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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서구가 마르크스주의 사상과 거듭 접촉하게 되면서 헤겔주의의 정치적·윤리적·종교적 함축이 전면에 부각되었다. 독일의 역사·문화 철학자 카를 뢰비트는 헤겔을 현대 사상이 직면한 '역사주의적' 위기의 진원지로 본다. 프랑스의 알렉상드르 코제브는 헤겔을 하이데거와 결합하려 하면서 〈정신현상학〉을 모든 소외로부터 '노예인 인간'의 해방을 알리는 선언으로 재해석할 것을 제안했다.
〈정신현상학〉에 대한 뛰어난 주석서를 쓴 장 이폴리트는 예나 시대의 헤겔에 관한 인문주의적 해석을 제시한다. 테오도르 아도르노는 오늘날의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으로 전기 헤겔의 변증법을 되살리고자 했고, 헤르베르트 마르쿠제는 헤겔 좌파의 견해에 가까우며 신낭만주의적 무정부주의라고 비판받는 이론을 내세웠다. 그러나 헤겔 해석에 관심을 보인 것은 주로 마르크스주의자들이었다.
엥겔스는 헤겔 철학의 방법과 체계 사이의 모순, 즉 혁명적 '운동원리'인 변증법과 관념론적·보수적이기 때문에 반동적 성격을 띠는 체계 사이의 모순을 지적했는데, 마르크스주의의 헤겔 해석은 강조점의 차이만 있을 뿐 대개 이 해석을 추종해왔다. 게오르크 루카치도 마찬가지이다. 그는 나치즘의 낭만적이고 비합리주의적 전제를 폭로하기 위해 계몽주의와 민주주의를 재평가했다.
루이 알튀세는 마르크스를 구조주의적으로 해석했다. 그는 마르크스의 휴머니즘을 일시적인 포이어바흐적 단계로 보며, 마르크스는 부르주아 사회의 구조에 대한 과학적 관찰을 통해 이 단계를 뛰어넘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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