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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 번
째 이야기
마리앙투아네트가 빵 대신 먹으라고 한 과자는 무엇일까
지난 2011년 2월, 이집트 국민이 목숨을 걸고 반정부 투쟁을 벌인 배경에는 밀가루가 있었습니다. 러시아가 이집트에 수출하던 밀가루를 금지하면서 식량 가격이 폭등했는데 이집트 사람에게 밀가루는 빵이고 주식이지요. 그리고 주식(主食)이란, 이집트인들이 즐겨 먹는 빵 ‘아이쉬(Aysh)’가 가진 뜻처럼 ‘생명’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생명의 보장은 정부와 국민이 맺은 가장 중요한 계약조건이며 이를 제대로 이행하지 못하는 정부는 정부로서의 자격을 잃게 되지요.
1789년, 프랑스에 기근이 들어 밀가루 값이 폭등하자 굶주린 파리 시민들이 베르사유 궁전 앞으로 몰려가 빵을 달라고 외쳤습니다. 그때 왕비였던 마리 앙투아네트가 이렇게 말했다고 하지요. “빵이 없으면 과자를 먹으면 되지.” 애들 입에서나 나올만한 이 무지하고 어리석은 말 한 마디는 혁명의 도화선이 되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러나 진위 여부부터 밝히자면 앙투아네트는 그런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빵이 없으면 과자를 먹으면 되지’라는 말은 장 자크 루소의 《고백록》에 처음 등장하는데, 이 책은 루소가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기 20년 전에 쓴 것이었습니다. 정확하게는 어느 공주가 굶주린 사람을 보고 ‘빵이 없으면 과자를 먹으면 되지’라고 말했다고 썼습니다. 또 라루스의 《19세기 백과 대사전》에는 한 고급 매춘부가 그 말을 발설했다고 써 있는데요. 배고픈 파리 시민들에게 진위 여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아마도 ‘빵이 없으면 과자를 먹으면 되지’라는 말이 먼저 돌았고, 그렇게 냉소적이고 잔혹한 말을 할 사람은 앙투아네트밖에 없다는 추측이 난무했겠지요. 소문은 믿음이 되고 분노가 됐을 것입니다. 그런데 문득 궁금했습니다. 빵이 없으면 과자를 먹으면 된다고 했는데, 대체 그 과자는 어떤 과자였을까?
프랑스 원어를 살펴보면 그 과자의 정체가 분명히 드러나 있습니다. ‘브리오슈(brioche)’입니다. 프랑스에서 15세기부터 즐겨 먹은 빵으로 머리가 작은 눈사람 모양이며, 빵과 과자의 중간 형태로 버터와 달걀이 많이 들어가 고소하고 폭신합니다. 하지만 정작 앙투아네트가 좋아하는 빵은 따로 있었습니다. 터번처럼 생긴 ‘쿠글로프(kugelhopf)’입니다.
쿠글로프는 화려함의 절정을 달리던 당시의 프랑스 왕실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시골스러운 모양과 맛을 가지고 있는데요. 앙투아네트는 오스트리아에서부터 쿠글로프를 즐겨 먹었고 프랑스에 함께 왔습니다. 브리오슈건 쿠글로프건 지금도 웬만한 제과점에 가면 쉽게 살 수 있는 평범한 빵들이고 당시에도 소박한 빵이었습니다. ‘빵이 없으면 과자를 먹으면 되지’로 옮긴 우리말은 원어보다 훨씬 사치스러운 느낌을 풍기지요.
빵 대신 브리오슈를 먹으라고 한 적도 없고, 그보다 훨씬 소박한 쿠글로프를 좋아했습니다. 하지도 않은 말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들불처럼 번져 냉소적이고 채신머리없는 왕비라는 누명까지 썼습니다. 그렇다고 그녀가 억울하다고 할 수 있을까요? 국민의 생명(빵)을 보장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의무에 대해 무지했고 무관심했는데 말이지요.
• 아티스트 : Swingle sing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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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마리앙투아네트가 빵 대신 먹으라고 한 과자는 무엇일까 – 문득, 묻다 : 첫 번째 이야기, 유선경, 지식너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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