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과사전 상세 본문

출처 다음백과

카스티야

다른 표기 언어 Castilla
요약 테이블
위치 스페인 중앙부, 메세타 고원 지역
대륙 유럽
국가 스페인

요약 페르난 곤살레스가 최초로 카스티야 전역을 통치하는 백작이 되면서 그의 가문이 이 백작령을 세습하도록 했고, 후손들은 남쪽으로 무어인들의 영토를 정복해갔다. 12세기 중반에 이르러 카스티야는 정치적으로 스페인을 완전히 장악하고 있어 중세 후기에 유럽의 왕실들은 자주 카스티야를 히스파니아(스페인)와 동일하게 여겼다. 1512년 나바라 왕국의 영토 가운데 스페인에 속한 부분이 카스티야에 합병됨에 따라 근대 스페인의 형채가 완성되었다. 통일 이후 스페인은 카스티야어를 문어로 사용했고, 스페인의 정치와 행정의 중심지는 항상 카스티야였다.
라틴아메리카로 전해진 스페인 문화 역시 대부분 카스티야 문화였다. 스페인 역사에서 카스티야가 행했던 탁월한 역할은 용맹한 정신과 군대 조직에 기인한 것으로 평가된다.

카스티야(Castilla)

ⓒ Marnal/wikipedia | CC BY 3.0

북부지역은 카스티야라비에하(구카스티야)로, 남부지역은 카스티야라누에바(신카스티야)로 불린다.

카스티야 지방은 15세기말에서 16세기초까지 스페인을 통일한 카스티야 왕국의 핵심부였다. '성지'(城地)를 뜻하는 이 지방의 이름은 800년경에 처음 사용된 것으로 알려졌는데 당시는 지금의 부르고스 주 북쪽 끝의 칸타브리카 산맥 산기슭에 있는 작은 지역을 가리켰다.

9세기에 팽창했으나 작은 백작령들의 단편적인 집합체에 불과했으며 이 지방 통치자들은 아스투리아스와 레온의 왕이 임명했다. 그러다가 페르난 곤살레스(970 죽음)가 백작령들을 통일하고 최초로 카스티야 전역을 통치하는 백작이 되었다.

카스티야의 정치사는 곤살레스와 더불어 시작된다. 그는 새 백작령을 그의 가문이 세습받도록 해 레온 왕가의 지배로부터 어느 정도의 자치를 확보하는 한편 부르고스를 백작령의 수도로 삼았고 남쪽으로 무어인들의 영토를 정복해갔다. 가르시아 페르난데스 백작(1005 죽음)과 산초 가르시아 백작(1017 죽음)의 통치하에서 카스티야의 영역은 두에로(도루) 강까지 넓혀졌다. 이들은 명목상 여전히 카스티야의 종주권자들인 레온 왕들과 자주 갈등을 일으켰다. 1029년 카스티야인의 어머니를 둔 나바라 왕국의 대왕 산초 3세는 카스티야를 레온에서 분리시켰고, 1035년 죽으면서 둘째 아들에게 물려주었다. 그 아들이 바로 페르난도 1세(1037~65)로 카스티야 국왕의 칭호를 취한 첫번째 인물이다.

후에 이 지방은 레온과의 통합(1072~1157)과 분리과정을 한 번 더 거쳤다. 그후 카스티야의 알폰소 8세는 레온 왕이 그에게 충성을 맹세하도록 하여(1188) 레온에 대한 카스티야의 정치적·군사적 우위를 입증했다. 그무렵 카스티야의 영토는 타호 강의 먼 남쪽과 동쪽으로 아라곤의 지금 경계선까지 확장되어 있었다. 그러나 레온 왕들은 카스티야의 종주권을 결코 용납하지 않았으며, 그결과 레온의 알폰소 9세는 카스티야의 알폰소 왕이 이슬람교도들인 베르베르족의 알모아데 왕조와 맞서 싸울 때 그를 지원하기를 거부했다. 결국 카스티야가 레온에 대한 정치적 지배권을 추구한 결과 이슬람교에 대항하는 그리스도교 세력의 전선이 약화되었다.

1230년 카스티야의 왕 페르난도 3세가 레온의 왕위를 계승하여 마침내 두 왕국은 카스티야의 주도하에 통일되었으며, 그보다 이른 1085년에 스페인 이슬람교 톨레도 왕국도 카스티야에 합병되어 있었다. 12세기 중반에 이르러 카스티야는 정치적으로 스페인을 완전히 장악하고 있어 중세 후기에 유럽의 왕실들은 자주 카스티야를 히스파니아(스페인)와 동일하게 여겼다. 무어인들이 차지하고 있던 남단 지방의 안달루시아에 대한 그리스도교 최후의 정복 역시 페르난도 3세 시대에 이루어졌다(카스티야라누에바).

1383~85년에 카스티야가 무력으로 포르투갈을 합병하려고 했으나 실패했다. 그러나 1412년 카스티야의 한 공작이였던 페르난도 1세는 부분적으로는 카스티야의 재정 지원과 군사력에 힘입어 아라곤의 왕위를 얻는 데 성공했는데, 이 움직임은 페르난도와 이사벨라 두 왕의 사적인 결합(1479)의 전조가 되었다. 1512년 나바라 왕국의 영토 가운데 스페인에 속한 부분이 카스티야에 합병됨에 따라 근대 스페인의 형채가 완성되었다. 통일 이후 스페인은 카스티야어를 문어(文語)로 사용했고, 스페인의 정치와 행정의 중심지는 항상 카스티야였다. 라틴아메리카로 전해진 스페인 문화 역시 대부분 카스티야 문화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세에 완전히 혹은 부분적으로 독립을 누렸던 다른 지방들이 카스티야의 정치적 패권에 대해 느끼는 반감은 강하게 남아 있다. 특히 카스티야가 지리적인 여건으로 경제적으로 낙후된 반면 스페인의 강력한 공업 중심지들이 카스티야 외의 지방에 있어 카스티야의 정치력에 대한 불만은 끊이지 않는다. 약간 과장하여 중세 카스티야는 이웃 국가들보다 진취적인 왕국으로서 통일과 국가 운명에 대해 보다 앞선 의식을 가졌었다는 주장이 있으며, 스페인 역사에서 카스티야가 행했던 탁월한 역할은 용맹한 정신과 군대 조직에 기인한 것으로 평가된다.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으로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출처

다음백과
다음백과 | cp명Daum 전체항목 도서 소개

다양한 분야의 전문 필진으로 구성. 시의성 이슈에 대한 쉽고 정확한 지식정보를 전달합니다.

TOP으로 이동
태그 더 보기
유럽

유럽과 같은 주제의 항목을 볼 수 있습니다.



[Daum백과] 카스티야다음백과, Daum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으로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