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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과사전의 구성의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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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으로 중요성을 지닌 백과사전 중 하나로 꼽히는 〈스페쿨룸 마유스 Speculum majus〉('위대한 거울'이라는 뜻)는 1244년 프랑스 보베 출신의 학자 뱅상이 출간했는데 그는 자신의 백과사전은 숙독되어야 하며 독자들은 그 안에 기록되어 있는 사상들을 본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가 사전 이름에 'speculum'(거울)이라는 단어를 쓴 것은 세상 사람들에게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고,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한다는 것을 암시하기 위해서였다.

플라톤은 더 나은 사고를 위해서 지식은 필수적인 전제라고 생각했으며 로마 사람들은 일생의 과업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모든 유용한 지식을 습득하는 것이 상책이라고 했다. 오늘날에는 지식을 습득하는 데 필수적인 출발점, 또는 지식 습득 과정에서 언제든지 찾아볼 수 있는 기본적인 참고도서로 백과사전을 정의하고 있다.

알파벳 순으로 배열된 백과사전은 그 역사가 1,000년이 채 안 된다.

유럽에 인쇄술이 소개되기 전까지는 대부분의 백과사전이 특정한 주제별로 편집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로마 시대에는 접근방식이 대체로 실용적이어서 천문학이나 지리학 같은 일상생활과 관련된 주제들이 중시되고 미술분야는 맨 뒤로 밀려났다. 그러나 같은 로마 시대라도 6세기의 정치가이자 작가인 카시오도루스가 만든 〈인스티투티오네스 Institutiones〉는 성서와 교회에 관한 주제로 시작한 반면 산수나 기하학에는 거의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아랍의 언어학자이자 역사학자인 이븐 쿠타이바는 권력·전쟁·신분 등으로 시작해서 음식과 여자로 끝을 맺는 매우 색다른 방식으로 자신의 백과사전을 배열했다.

한편 페르시아의 화리즈미는 법과 스콜라 철학을 먼저 싣고 의학·기하학·역학 같은 보다 실용적인 학문들은 '외국 지식'이라고 이름붙여 소홀하게 취급했다.

중세기 백과사전 내용분류의 일반적인 경향은 뱅상의 〈스페쿨룸 마유스〉에 잘 나타나 있다. 그는 이 사전을 '자연'(Naturale)·'학문'(Doctrinale)·'역사'(Historiale)의 3부분으로 나누고 '자연'부분은 다시 신·창조·인간으로, '학문'은 언어·윤리·공예·의학으로 분류했으며, '역사'는 세계 역사를 다루었다.

프랜시스 베이컨은 기존의 이러한 접근 태도에 일대 전환점을 마련했는데 그는 미완성의 〈인스타우라티오 마그나 Instauratio magna〉를 계획하면서 크게 '자연계'(External Nature), '인간'(Man), '인간의 활동'(Man's Action on Nature)으로 분류했다.

'자연계'에서는 천문학·기상학·지리 및 광물·동물·식물 등의 종류에 관해서 다루었고, '인간'에서는 해부학, 생리학, 사회구조와 권력, 활동 등을 기술했으며, '인간의 활동'에서는 의학, 화학, 미술, 감각, 감정, 지적 능력, 건축, 교통, 인쇄, 농업, 향해, 산수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루었다. 그는 백과사전 편찬자가 인간의 지식영역에 대해 포괄적으로 이해하고 있어야 인간의 생각과 노력에 관련된 모든 분야를 빠짐없이 실을 수 있다고 확신했는데 그가 제시한 이러한 백과사전의 내용배열 방식은 매우 과학적이고도 훌륭한 체계였다.

이러한 베이컨의 생각은 후대의 많은 백과사전 편집자들의 편집정책에 큰 영향을 끼쳤으며, 130년 후의 디드로조차 이 방법에 크게 영향을 받았다고 〈백과전서 L'Encyclopédie〉 초안(1750)에서 고백하고 있다. 그뒤에 나온 백과사전들은 모두 디드로의 영향을 받은 것들이기 때문에 사실상 베이컨의 영향력은 오늘날까지 미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한편 콜리지도 베이컨의 안(案)에 크게 감명을 받아 1817년 다소 색다른 배열방식으로 〈메트로폴리타나 백과사전 Encyclopaedia Metropolitana〉을 펴냈다.

그는 5개의 범주, 즉 순수과학, 응용과학, 인명과 역사, 어휘와 지명, 색인으로 자신의 사전을 구성했다. 콜리지의 이러한 분류는 편집자에 의해 수정되었고, 사전 자체가 실패로 끝났지만 그의 분류방식은 오랫동안 영향을 끼쳤다.

그리스인들과 로마인들은 모두 알파벳 순으로 배열하는 방법을 잘 알고는 있었지만 백과사전을 만드는 데는 사용하지 않았다. 그러나 2세기 무렵에 세크스투스 폼페이우스 페스투스가 〈단어의 뜻에 대하여 De verborum significatu〉라는 책을 알파벳 순으로 배열하여 발간했다.

10세기 혹은 11세기에 나온 백과사전식 사전 〈수이다스 Suidas〉는 완벽하게 알파벳 순으로 배열된 사전이지만 그뒤에 출판된 백과사전에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못했다. 1674년에 루이 모레리는 〈역사 대사전 Le Grand Dictionnaire historique〉을 펴냄으로써 대중들이 알파벳 순의 자기나라 말로 씌어진 백과사전을 선호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러한 사실은 앙투안 퓌르티에르가 만든 〈세계사전 Dictionnaire universel〉(1690)이 성공함으로써 더욱 강조되었다.

백과사전의 출판 초기부터 중세 대학의 3학(문법·논리학·수사학)과 4과(기하학·산수·천문학·음악)는 백과사전의 필수적인 요소로 간주되어왔다.

따라서 초기 백과사전 편집자들은 이 7개의 교양학문을 인간 지식의 기본이라고 생각했고, 이 학문들에 대한 지식없이는 백과사전 일을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대부분의 편집자들은 백과사전이 참고도서로 보다 나은 기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알파벳 순으로 배열하였지만 이러한 배열방식이 지식을 조각낸다는 사실에 점차 고민하기 시작했다. 따라서 많은 사람들이 주제별로 분류한 초기 백과사전의 장점들을 보완해서 교육적 기능을 강화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이러한 움직임의 결과 가운데 주목할 만한 것으로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Encyclopædia Britannica〉 15판(1974)을 들 수 있다.

이 15번째 판은 참고도서로서의 역할을 손상시키지 않으면서 교육적 기능을 강화시키기 위해 마련된 것이었다. 이 사전은 프로피디아(지식의 개요)·마이크로피디아(작은 항목 사전)·매크로피디아(깊이있는 지식)·색인의 4부분으로 나누어져 있으며, 어떤 지식 범주에 속하는 짧은 정보를 제공하는 소항목들은 일반적인 주제를 다루는 대항목들에 연계되어 있어 전체적인 지식체계를 얻을 수 있도록 상호 보완되게 만들었다(〈브리태니커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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