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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현대 산업사회에서 하늘을 통해 사람이나 짐을 한 장소에서 다른 지점으로 옮기는 데 사용하는 도구나 장치, 체제의 발달.
기구와 비행선(1783~1900)
인류는 오랜 옛날부터 하늘을 나는 꿈을 키워왔지만 비행의 핵심적인 이론, 즉 공기도 움직이는 물질이라는 점을 깨닫기까지는 매우 오랜 세월이 흘렀다.
1643년 수은기압계가 발명되면서, 공기는 무게를 가졌을 뿐 아니라 온도와 기압에 따라 변화한다는 사실이 알려졌고, 이를 계기로 많은 사람들이 공기보다 가벼운 물질을 이용해서 날으려는 시도를 하기 시작했다.
마침내 1783년 7월 남부 프랑스의 몽골피에 형제가 직경 10.7m 기구에 더운 연기를 채워 2.4km 가량 날려보내는 데 성공했으며(→ 조제프 몽골피에, 에티엔 몽골피에), 그해 8월 샤를이 수소 가스 기구를 띄우는 데 성공한 뒤 11월에는 필라트르와 아를랑데가 인간으로서는 최초로 기구를 타고 16km를 비행했다.
한편 수소 가스가 폭발하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진 것은 훨씬 이후의 일이었다. 1937년 힌덴부르크 비행선의 폭발참사가 있은 후 비로소 수소 가스는 더이상 기구나 비행선에 사용되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1783년 1년동안 프랑스에서 행해졌던 일련의 기구비행 실험은 다른 여러 나라에 자극을 주어, 이후 50여 년간 영국에서만 무려 800회 이상 기구를 띄우는 시도가 행해졌다.
또한 기구는 군사적으로도 이용가치가 있어 1793년 프랑스에서는 역사상 최초로 기구부대가 구성되었고, 1861~65년 미국의 남북전쟁에서도 정찰용 기구가 사용되었다.
한편 기구는 자체 추진력이 없어 바람에 따라 움직일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는 비행선을 다시 구상하기 시작했다. 비행선 개발에서 가장 많은 시간이 소요된 부분은 가볍고도 성능이 좋은 동력장치를 고안해내는 일이었다.
1852년 파리에서는 지파르가 증기기관을 장착한 비행선을 만들어 매우 짧은 거리였지만 공중을 나는 데 성공을 거두었고, 1884년에는 르나르와 크레프스가 비행선을 타고 23분의 비행기록을 세웠다.
비행기의 초기 발달과정
1500년경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날개 모양의 날으는 장치와 오늘날의 헬리콥터와 비슷한 물체를 도안한 적이 있었지만, 공기보다 무거운 물체를 이용한 비행이 실제로 성공한 것은 이보다 300여 년이 더 지난 뒤였다(→ 중항공기). 1800년대초 영국 항공술의 창시자로 불리는 케일리 경은 글라이더 비행에 성공하고, 사람을 실어 나를 수 있는 물체를 만드는 데 필요한 기체역학이론을 수립했다.
19세기 후반에는 비행기 기관 실험이 수없이 행해졌지만 모두 실패로 끝나고, 단지 독일의 릴리언탈과 미국의 처누트 등에 의한 글라이더 실험으로 비행기의 조종술 분야에서 큰 발전이 이루어졌다. 19세기말에 이르면 여러 가지 기술과 지식의 축적에 힘입어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이 기다려왔던 가벼운 내연기관의 개발이 마침내 가능하게 되었다.
연료로 쓰일 석유가 발견되고, 화학의 발달로 정유작업이 가능해졌다. 금속기술 또한 고강도의 강철과 알루미늄을 생산하는 수준에 이르렀고, 전기에 관한 이론이나 공작기계기술도 정교한 항공기 기관을 만들 수 있을 만큼 발전되었다.
1901년 오스트리아의 크레스는 3개의 날개가 직렬로 배열된 비행기를 만들었는데, 그 비행기는 이륙하자마자 곧 추락했다. 그러나 최초로 가솔린 기관을 사용했고, 동체에 얇은 철판을 사용했다는 점 등은 항공기 발달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미국의 랭글리(1834~1906)는 기체역학에 관해 체계적인 연구를 전개한 저명한 학자로, 스미소니언 연구소에서 풍동(風洞)을 만들어 각종 실험을 하면서 가볍고 출력이 큰 가솔린 기관 개발에 힘썼다.
미국 오하이오의 라이트 형제는 동력기를 최초로 실용화한 인물들이다(→ 윌버 라이트, 오빌 라이트). 이들은 미리 비행술을 익히면서 축적한 경험을 바탕으로 비행기를 제작했기 때문에, 처음부터 곧바로 비행기 제작을 시도한 다른 사람들과 달리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
1900~03년에 연과 글라이더 등으로 일련의 실험을 거친 라이트 형제는 마침내 1903년 12월에는 자신들이 제작한 비행기로 이륙해 12초간 체공하다가 무사히 착륙했다(→ 플라이어 1호). 이는 인간이 비행기를 조종해 하늘을 난 최초의 일이다.
한편 라이트 형제의 경쟁자였던 커티스는 벨이 조직한 비행실험협회(1907)에 가입하고 우수한 비행기 제작에 힘써, 1909년에는 그가 직접 만든 '골드버그'호를 타고 시속 56km의 속력으로 39.5km를 비행하기에 이르렀다.
커티스는 비행정의 개발에도 참가해 1911년에는 배 위에서 비행기를 이륙시키는 데 성공함으로써 오늘날 항공모함의 개념을 도입하고 전세계 항공계에서 손꼽히는 인물이 되었다.
1900~14년
20세기초는 항공기술의 개화기였다.
1908년 라이트 형제가 자신들의 비행기를 프랑스에 가져와 비행한 것이 자극이 되어, 유럽에서도 새로운 기록들이 수립되기 시작했다. 1909년 영국해협의 횡단 비행이 시도되었고,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할 때까지 상금을 건 각종 비행대회가 연이어 개최되었다. 이들 비행 경주나 공중 서커스 대회 등은 수많은 비행기와 인명을 앗아갔지만, 그 대신 기관과 기체는 크게 개선되었고 비행고도 역시 수천km 상공으로 높아졌으며, 체공시간도 몇 시간에 이를 정도로 늘어나게 되었다.
한편 수직이착륙이 가능한 비행기로 헬리콥터의 개발이 시도되었다.
1904년 르나르의 무인 헬리콥터 실험을 거쳐 1907년에는 코르뉘에 의해 비록 몇 초에 불과하지만 수직이륙에 성공했고, 1910년 미국에서는 시코르스키가 무인 헬리콥터 제작에 성공했다.
1910년대에는 기구비행이 일종의 운동경기로 간주되어 여러 가지 국제경기가 열렸으나, 비행기 개발의 그늘에 가려 있다가 1930년대에 고공관측과 연구에 기구의 중요성이 인정되면서 발전을 거듭했다.
1900년 이전의 비행선은 골조가 없는 풍선만으로 만들어지다가 1900~20년 사이에 골조를 갖춘 형태로 대체되었고, 1930년대에는 다시 골조를 가벼운 물체로 감싼 체플린형 비행선이 널리 사용되었다.
낙하산의 개념은 오랜 옛날부터 발달되었고 무인 낙하산의 실험도 여러 차례 있었으나, 사람이 직접 낙하산을 탄 것은 1797년 파리에서 가르너링이 기구 밑에 우산 모양의 낙하산을 매달아 900m를 낙하했을 때가 최초였다.
20세기초에는 기구비행이 운동경기로 행해지던 것과 더불어 낙하산도 흥미거리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았으며, 제1차 세계대전 때 비로소 인명구조용으로 낙하산의 진정한 가치를 인정받기 시작했다.
제1차 세계대전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축제나 게임에서 행해지던 비행의 역할은 막을 내리고, 이제 비행기는 정찰과 폭격이라는 전혀 새로운 임무를 부여받게 되었다.
당시 각국의 광적인 개발 경쟁은 수십년이 걸렸을 기술발전을 단 몇 년으로 단축시켰다. 또한 비행기는 동일한 모형이 대량생산되는 체제로 바뀌고, 조종사 양성기관도 발달되었다. 독일은 체공시간이 긴 전투기를 제작하는 데 앞서 장거리폭격용 체플린급 비행선과 대형 폭격기를 개발해냈으며, 프랑스는 전투기 분야를 비롯해 항공사진촬영과 무선교신분야에서 큰 발전을 이루었다.
한편 영국은 독일이나 프랑스에 비해 항공분야가 낙후된 상태에서 참전했으나 해군용 항공분야에서 우위를 다져 전후에는 주도적으로 항공모함 개발의 기틀을 마련했다.
1920년대
제1차 세계대전 종전후 1920년대 중반까지는 특별히 주목할 만한 기술의 진전이 없었다.
그 이유는 우선 비행기가 다시 축제와 게임용으로 여겨지기 시작한 것과 더불어, 전쟁중에 생산된 비행기의 재고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1920년대말부터 항공계에서는 새로운 진보가 시작되었다. 1926년 미국에는 구겐하임 재단이 설립되어 항공학분야의 교육 및 연구를 지원하기 시작했다. 실제로 1940년대 이래의 항공발달과 우주탐험의 성과 가운데 상당한 정도가 구겐하임 재단이 지원한 연구나 이 재단 산하 학교 졸업생들에 의해 이룩된 것이었다.
유럽에서도 항공부문에 대한 정부의 연구 지원이 활발해졌다. 영국에서는 1912년부터 왕립항공기제작소(Royal Aircraft Factory)가 개발사업에 참여하기 시작했고 프랑스에도 항공연구소(Institute Aerotechnique)가 세워졌으며, 독일정부 역시 여러 대학과 기술학교에 지원활동을 벌였다.
항공산업이 확장됨에 따라 이에 대한 규제의 필요성도 커져, 1925년경부터는 나라별로 필요한 조직을 갖추게 되었다. 미국에서는 1926년 항공통상법이 제정되었고, 영국·프랑스·이탈리아 등지에서는 내각에 항공 업무를 관장하는 부서를 두었다.
1920년대에는 대서양과 북극 횡단비행에 관심이 모아지면서 각종 비행 신기록이 수립되었다. 이 시기에는 또한 비행선이 쇠퇴기를 맞이하는 반면, 헬리콥터 부문에서는 1923년 스페인 기술자 시에르바에 의해 회전날개를 축에 다는 방법이 고안됨으로써 새로운 전기가 마련되었다.
1920년대 중반까지 전천후 비행을 도울 만한 장비로는 초보적인 수준의 라디오와 표시등 정도에 그쳤기 때문에 이착륙은 전적으로 조종사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구겐하임 재단은 미육군 항공단의 협조를 얻어 새로운 계기를 개발해 1929년에는 완전계기비행에 성공했다.
1918년 클라크대학교의 고더드 교수는 어깨에 메고 발사하는 방식의 로켓을 개발했다(→ 로켓모터). 당시의 소련과 독일도 로켓의 연구개발에 주력해 1929년에는 글라이더 후미에 로켓을 달아 발진시키는 수준에까지 이르렀다.
종전후에는 또한 글라이더에 대한 관심이 되살아나 조종사의 훈련, 기체역학, 비행기 신소재 실험 등에 널리 쓰이게 되었고, 1920년 뢴 산맥에서 사상 첫 글라이더 경기가 개최된 이후 글라이더 경기는 여러 나라에서 자주 행해졌다(→ 제트 추진).
민간항공 부문에서는 1912년 그라프폰체펄린의 비행선에서 돈을 받고 사람을 태운 것이 상업적 항공교통의 시초라고 할 수 있다.
종전후 항공교통은 급속히 발달되어 1920년 무렵에는 유럽의 주요 도시간에 많은 정기 항공노선이 개설되었다. 또한 1920년대에는 유럽 각국에서 국적기(國籍機)를 가지려는 시도가 전개되어 임피리얼항공사(BOAC와 BEA의 전신), 에어프랑스, 카엘엠(Royal Dutch Airlines), 루프트한자, 스위스에어, 알라리투리아 등 여러 항공사가 설립되었다. 비행기도 제1차 세계대전 때의 군용 폭격기를 개조해서 사용하던 단계에서 벗어나, 보다 안락한 민간용 항공기가 개발되었다.
미국에서는 먼저 항공우편제도가 발달되고 난 뒤 1927년에야 비로소 뉴욕-보스턴 노선 취항을 시발로 여객수송 활동이 시작되었다.
1930~45년
1930년대초에는 미국과 유럽을 모두 합해도 승객수가 연간 수천명에 불과하고 사고율은 800만 승객 마일당 1명에 달했었으나, 10여 년 후에는 승객수가 수백만 명으로 늘어나는 동시에 사고율도 1억마일당 1명 수준으로 크게 개선되었다.
이와 같이 급속한 발달이 이루어질 수 있었던 것은 비행기와 서비스의 개선에 힘입은 결과였다. 비행기의 동체는 유선형으로, 날개는 단엽으로 바뀌었으며, 소재는 모두 금속을 사용하고 공냉식 기관을 장착하게 되었다. 또 바퀴는 이륙 후에 동체 속으로 들어가도록 개조되었고 비행기 내부에도 단열·방음 처리를 해 쾌적성을 높였다.
자가용 항공기도 크게 늘어나고 비행단체도 많이 등장해, 1939년 미국에서만도 조종사 면허를 가진 사람이 3만 명을 넘어섰다.
군사부문에서도 항공기의 역할은 점차 확대되었다. 공군이 지상군이나 해군으로부터 분리·독립되었으며 전투중 대규모 폭격기 편대로 상대방 영토 깊숙이 출격하는 전략, 공정대의 사용과 보급물자의 공중투하, 항공모함에 의한 전투기의 행동반경과 공격능력 향상 등 여러 가지 주요 전략개념이 개발되었다.
이 시기에 이루어진 연구개발은 대부분 군사적 목적을 가진 것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1928년 영국의 휘틀이 가스터빈 원리를 발표한 데 이어, 1939년 독일에서는 최초로 제트 비행기가 실용화되었다. 로켓 부문에서도 선두를 달린 독일은 1942년 A-4형 로켓을 시험발사한 뒤, 이를 다시 V-2로 개선해 1944년과 1945년 영국본토 공격에 사용했다.
1945년 이후
종전후 우선 민간부문에서는 1949~59년 사이에 제트 기관이 보급되기 시작해 대부분의 여객기와 수송기에서 프로펠러가 사라졌다.
1954년에는 4발기관을 장착한 보잉 707 제트 여객기가 첫 시험을 거친 뒤 1958년부터 상용화되었고, 이밖에도 보잉 720, 콘베어 880, DC-8, 보잉 727, 트리덴트, 카라벳, 보잉 737, DC-9 등을 비롯해, 소련의 Tu-104, Tu-114 제트여객기 등이 개발되었다. 1970년부터는 대형 제트기가 출현하기 시작했다. 가장 대표적인 보잉 747은 무게 32만 7,300kg, 길이 56.4m로서 365~490명의 승객을 실어나를 수 있는 거대한 규모였다.
고속 비행기도 개발되어 1970년에는 영국과 프랑스의 합작품인 콩코르드와 소련의 Tu-144가 선보였는데, 2가지 기종 모두 마하 2급의 초음속 여객기로서 1970년대말부터는 대서양 횡단노선에서 상용화되었다.
자가용비행기의 수요가 급증함에 따라 6~15인용의 소형 제트기도 다수 개발되었다.
비행거리가 짧고 지방공항의 규모가 작은 유럽에서는 단거리이착륙비행기(short take off and landing/STOL)에 대한 관심이 높아짐에 따라 캐나다의 더해빌런드, 영국의 브리튼노먼, 독일의 도르니에, 스위스의 필라투스포터 등 다양한 10~20인승 비행기가 개발되었다.헬리콥터도 여러 기종이 개발되었는데, 민간용으로 가장 널리 보급된 유형은 2~4인승으로서 기동성과 유연성이 뛰어나 농약살포, 경찰이나 소방서의 지원활동, 환자수송, 사진촬영, 통근자 수송 등 다양한 분야에 쓰이고 있다.
한편, 군사부문에서는 1960년경에 이르러 대부분의 군용기가 제트기로 교체되었고, 초음속 전투기들이 출현하기 시작했다.
비행속도가 늘어남에 따라 비행기의 기능은 조종사의 능력을 벗어나는 수준이 되어, 자동화 전자장비의 필요성이 점점 더 절실하게 되었다. 기체의 구조에도 변화가 시도되어, 날개는 뒤로 비스듬히 뻗치는 모양을 하게 되고 삼각익의 형태도 등장했다. 해리어 기와 같은 수직이착륙기나 폭격기의 공중급유장치 등도 전후에 이루어진 주목할 만한 발전이었다. 현대전은 정보전의 성격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를 위해 정찰과 첩보용 비행기도 여러 종이 개발되었다.
1950년대말 U-2 고공정찰기, SR-71 장거리 고속정찰기 등이 출현한 데 이어, 1960년대에는 첩보위성이 등장했다.
공항의 구조와 운영
비행기의 이착륙장과 부대시설이 모여 있는 장소 가운데 일반적으로 규모가 크고 연중 항공교통량이 많은 곳을 공항(airport)이라 하며, 이에 비해 규모가 작고 시설이 빈약하며 교통량도 비교적 적은 곳은 비행장(airfield)이라고 구별해서 부른다.
요즈음에도 전세계적으로는 규모가 작은 잔디 활주로, 간단한 터미널, 관제탑 정도의 시설만을 갖춘 비행장들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한편, 각지의 주요 공항에서는 비행기가 대형화되고 교통량이 늘어남에 따라 그 시설도 보다 대형화·다양화되고 있다. 현재 공항의 시설은 크게 나누어 공항유지·관리시설, 여객·화물터미널, 활주로 및 유도로와 비행기 계류장, 항공기정비와 화물관리 및 보급에 관련된 용역시설 등의 4개 시설군으로 구성되어 있다.
공항의 입지를 결정하는 데에는 활주로건설에 적절한 지형여건이 가장 중요하게 고려되며, 이밖에 공항주변의 다른 토지이용과 상충되는 점은 없는지, 공항에로의 교통은 편리한지 등도 중요한 입지결정요인으로 꼽힌다.
또한 요즈음 항공 교통량은 거의 매 4~5년마다 배로 증가하는 추세에 있기 때문에 일단 공항을 건설한 후에도 공항을 더 확장시킬 여지를 남겨야 한다는 점도 반드시 고려되어야 할 입지요건의 하나이다. 최근에는 비행기 소음문제 때문에 대규모 공항일수록 번잡한 시가지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에 입지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것은 공항과 도시간 통행 부담을 늘리고, 공항과 연결되는 주요도로에 교통체증을 일으키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공항과 도심지간의 교통문제의 해결은 공해문제와 더불어 대부분의 대규모 공항이 안고 있는 과제이다. 공항은 많은 수의 비행기를 적절히 배치해 승객과 화물을 효율적으로 처리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야 한다.
일반적으로 공항의 구조에는 다음과 같은 4가지 유형이 있다.
첫째, 수지형 또는 부두형 공항은 1960~70년대에 많이 건설된 유형으로서 중간 규모의 공항에 적합한데, 승객이 탑승하기까지의 동선이 길다는 단점이 있다. 둘째, 단위 터미널형의 공항은 여러 개의 소단위 공항으로 나누어진 구조로서, 승객의 동선이 짧고 필요에 따라 공항의 면적을 쉽게 확장시킬 수 있어 대형 제트기를 수용하기에 적합하다. 셋째, 기본적인 구조가 단위 터미널형과 비슷한 선형공항의 형태가 있으며, 마지막으로는 터미널과 비행기 사이를 라운지가 이동하면서 승객을 실어나르는 이동 라운지형 공항이 있다.
이동 라운지를 이용할 경우 계류장 공간을 효율적으로 쓸 수 있는 반면, 라운지 이동에 많은 비용이 든다는 결함이 있다.
근래에는 항공 교통량이 대폭 늘어남에 따라 공항에서의 비행기 체류시간을 최소화해야 할 뿐 아니라 공항을 확장해야 할 필요성도 더욱 커지고 있기 때문에 선형공항 구조를 채택하는 예가 점차 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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