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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의부

다른 표기 언어 統義府

요약 1922년 만주 서간도의 한인 민족주의자들이 만든 무장독립운동연합단체(민족해방운동). 1921년 자유시참변으로 독립군이 크게 타격을 입으면서, 서간도의 무장독립운동단체 17개가 새로운 통합독립운동단체를 결성하기로 합의하여 1922년 대한통의부가 정식으로 발족했다. 통의부는 산하에 의용군을 조직했는데, 이때 의견 차이로 탈퇴한 부원들이 의군부를 만들게 되었다. 통의부는 4대 강령과 6대 절목을 이념으로 삼았으며, 농업공사와 소학교 운영 등을 비롯해 무장독립운동까지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이후 의군부와의 꾸준한 대립이 계속되자 통의부에서 탈퇴한 부원들이 참의부를 조직하게 되었고, 대부분의 간부 역시 정의부를 조직하면서 통의부는 정의부로 개편되었다.

개요

정식 이름은 대한통의부이며, 대한통군부를 계승·확대한 조직이다.

복벽주의를 극복하고 공화적 민족주의에 기반한 독립전쟁을 전개하고, 만주·중국 내 독립운동단체의 통일을 위해 노력한 준정부적 조직이었다.

창립 배경

1921년 자유시참변 이후 서간도의 독립운동단체들은 독립운동기지 재건과 항일역량 강화를 위해 통합운동을 전개하여, 1922년 1월 한족회·서로군정서·대한독립단 등이 과도기적 연합단체인 대한통군부를 결성했다.

주요간부진은 총장 채상덕(蔡相悳)을 비롯하여 고할신(高轄信)·이웅해(李雄海)·김동삼(金東三)·전덕원(全德元)·이천민(李天民) 등이었다. 통군부는 그해 6월 3일 중앙직원회의에서 남만지역 독립운동단체들에 대한 문호 개방과 무조건 통일을 결의하고 각 단체에 위원을 파견하여 교섭했다. 그결과 8월 23일 서로군정서·대한독립단·대한광복군영 등 17개 단체가 환런 현[桓仁縣]에 모여 남만한족통일회를 개최하여 기존의 단체를 모두 해체하고 새로운 통합독립운동단체를 만들기로 했다.

조직과 분열

1922년 8월 30일 민정과 군정을 겸한 재만한인 군정부로서 대한통의부가 정식으로 발족했다.

중앙기구 체제는 총장 산하에 민사·교섭·군사·법무·재무·학무·실업·권업·교통·참모의 10부(部)를 두고, 실무를 위해 국(局)·비서과·사판소(査判所)를 두었다. 간부진은 총장 김동삼, 부총장 채상덕을 비롯하여 고할신·이웅해·이병기(李炳基)·김승만(金承萬)·오동진(吳東振)·김창환(金昌煥)·양규열(梁奎烈)·이천민·현정경(玄正卿)·신언갑(申彦甲)·변창근(邊昌根) 등 73명이었다. 지방행정조직은 26개현에 총관사무소를 설치하고, 총관·참사·서기·검무관·구장 등을 두어 거주한인의 보호·납세·독립정신고취 등을 담당하게 했다.

그리고 통의부 결성에 참여한 각 단체의 무장력을 통합, 대한통의부 의용군을 조직했다. 의용군은 전체 대원 700~800명을 1개 대대로 편성하여 그 산하에 5개 중대와 유격대·헌병대를 두었다. 사령장은 김창환, 부사령장은 김기해(金氣海)였고, 백광운(白狂雲)·최석순(崔碩淳)·김명봉(金鳴鳳)·홍기주(洪基周)·최성언(崔聖彦) 등이 중대장이었다. 그러나 군정부 간부진은 결성 때부터 채상덕·이웅해·전덕원 등의 복벽주의 계열과 김동삼·오동진·현정경 등의 공화주의 계열로 나뉘어 갈등의 소지가 있었다(복벽운동). 따라서 통의부 내의 의견 차이로 전덕원 등의 복벽주의 계열이 탈퇴하여 의군부(義軍府)를 따로 만들었다.

이에 통의부 재정비 움직임이 구체화되어 1924년 1월 중앙회의에서 5장 38조로 헌장을 개정하고, 10명으로 구성된 행정위원회를 최고행정기관으로 설치하는 한편, 지방조직도 15개로 재편했다. 그리고 군사자문기구인 군사참의회를 구성하는 한편 장교양성소 설치 및 외국군사학교 파견으로 군사력 강화를 위해 노력했다.

활동과 이념

이념은 결성 초기 복벽주의와 공화주의 간의 갈등으로 불투명했으나, 공화주의계열이 장악한 후인 1924년 3월 민권신장·민지계발(民智啓發)·민력증진·민심단결의 4대 강령과 생계타개·교육발전·군실양성·재정연구·주의선전·적세방어의 6대 절목으로 명시되었다.

활동은 각 지역의 총관소를 통해 한인사회의 자치행정으로 이루어졌는데, 의무금·향미대·교육비·군비 등의 납세로 재정을 유지하고 공농(公農) 정책의 일환으로 만주농업공사를 만들어 운영했다. 그리고 독립운동가 양성과 민족교육을 위해 광동학교(光東學校) 등 9개의 소학교를 운영하는 한편, 기관지로서 〈경종보 警鍾報〉·〈통의부공보〉를 발행했다. 또한 친일파에 대한 응징, 1922년 10월 평안북도 삭주·강계의 경찰주재소 기습공격, 1923년 1월 창성·위원·삭주의 일제기관 기습 등을 수행했다. 모두 28회의 무장투쟁을 수행하고 서울에 지부를 설치하기 위해 조직원들을 파견하는 등 꾸준한 항일독립전쟁을 전개했다.

이를 위해 압록강 대안의 여러 지역과 펑톈[奉天]·지린[吉林] 등에 연락기관을 설치했다.

해소

의군부와 통의부의 대립이 계속되자, 이에 회의를 느낀 백광운 등 의용군 1, 2, 3중대 및 유격대 대원들은 1923년 8월 통의부를 탈퇴하고 상해임시정부와 연합해 참의부(參議府)를 조직했다.

이에 통의부는 의용군을 3개 중대로 재편하고 동포를 대상으로 병력모집에 나서는 등 재건을 모색했으나, 계속된 분열과 중국 군벌의 압박, 마적단의 습격 등으로 더욱 약화되었다. 1924년 11월 오동진 등 다수의 지도부가 정의부(正義府)를 창립함으로써 만주 항일독립군정부의 중심은 참의부·정의부로 옮겨갔다.

이에 통의부의 상부조직은 정의부로 재편되었으나, 하부조직은 3부 통합 때까지 독자적 운동을 전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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