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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과사전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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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백과사전은 플라톤의 조카 스페우시푸스(BC 339/338 죽음)가 삼촌의 사상을 박물지·수학·철학 등으로 분류해서 편찬한 여러 권의 책이라 할 수 있는데, 광범위한 주제에 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강의들은 이 책의 제작에 플라톤 못지 않게 큰 영향을 끼쳤다.

따라서 아리스토텔레스와 플라톤은 폭넓은 문화적 배경을 전달한 백과사전의 창시자라고 할 수 있다. 그리스인들은 사람들의 말을 기록한 것이 백과사전이라고 생각한 반면 로마인들은 현존하는 지식을 읽기 쉬운 형태로 요약해놓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로마 시대의 가장 중요한 저작은 일종의 광대한 정보 모음집인 플리니우스의 〈박물지〉이다. 이 책은 사실과 공상을 별 구분없이 기록해놓기는 했어도 그뒤 적어도 1,500년 동안은 다른 백과사전의 중요한 자료가 되었고, 지금까지 로마 시대의 조각과 회화에 대한 귀중한 자료로 쓰인다.

11세기말에서 12세기경에 〈수다 Suda〉 또는 〈수이다스〉라는 백과사전식 사전이 나왔는데, 이 사전은 전통을 깨고 알파벳 순으로 내용을 정리했으며, 유익한 정보가 많이 수록되어 그뒤 오랫동안 중요한 자료원으로 쓰였다.

12세기의 가장 위대한 업적으로 호노리우스 인클루수스의 〈세상의 거울 Imago mundi〉을 꼽을 수 있다. 이 책은 약 200년 동안 엄청난 부수를 기록했고, 불법 표절과 끊임없는 비평의 대상이 되기도 했지만 계속해서 증보판을 찍어냈다.

여성이 편집한 최초의 백과사전은 수녀원장이었던 헤라드(1195 죽음)가 자신이 맡고 있던 수녀들의 자질을 향상시키기 위해 쓴 〈호르투스 델리키아룸 Hortus deliciarum〉이다.

가장 뛰어난 중세의 백과사전은 뱅상의 〈스페쿨룸 마유스〉로 뱅상 혼자서 모든 항목을 집필한 것은 아니었다. 이 백과사전은 80권에 약 1만 장(章)으로 구성되었으며, 18세기 중반까지 그 규모에 있어 어떤 백과사전과도 비교가 안 될 만큼 방대하면서도 균형이 잡혀 있었고 '자연'·'학문'·'역사'로 나누어진 3부분에 거의 비슷한 공간을 할애했다. 뱅상이 죽은 뒤 첨가된 '윤리' 부분은 성 토마스 아퀴나스의 철학을 기초로 했다.

이 책은 발간되자마자 큰 반향을 일으켰고, 그 이후로도 오랫동안 지속적인 영향을 끼쳤으며 여러 나라 말로 번역되었다. 1863~79년에는 완벽한 재판(再版)이 나왔다. 이 책의 가치는 많은 자료를 얻을 수 있다는 것과 13세기 중반의 역사를 자세히 알 수 있다는 것에 있다.

뱅상 시대 이후로는 종교인들만이 아닌 보다 많은 일반대중을 대상으로 백과사전이 편찬되기 시작했다.

라틴어에서 벗어난 첫번째 백과사전은 단테의 스승이었던 브루네토 라티니(1220경~95)가 쓴 〈Li livres dou tresor〉이다. 배열방식은 뱅상과 비슷했지만 접근방식은 훨씬 간결했다. 이 백과사전은 프랑스어로 제작되었는데 간단하고 정확해 단시간 내에 널리 보급되었다. 프랜시스 베이컨은 자신이 〈인스타우라티오 마그나 Instauratio magna〉를 쓴 목적이 사물과 이성 간의 논리적이고 진정한 관계를 도모하기 위해서 "완전한 기초 위에 세워진 과학과 예술 및 인간의 모든 지식을 완벽하게 개조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이 거대한 계획은 일부분밖에 완성되지 않았지만 '자연계'·'인간'·'인간의 활동'으로 나눈 지식에 대한 새로운 분류법이 주목할 만하다.

앙투안 퓌르티에르가 펴낸 백과사전 〈과학기술 일반사전 Dictionnaire universel des arts et sciences〉(1690)은 한층 더 대중적인 취향에 맞추어진 것이었다. 그는 과학과 기술에 초점을 맞추고 현대의 과학·기술·문화에 대해 급속히 늘어가는 일반인들의 관심을 반영했다.

프랑스 백과사전들의 번역판으로 만족했던 영국 사회는 과학과 기술에 역점을 둔 존 해리스의 〈기술용어사전 Lexicon Technicum〉(1704)이 출간되자 영국 내의 판도가 뒤바뀌었다. 이프레임 체임버스〈사이클로피디아 Cyclopaedia〉(1728)을 펴낼 때, 해리스가 그랬듯이 인명은 생략하고 과학과 기술을 중요하게 다루었으며 고대와 현대의 철학체계를 명확히 밝히는 데 많은 비중을 두었다.

그의 백과사전은 관련항목을 적절하게 사용해 지금은 현대 백과사전의 아버지로 불린다.

프랑스의 디드로달랑베르가 편집한 〈백과전서〉(1751~65)는 규모의 방대함뿐만 아니라 당대 프랑스를 대표하는 선진 사상가들이 기고한 뛰어난 집필로도 유명하며, 철학적으로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 작업이었다.

그러나 이 사전은 당시 논쟁의 대상이었던 문제들을 길게 다루기 위해, 필요한 항목들을 많이 빼버렸다는 결점을 안고 있다. 한편 외국 백과사전의 번역판에 의존하고 있던 독일에서도 프리드리히 아르놀트 브로크하우스가 독일 국민들의 진정한 필요를 인식하고 〈Konversations-Lexikon〉(1796~1811)을 제작했다. 이 사전은 간결·정확하고 내용이 평이하면서도 최신 정보를 담고 있는 등 성공적인 백과사전의 요소들을 갖추어 뒤이어 나온 서구사회 백과사전들의 본보기가 되었다.

베이컨의 〈인스타우라티오 마그나〉, 디드로의 〈백과전서〉, 〈브리태니커〉, 〈브로크하우스〉 외에도 백과사전 편찬에 중요한 획을 그었던 것으로 프랑스의 피에르 라루스가 만든 사전을 들 수 있다.

그는 독자적인 방식으로 백과사전을 만들어 남다른 명성을 얻었다. 전권을 통해 이해하기 쉽도록 집필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했고, 간략함을 위해 문체를 손상시키는 경우도 없었으며, 프랑스 독자들의 기호 변화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다. 노아 웹스터의 등장은 브로크하우스나 라루스에 비길 만큼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웹스터의 〈아메리칸 영어사전 American Dictionary of the English Language〉(1828)은 백과사전적 성질을 가지고 있었지만 긴 항목을 싣지 않고 보다 중요한 항목들이 많이 들어가도록 했다.

그의 이러한 방식은 미국인들의 구미에 잘 맞아서 거대한 시장을 장악했으며, 해를 거듭할수록 성장해나갔다.

19세기 영국의 백과사전 시장은 무한한 가능성이 있는 듯이 보였으나 대부분의 출판업자들이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해 파산했다. 그러나 로버트 체임버스와 윌리엄 체임버스 형제가 처음으로 발간한 이래 지금까지 출판되고 있는 〈체임버스 백과사전 Chambers's Encyclopaedia〉(1860~68)은 유일한 예외이다.

19세기 초반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 백과사전을 만들려는 움직임이 늘어났다. 그 가운데 러시아의 〈Entsiklopedichesky slovar〉(1895)는 이 사전을 펴낸 그라나트 러시아 서지학협회(書誌學協會)의 이름을 따서 '그라나트'로 알려졌다. 이 사전의 2번째 판(1910~48)에는 '마르크스'와 '19세기 러시아의 농지문제'에 관해 쓴 레닌의 글을 비롯해 중요한 항목들이 들어 있다.

19세기는 실질적으로 현대 백과사전의 모든 특징이 나타난 시기였으며 편집수준도 상당히 높았다.

1890~1906년 상트페테르부르크 지국에서 〈브로크하우스〉의 러시아판이 나왔다. 1926~47년에는 '그라나트' 다음으로 중요한 〈소비에트 대백과사전 Bolshaya sovetskaya entsiklopedya〉(총 65권)이 나왔지만 평판이 좋지 못했다.

이 사전의 재판(1949~58) 역시 마르크스-레닌주의에 입각해서 내용을 전개했으나 비정치적인 문제에 관해서는 다소 공정한 입장을 취했다. 이 백과사전은 소련의 거의 모든 문화적 자료를 제공했고, 8,000명에 이르는 학자들이 기고했다. 부록으로 만든 참고도서 목록은 실로 세계적인 규모였다. 1970~78년에 나온 30권으로 이루어진 3번째 판은 내용을 재편집하고 작은 활자체를 써서 크기가 줄었다. 1973~82년 맥밀리언은 이 백과사전의 영어판을 출간했다.

〈에스파사 Espasa〉(1905~33)·〈Diccionario Salvat〉(1907~13)·〈Enciclopedia labor〉(1955~60) 등은 대표적인 스페인 백과사전들이다.

〈이탈리아 백과사전 Enciclopedia italiana〉(1929~39)은 모든 백과사전 가운데 최고의 것으로 꼽히며, 최고급 삽화, 길고 학문적이며 자료가 풍부한 항목들로 유명하다. 독일에서는 〈브로크하우스〉·〈마이어〉·〈헤르더 Herder〉의 독일 3대 백과사전이 계속 신판으로 나오고 있으며, 다른 어떤 사전들도 이들의 영역을 넘지 못하고 있다.

20세기의 프랑스 백과사전계는 라루스 백과사전의 인기가 계속되는 한편 주목할 만한 3개의 백과사전이 새롭게 발간되었다.

제일 먼저 나온 〈프랑스 백과사전 Encyclopédie fran이미지aise〉(1935~66)은 유명한 학자와 전문가들의 학술논문을 주제별로 모아놓은 뛰어난 백과사전으로 한장한장 뽑아볼 수 있게 제본되었으며, 별도로 색인을 계속 개정해 내용을 보충하고 있다. 그 다음 나온 〈Encyclopédie de la Pléiade〉(1955~)는 백과사전식 시리즈라고 할 수 있는데 때때로 1권 이상으로 발간된 각 부분들은 담화체로 쓰여졌으며 광범위한 주제들을 완성도 높게 취급하고 있다.

클로드 그레고리가 편집한 〈세계 백과사전 Encyclopaedia universalis〉(1968~75)은 현대 과학기술에 특별한 주의를 기울였다. 이 백과사전은 '합작'으로 제작되었는데, 합작 제작은 대개 2개국 이상의 편집자들이 그중 한 나라에서, 또는 여러 국가용으로 부분 수정해 판매하기 위해서, 공동으로 제작하는 것을 말한다. 합작 백과사전들 가운데 성공한 대표적인 예로 일본에서 나온 〈브리태니커 국제대백과사전 Britannica International Encyclopaedia〉과 중국의 〈간명 브리태니커 백과전서 簡明大英百科全書〉를 들 수 있다.

한편 미국의 〈랜덤 하우스 백과사전 The Random House Encyclopedia〉은 여러 나라 언어로 번역되어 다양한 이름으로 출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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