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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 경상남도 남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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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 120,327 (2024) |
면적 | 239.76㎢ |
행정구역 | 1개읍 6개면 8개동 |
사이트 | http://www.tongyeong.go.kr/ |
요약 경상남도 남해안에 있는 시. 1995년 충무시와 통영군이 통합되어 통영시를 이루었다. 수산업이 중심이되며, 농업은 부진한 편이다. 한려해상국립공원의 중심부에 있어 한국 제1의 해상관광지로 자리잡았다. 한산도에는 충무공 유적지가 있다. 면적 239.76㎢, 인구 120,327(2024).
대한민국 경상남도 남부 남해안에 있는 시. 1995년 충무시와 통영군이 통합되어 통영시가 되었다. 고성반도와 한산도·미륵도 등의 도서로 이루어져 있다. 임진왜란 때 한산대첩 등 해상전투의 격전지였던 곳이며, 한산도를 중심으로 충무공과 관련된 유적이 많다. 한려해상국립공원에 포함되어 해양관광자원이 풍부하고, 청정해역으로 특히 굴 양식과 멸치잡이가 활발하다.
행정구역은 산양읍·용남면·도산면·광도면·욕지면·한산면·사량면·무전동·도천동·명정동·중앙동·정량동·북신동·미수동·봉평동 등 1개읍 6개면 8개동이 있다(행정동 기준, 법정동 기준 17개동). 시청소재지는 통영해안로이다. 면적 239.76㎢, 인구 120,327(2024).
연혁
삼한시대에는 변진 12국에 속했으며, 삼국시대 초기에는 가야의 영역이었다. 그러나 신라의 세력 확장에 따라 신라의 영토가 되어 고자군(古自郡)이 설치되고, 757년(경덕왕 16)에 고성군(固城郡)으로 개칭되었다. 고려시대에는 여러 번 행정제도의 변화가 있었으나 1391년(공양왕 3)에 고성현이 되어 조선시대까지 유지되었다.
통영군의 명칭은 고성현에 있었던 경상도·전라도·충청도 등 3도의 수군을 통괄하는 삼도수군통제사영(三道水軍統制使營)을 줄여 부르던 이름인 통제영 또는 통영에서 유래한 것이다. 임진왜란이 일어난 후 수군을 총 지휘할 목적으로 1593년(선조 26)에 이순신을 삼도수군통제사로 임명하고 일본이 남해와 서해로 향하는 길목인 한산도에 통제영을 설치한 데서 비롯되었다.
1914년 군면 폐합 때 용남군과 거제군을 통영군으로 통합했다. 1931년에 통영면이 읍으로 승격되고, 1953년에 통영군에서 거제도가 분리되어 거제군으로 독립했다. 1955년에 원량면이 욕지면과 사량면으로 분할되었으며, 통영읍이 충무시로 분리·독립했다. 1995년 실시된 행정구역 개편으로 역사적인 배경과 생활권이 하나였던 충무시와 통영군이 하나로 통합되어 새로운 형태의 도농통합시인 통영시를 이루었다.
같은해 3월 산양면이 산양읍으로 승격되었다. 5월에는 중앙동·문화동이 문화동으로, 평림1동·평림2동이 평림동으로, 도남1동·도남2동을 도남동으로 통합하였다. 1999년에는 행정기구 통합으로 안정출장소가 폐지되어 광도면에 통합되었다. 2010년 도천동·인평동을 도천동으로, 미수1동·미수2동을 미수동으로, 봉평동·도남동을 봉평동으로 통합하였다.
인구
1995년 통합 이전 충무시의 인구는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였다. 1970~80년에 37.4%, 1980~91년에 25.5%가 증가했으며, 가구수도 같은 기간에 각각 53.8%, 50.8%가 증가했다. 통합 이전의 통영군은 다소 감소추세를 보였다. 1970~80년에 17.8%, 1980~91년에 21.3%의 인구가 감소했다. 충무시와의 통합 이후 1995년 인구 14만 2,795명을 기록했다.
그러나 통합 이후에도 1996년부터 2005년까지 지속적으로 인구감소 추세가 이어졌다. 1996년 기준 인구 14만 1,828명에서 2000년 13만 7,115명으로 감소했으며, 2005년 13만 3,429명으로 1995년부터 2014년간 가장 낮은 인구를 기록했다. 이후 2006년부터는 증가추세를 회복하여 2006년 13만 4,301명, 2010년 14만 3,632명으로 증가했다. 2024년 기준 인구는 12만 327명이다. 가구수도 2005년 4만 8,960가구에서 2020년 5만 9,829가구로 증가했다. 반면 가구당 인구는 1995년 3.5명에서 2020년 2.15명으로 감소했다. 인구유출과 함께 핵가족화·노령화의 경향이 함께 나타나고 있다.
통영시 연혁
삼한시대에는 변진 12국에 속했으며, 삼국시대 초기에는 가야의 영역이었다. 그러나 신라의 세력 확장에 따라 신라의 영토가 되어 고자군(古自郡)이 설치되고, 통일신라시대인 757년(경덕왕 16)에 고성군(固城郡)으로 개칭되었다. 고려시대에는 995년(성종 14)에 고주(固州)가 된 후 현으로 강등되는 등 여러 번 행정제도의 변화가 있었으나 1391년(공양왕 3)에 고성현이 되어 조선시대까지 유지되었다.
통영군의 명칭은 고성현에 있었던 경상도·전라도·충청도 등 3도의 수군을 통괄하는 삼도수군통제사영(三道水軍統制使營)을 줄여 부르던 이름인 통제영 또는 통영에서 유래한 것이다. 임진왜란이 일어난 후 수군을 총 지휘할 목적으로 1593년(선조 26)에 이순신을 삼도수군통제사로 임명하고 일본이 남해와 서해로 향하는 길목인 한산도에 통제영을 설치한 데서 비롯되었다. 이후 통제영은 한산도에서 거제현으로, 다시 한산도와 마주보고 있는 고성현의 통영반도 끝부분으로 위치를 옮겼다.
1870년에 고성현이 도호부로 승격되고 중심지를 통제영 안으로 옮겼으나 1872년에 다시 옛 자리로 돌아갔다. 1895년 지방제도 개정으로 통제영을 폐지했으나, 1900년에 폐지한 통제영에 진남군을 설치하고 통영에 소속되었던 여러 섬과 고성군의 도선면·광이면·광삼면, 거제군의 가좌도·한산도를 관할구역으로 했다.
1909년에 진남군을 용남군으로 개칭했으나, 1914년 군면 폐합 때 용남군과 거제군을 통영군으로 통합했다. 이때 면의 폐합도 이루어져 용남군의 한산면은 그대로, 가좌면·서면(일부)·동면이 통영면으로, 산양면·서면(일부)이 산양면으로, 도선면·산내면이 도산면으로, 도남면·광삼면이 광도면으로, 사량면·원삼면이 원량면으로 통합되었다. 또 거제군이 폐지되고 거제군의 이운면·둔덕면·사등면·일운면·동부면·하청면·연초면은 그대로, 서부면이 거제면으로, 장목면·외포면이 장목면으로 통합되었다. 1931년에 통영면이 읍으로 승격되고, 1953년에 통영군에서 거제도가 분리되어 거제군으로 독립했다.
1955년에 원량면이 욕지면과 사량면으로 분할되었으며, 통영읍이 충무시로 분리·독립했다. 1995년 실시된 전국행정구역개편으로 역사적인 배경과 생활권이 하나였던 충무시와 통영군이 하나로 통합되어 새로운 형태의 도농통합시인 통영시를 이루었다.
통영시 자연환경
고성반도(통영반도)의 남북을 가로지르는 산릉이 이 지역의 지형을 구성한다.
북쪽 고성군 경계에 솟은 벽방산(650m)에서 남쪽으로 천개산(525m)·발암산(261m)·제석봉(279m)을 거쳐 미륵도의 용화산(461m)으로 산줄기가 이어진다. 지형의 영향으로 하천은 유로가 10km 미만인 3차수 하천이다.
광도면의 동해천, 한산도의 두억천 등이 있으나 하상이 사력으로 쌓여 복류하기 때문에, 용수를 조달하기 위해 상류에 저수지들이 축조되어 있다. 해안선은 전형적인 리아스식 해안으로 151개의 도서(유인도 43개, 무인도 108개)가 있으며, 해안선길이는 총 616.8km이다. 지질의 대부분은 화산암류와 심성 관입암류로 구성되어 있다. 쿠로시오 난류의 지류인 동한난류의 영향을 받아 연중 온화한 해양성 기후를 보인다.
통합 전 통영시 지역의 연평균기온은 14.7℃ 내외로 경상남도에서 가장 따뜻하며, 1월평균기온은 2.5℃ 내외이고, 8월평균기온은 25.4℃ 내외로 연교차가 작다. 연평균강수량은 1,458㎜ 정도로 한국의 다우지에 속한다. 동백나무와 종려나무 등 난대성 식물이 자란다. 한편 통합 전 충무시 지역의 연평균기온은 14.7℃ 내외, 1월평균기온은 2.1℃ 내외, 8월평균기온은 25.7℃ 내외로 연교차가 작으며, 연평균강수량은 1,397㎜ 정도이다.
통영시 인구
1995년 통합 전 충무시의 인구수와 가구수는 꾸준히 증가하여, 인구는 1970~80년에 37.4%, 1980~91년에 25.5%가 증가했다. 가구수는 같은 기간에 각각 53.8%, 50.8%가 증가했다. 가구당 인구수는 1991년 3.8명으로 1970년의 5.1명에 비해 낮아졌다. 1991년 전입인구는 1만 9,679명, 전출인구는 1만 9,910명으로 전출이 약간 많다. 전입인구는 대부분 인접한 거제군·고성군 지역에서 유입되었으며, 전출인구는 부산·대구·서울 등 대도시를 지향했다. 청장년층의 이출에 기인해 가임연령층이 줄어들면서 연간 출생자수도 계속 감소했다.
1995년 통합 이전의 통영군은 1970~80년에 17.8%, 1980~91년에 21.3%의 인구가 감소했다. 그러나 1995년 충무시와 통합시를 이루어 인구가 14만 2,932명으로 증가했고, 1996년에는 14만 2,639명으로 다소 감소했다. 반면 가구수는 1970~80년에 5.9%가 감소했고, 1980~91년에는 0.9%가 증가해, 가구당 인구수가 1980년 5.1명에서 1991년 4.0명, 1996년에는 3.4명으로 줄었다. 이것은 인구유출 과정에서 가구원 중 일부가 유출하는 것과 핵가족화현상 때문이다. 또한 가임연령인 20~40세의 연령층이 집중적으로 유출하여 연간 출생자수가 감소했다.
2024년 기준 인구는 12만 327명으로 1996년 대비 4.6%가 감소했고 가구당 인구수는 2.02명으로 줄었다. 행정동별 인구분포를 보면 읍·면지역에 31%, 시 중심부인 동지역에 69%가 거주하고 있다.
취락은 고성반도에 있는 광도면·도산면을 제외하고 대부분 해안가에 입지한다. 섬의 남쪽에 외해로부터 파도를 막아주는 다른 섬이 있을 때는 남쪽 해안지역에 입지하나, 섬이 없을 경우는 북쪽 해안지역에만 입지하는 특징을 보인다. 평지가 부족하여 취락의 70% 이상이 완경사지에 입지하며 특히 산양읍 등 도서지역의 촌락은 95% 이상이 경사지에 입지한다. 촌락의 대부분이 반농반어촌이며, 순수어촌은 14%이다. 가옥형태는 욕지도의 경우 3간홑집구조(온돌방-온돌방-부엌-툇마루)·4간홑집구조(온돌방-대청-온돌방-부엌-툇마루)를 기본형으로 하고 있다. 사량면에서는 전(田)자형의 2간겹집구조가 나타나고 있다.
옛 충무시 지역은 해안선을 따라 북동-남서 방향으로 좁게 발달해 있다. 산이 많아 수계의 발달이 미약하고 주거지는 주로 해안의 곡구부에 분포해 있다. 통영항 일대는 상업기능이 밀집해 있고 미륵도의 도남동 일대에는 수산·관광 취락이 형성되어 있으며, 미수동에는 굴 양식을 하는 어촌이 발달해 있다. 통영시의 중심시가지를 이루는 이곳은 평지가 적어 주택지가 산 중턱이나 산정에까지 형성되어 있다. 1988년부터 미수동·도남동 등 외곽지역에 민영 아파트가 건설되기 시작해 1991년에는 1,247세대가 건설되었다.
통영시 산업·교통
수산업이 경제의 중심을 이루고 있으며, 농업용수가 부족하여 농업은 부진하다. 총경지면적 28.53㎢ 가운데 논이 5.86㎢, 밭이 22.66㎢이며, 경지율은 11.9%이다(2014). 시의 대부분이 섬이며 구릉성 산지로 되어 있어 경지는 완만한 경사를 이루는 산간 곡저부나 해안에 협소하게 분포한다. 농산물로는 쌀·보리·콩 등의 식량작물과 고구마가 생산되었으나 점차 재배면적이 축소되고, 온난한 기후조건을 이용하여 상품작물인 키위·유자 등 난대성 과일이 재배되기 시작했다.
1961년 광도면 죽림리에서 재배에 성공한 파인애플을 비롯하여 바나나·유자·비파·망고 등의 열대성 과수가 대표작물이다. 욕지면 납도의 대단지에 조성된 감귤재배지에서는 많은 감귤이 생산되고 있다. 섬이 많고 수심이 5~15m로 얕으며, 청정수역에 연해 있어 연근해어업 및 양식업 등 수산업이 활발하다. 연근해 어업으로 고등어·도미·대구·멸치 등이 잡히고, 굴·피조개·홍합·진주조개·바지락·미역 등의 양식이 이루어진다.
굴·대구·돌미역 등은 통영을 대표하는 특산물이다. 굴 양식은 1960년대 광도면에서 뗏목수하식 양식으로 시작되다가 목재의 구입이 어려워지면서 지금은 줄에 종패(種貝)를 달아 양식하는 연승수하식을 이용한다. 양식조건이 유리하여 보급이 빨리 이루어진 반면, 과도한 양식시설과 밀식 등의 문제점이 발생되고 있다. 산양읍 일대를 중심으로 방어·도미 등을 축양하는 축양어장이 있다. 통영 앞바다에서 잡히는 멸치는 품질이 좋기로 유명하며, 용남면에서 거제시를 사이에 두고 진해만의 해역과 사량면의 윗섬·아랫섬 및 욕지도에서 많이 잡힌다.
주산지인 한산도를 중심으로 한 진해만에서는 어류의 보호를 위해 매년 7월 1일부터 11월 30일까지만 멸치어획이 허가되고 있다. 통영시에는 산양읍의 삼덕항을 비롯해 160여 개 어항이 있다. 도남동과 정량동에서는 고령토가 소량생산되며, 1988년까지는 금광이 있었으나 폐광되었다. 2014년 기준 제조업은 100개 업체에서 5,047명의 종업원이 종사하고 있다. 통조림·건조굴 등을 생산하는 수산물가공업 중심이다.
전국적으로 알려져 있는 전통공예로는 광도면 노산리의 통영문대발, 안정리의 목공예품, 산양읍 남평리의 나전칠기 등이 가내공업으로 생산되고 있다. 나전칠기는 조선시대 통제영 내에 13공방을 두고 관급으로 기능공을 양성하여 진상품·군수품·생필품의 보급을 목적으로 시작한 것이다. 이 제품은 이 지방의 특산물로 정교함과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으며, 내구성도 높아 주민소득과 외화획득에 중요한 몫을 담당하고 있다.
특히 자개세공을 놓은 나무 소반인 통영반(統營盤)은 지금도 각 가정에서 많이 사용되고 있다. 시 중심부의 상설시장을 중심으로 상업활동이 이루어지며 수산물 유통과 인근 고성군·거제시 지역의 주민들에게 일상용품을 공급하는 상업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다.
조선시대 수군의 본거지였던 삼도수군 통제영이 있었던 곳으로 예로부터 교통의 중심지가 되어왔다. 육지부인 광도면·도산면에 마산-거제를 잇는 국도가 지나며, 그밖의 지역은 해상교통에 의존하고 있다. 1996년 통영항으로 개칭된 충무항은 안벽길이 1,076m, 방파제 1,191m, 잔교 9기, 물량장 1,727m의 시설을 갖추고 있는 무역항이다. 통영항에서 부산·여수·욕지도·비진도·윗섬·아랫섬 등을 연결하는 정기여객선이 운행되고 있다.
한편 용남면과 거제도를 잇는 거제대교가 1971년 준공되었고, 1992년 마산-거제를 잇는 14번 국도가 4차선으로 확장되면서 내륙지역과 연결되어 교통이 편리해졌다. 미륵도와 고성반도는 1967년 개통된 충무교로 연결되어 있으며, 1932년 개통된 충무운하와 충무해저터널이 있다. 해안을 따라 해안일주도로가 개설되어 있다. 도로총길이 542.88km, 도로포장률 72.1%이다(2014).
통영시 유물·유적·관광
국가지정문화재(국보 1, 보물 3, 사적·명승 5, 천연기념물 5, 중요민속자료 2, 중요무형문화재 7), 지방지정문화재(유형문화재 14, 기념물 11, 무형문화재 1), 문화재자료 10점, 등록문화재 5점이 있다.
조선시대 통제영이 있었고 임진왜란 당시 격전지로서 이순신과 관련된 유적지가 많다. 선사시대 유적으로 욕지면 노대리에 욕지도패총(경상남도 기념물 제27호), 산양읍 연곡리에 통영연대도패총(사적 제335호)이 있다. 명정동의 충무충렬사(사적 제236호)는 1606년에 건립된 이순신의 사당으로, 경내에는 이순신의 위훈을 찬양하여 명나라 신종이 보내온 충무충렬사팔사품(보물 제440호)을 비롯해 수조도 병풍 충렬묘비(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13호) 등이 소장되어 있고 뜰에는 수령 400여 년 된 충렬사동백나무(경상남도 기념물 제74호)가 있다.
당동의 착량묘(경상남도 기념물 제13호)는 1599년 이순신이 노량대첩에서 전사하자 지방주민들이 건립한 사당이다. 한산면에는 21개소의 이충무공 유적지가 있다. 한산도이충무공유적(사적 제113호) 가운데 제승당은 충무공이 한산대첩공훈으로 삼도수군통제사가 된 후 지은 건물로 1597년까지 삼도수군의 본영으로 삼았던 곳이다. 이곳에는 충무공의 영정을 모신 충무사와 한산정·대첩문·행적비 등이 있다. 정유재란 때 소실·폐진되었다가 1739년(영조 15) 조경 통제사가 중건하고 유허비를 건립한 이래 1976년에 복원되었다.
문화동에 있는 세병관(보물 제293호)은 1603년 이경준 통제사가 건립, 이듬해 삼도수군통제사영을 이곳에 옮겨와 300년간 본영으로 삼은 곳이다. 당동의 착량묘(경상남도 기념물 제13호)는 1599년 이순신이 노량대첩에서 전사하자 지방주민들이 건립한 사당이다.
봉평동에 있는 용화사(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10호)는 신라 선덕왕 때 창건된 것으로 경내에는 용화사보광전(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49호)을 비롯해 도솔암(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62호)·명부전·해월루 등의 건축물이 있다. 문화동벅수(중요민속자료 제7호)는 1906년(광무 10) 동민들이 풍수사상에 의거, 동남방이 허하다 하여 마을의 평안을 염원하는 토속적인 신앙심에서 세운 것이다.
북신동에는 조선시대에 축조된 통영읍성지가 남아 있으며, 산양읍 삼덕리에는 당포성지(경상남도 기념물 제63호)와 삼덕리부락제당(중요민속자료 제9호)이 있다. 당포성지는 고려말 왜구의 침략을 막기 위해 최영 장군이 쌓은 성이다. 사량면에는 최영장군사당(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32호)이 있으며, 이곳 사람들은 장군의 위패를 모시고 매년 2회 사당제를 지내고 있다.
광도면에는 통영향교(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18호)와 안정사가 있다. 안정사는 신라 654년(무열왕 1) 원효대사가 창건한 사찰로, 경내에는 안정사대웅전(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80호), 안정사범종(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83호), 안정사괘불(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82호), 안정사련 및 금송패(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84호), 안정사만세루(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145호) 등이 있다.
천연기념물로는 한산면의 홍도괭이갈매기번식지(천연기념물 제335호), 도산면 도선리의 백로 및 왜가리 번식지(천연기념물 제231호), 욕지면 우도의 생달나무와 후박나무(천연기념물 제344호), 욕지면 모밀잣밤나무숲(천연기념물 제343호), 한산면 통영비진도의 팔손이나무자생지(천연기념물 제63호), 산양읍 추도의 후박나무(천연기념물 제345호) 등이 있다.
한려해상국립공원의 중심부에 있고, 한산도의 충무공 유적지, 해수욕장과 낚시터 등이 많은 한국 제1의 해상관광지이다. 통영항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남망산공원에는 이충무공동상·한산대첩비·시조비·수향정이 있고, 산 중턱에는 조선시대의 무과 고시장인 열무정과 이곳 출신의 시인인 유치환시비가 있다.
산양읍에는 해상국립공원을 조망하며 해안 드라이브를 할 수 있는 산양일주도로가 개설되어 있다. 전구간에 동백나무가 심어져 있어 겨울 한철 동백꽃이 만발하며, 도로 주변에는 달아공원, 어류 축양장과 양식장, 낚시터가 산재해 있다.
또한 해안 곳곳에 낚시터가 산재해 있어 부산·마산·진주 등 인근 도시 주민들의 주말 낚시터로 이용되고 있다. 한국의 나폴리라 불리는 한려수도 관광권의 중추기지 역할을 하게 될 통영도남관광단지가 1996년 도남동 일대 약 28만 7,600㎡부지에 완공되었다.
통영시 교육·문화
이 지방의 특색 있는 교육기관은 1592년 한산도에 건립된 운주당(제승당으로 중건)으로 조선 수군의 군사교육을 담당했으며, 도천동에는 1805년(순조 5) 설립된 백운서재(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9호)가 있다. 전통 교육기관으로는 1900년(광무 4) 광도면 죽림리의 고성향교 터에 새로 건립한 통영향교가 있었다.
대성전·동무·서무·명륜당·서재·풍화루 등의 건물이 있으며, 대성전에는 공자를 비롯한 오성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근대 교육기관으로는 1908년에 개교한 진남보통학교(지금의 통영초등학교)가 그 시초이다. 1917년 설립된 경남수산전습소의 후신인 통영수산전문대학이 있었으나 1994년 경상대학교와 통합되었다.
2015년 기준 교육기관으로는 유치원 31개소, 초등학교 20개교, 중학교 12개교, 고등학교 5개교와 경상대학교 해양과학대학이 있다.
문화행사로는 매년 10월 한산대첩을 기리기 위한 한산대첩기념대전이 열린다. 이 행사는 충렬사에서 봉행되는 이순신의 제사인 고유제를 시작으로 불꽃놀이·축등행렬이 이어지며, 가장행렬·통영오광대·승전무·풍어제 등 30여 종의 각종 문화 예술행사가 개최되는 종합 문화행사이다. 그 가운데 통영오광대(중요무형문화재 제6호)는 1900년경 합천군 초계면의 대광대놀음이 전파되어 발전된 것으로 문둥이탈·풍자탈·영노탈·농창탈·포수탈 등 5개 과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승전무(중요무형문화재 제21호)는 임진왜란 이후 삼도수군 통제영에서 각종 의식 및 이순신의 춘추향사·탄신제·기신제 때 헌무하여 오면서 전승되다가 일제강점기에 명맥이 끊긴 것을 다시 발굴한 것이다. 승전무와 함께 행해지는 통영검무는 다른 지방의 검무가 외향적이고 호전적인 것과는 달리 내향적이고 조직적이며 섬세하고 우아한 것이 특징이다. 어업이 성해 동제·어업노동요 등이 발달했다. 시내에서 가장 오래된 동제는 산양읍의 삼덕리부락제당에서 행하는 동제이다. 이 동제는 지금도 매년 섣달 그믐날에 행해지며, 마을의 풍농풍어를 기원한다.
그밖에 사량면 양지리 능량마을의 위민굿, 사량면 수우도의 동제 등이 있다. 어업노동요인 〈살치기〉는 그물당기는 소리로 작업지시와 풍어의 기쁨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농업노동요로는 <모찌기노래>·<보리타작노래>·<도리깨나작노래>, 길쌈노동요로 <삼삼기노래>·<물레노래>·<베틀노래> 등이 전승되고 있다.
남해안별신굿(중요무형문화재 제82호), 문화동에 소목장(중요무형문화재 제55호), 북신동에 나전장의 끊음질(중요무형문화재 제10호) 기·예능 보유자가 있고, 민속놀이로 민간제례악·이무기놀이·사또놀음 등이 있다. 한편 한산도 각 지명의 유래와 아름다움을 표현한 가사체인 <한산가>와 <통영개타령>·<잠노래>·<쌍가락지노래> 등이 있다.
2014년 기준 의료기관으로는 병원 8개소, 의원 76개소, 특수병원 1개소, 요양병원 1개소, 치과의원 31개소, 한의원 28개소, 보건소 관련 의료기관 22개소가 있다. 사회복지시설은 노인여가복지시설 219개소, 노인주거복지시설 4개소, 노인의료복지시설 5개소, 재가노인복지시설 11개소, 여성복지시설 3개소, 아동복지시설 1개소, 장애인복지생활시설 4개소, 보육시설 117개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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