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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 아프리카 서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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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 34,777,522명 (2024년 추계) |
수도 | 아크라 |
면적 | 238,533.0㎢ 세계면적순위 |
공식명칭 | 가나 공화국 (Republic of Ghana) |
기후 | 사바나기후, 열대성기후 |
민족 구성 | 아프리카 흑인(99%), 기타 |
언어 | 영어,토착어 |
정부/의회형태 | 중앙집권공화제 / 다당제&단원제 |
종교 | 개신교(63%), 이슬람교(16%), 토착종교 |
화폐 | 가나 세디 (GH¢) |
국화 | 대추야자 |
대륙 | 아프리카 |
국가번호 | 233 |
GDP | USD 51,619,000,000 |
전압 | 230V / 50Hz |
도메인 | .gh |
요약 서아프리카의 기니 만 해안에 위치한 국가. 수도는 아크라이며 화폐는 가나 세디이다. 국민은 99%가 흑인이며 언어는 영어와 토착어를 사용한다. 주로 농업과 광업에 의존하는 복합경제로 이루어진 개발도상국이나 경제는 어렵다. 1인당 GNP도 서부 아프리카에서는 평균 이상이지만 세계에서는 가장 낮은 나라에 속한다. 카카오 수출에 크게 의존한다. 면적 238,533.0㎢, 인구 34,777,522(2024 추계).
남쪽으로 대서양의 기니 만에 면한 가나는 서쪽으로 코트디부아르(아이버리코스트), 북서쪽과 북쪽으로 부르키나파소(옛 이름은 오트볼타), 동쪽으로는 토고와 접해 있다.
가나는 상대적으로 면적과 인구는 적지만 아프리카를 이끄는 나라들 가운데 하나이다. 첫 번째 이유는 상당량의 천연자원 때문이고, 또 다른 이유는 사하라 이남 지역에서 식민 지배로부터 독립을 획득한 최초의 흑인 아프리카 국가이기 때문이다.
울창한 숲과 다양한 동물생태, 그림 같은 해안을 따라 나 있는 길다란 모래사장으로 유명하다. 또한 BC 1만 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유구한 역사와 매혹적 문화유산의 보고로도 잘 알려져 있다. 15세기부터 시작된 유럽과의 해상 직접무역은 이 지역의 주민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다. 주민들 중의 많은 수가 포르투갈인·네덜란드인·영국인 및 다른 유럽인들과의 무역에 왕성하게 참여했다.
오늘날 가나 해안 곳곳에 산재한 수많은 요새와 성들은 유럽인들이 자신들의 무역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건축한 것들이다. 무역은 원래 이곳에서 쉽게 구할 수 있었던 금에 집중되었지만, 17세기에는 교역의 중심이 수익성 좋은 노예무역으로 이동했다. 후에 영국의 직할식민지인 황금해안(Gold Coast)이라는 이름은 금 무역에서 비롯된 것이다. 나중에 가나는 카카오 재배로 유명해졌다. 코코아빈을 추출할 수 있는 카카오는 19세기 후반에 도입되어 이후 가나의 주요 수출품이 되었다.
1957년 3월 6일에 독립한 오늘날의 가나는 이전의 황금해안이었던 곳이다. 민족주의자이자 범아프리카 회의(Pan-African Congress)의 지도자였던 콰메 은크루마는 가나의 독립운동을 이끌었다. 그는 가나의 주권 회복은 자국 국민들에게 뿐만 아니라 모든 아프리카인들에게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했고, "아프리카 대륙 전체의 해방과 연결되지 않는 우리의 독립은 무의미하다."라고 말했다. 사실 가나의 독립에 자극을 받은 다른 30여 개의 아프리카 국가들의 탄원이 이어졌고, 그 나라들은 그로부터 10년 이내에 독립을 선언했다.
은크루마는 신속하게 신생국 내에 재정적 독립을 위한 기초를 마련했을 뿐만 아니라 많은 경제발전 계획에 착수했다. 그러나 불운하게도 수십 년 간의 부패와 정부의 실정, 군사 통치가 가나의 성장과 성공을 가로막았다. 그런 가운데서도 가나는 1990년대에 정세 회복의 징후들을 보이기 시작했으며, 현재 아프리카에서 경제 회복과 정치 개혁의 성공사례로 일컬어지고 있다.
가나의 행정수도는 해안도시인 아크라이다. 원래는 여러 개의 가(Ga) 부족 정착지에 형성된 도시였던 아크라는 번영을 구가하는 무역 중심지로 발달했다. 오늘날 아크라는 가나의 상업과 교육 중심지가 되었다. 또 다른 상업 중심지인 쿠마시는 가나의 중남부에 위치한다. '서아프리카의 정원도시'로 알려진 쿠마시에는 아샨티족의 왕이 살고 있으며, 18~19세기에 있었던 왕국의 자취가 남아 있다.
가나인들은 2007년에 독립 50주년을 경축했다. 미래에 대한 밝은 전망을 가진 가나는 아프리카의 진보와 발전을 이끄는 선도 국가로서의 역할을 이어나가고 있다.
한국과의 관계
외교
한국은 1977년 11월 가나와 공식 외교 관계를 수립하고, 1978년 상주공관을 설치했으며 가나에서는 1999년 주한 공관을 개설했다. 2010년 3월 마하나 부통령, 2011년 10월 뱀포드 아도 국회의장, 2014년 아드자호 국회의장, 2018년 9월 오쿠아예 국회의장, 2022년 3월 아왈 관광예술문화부 장관이 내한했으며, 한국에서는 2006년 1월 반기문 외교장관의 방문 이후 2011월 1월 정종환 국토해양부장관, 2019년 7월 강경화 외교부장관 등의 주요 인사가 가나를 방문했다.
경제·통상·주요 협정
2023년 기준 한국의 가나 수출액은 1억 7,824만 달러, 수입액은 2,485만 달러이다. 주요 수출품목은 합성수지, 어류, 화물자동차, 자동차부품 등이며 수입품목은 견과류, 동괴 및 스크랩, 그림, 기타 식물성 재료 등이다. 양국이 체결한 협정으로 문화협정(1987년 5월), 경제·기술·무역협정(1990년 8월), 대외경제협력기금차관협정(2003년 5월), 2014~2016년 EDCF 기본약정(2015년 12월), 무상원조 기본 협정(2016년 3월), 2017-2019년 EDCF 기본약정(2017년 3월), 2020-2022년 EDCF 기본약정(2020월 11월) 등이 있다.
문화 교류·교민 현황
한국과 가나는 1987년 5월 양국간 문화교류협정을 체결하여 교육과 문화분야의 협력이 지속적으로 강화해왔다. 2023년 기준 가나에 거주하고 있는 재외동포는 445명이며, 2023년 기준 한국에서 거주하고 있는 가나 국적의 등록외국인은 1,179명이다.
가나는 국토의 대부분이 해발 900m를 넘지 않는 낮은 지대로 이루어져 있다. 남서부·북서부·북부 끝은 개석된 준평원지대이고 나머지 대부분은 볼타 분지이다. 남쪽과 북쪽, 그리고 약간 서쪽으로 분지의 끝부분이 융기되어 300∼600m 높이의 좁은 고원지대가 생겨났고 절벽이 장관을 이룬다.
보통 황금해안이라고 부르는 남부의 해안평야는 내륙으로 50 ∼80km 정도까지 펼쳐져 있다. 남쪽으로 흐르는 볼타 강 어귀 근처의 연안을 따라 수많은 석호(潟湖)와 습지가 발달해 있으며, 영토의 60% 이상을 차지하는 볼타 강 유역은 인공호인 볼타 호까지 있어 가나의 배수체계를 좌우한다. 프라·안코브라·타노 강과 같은 다른 강들도 남쪽 바다로 흘러든다.
가나의 기후는 두 기단의 영향을 받는다. 하나는 북동쪽에서 사하라 사막을 가로질러 이동해오는 흙먼지를 실은 고온건조한 기단이고, 다른 하나는 남서쪽에서 대서양 남부를 가로질러 이동해오는 열대해양성 기단이다. 북부지방을 빼고는 4∼6월과 9∼11월에 걸쳐 2번의 우기(雨期)가 있다.
연평균강우량은 1,143∼1,270㎜이며, 연평균기온은 대서양 연안이 26℃이고 내륙은 29℃이다. 1∼2월에는 '하마탄'이라는 건조한 북동풍이 분다.
식생은 남북으로 크게 3유형으로 나뉜다. 남동부 평야는 해안 사바나 지대로서 관목과 키가 큰 풀이 뒤섞여 있고, 남부 삼림지대는 상록수와 열대반낙엽수림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북부 사바나 지대는 키가 큰 기니아 수수가 대부분인데 여러 종의 아카시아 같은 키가 작은 나무들이 함께 흩어져 있다. 또한 사자·표범·하이에나·영양·코끼리·물소·침팬지·원숭이·하마 등의 야생동물이 서식하고 있다.
국토의 약 1/3이 숲으로 덮여 있고 농경에 적합한 땅은 1/8 정도이다.
지하자원으로는 다량으로 매장되어 있는 금을 비롯하여 다이아몬드·망간·철·보크사이트·석유 등이 있다.
국민
가나에는 매우 다양한 아프리카 부족 또는 소수민족이 있는데, 언어상으로는 적어도 75개 부족으로 나눌 수 있다.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는 부족은 아칸족·몰레다그바니족·에웨족·아당메족·구르마족이다. 공용어는 영어이며, 고유의 언어 중 가장 널리 사용되는 언어는 아칸이다. 공용어는 영어이며, 주요종교는 그리스도교(로마 가톨릭교와 개신교)가 전체 인구의 약 2/3를 차지하고 있으며, 이슬람교가 약 1/6, 그 외에 여러 부족의 토착신앙으로 분포된다.
가나의 연간 인구성장률은 사하라 사막 이남의 아프리카에서는 평균적인 수치이지만 세계적으로 가장 높은 편에 속한다. 2024년 기준 인구수는 3,477만 7,522명이고 인구밀도는 150명/㎢ 이다. 15세 미만의 인구가 전체 인구의 약 40%에 가까우며, 도시거주자와 농촌거주자의 인구분포는 약 6:4 정도 이다.
경제
주로 농업과 광업에 의존하는 복합경제로 이루어진 개발도상국이다. 열대 아프리카 나라 중에서는 가장 공업화한 나라에 속하지만, 경제는 어렵다. 국민총생산(GNP)은 인구증가율을 따르지 못하며, 1인당 GNP도 서부 아프리카에서는 평균 이상이지만 세계에서는 가장 낮은 나라에 속한다.
농업이 GNP의 절반 정도를 차지하며, 노동인구의 반 이상이 이에 종사한다.
카카오 수출에 크게 의존하며 이는 총수출액의 40% 이상을 차지하는데, 정부가 카카오 생산업자에게 지불하는 가격이 세계시장 가격에 비해 엄청나게 낮아 불법수출이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다. 나무가 늙고 병든데다 살충제가 부족해서 카카오 산업은 타격을 받아왔으며, 대규모로 새 나무를 심을 필요가 있다. 커피·야자생산물·코프라·바나나가 소량으로 수출되며, 주산물로는 북쪽의 카사바멜론·마·타로토란과 남쪽의 기장·옥수수·수수·쌀 등이 있다. 가축으로는 염소와 양을 주로 기르며 소 사육은 북부지역과 아크라 평원에서만 가능하다.
목재는 중요한 수출품이지만 이 산업을 신장시키기 위해서는 도로개량과 시설개선, 그리고 현대식 기계를 갖추는 것이 필요하다. 어업은 내수시장에 중요하며, 금·다이아몬드·망간·보크사이트를 주로 하는 광물수출은 국가수입의 상당부분을 차지한다. 석유는 솔트폰드와 케이프코스트 사이의 앞바다에서 소량으로 나오는데, 그밖의 지역에 대한 탐사도 시도되었다.
GNP의 약 1/6을 차지하고 노동인구의 약 1/10이 종사하는 공업·광업·건설업은 1970년대 눈부시게 발전했으나 1980년대에는 원자재와 기계의 수입부족으로 주춤했다.
식료품·음료·담배·직물·목재·정유·자동차·화학약품과, 의약품·금속 등의 수입대체산업이 제조업의 주류를 이룬다. 거의 수력발전에 의존하는 전력은 볼타 강의 아코솜보 댐이 공급한다.
노동인구의 1/4 이상이 종사하는 무역·운수·금융·일반행정·서비스 등은 GNP의 1/2을 차지한다. 도로와 철도는 남부지방에 집중되어 있고, 국내 및 국제항공은 모두 아크라에 있는 코토카 국제공항에서 이용할 수 있다.
늘어나는 예산적자는 주로 금융기관에서 자금을 조달하여 해결한다. 무역수지는 세계시장의 코코아 가격에 따라 변동이 심하다. 주요무역상대국은 일본·영국·독일·미국·네덜란드이며, 석유제품·기계류·운송설비·화학제품을 주로 수입한다.
정치와 사회
1981년 쿠데타에 의해 전(前) 공군 대위인 제리 롤링스를 수반으로 하는 정부가 들어섰다. 롤링스는 군인과 민간인으로 구성된 임시국가방위평의회(Provisional National Defense Council)의 의장직을 맡았으며, 이 평의회는 포고령으로 통치했다.
강력한 정부, 단원제 의회, 최고법원을 중심으로 하는 독립된 사법부를 규정한 1979년의 헌법은 중단되었다. 또한 모든 정당활동은 금지되고 의회는 해산되었으며 대통령은 체포되었다. 인민방위위원회들이 마을과 공장에 설치되어 민주적 권리를 수호하고 부패와 싸울 책임을 맡았다. 그러나 2000년 12월 치러진 대통령 선거에서 존 쿠푸오르가 압승을 거둠으로써 제리 롤링스 전 대통령의 19년 장기집권체제는 종식되었다.
가나 국민의 건강상태는 대체적으로 불량하며, 인구증가가 식량생산을 앞서가기 때문에 영양실조가 일반화되어 있다. 정부는 주민 대부분이 의료시설을 이용하지 못하는 시골지역에 보건소를 늘리기 위한 노력을 계속하고 있고, 도시에 널리 퍼진 전염병을 퇴치하기 위해 상하수도시설 개량사업에 투자를 해왔다. 많은 사람이 홍역·말라리아·간염·백일해와 같은 예방 가능한 질병 때문에 죽어가고 있지만 1960년부터 평균수명이 상당히 높아져서(55세) 아프리카 서부에서는 가장 높은 나라에 속한다.
교육제도도 열대 아프리카 나라들 중에서 가장 발달해 있다. 초등학교 6년과 중학교 3년은 무상 의무교육이다. 주요 고등교육기관으로는 가나대학교, 쿠마시의 과학기술대학교, 케이프코스트대학교 등이 있다.
문화
독특한 지역특성에 바탕을 둔 풍부한 토착문화를 가지고 있다. 추장과 부족을 중심으로 추수·결혼·출생·성년·사망 등과 관련하여 축제와 의식을 벌인다. 춤·음악·도기·목각·금은공예·직물 등의 예술이 발달했으며, 특히 아칸족과 에웨족의 켄테(kente cloth : 화려한 색의 수직포)는 가장 잘 알려져 있다. 문화기관으로는 쿠마시에 세운 가나 국립문화 센터와 아크라에 본부가 있고 전국에 지부를 둔 가나 예술협회가 있다.
역사
오늘날의 가나 공화국은 13세기까지 수단 서부에서 융성했던 고대 가나 제국의 이름을 본뜬 것이다. 고대 가나 제국의 중심지는 지금의 가나에서 북서쪽으로 800km 정도 떨어진 곳에 있었다.
주로 숲과 해안지대에 거주했던 아칸족이 13세기경 그들 최초의 국가를 세웠고, 14세기에는 금을 쫓던 만딩고족 상인들이, 16세기에는 콜라너트를 찾아다니던 하우사족 상인들이 지금의 가나 공화국 북부 국경지대에 도착했다.
15세기에 만딩고족은 남서쪽으로 이동해 오늘날의 가나 북쪽 절반에 해당하는 곳에 다곰바와 맘프루시라는 국가를 세웠다. 17세기에는 일찍이 아칸 왕국에 살았던 만데어(語)를 쓰는 또다른 부족이 더 북쪽으로 올라가 곤자 왕국을 세웠다(→ 만데족). 이와 비슷한 시기에 나이지리아에서 온 사람들이 남동쪽에 가(Ga)와 에웨(Ewe)라는 국가를 세웠다. 가나 역사에서 가장 힘센 부족에 속하는 아칸족의 갈래인 트위어계 아샨티족은 중부 삼림지역에서 일어나 강력한 중앙집권왕국을 세웠고, 18∼19세기 전성기에는 영토가 동쪽의 토고 산맥에서 서쪽의 코모에 강까지 미쳤다.
유럽인들이 지금의 가나를 개척하기 시작한 것은 포르투갈 사람들이 황금해안에 상륙한 15세기초였다. 15세기 후반 이들은 노예무역의 본거지를 엘미나에 세웠으나, 17세기에 와서는 포르투갈인이 독점하고 있던 노예시장이 네덜란드·영국·덴마크·스웨덴·프로이센 등의 교역상들에게 넘어갔고 18세기 중엽까지 황금해안에는 네덜란드·영국·덴마크 상인들이 주도하는 수많은 교역시장이 발달했다. 1874년 황금해안은 영국의 직할식민지가 되었으며, 1901년 아샨티 왕국과 북부 부족들도 영국 보호령이 되었다.
1957년 황금해안은 가나라는 국명으로 독립하고 콰메 은크루마가 초대 총리가 되었다. 가나는 1960년에 공화국이 되었고 은크루마가 초대 대통령으로 뽑혔으나 1966년 군사쿠데타로 쫓겨났다. 1969년 새 대통령이 선출되었으나 1972년에 일어난 쿠데타로 대통령제가 폐지되고 국민의회도 해산되었다. 이 군사정권은 1978년 쿠데타로 몰락하고 같은 일이 1979년과 1981년에도 되풀이되었다. 1981년의 쿠데타는 제리 롤링스가 주도하여 일으켰으며, 그는 직접 대권을 장악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그의 장기집권도 2000년 12월에 치러진 대통령 선거에서 존 쿠푸오르가 압승을 거둠으로써 19년 만에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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