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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문득, 묻다
: 첫 번
째 이야기

〈겨울 나그네〉의 보리수는 어떤 나무일까

〈겨울 나그네〉의 보리수는 어떤 나무일까

ⓒ Benjamin Simeneta/Shutterstock.com | 저작권자의 허가 없이 사용할 수 없습니다.

독일 문학에 유난히 많이 등장하는 나무가 있습니다. 바로 보리수입니다. 그 마을에는 오래된 보리수가 있었다, 보리수 아래에는 우물이 있었다, 하는 식의 묘사가 많은데, 리하르트 바그너의 오페라 〈니벨룽의 반지〉의 원형인 북유럽 신화 속 영웅 지크프리트와 관련해서도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그는 불사신의 영웅이었는데 그 비결은 니벨룽족의 보물을 차지한 용을 무찌를 때 뿜어 나온 피가 온몸을 적셔 칼과 화살, 창에 찔려도 끄떡없는 각질(角質)을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에게도 유일한 약점이 있으니 바로 보리수 나뭇잎이 붙어 있던 등의 일부분이었습니다. 결국 여기에 창을 맞아 살해당하지요.

우리에게 유명한 또 하나의 보리수는 빌헬름 뮐러의 연작시에 프란츠 슈베르트가 곡을 붙인 〈겨울 나그네〉에 나옵니다. 스물 네 편의 노래로 구성된 〈겨울 나그네〉는 전반적으로 스산하고 추운 겨울을 묘사하는데, 보리수의 등장은 이 추운 겨울의 끝, 이 생의 끝을 암시하는 것 같습니다.

성문 앞 우물 곁에 서 있는 보리수
나는 그 그늘 아래 단꿈을 보았네
가지에 희망의 말 새기어 놓고서
기쁘나 슬플 때나 찾아온 나무 밑
오늘 밤도 지났네 그 보리수 곁으로
깜깜한 어둠 속에 눈 감아 보았네
가지는 산들 흔들려 내게 말해주는 것 같네
‘이리 내 곁으로 오라 여기서 안식을 찾으라’고
찬 바람 세차게 불어와 얼굴을 매섭게 스치고
모자가 바람에 날려도 나는 꿈쩍도 않았네
그곳을 떠나 오랫동안 이곳저곳 헤매도
아직도 속삭이는 소리는
여기 와서 안식을 찾으라
- 슈베르트 작곡, 〈겨울 나그네〉

추위와 배고픔, 그리고 설움에 지친 나그네를 다독이듯 여기 와서 안식을 찾으라고 속삭이는 보리수. 그런데 이 보리수는 우리가 알고 있는 보리수가 맞을까요?

보리수가 유명한 것은 석가모니가 그 나무 그늘 아래에 앉아 있다가 깨달음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원래 이름은 산스크리트어 ‘보디 브리쿠샤(Bodhi-vtksa)’, ‘깨달음의 나무’라는 뜻입니다. 보리수는 브리쿠샤의 음을 우리식으로 한역한 이름이지요. 이렇듯 불교와 떼어놓을 수 없는 나무다 보니 우리나라 사찰에도 보리수가 한 그루씩 있습니다. 인도의 보리수는 더운 지방에서만 자라는 나무로 우리나라에서는 자생할 수가 없지요. 그래도 석가모니에게 깨달음을 준 그 특별한 나무를 어떻게든 사찰에 들이고 싶었던 불자들이 비슷한 나무를 찾았는데 잎 모양이 조금 닮은 피나무입니다.

앞서 지크프리트의 영웅설화나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에서 보리수로 번역하는 ‘린덴바움(Lindenbaum)’ 역시 피나무입니다. 린덴바움은 불교의 보리수만큼이나 게르만족에게 각별한 나무입니다. 고대부터 숭배의 대상이었고 중세에는 이 나무 밑에서 재판이나 축제, 충성의 서약이나 결혼식을 할 만큼 중요한 존재였습니다. 연애 시에도 자주 등장하는데 사랑의 여신 비너스에게 봉헌된 나무이기 때문이라고 하지요.

그리고 나무(baum)에 ‘잘 구부러지는’이라는 뜻을 가진 ‘linde’를 붙인 것은 이 나무의 껍질이 연하고 질겨서 끈으로 이용하기 좋았기 때문인데요. 본래 이름인 피나무가 아니라 보리수로 번역된 이유가 의외로 단순합니다. 일본에서 그렇게 번역한 것이 우리나라에 그대로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례가 적지 않지요. 그렇다고 이제와서 ‘성문 앞 우물 곁에 서 있는 피나무, 나는 그 그늘 아래 단꿈을 보았네’ 하고 부르는 것도 좀 어색할 것 같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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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스트 : Schube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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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선경 집필자 소개

1970년 전북 부안 출생, 1993년부터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글을 쓰고 있으며, 2011년부터 매일 아침 KBS 클래식 FM [출발 FM과 함께]에서 [문득 묻다], [그가 말했다] 등의 글로..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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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묻다 : 첫 번째 이야기
문득, 묻다 : 첫 번째 이야기 | 저자유선경 | cp명지식너머 도서 소개

심청이 연꽃을 타고 온 이유를 불교의 ‘연화화생’의 믿음에서, 가냘픈 꽃 코스모스가 우주(cosmos)라는 거창한 이름을 가진 이유를 고대 그리스 철학자의 정신에서, ..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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