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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노르웨이인들이 쓴 문학의 총체.
노르웨이 문학의 뿌리는 지금으로부터 1,000년 이상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초기 아이슬란드 문학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다.
현존하는 스칸디나비아의 모든 초기문학은 아이슬란드의 필사본에 기록되어 있고 그중 일부는 노르웨이인들이 아이슬란드에 정착하던 9세기말 이전에 이루어진 것이다. 따라서 중세 아이슬란드의 방대한 자국어 문학에는 노르웨이적인 요소가 들어 있다(→ 색인:게르만 종교와 신화).
가장 오래된 시들의 대부분은 이른바 〈시 에다 Poet-ic Edda〉 또는 〈옛 에다 Elder Edda〉라고 하는 사본에 실려 있으며, 대체로 인간세계를 다루는 영웅시들과 신들의 세계를 다루는 신화시들의 2부류로 나뉜다.
또한 9~13세기의 노르웨이인들과 아이슬란드인들은 스칼드 시(skaldic poetry)도 지었다. 그 형식은 9세기에 노르웨이에서 발전된 것으로 보이며 이 시기의 아이슬란드 문학과 노르웨이 문학은 잘 구분되지 않는다(→ 색인:스칼드 시). 1000년에 아이슬란드가 그리스도교를 채택한 사건은 서유럽의 영향을 받는 계기가 되어, 선교사들과 함께 라틴어가 들어왔다.
라틴어와 자국어로 역사가 씌어졌고, 성자전을 위시한 종교문학도 인기를 얻었다. '사가'(Saga)란, 아이슬란드 말로 전해진 것이건 글로 씌어진 것이건 모든 종류의 이야기와 역사를 가리키는 것이나, 영어에서는 특히 12~15세기에 쓰여진 아이슬란드의 영웅담을 가리키는 말이 되었다(→ 색인:아이슬란드 사가). 사가의 주인공들은 대개 노르웨이 왕들, 아이슬란드 시조들, 또는 4~8세기 게르만족의 전설적 인물들이다.
이른바 〈산문 에다 Prose Edda〉 또는 〈신(新) 에다 Younger Edda〉로 알려진 작시법 지침서의 저자, 스노리 스튀르들뤼손도 노르웨이 초대 왕들의 사가를 쓴 바 있다. 12~14세기에는 상당한 양의 문학이 라틴어로부터 번역되었고, 성경의 노르웨이어 번역도 시작되었다(→ 색인:라틴 문학). 대륙의 로맨스들이 도입되어서 트리스탄·샤를마뉴 등의 이야기들이 번안되었고, 아이슬란드 고유의 로맨스도 씌어지게 되었다.
이상을 아이슬란드 문학의 고전기라 한다면, 그 이후 13세기 후반부터 한동안은 그다지 괄목할 만한 작품은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초기사본들에 대한 관심이 지속되어 13세기 문헌의 14~15세기 필사본들이 많이 만들어졌다. 1380년에 시작된 노르웨이와 덴마크의 정치적 합병으로 인해, 덴마크어는 공식적·문학적 매체가 되었고, 코펜하겐은 두 나라의 문화적 수도가 되었다. 노르웨이의 자국적 문학활동은 16세기 종교개혁 이후에야 다시 시작되었다. 이 시대의 대표적인 작가로는 A.P. 베이어와 P. 다스 등이 있다.
18세기는 덴마크 문학의 전성기였다.
세기 전반에 걸친 가장 위대한 문인 홀베르는 노르웨이 태생의 극작가로서, 덴마크 문학을 전 유럽적 수준으로 끌어올리고자 하였다. 그밖에도 덴마크 문학의 지도적 작가들의 상당수는 노르웨이인들이었으며, 이들은 1772년 코펜하겐에서 '노르웨이 협회'(Det Norske Selskab)를 결성하였다. 그러나 노르웨이 본토에서는 이렇다 할 문학활동이 없었으며, 단지 1760년 왕립 노르웨이 학회의 설립만이 그 문화적 여망의 일면을 보여준다.
1814년의 킬 조약 이후로 노르웨이는 덴마크의 오랜 지배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문화와 생활양식을 발전시키게 되었다.
하지만 그 방법에 대한 견해차이 때문에 이념적 갈등이 일어나서, 기존의 덴마크 문화를 경시해서는 안된다고 하는 J.S. 벨하벤 등의 '지식인'들과 덴마크와의 완전한 단절을 주장하는 H. 베르겔란트 등의 '애국자'들이 대립하게 되었다.
노르웨이의 '민족적 낭만주의'로 알려진 19세기 중반의 문학은 더 큰 국가적 여망을 반영하고 있다.
P.C. 아스비외른센, J.E. 모에, M.B. 란스타 등에 의한 민담 및 민요의 채집, P.A. 뭉크의 방대한 노르웨이 민족사 저술, I. 오센의 란스몰 운동 등은 모두가 민족적 뿌리를 찾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이 시대에 발표된 작품들은 의식적으로 노르웨이의 과거 영웅시대와 노르웨이 농민들을 다루고 있다. A.O. 비녜의 서정시도 이 시대에 씌어졌다.
1870~80년대에는 입센과 비외른손으로 대표되는 사실주의적 '문제'문학이 전성기를 이루었다. 〈사회의 기둥 Samfundets Støtter〉(1877)로 시작되는 일련의 문제극들은 입센에게 세계적 명성을 가져다주었다.
이런 유형의 극에 속하는 비외른손의 최초 작품은 〈파산 En fallit〉(1875)이다. 그밖에 근대 노르웨이 문학의 중심인물로는 J. 리, A. 헬란 등이 있다. 1870년대의 문학은 사회개혁에 관한 당대의 낙관적 태도와 보조를 맞추어 개인의 성장과 자기표현을 중시하였다. 그러나 1880년대에는 점차 회의주의와 환멸이 스며들어 작가들은 기존의 사회제도를 더욱 신랄히 공격하게 되었다.
이 시대의 다른 작가들로는 H.H. 예게르, A. 스크람, A. 가르보르 등이 있다.
1890년대에는 새로운 세대가 기성세대를 공격했는데 그 대표적인 인물이 크누트 함순이다. 그는 사회문제에 대한 당대의 지나친 집착에 반발했으며, 이러한 생각은 〈굶주림 Sult〉(1890)을 비롯한 초기 소설들에 잘 나타나 있다.
함순은 1920년에 노벨 문학상을 탔다. 한편 당시의 서정시인으로는 S. 옵스트펠데르와 N.C. 푸크트, 극작가로는 군나르 헤이베르와 한스 에른스트 힝크 등이 유명하다.
20세기 전반 노르웨이 문학의 진정한 성과는 소설과 서정시에 있으며, 희곡은 헤이베르와 G. 그리그의 작품들을 빼고는 그다지 뛰어난 것이 없다.
세기초에는 지방색이 크게 작용했으며 특히 소설가들은 방언을 구사하여 향토색을 드러내려 했다. K. 우프달, O. 브로텐, J. 팔크베르게, 올라브둔 등이 대표적이다. 1928년에 노벨문학상을 탄 S. 운세트는 사회에서 주어진 역할에 대한 여성의 충성이라는 주제를 여러 시대를 배경으로 한 소설을 통해 다루었다.
그녀의 장편 역사소설 〈크리스틴 라브란스다테르 Kristin Lavransdatter〉(1920~22)는 노르웨이 문학의 걸작으로 꼽힌다.
제1차 세계대전 직전에는 H. 빌덴베이, O. 불, T. 외랴시테르, O. 아우크루스트 등 훌륭한 서정시인들이 있었다. 제1, 2차 세계대전 사이에는, 시인 A. 외벌란드, 소설가이자 비평가인 S. 호엘, 극작가이자 비평가인 H. 크로그, N. 그리그 등 사회참여 작가들이 나왔다.
제2차 세계대전 후의 작가들로 T. 베소스, C. 산델, A. 산데무세, J. 보르겐 등이 있다. 80년대에 들어서는 T. 스티겐, K. 팔바켄, B. 비크 등이 대표적인 소설가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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