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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문득, 묻다
: 첫 번
째 이야기

김춘수의 〈꽃〉에 나오는 꽃은 무슨 꽃일까

김춘수의 〈꽃〉에 나오는 꽃은 무슨 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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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 김춘수, 〈꽃〉

김춘수의 시 <꽃>에는 꽃이 등장합니다. 그런데 시를 아무리 읽어도 무슨 꽃인지 도통 알 수가 없습니다. 이 꽃은 무슨 꽃일까요? 김춘수의 <꽃>은 1959년에 출판된 시집 《꽃의 소묘》에 수록돼 있습니다. 이즈음의 시인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에 붙은 이름들이 제대로 붙여진 것인지 즉, 언어가 존재의 본질을 제대로 나타내고 있는지에 대해 의문을 가지고 있었고 이에 대해 끈질기게 탐구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시인이 말하는 꽃은 사물의 존재에 맞게 부여되는 언어, ‘시(詩)’를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문학적인 풀이 말고, 말 그대로 꽃의 이름이 궁금했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읽은 황동규 시인의 산문집 《젖은 손으로 돌아보라》에서 궁금증이 풀렸습니다.

그 크기나 지속성을 생각할 때 적어도 그 ‘꽃’이 벚꽃이나 진달래를 상대로 한 것 같지는 않고, 맥이 닿을만한 꽃을 찾는다면 그의 시에 자주 등장하는 산다화라는 생각이 든다.
- 황동규, 《젖은 손으로 돌아보라》

산다화, 바로 동백꽃입니다. 김춘수 시인의 고향은 저 남쪽 끝 통영이고 그곳은 동백으로 유명하지요. 시인은 동백을 ‘산다화’라 부르며 많은 시를 썼습니다. <처용단장>도 그중 하나입니다.

눈은
라일락의 새 순을 적시고
피어나는 산다화를 적시고 있었다
미처 벗지 못한 겨울 털옷 속의
일찍 눈을 뜨는 남쪽 바다
그날 밤 잠들기 전에
물개의 수컷이 우는 소리를 나는 들었다
- 김춘수, <처용단장>

김춘수 시인은 왜 누구나 다 아는 동백이라는 이름 대신 산다화라는 생소한 이름을 썼을까요. 그 답은 문학평론가 유종호의 <시인의 꽃>이라는 또 다른 시에 들어있습니다.

산다화가 어떤 꽃이냐 여쭈었더니
사실은 나도 잘 모른다
소리랑 글자가 좋아 썼을 뿐
산다화를 거푸 노래한
시인 김춘수 선생은 말하였다
소설가 이호철은 허허 사람 좋게 웃었고
- 유종호, <시인의 꽃>

시인의 마음에 ‘동백’이라는 소리와 글자보다 ‘산다화’라는 소리와 글자가 더 흡족했던 모양입니다. 꽃의 이름을 알았으니 이제 ‘그리움에 지쳐서 울다 지쳐서 빨갛게 멍이 든’각주1) 그 꽃봉오리를 보거들랑 이렇게 불러봐야겠습니다. 아! 예쁜 산다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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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스트 : Eugene Fries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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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선경 집필자 소개

1970년 전북 부안 출생, 1993년부터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글을 쓰고 있으며, 2011년부터 매일 아침 KBS 클래식 FM [출발 FM과 함께]에서 [문득 묻다], [그가 말했다] 등의 글로..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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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묻다 : 첫 번째 이야기
문득, 묻다 : 첫 번째 이야기 | 저자유선경 | cp명지식너머 도서 소개

심청이 연꽃을 타고 온 이유를 불교의 ‘연화화생’의 믿음에서, 가냘픈 꽃 코스모스가 우주(cosmos)라는 거창한 이름을 가진 이유를 고대 그리스 철학자의 정신에서, ..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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