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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고려시대 나주지역의 행정단위.
삼한시대에 마한의 54국 중 임소반국(臨素半國)과 신운신국(臣雲新國)이 나주지역에, 불미지국(不彌支國)이 반남지역에 비정되고 있다.
삼국시대에는 백제의 발라군(發羅郡)이었으며, 뒤에 죽군성(竹軍城)으로 바뀌었다. 백제 멸망 후 당나라가 이곳에 대방주(帶方州)를 설치하고 지류·군나·도산·반나·죽군·포현 등의 영현을 두었는데, 죽군현(竹軍縣)·포현현(布賢縣)이 나주지역에 위치했던 것으로 비정되고 있다. 통일신라에 들어 686년에 통의군(通義郡)으로, 757년에 금산군(錦山郡:또는 錦城郡)으로 고쳐 무주에 예속시켰다. 이때 영현으로 회진현(會津縣)·여황현(艅艎縣)·철야현(鐵冶縣)을 두었다. 진성왕대에 견훤의 후백제에 속했으나, 이 지방 사람들의 협조로 왕건이 점령한 이후 나주의 세력이 커졌다. 더욱이 왕건이 나주의 호족 오다련의 딸과 결혼해 낳은 아들이 왕건의 뒤를 이어 제2대 혜종이 됨으로써 나주의 위치가 더욱 확고해졌다. 940년 나주로 고치고 983년 목을 두어 과거 전라도의 중심지였던 광주에 대신해 전라도의 계수관이 되었다. 995년에는 나주진해군절도사(羅州鎭海軍節度使)가 되었다. 1018년 다시 나주목으로 고쳐 5개의 속군(무안·담양·곡성·낙안·남평)과 11개의 속현(철야·반남·안노·복룡·원율·여황·창평·장산·회진·진원·화순)을 거느렸다. 이밖에 고읍으로 압해현(押海縣)이 있었다. 1310년에 지주사(知州使)로 강등되었다가 1356년에 다시 목으로 승격했다.
조선시대에도 나주목으로서 전라도 남부의 행정·문화 중심지의 지위를 유지했다. 선조대의 기축옥사와 영조대의 나주괘서사건으로 이 지방 유림들이 많이 처벌되었다. 1657년(효종 3)에는 나주 거진을 전라 우영(右營)으로 개편하고 2군 8현을 관장하게 했다. 별호는 금성이었다. 1895년 지방제도개혁으로 나주부가 되어 나주군 등 16개군을 관할했다가 이듬해 도제 실시로 전라남도의 1등군이 되었다.→ 나주군, 나주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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