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과사전 상세 본문

출처 다음백과

서양 의학의 뿌리

다른 표기 언어

그리스 초기 의학

마법에서 과학으로의 변화는 여러 세기에 걸친 완만한 과정이었다. 그리스 사람들로 하여금 초자연적인 힘에만 의존하지 않고 여러 가지 자연현상에 대해 원인과 이유를 찾도록 한 것은 아스클레피우스 사원의 사제들이 아니라 초기 철학자들이었다.

엠페도클레스의 우주관에 따라 인체는 혈액·점액·황담즙·흑담즙으로 구성되었다는 4체액설이 대두했다. 이 설에 따르면 건강의 유지는 4가지 체액의 조화에 의존한다.

히포크라테스

히포크라테스는 '의학의 아버지'라고 하지만 그의 생에 대해 알려진 것은 거의 없다. 우리가 지금 히포크라테스라고 부르는 사람은 〈히포크라테스 전집 Corpus Hippocraticum〉을 이루는 여러 권의 책 중에서 몇 권의 저자일 수도 있고 그것과는 직접적인 연관이 없을 수도 있다. 히포크라테스의 이름이 붙은 저작들은 서양의학의 한 이정표, 즉 질병을 초자연적인 현상이 아니라 자연적인 것으로 여기며 의사들은 질병의 그러한 자연적인 원인을 찾기 시작하게 된 출발점으로서의 의미를 갖는다.

히포크라테스는 자연치유력을 강조했다. 히포크라테스는 환자를 환경과 관련지어 병이 아닌 인간으로 다루었다. 히포크라테스가 남긴 가장 큰 유산은 이른바 '히포크라테스 선서' 속에 구현되어 있는 의료행위에 대한 장전일 것이다.

헬레니즘 의학과 로마 의학

그리스 문화의 중심지가 아테네에서 알렉산드리아로 옮겨지면서 헬레니즘이 발달하기 시작했다. 이곳에는 사상 최초로 해부학에 관한 저작을 남긴 것으로 여겨지는 헤로필로스와 생리학의 창시자로 일컬어지는 에라시스트라토스라는 위대한 의학자가 있었다.

기원 후 몇 세기 동안 그리스 의사들은 로마로 이주했다. 그들 가운데 가장 뛰어난 사람이 갈레노스였다. 갈레노스는 히포크라테스 학파의 의술을 배워 그 방법을 따랐으며 체액설을 지지했다. 그는 해부학의 의의를 강조했으며, 사실상 맨처음으로 실험생리학을 학문으로 확립했다.

당시에는 인체해부를 법으로 금했으므로, 갈레노스는 동물의 관찰에 자기 지식의 토대를 둘 수밖에 없었다. 의학이론과 시술법에 대한 로마의 공헌은 그리스에 비해 무시할 정도로 작지만, 공중보건에 관한 로마인들의 태도나 처리는 매우 뛰어났다.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으로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출처

다음백과
다음백과 | cp명Daum 전체항목 도서 소개

다양한 분야의 전문 필진으로 구성. 시의성 이슈에 대한 쉽고 정확한 지식정보를 전달합니다.

TOP으로 이동


[Daum백과] 서양 의학의 뿌리다음백과, Daum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으로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