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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글랜드와 노르망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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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복은 단 한 번의 공격으로 완수되지는 않았고 잉글랜드의 반항은 1075년까지 계속되었다. 그러나 정복의 결과는 노르만 귀족에 대한 잉글랜드의 완전한 예속이었다.

정복왕 윌리엄 1세(1066~87 재위)는 180명이 채 못 되는 부하들에게 영지를 분봉해주어 왕의 직속봉신으로 삼았다. 정복 전의 잉글랜드에서는 거의 볼 수 없었던 (城)이 행정과 군사조직의 기반이 되었다.

윌리엄은 처음에는 앵글로색슨의 행정조직을 별로 변경하지 않았으나 통치 말년에 이르러서는 중요한 행정관리들이 모두 노르만인이었다. 고위 성직자들 또한 세속 사회 방식을 따라 노르만화하고 봉건화했다(→ 봉건제). 당대의 연대기에서 윌리엄은 반란을 가혹하게 진압하고 넓은 지역을 유린한 무자비한 폭군으로 묘사되어 있다. 그러나 그는 유능한 통치자였다. 그가 이룬 가장 큰 공헌 가운데 하나는 잉글랜드를 대륙과 연결시킨 점일 것이다. 귀족들은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한편, 라틴어가 교회와 행정기관의 용어가 되었다.

정복왕 윌리엄 1세의 두 아들인 윌리엄 2세(1087~1100 재위)와 헨리 1세(1100~35 재위) 때는 강력한 중앙집권적 통치가 계속되었으며, 잉글랜드와 노르망디와의 유대가 강화되었다. 전반적인 견지에서 볼 때 노르만 시대는 건설적인 시대였다. 경제는 본질적으로 농업을 위주로 했다. 도시들이, 그중에서도 특히 런던이 번성했다. 교회는 대륙과 더욱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더럼 대성당이나 런던 탑 같은 훌륭한 건물, 윈체스터의 성서와 〈시편〉의 장식 글씨는 이 시대의 뛰어난 건축과 미술 솜씨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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