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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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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중세 스페인의 왕국.

레온·살라망카·사모라 등의 도시가 이 왕국의 땅이었으며, 바야돌리드·팔렌시아가 카스티야의 동쪽 국경 근처에 있던 관계로 잦은 분쟁이 있었다. 레온 왕은 갈리시아·아스투리아스를 다스렸고 1139년경 포르투갈이 독립하기 전에는 포르투갈 지방 대부분도 다스렸다.

중세 레온 왕국은 가르시아 1세(909~914) 때부터 세력을 키워 나갔는데 그는 아스투리아스의 수도였던 오비에도를 버리고 고대 로마 때 레기오 7군단 게미나의 상설야영지였던 장소에 궁정을 세웠다. 그뒤 레온은 나바라의 산초 3세 가르세스 대왕(1000~35)에게 정복당하기도 하고 산초가 죽은 뒤 카스티야가 왕국으로 승격해 패권에 위협을 받기도 했으나, 알폰소 7세가 죽기(1157) 전까지는 그리스도교권 스페인에서 명목상 주도권을 유지했다.

10세기에 코르도바에서 칼리프의 지위가 가장 강했을 때 무어인들과 싸워 진 뒤부터 레온 왕은 칼리프에게 사실상 굴복한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아스투리아스 군주에게서 호전적인 서(西)고트 전통을 많이 이어받은 레온의 통치자들은 전스페인의 황제 또는 왕의 칭호를 쓰기도 했고 항상 레콩키스타(국토회복운동)에 힘썼다.

레온의 역사는 1157~1230년에 2번째로 새 국면을 맞는데 레온 왕 페르난도 2세(1157~88)와 알폰소 9세(1188~1230)는 카스티야에서 분리된 레온 왕국을 다스렸다. 카스티야와는 우호적이지 않았으나 이 동안 레온은 안정된 정체(政體)를 유지했으며 레온 영토인 에스트레마두라에서 무어인들을 크게 물리쳤다. 결국 카스티야에 합병당했으나(1230) 그뒤에도 레온의 정치·행정 기관은 한동안 남아 있었다.

의회(Cortes)의 기록을 보면 14세기 전반까지 레온은 독자성을 어느 정도 갖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왕국이 생겨난 첫 세기에는 모사라베(무어인이 스페인을 정복한 뒤 무어 왕에게 복종하겠다는 조건 아래 신앙을 허용받은 그리스도교도)들이 레온으로 많이 이주했기 때문에 레온은 아랍 언어와 문화의 영향을 받았다. 근대 스페인의 사료 중 대부분은 카스티야의 분리주의를 정당화하기 위해 "중세 레온은 고리타분하며 음모를 꾸미기 좋아하는 국가로서 항상 무어인들과 타협할 길만 찾았다"고 묘사하고 있으나 이런 사실을 증명할 만한 증거는 없다. 레온 왕국은 칼리프의 공격을 잘 막아냈고 이베리아 반도에서 맨 처음으로 의회제도를 발달시켰다고 여겨진다.

중세 레온 왕국의 영토는 대략 지금의 레온·살라망카·사모라 주에 해당하는데 이 지방들은 1979년에 카스티야레온 자치구에 편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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