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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대한제국 시대에 창간된 신문. 1904년 7월 18일 창간되어 1910년 8월 28일 종간되었다. 한글과 영문으로 창간되어, 뒤에 국한문판도 발행되었다. 일제의 침략에 저항했고 민족의식을 드높여 신교육에 앞장섰으며 애국계몽운동에 크게 이바지했다. 특히 순한글판은 여성들의 개화와 자주의식 고취에 공헌했고 우리말 보급과 발전에 이바지했다. 영국인 베셀이 창간하여 발행인을 맡았으나 1910년 일제 강점을 앞두고 종간되었다.
개요
개화계몽기의 신문. 영국인 E. T. 베셀(한국 이름은 배설)에 의해 대한제국 시기인 1904년 7월 18일 창간되어 1910년 8월 28일 종간되었다. 한글판과 영문판으로 창간되었으며, 조선인의 자주 독립을 계몽하는 내용으로 구성되었다. 1910년 8월 29일 경술국치로 일제에 강점된 이후, 조선총독부의 기관지인 <경성일보>에 인수되면서 사실상 종간되었고, 8월 30일부터 <매일신보>라는 제호로 조선총독부의 조선어판 기관지로 성격이 바뀌어 재창간되었다.
창간
〈런던 데일리 뉴스〉의 특파원인 영국인 배셀이 취재하러 한국에 왔다가 양기탁과 만나 신문 창간을 계획하고 1904년 6월 29일 견본판을 만든 뒤 본격적으로 창간했다. 창간 때는 타블로이드판 6면으로 한글 2면, 영문 4면이었으나, 1905년 3월 10일 잠시 휴간되었다가 1905년 8월 11일 혁신호를 내면서 국한문판과 영문판으로 나누었다. 독립된 영문판은 〈The Korea Daily News〉라는 제호로 펴냈다. 그뒤 1907년 5월 23일 순한글판을 따로 창간해 이때부터 한글판·국한문판·영문판의 3가지 신문을 발행했다.
역사
발행인은 창간 이래 베셀이 줄곧 맡아오다가 1908년 5월 27일부터 1910년 6월 9일까지는 A. 만함(한국 이름은 만함)이 맡았다. 발행 초기에는 발행인이 외국인이기 때문에 일제의 검열을 어느 정도 피할 수 있었으나 1908년 신문지법이 개정되어 탄압받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베셀은 1908년 6월 재판에 회부되어 금고형을 받기도 했다. 양기탁이 편집과 경영의 실질적 책임을 지고 있었는데 이 신문의 중요 논설은 대부분 그가 집필했고 박은식·신채호 등 애국지사들의 논설도 실었다. 또 국채보상운동에 참여해 애국운동에 앞장섰다.
지면은 주로 사고·논설·관보·잡보·외보 등으로 꾸몄다. 1905년의 속간사에 의하면 첫째, 뜻있는 인사들의 문명 지식을 계발하고, 둘째, 세계 각국의 견물을 도입해 알리기 위해 이 신문을 속간한다고 밝히고 있다. 또 순한글판을 펴내어 조선인의 자주독립을 돕는 데 힘이 되려고 했다. 1909년 5월 1일 배설이 사망하고 한 해가 지난 1910년 5월 21일 통감부가 <대한매일신보>를 매수하여 통감부의 기관지로 삼았으며, 6월 14일부터는 이장훈이 발행인이 되었으나 8월 28일 마지막 호를 내고나서 다음날인 8월 29일 일제가 대한제국을 강점함에 따라 종간을 맞았다.
<대한매일신보> 종간호의 지령은 국한문판이 제1464호, 한글판이 제938호였고 혁신호부터는 지령을 제1호부터 다시 시작했으므로 실제 발행호수는 이보다 많다. 이들 신문의 총발행부수는 1만 부를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는 당시 발행되던 다른 신문에 비해 많은 부수였다. 일제에 강점된 이후 조선총독부의 일본어판 기관지인 <경성일보>에 인수되었으며, 8월 30일부터는 <매일신보>라고 이름이 바뀌어 한글판 기관지로 재창간 되었다.
의미
이 신문은 향리논설을 통해 일제의 침략에 저항했고 민족의식을 드높여 신교육에 앞장섰으며 애국계몽운동에 크게 이바지했다. 특히 순한글판은 여성들의 개화와 자주의식 고취에 공헌했고 우리말 보급과 발전에 이바지했다. 애국가사도 많이 실어 일본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뿐 아니라 매국적인 친일세력에 대한 비판도 서슴지 않았다. 이 신문은 자주독립과 국권회복을 위한 발자취일 뿐만 아니라 언론사·문학사·독립운동사 연구에 있어서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계승
일제 강점기에 전형적인 총독부의 조선어판 기관지로 재창간된 <매일신보>는 이후 강점기 동안 조선어로 발행되다가 해방을 맞았다. 해방 후에는 사원자치위원회가 운영했으나, 좌파 성향을 띤 이들이 미군정과 갈등을 빚은 끝에 1945년 11월 10일 정간되었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오세창, 하경덕, 이관구, 홍기문 등이 주도하여 경영진과 필진을 새로 구성하고 <서울신문>이라는 제호로 변경하여 1945년 11월 23일 속간했다. <서울신문>은 1998년 11월 6일 <대한매일신보>의 창간 정신을 계승한다는 의미로 제호를 <대한매일>로 변경하고 지령도 <대한매일신보>기간을 합산하여 발행하다가, 2004년 1월 다시 <서울신문>으로 제호를 변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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