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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시대에는 발라군이라 칭했으며, 660년(신라 무열왕 7) 백제가 멸망한 뒤 당이 대방주를 설치하면서 속현으로 세운 죽군현·포현현이 이 지역에 위치했던 것으로 보인다. 통일신라시대인 686년(신문왕 6)에 통의군으로 고치고 757년(경덕왕 16)에는 금산군으로 개칭했다.
고려초인 940년(태조 23)에 나주라 칭했으며, 983년(성종 2)에 나주목이 되어 지방관이 파견되었다. 996년(성종 15년)에는 나주진해군절도사로 바뀌어 해양도에 속하게 되었으나 1018년(현종 9)에 다시 목으로 환원되어 전라도 남부의 계수관으로서 중심지 역할을 하게 되었다. 이때 무안·담양·남평·낙안·곡성 등 5군이 속군으로, 철야·회진·반남·안로·복룡·원율·여황·창평·장산·진원·화순 등 11현이 속현으로 예속되었다. 1310년(충선왕 2) 지주사(知州事)로 강등되었다가 1356년(공민왕 5)에 다시 목으로 복구되었다.
조선시대에 들어 1645년(인조 23)에 향리가 목사 이갱생(李更生)을 해쳤다는 이유로 금성현으로 강등되었다가 1654년(효종 5)에 다시 복구되었으며, 현종 때와 영조 때에도 비슷한 이유로 잠시 강등되었다가 재차 복구된 바 있다. 이후 목으로서 지속되다가 1895년 지방제도 개혁으로 나주부가 되어 나주군 등 16개군을 관할했으며, 이듬해에 도제 실시로 전라남도에 소속되었다. 이때 관찰부가 광주에 설치됨으로써 전라남도의 행정중심지 기능이 광주로 넘어갔고, 목포의 성장으로 나주의 기능이 약화되었다.
1914년 군면 폐합으로 나주·나신·양지·왕곡·세지·반남·공산·동강·다시·문평·삼도·평동·노안·남평·다도·봉황·금천·산포·본량면 등 19개면을 관할하게 되었다. 1929년 나주면과 나신면이 합하여 나주면이 되었으며, 1931년 나주면이 읍으로 승격했다. 1914년 상곡면과, 수운과 육운이 교차하여 시장으로 유명한 영산포를 포함하고 있던 지량면을 합하여 만든 양지면은 영산면으로 개칭했다가 1927년 영산포읍으로 승격했다.
광주의 도시발달에 따라 위성도시화하자 1981년 나주읍과 영산포읍을 합하여 금성시로 승격, 1985년 나주시로 개칭했다. 1995년 지방자치선거를 앞두고 실시된 대대적인 전국행정구역개편으로 농촌지역이던 나주군을 통합해 도농통합시인 나주시가 되었다(→ 나주군, 나주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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