제노동수용소의 경험을 다루었다. 오랫동안 아르헨티나에서 머물다 프랑스에서 죽은 비톨트 곰브로비치 역시 전후 외국에서 작품을 출판했다.

그는 특히 장편소설에서 풍자적인 서술로 철학적·심리학적인 주제를 다루면서 인간 본성의 그로테스크하고 불합리한 요소를 강조함으로써 현대인의 삶과 문화의 상투성을 폭로하고 있다. 전후 몇 년 간은 점령 치하의 이야기나 감옥·수용소 생활을 겪은 작가들의 이야기가 출판되었다. 아우슈비츠에 수용되었던 타데우슈 보로프스키의 단편소설은 파시즘과 전쟁을 정의하려는 시도이며, 1948년에 출판된 단편집 〈마리아와의 이별 Pożegnanie z Marią〉·〈돌의 세계 Kamienny świat〉(〈신사 숙녀 여러분, 가스실 쪽으로〉로 1967년 출판)는 인간의 부패와 타락을 탐구한다.

아돌프 루드니츠키는 서정적 산문으로 윤리와 철학 문제를 다루었으며 예르지 안제예프스키의 장편소설 〈재와 다이아몬드 Popiół i diament〉(1948)는 전후 정치, 사회의 변화를 몰고 온 도덕 논쟁을 탐구했다.

1949~54년에는 사회주의 리얼리즘이 기반을 잡았고 작가들은 19세기의 위대한 사실주의를 능가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였다.

주요작가는 전쟁 전 마르크스주의 장편소설의 대표자였던 레온 크루치코프스키로, 그의 뛰어난 희곡 〈독일인 Niemcy〉(1949)·〈자유의 첫날 Pierwszy dzień wolności〉(1960)은 외국에서도 성공리에 공연되었다. 전후 폴란드 문학 경향의 추이를 전형적으로 보여준 카지미에슈 브란디스는 서사적 연작 장편소설 〈전쟁의 사이 Między wojnami〉(1948~52)와 사회주의 리얼리즘 소설인 〈시민들 Obywatele〉(1954)을 출판했다.

1954~55년에 작가들은 사회주의 리얼리즘 운동의 약점을 비판하며 이에 반기를 들었다. 1956년 이후 '해빙'으로 작가들은 다시 서유럽과 접촉하기 시작했고 전쟁 전에 활동하던 많은 작가들이 활동을 재개했다. 그결과 발전과 실험의 시기가 시작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을 다룬 작품은 계속 산출되었다. 1950, 1960년대에는 예르지 푸트라멘트의 정치 장편소설부터 스타니수아프 디가트의 심리소설에 이르기까지 많은 산문이 나왔다. 젊은 작가 수아보미르 므로제크는 〈탱고 Tango〉(1964) 등 희곡과 단편집 〈코끼리 Słoń〉(1957)에서 날카로운 감각의 풍자와 그로테스크를 보여주었고 이를 통해 삶의 철학은 시사적이면서 시대를 초월한 것임을 표현했다.

전후 2번째 시기의 시는 철학적 사상의 표현으로 주목된다.

〈정리되지 않은 생각 Myśli nieuczesane〉(1957년부터 연작 출판)에서 보인 회의적인 철학적 경구로 유명한 풍자시인 스타니수아프 예르지 레츠, 젊은 서정시인들에게 심오한 영향을 끼치며 도덕적 주제를 다룬 타데우슈 로제비치와 비수아바 심보르스카 등의 시에서 현대의 문제가 제기되었다. 1930년대에 태어난 세대 시인들의 서정시는 다양한 목적과 문체가 특징이다.

이 신세대 시인들을 가장 잘 대표하는 사람은 스타니수아프 그로호비아크일 것이다. 그는 생경한 대조와 삶의 그로테스크한 면을 강조하는 기법에 기초해 표현력이 강한 시형식을 창조했다. 비평가와 수필가로는 아르투르 산다우에르와 〈셰익스피어론 Szkice o Szekspirze〉(1961)을 쓴 얀 코트, 그리고 카지미에슈 비카와 얀 부오인스키, 안제이 키요프스키 등이 있다. 196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와 1980년대초 폴란드 사회는 긴장과 정치적 소요, 경제 위기로 점철되었다.

연대노조의 탄생을 낳은 노동자의 봉기와 파업 등 주요한 사건의 발생에 힘을 얻은 작가들은 당국과 공식적 미학에 도전했다. 검열 제도로 여전히 많은 작가들이 외국에서 책을 펴냈으나 국내에 등장한 독립 출판사들 덕택에 이들의 책이 폴란드에서도 널리 읽히게 되었으며 조지 오웰을 비롯, 그때까지 금지되었던 외국 작가들의 작품과 망명작가들의 책이 출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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