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과사전 상세 본문

출처 문득, 묻다
: 첫 번
째 이야기

모란꽃에 정말 향기가 없을까

모란꽃에 정말 향기가 없을까

ⓒ KMNPhoto/Shutterstock.com | 저작권자의 허가 없이 사용할 수 없습니다.

화려한 붉은 빛깔에 커다란 꽃송이를 가진 모란. 오래전부터 중국에서는 ‘꽃 중의 왕’으로 칭송을 받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향기 없는 꽃으로 더 유명합니다. 그런데 정말 모란꽃에 향기가 없을까요?

모란꽃에 향기가 없다는 말은 선덕여왕의 공주 시절 일화에서 비롯됐습니다. 당나라 태종이 신라와 협약을 맺기 위해 모란의 씨 석 되와 함께 모란도(牡丹圖) 한 점을 보냈는데 그림을 본 덕만공주가 ‘꽃은 고우나, 나비가 없으니 향기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하지요. 그리고 실제로 씨앗을 심었더니 과연 꽃에 향기가 없어서 신라인들이 덕만공주의 영민함에 탄복했다더라, 하는 이야깁니다. 국사 교과서에 나오는 이 유명한 일화는 우리에게 모란꽃이 향기 없는 꽃이라는 선입견을 심어줬는데요. 정작 모란꽃의 본고장인 당나라에서는 이런 시가 전해집니다.

지난밤 달은 물 같이 맑아
뜰에 오자 선뜻 오는 그윽한 향기
- 당나라 시인 위장(韋莊)

모란꽃에 향기가 있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당연히 벌과 나비가 모여듭니다. 그런데도 당 태종은 왜 벌과 나비가 없는 모란도를 덕만공주에게 보냈을까요?

중국에서 모란꽃은 부귀를 상징합니다. 이 풍습이 우리나라에도 들어와 신부의 예복인 원삼이나 활옷에 수로 놓였고, 왕비나 공주처럼 귀한 신분의 여인들의 옷에 무늬로 들어갔습니다. 하지만 중국에서는 모란꽃과 나비를 같이 그리지 않는 풍습이 있습니다. 나비 접(蝶)을 중국에서 ‘디예’로 발음하는데 공교롭게도 80세를 뜻하는 ‘질(수식)’과 발음이 같습니다. 그래서 모란과 나비를 함께 그리면 80세까지 부귀를 누리라는 뜻이 되지요. 환갑을 넘기는 일이 드물었던 시대였으니 고대에 그 말은 대체로 덕담이었지만 결례를 범하는 말이 될 수 있어서 모란꽃과 나비를 함께 그리지 않았습니다.

당 태종 역시 같은 이유로 진평왕에게 보내는 모란도에 나비를 그리지 않았던 것입니다. 더구나 진평왕은 열세 살에 즉위해 54년 동안 왕위에 있었습니다. 나비와 모란을 함께 그린 모란도를 선물했다면 오히려 큰 결례가 됐겠지요.

그러면 당 태종이 보낸 씨앗을 심었더니 실제로 향기 없는 꽃이 피었더라, 하는 이야기는 거짓일까요. 그렇진 않은 것 같습니다. 중국 고유의 꽃으로, 특히 귀족들이 좋아했던 모란은 당나라 때 품종개량이 활발하게 이루어졌습니다. 이 과정에서 의도치 않게 향기 없는 모란꽃이 나왔고 하필이면 그 씨앗이 신라로 전해진 것으로 보입니다.

그 결과 ‘꽃은 고우나, 나비가 없으니 향기가 없을 것’이라고 한 덕만공주의 말과 우연히 맞아떨어져서 선덕여왕의 지혜로움을 칭송하는 이야기로 각색이 됐고 천오백 년 넘게 내려오고 있는데요. 원래 꽃도 곱고 나비도 있고 향기도 있는 꽃, 모란. 그 오랜 세월 향기 없는 꽃이라는 누명을 썼으니 이제는 벗겨줘도 좋지 않을까요.

함께 들으면 좋은 음악

곡명 : Am Angel

아티스트 : Mizoguchi Hajime

본 콘텐츠를 무단으로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위 내용에 대한 저작권 및 법적 책임은 자료제공처 또는 저자에게 있으며, Kakao의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유선경 집필자 소개

1970년 전북 부안 출생, 1993년부터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글을 쓰고 있으며, 2011년부터 매일 아침 KBS 클래식 FM [출발 FM과 함께]에서 [문득 묻다], [그가 말했다] 등의 글로..펼쳐보기

출처

문득, 묻다 : 첫 번째 이야기
문득, 묻다 : 첫 번째 이야기 | 저자유선경 | cp명지식너머 도서 소개

심청이 연꽃을 타고 온 이유를 불교의 ‘연화화생’의 믿음에서, 가냘픈 꽃 코스모스가 우주(cosmos)라는 거창한 이름을 가진 이유를 고대 그리스 철학자의 정신에서, ..펼쳐보기

전체목차
전체목차
TOP으로 이동
태그 더 보기
일반상식

일반상식과 같은 주제의 항목을 볼 수 있습니다.



[Daum백과] 모란꽃에 정말 향기가 없을까문득, 묻다 : 첫 번째 이야기, 유선경, 지식너머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으로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