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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872, 트란실바니아(지금의 루마니아) 올프레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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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950. 3. 19, 부쿠레슈티 |
국적 | 루마니아 |
요약 루마니아의 정치가.
4번이나 루마니아의 총리를 지냈고(1919~20, 1932, 1932, 1933), 트란실바니아와 옛 왕국의 영토(몰다비아와 왈라키아)를 통합할 것을 주장한 중심인물이었다.
헝가리의 지배를 받던 트란실바니아에서 태어난 바이다 보이에보드는 1906년 이후 헝가리 의회 안의 소규모 루마니아 민족주의 집단에 가담해, 소수 민족들에 대한 정부의 강제적인 마자르화 정책을 비판하는 최선봉에 섰다. 1918년 10월 바이다 보이에보드는 트란실바니아의 자결권을 선언하는 결의안을 의회에 제출했으며, 1918년 12월 헝가리가 제1차 세계대전에서 연합군에 항복하자 트란실바니아 지도자 협의회의 임원직을 맡았는데, 이 기구는 루마니아와 트란실바니아의 통합을 선언했다. 그뒤 전후 파리에서 열린 평화회의(1919)에 루마니아 대표단의 일원으로 참가하기도 했다.
1919년 11월 선거에서 그가 속한 국민당이 승리한 후, 바이다 보이에보드는 연립 내각의 루마니아 총리로 지명되었다. 그의 급진적인 토지개혁 입장은 페르디난드 왕의 간섭을 재촉했다. 페르디난드 왕은 자신의 직권으로 행정부를 해산시켰다(1920). 1928~30년 바이다 보이에보드는 내무부장관으로 봉직했고, 1932년 8~10월 총리직과 외무부장관직을 겸했다. 그가 각료 생활을 마지막으로 한 시기인 1933년 1~11월 사이에는 노동현장의 분규가 광범위하게 발생했고 파시스트의 활동도 활발해졌다. 공직에서 해임된 후, 그는 대단히 민족주의적인 준파시스트 집단을 직접 결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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