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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타질라

다른 표기 언어 Mutazilah

요약 이슬람의 정치적 혹은 종교적 중립주의자들.
(영). Mutazilites.

10세기까지 이 용어는 특별히 바스라와 바그다드에서 번성한(8~10세기) 사변적 신학을 하는 이슬람학파를 지칭했다. 초기 이슬람사에서 제3대 칼리프 우스만이 살해된(656) 뒤, 알리가 이슬람 사회를 지배하는 데 대해 논란이 이는 가운데 처음으로 이 명칭이 등장했다. 이때 알리나 알리 반대파들을 비난하지도 인정하지도 않으며 중립적인 입장을 취한 사람들을 무타질라라고 불렀다.

이 신학파는 알 하산 알 바스리의 제자인 와실 이븐 아타(699~749)에서 시작되었다. 그는 중죄인은 신자도 비신자도 아닌 중간적 처지에 있다고 밝히고 알 하산 일파에서 떨어져 나왔다(762년에 죽은 아므르 이븐 우바이드에 대해서도 이와 똑같이 이야기되고 있음). '떨어져 나왔다'는 뜻의 이타잘라(i⁽tazala)에서 무타질라라는 명칭이 나왔다.

무타질라는 자유사상가라든가 이단자라는 비난을 받으며, 8세기에 이슬람교도 가운데서 처음으로 헬레니즘 철학의 범주와 방법들을 사용해 독특한 3가지 교리를 만들어내었다.

첫째로, 그들은 신의 절대 유일성을 강조했다(→ 타우히드). 신은 분리될 수 없기 때문에 〈코란〉은 신의 말씀이 아니고 창조된 것이어서 신과 함께 영원할 수는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아바스 왕조 칼리프 알 마문은 창조된 〈코란〉이라는 이 교설을 국가적 교리로 선포했고(827), 833년에는 이 교리에 이의를 제기한 사람들을 재판하기 위한 재판소를 세웠다.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들 가운데 신학자 아흐마드 이븐 한발이 유명하다. 아바스 왕조는 849년경 알 무타와킬 치하에서 무타질라의 입장을 버렸다.

둘째로, 무타질라들은 신의 정의를 강조했다. 정통파는 외경스러운 신의 의지에 대해 인간이 묻지 않고 복종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반면에 무타질라는 신은 인간에게서 최선만을 바라지만 사람은 자유의지를 가지고 선과 악을 스스로 선택하므로 결국 자기 행동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입장을 취했다.

셋째로, 경고와 언약(al-wa⁽d wa al-wa⁽ῑd), 천국과 지옥 사이에서 신의 정의는 논리적 필연성의 문제로 된다. 신은 반드시 선에 대해 언약된 보상을 주며 악에 대해 경고했던 징벌을 내린다.

가장 유명한 무타질라 신학자로는 바스라의 아부 알 후다일 알 알라프(841경 죽음)와 바그다드의 비슈르 이븐 알 무타미르(825 죽음)를 들 수 있다. 무타질라파(派) 알 주바이의 제자인 알 아샤리(935/936 죽음)가 무타질라파가 처음 도입해 사용했던 것과 똑같은 그리스의 합리적 논법을 이용해 그들의 교설에 반론을 펴면서 무타질라 운동세력은 한풀 꺾였다. 수니파교도들은 무타질라식 신앙을 거부했고 시아파는 무타질라의 전제 몇 가지를 받아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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