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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시대의 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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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발전의 초기단계에서 노동은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요구, 곧 식량과 관련된 단순한 일에 한정되어 있었다. 그러나 당시에도 기본적인 노동분업이 존재했다. 남자들은 일반적으로 사냥을 했으며 노인들, 어린이들과 함께 여자들은 채집활동을 했다.

이때는 한 가지 일만을 하는 전문가도, 진정한 의미의 분업도 없었지만 종종 노동의 조직화가 필요했다. 사냥과 물고기잡이에는 집단구성원들 사이에 다양한 수준의 협동이 요구되었다. 이러한 형태의 공동활동은 중요한 사회적 의미를 지녔다. 획득된 식량은 모두에게 공평하게 나누어져야 했으며 지도자는 집단 전체를 조직하고 지도할 필요가 있었다. 가족이 기본적인 사회집단이었기 때문에 부족의 우두머리로부터 부족민에 이르기까지 친족관계가 '관리상의 서열'의 기초를 이루었다.(→ 수렵채취 사회)

더 복잡한 형태의 노동의 조직화는 도기의 발전과 더불어 이루어졌다. 도기제작에 적당한 점토는 어디에나 다 있지만 가장 좋은 질의 점토는 고르게 분포되어 있지 않다. 따라서 일부 지역의 사람들은 교환용 도기제품을 만들 수 있었다.

기술의 숙련과 전문화된 도구가 도기생산을 촉진했기 때문에 아마도 더 높은 수준의 전문화가 이루어졌을 것이다. 실잣기나 천짜기 같은 기술 역시 협동작업을 요구했다. 농경은 최초의 전문가들, 곧 철제도구제조자와 무기제조자를 부양할 수 있는 약간의 잉여생산물을 제공했기 때문에 처음부터 노동의 조직화에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석기도구와 무기를 만드는 데 필요한 부싯돌은 넓은 지역에 고루 매장되어 있었지만 구리는 그렇지 못했다. 초기의 몇몇 청동유물과 동광들은 기후와 지형 면에서 농경이 불가능하거나 어려운 지역에서 발견된다. 이러한 지질적 증거는 원시시대에 광물을 캐고 금속물건들을 만들었던 사람들이 부분적으로라도 농사를 지었던 것이 아니라 이 일만을 전문적으로 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동광은 일반적으로 산악지대에 있기 때문에 금속세공인과 평지의 농경민 사이에 완성된 금속품들의 교환이 이루어져야 했다. 따라서 금속세공인과 그 가족들은 농사짓는 사람들로부터 잉여생산물을 제공받아야 했으며, 농경이 생존수준 이상으로 발전할 때에만 이들 전문가들이 존속할 수 있었다. 최초로 야금술이 발전했던 곳이 나일·티그리스·유프라테스·인더스 강 등 거대한 강 유역의 관개농업지대 부근이었다는 사실은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이 지역들은 전부 1㏊당 많은 식량을 생산할 수 있는 곳이었다. 농업분야의 잉여생산물과 청동기의 결합은 중동지역의 거대한 관개문명의 발전에 기초를 마련했다. 이후 18세기에 기계화·산업화가 일어나기 전까지 5,000년 동안 노동의 조직화는 이들 거대한 강줄기를 따라 발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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