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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철학의 한 학파.
구조주의 철학은 소쉬르의 언어학, 레비 스트로스의 구조주의 인류학 등의 영향을 받아 인간이 언어구조·무의식 등에 의해 구성된 존재임을 밝힘으로써 종래의 인간중심 사고를 거부한다(구조주의). 즉 인간을 세계의 중심·주인으로 보고 그가 사물들 전체를 규정하고 그것들에 의미를 부여한다고 상정하는 관점(인간을 신의 대리인으로 보는 관점)을 비판한다.
이 관점은 주체, 주체의 자유, 이성, 역사와 역사의 발전 등이 신화에 지나지 않는 허구라고 주장함으로써 큰 충격을 주고 있으며 또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철학적 구조주의는 일정하게 조직되어 있지도, 학파를 이루고 있지도 않으므로 분류의 공통기준은 없으나 위에서 지적한 경향을 주도하는 이들을 이 범주로 묶을 수는 있다.
먼저 자크 라캉은 S. 프로이트를 구조주의적으로 재해석해서 무의식이 언어적으로 구조화해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친족체계·신화·예술작품에서와 마찬가지로 개인의 말이(특히 정신과 의사와 환자 사이의 관계에서) 동시에 두 수준에서 작용한다고 본다. 개인은 그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의식하면서 말하지만, 동시에 그가 말하고자 하는 바와 전혀 다른 것을 무의식적으로 얘기한다.
데카르트에 따르면 주체는 '코기토'(cogito:생각하는 나)에 의해 구성된다.
그러면 이때 2개의 서로 다르고 심지어 갈등을 일으키는 말은 서로 다른 두 주체에 의한 것인가? 이때 의식적·반성적 주체가 자아라면 다른 하나는 누구인가? 라캉은 이 다른 하나를 무의식이라고 본다. 그는 무의식이 언어처럼 은유와 환유의 체계로 구조화해 있다고 본다. 이 무의식은 한 개체 안에서 그를 이끄는 타자(他者 l'Autre)이다. 이 타자는 자아에 앞서서 얘기하며 자아의 욕망을 통제한다. 개인들은 자신이 행위하고 말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이 구조가 말하게 하고, 행위하게 하고 욕망을 갖게 하는 것이다.
미셸 푸코는 〈광기의 역사 Folie et Déraison:Histoire de la folie à l’âge classique〉에서 서구에서 광기가 취급되어온 과정을 고고학적으로 기술한다.
그는 인간 이성이 '광기'라는 이성의 타자를 배제·억압·감금하면서 이성으로 구성되어왔음을 밝힘으로써 이성의 억압적 성격을 지적하고, 이성이라는 동일성에 숨어 있는 사고되지 않은 것(l’impensée)과 타자 및 차이를 부각시킨다. 또 〈말과 사물 Les mots et les choses〉에서는 각 시대의 지식체계를 구성하는 '에피스테메'를 기술하면서 '인간의 죽음'을 선언한다.
이때 에피스테메란 특정시대·영역에서 인식에 무의식적 뼈대를 제공하는 것으로, 인식 밑에 놓여 있는 조직이며 인식의 지평과 문화적 구조를 가능케 하는 토대로 작용한다.
푸코는 이러한 에피스테메의 인식론적 지층을 밝히면서, '인간'이란 개념은 고전시대(17~19세기) 이후 최근에 언어·노동·생명의 주체로 고안되어 인문과학의 주제로 구성된 것으로, 이러한 '인간학적 독단'의 잠은 오래가지 않으며 바닷가에 새겨진 얼굴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릴 것이라고 지적했다.
푸코는 〈지식의 고고학 l'archéologie du savoir〉에서는 담론을 구성하는 숨겨진 강제체계를 담론구성체의 수준에서 분석했고, 〈감시와 처벌 Surveiller et punir〉, 〈성의 역사 Histoire de la sexualité〉 제1권 등에서는 '권력' 개념을 중심으로 인간이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를 보여주려 했다.
루이 알튀세는 구조주의를 마르크스주의에 적용했다.
그는 마르크스(주의)에 들어있는 헤겔적 요소를 배제하려 하며, 이것은 그가 인간주의·역사주의를 거부하는 데서 잘 나타난다. 그는 초기 마르크스의 인간주의적 요소를 거부하고 〈자본 Das Kapital〉의 마르크스를 성숙한, 과학적 마르크스로 본다. 그는 〈자본을 읽는다 Lire le capital〉에서 이론적 실천, 인식생산, 일반성 1·2·3, 문제틀, 증후발견적 읽기, 인식론적 단절 등의 새로운 개념장치로 〈자본〉을 과학적으로 읽는다.
즉, 텍스트 배후에 숨겨진 인식구조를 독해하는 것이다.
알튀세는 종래의 토대-상부구조 이론에 대한 경제주의적 해석, 즉 경제적 토대가 상부구조를 결정한다는 경제환원주의적 해석을 거부하기 위해 사회적 심급(社會的審級:경제적인 것, 정치적인 것, 이데올로기, 과학)들이 '중층결정'하는 복합적인 구조를 도입한다.
여기에서 각 심급은 다른 심급에 환원되지 않고 나름의 자율성을 지니며 상호작용하는 구조적 전체를 이룬다. 그리고 이 심급들은 경제라는 '최종심급'에서 결정된다. 그는 이것을 '지배구조'로, 이러한 관계를 '구조적 인과성'이라고 부른다. 이 구조에서 그때그때의 국면을 산출하는 '주체'는 바로 구조 자체이다. 그리고 이런 구조가 이루는 과정인 역사는 개인적 주체나 그들의 의도·목적과 무관한 경로를 갖는다. 즉 이 과정은 주체도 목적도 없는 과정이다.
이러한 논의들에 대해 해체주의자인 J. 데리다는 레비 스트로스, 라캉 등이 현상들 배후에 있는 본질적 '구조'를 상정하는 점에서 형이상학적이라고 비판한다.
그리고 푸코의 경우에는 이성에 의해 사고되지 않은 순수한 광기에 대한 파악이 또 하나의 억압일 수 있다고 본다. 또한 구조주의가 구조의 우선성에만 매달려 인간을 언어·구조의 운반자에 지나지 않는다고 보며, 인간의 자율성을 지나치게 무시한다고 비판하는 관점도 있다. 또 마르크스주의자들은 구조주의가 인간정신의 산물, 언어적 산물에만 매달려 경제적 토대를 무시하므로 관념적일 수밖에 없다고 비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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