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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정말 궁금한
우리 예절

국화의 유래는 무엇인가요?

아름다움과 처연함

장례식장에 가면 흰 국화를 많이 볼 수 있습니다. 화환을 만들어 세워놓기도 하고, 조문을 하면서 한 송이씩 영전에 올려두고 망자의 넋을 기리기도 합니다. 흰 국화가 언제부터 사용되었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습니다. 아마도 전통 관습에는 흔하지 않은 모습입니다. 고고학자들 말로는 추모의 의미로 꽃을 바치는 습관은 문명이 생겨난 시기를 훨씬 넘어간다고 합니다. 네안데르탈인은 독일의 네안데르 골짜기에서 발견된 인류의 오래된 조상 가운데 하나인데, 그들이 장례를 치르고 꽃을 바쳤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하지만 10만 년 전 이야기이니 이런저런 서로 다른 이야기가 전해지기도 합니다.

흰 국화는 우리나라의 50대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꽃이기도 하며, 한 해에 가장 많이 소비하는 꽃이라고도 합니다. 화려한 장미가 젊은이의 꽃이라면 국화는 나이든 어른들의 꽃이라고 할까요. 소비가 가장 많은 것은 장례식에 사용되기 때문입니다. 국화는 그것이 흰색이든 흔히 보는 노란 황국이든 간에, 늦가을에 피는 가장 대표적인 꽃입니다. 화단과 화분에 노란 국화가 보일 때 우리는 한 해가 지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서늘한 날씨와 더불어 아침 서리를 맞은 국화를 보면 꽃이 가진 그지없는 아름다움과 처연한 느낌이 동시에 생겨나는 것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특히 흰 국화는 오랫동안 장례식에 사용된 습관 때문인지, 아니면 본래 흰색이 주는 느낌 때문인지 분간할 수 없지만 진한 향기만큼 죽음의 분위기를 전해줍니다.

왜 흰 국화를 사용하는가에 대해서는 이러한 분위기와 느낌이 진솔하기 때문에 별다른 설명 없이도 직감적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특히 장례식의 색을 흰색으로 오랫동안 이용해왔던 우리 전통에서 국화의 성격과 상징은 잘 부합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일상적인 느낌을 버리지 않고, 국화의 어떤 점이 조문화로 자리를 굳히게 되었는지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장수와 행복의 꽃

국화는 원산지가 중국이라고 합니다. 물론 전 세계 어디서나 피어 있는 꽃이기도 합니다. 우리에게는 화분의 황국이 익숙하지만, 들에는 국화과에 속하는 많은 꽃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들과 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들국화, 이름도 친근한 구절초나 쑥부쟁이를 들 수 있습니다. 국화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은 삼국시대 이전쯤이라 합니다. 구절초와 감국을 교배하여 만든 국화가 흔히 보는 국화의 시작입니다. 흰 국화가 생겨난 것도 이즈음입니다. 우리나라의 나라꽃이 무궁화인 것처럼, 일본의 나라꽃은 국화입니다. 일본의 국보 제1호가 신라에서 건너간 미륵보살반가사유상이듯이, 백제의 왕인이 국화를 일본에 들여갑니다.

주변에 보내는 명절 선물로 국화주나 국화차는 인기가 있습니다. 국화주를 먹으면 장수한다고 합니다. 실제로 국화는 한약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데, 머리를 맑게 하고 강장을 해주는 귀한 약재입니다. 국화꽃을 베개로 만들어 베고 자기도 합니다. 얼마나 쓴지 약재 이름은 고의(苦薏)라고 따로 부릅니다.

우리나라 선비들은 국화를 군자에 비유했습니다. 국화가 가진 생리 때문이기도 했지만, 다른 꽃들의 영화에 뒤늦게 피어 서리를 맞고 견디는 모습은 도를 가슴에 품고 고결한 삶을 사는 선비들의 모습 그대로입니다. 서리에 견디는 그 모습은 오연하지만, 짙은 향기와 화사한 색은 봄이나 여름의 화사한 꽃들의 아름다움과는 또 다른 성숙하고 절제된 품위를 보여줍니다.

우리네 전통 민화에서 국화는 모란과 함께 흔히 등장하는 제재입니다. 국화는 무수한 꽃잎처럼 온 집안의 기쁨과 즐거움을 뜻합니다. 장수의 상징이며 고결한 품위의 상징이고, 고상한 지조의 상징입니다. 이런 국화는 한자의 수(壽)와 동격입니다. 그래서 층층이 그린 국화꽃은 수수(壽壽)를 뜻하여 장수(長壽)를 의미했습니다. 유별나게 가족의 정으로 똘똘 뭉친 우리나라 사람들의 정감은 나이 드신 어른의 무병장수로부터, 모든 가족이 사는 동안 함께 탈 없이 잘 사는 것만이 이 세상에서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행복이라는 믿음으로 이어집니다. 이 믿음은 거의 종교적이라고 할 수 있지요.

세 가지 문화의 결합

장례식에 왜 국화꽃을 둘까요? 여러 사람들의 생각을 먼저 알아보지요. 지금까지 본 것처럼 국화에는 다양한 의미가 있습니다. 장수와 지조가 대표적이고, 고결과 품위도 그로부터 따라 나오는 뜻입니다. 가족의 행복도 있고, 늦게 피는 꽃의 성격에서 성숙과 원숙함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런 의미는 다른 나라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유럽에서도 흰 국화는 흰 백합과 더불어 죽음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우리처럼 흰 국화를 조화로 쓰는 것 같지는 않고, 흰 꽃들뿐만 아니라 화려한 색의 꽃들을 조문에 씁니다. 일본의 경우는 우리와 비슷한 편입니다. 아무래도 근대 이전에 흰 국화가 조문에 사용된 일이 없는 것을 보면, 일제시대를 거친 이후에 생겨난 풍속 같습니다. 그리고 여기에 서구화가 진행되면서 확산된 기독교의 영향도 가세한 것으로 보입니다.

기독교인들은 조문에 흰 국화와 더불어 흰 백합을 사용합니다. 순결한 영혼을 의미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흰 국화에 매우 과격한 의미를 부여합니다. 국화꽃을 상 위에 놓는 것은 떠나신 분에게 그 꽃을 바친다는 의미가 아니라고 합니다. 그보다는 죽음의 냄새를 제거하고 음울한 상가의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국화의 짙은 향과 꽃의 아름다움을 이용하는 것입니다. 종교답게 망자에 대한 위안은 망자의 영혼을 내세의 천국으로 데려가는 신에 대한 경건함으로 대치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기독교도들의 상식적 해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굳이 흰 국화가 아니라도 될 테니까요.

그렇다고 동양철학의 오묘한 이치를 끌어대어, 흰색은 가을에 속하고 가을은 한 해의 갈무리를 시작하는 시점이므로 장례에는 흰 국화를 사용한다고 하는 것도 좀 억지스러워 보입니다. 장례식 때 흰 국화를 사용하는 것은 아무래도 세 가지 정도의 문화적 흐름이 합세한 결과 같습니다. 곧 흰 국화에 대한 우리 전통의 관념, 흰 국화를 사용한 일본식 장례, 기독교도들의 헌화 습관 등이 결합한 것이 아닌가 합니다. 흰색에 대한 우리의 전통적 생각, 국화에 대한 일본인들의 강한 집착, 전통 제례를 배척하는 기독교의 의식 등이 결합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기독교인들은 장례식장에서 망자에게 절을 하는 등의 의례를 꺼립니다. 그것은 귀신을 숭배하는 미신 행위이며 이단적 행위라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헌화로 그 예식을 대치합니다. 조화를 만들어 세우는 것은 전통식에서 조금 나아간 것인데, 이것은 일본식 장례의 영향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본도 기독교의 영향을 받은 근대 시기부터 헌화했고, 이때 사용한 꽃은 국화가 주를 이루었습니다. 일본 문화의 상징이 '칼과 국화'이기도 하니까요.

이승과 저승에 놓인 꽃

중요한 것은 우리가 쓰고 있는 관습의 기원이 무엇이냐는 것보다는 우리가 그것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 살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장수를 뜻하는 국화가 장례식에 사용된 것은 세 문화의 흐름이 한데 합쳐진 것이지만, 그렇다고 해도 우리의 심정에 잘 맞기 때문에 그것을 지키고 사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날이 추워진 뒤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늦게 지는 것을 안다'는 말처럼, 국화는 상록수보다는 꽃이 가진 아름다움이 더 두드러집니다. 우리네 인생의 삶과 죽음은 시적으로 이야기하면 한 송이의 꽃이 피고 지는 것과 같은 과정이 아닐는지요. 그토록 아름다운 꽃 같은 시절은 지고, 이제 날 저문 저승의 문턱에 서니 불같은 야망도 모두 덧없는 것이었습니다. 국화는, 특히 흰 국화는 꽃이 지닌 아름다움은 물론이고 그 성격상 성숙한 경지에서 관조하는 고결한 자태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이승의 삶이 불같이 타오르는 생명의 구가라면 죽음은 이제 타오르는 불길을 접고 평정하고 청아한 고요를 맞이하는 순간입니다. 생전의 좋은 일과 궂은 일을 모두 두고 가야 하는 망자, 그리고 망자에게 바치는 흰 국화의 고상한 자태와 짙은 향기는 모두 이승과 저승에 걸쳐 살고 있는 우리네 인생의 모습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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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일 집필자 소개

1969년 서울에서 태어나 고려대학교에서 심리학을 전공했고,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소강절의 선천역학과 상관적 사유』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학(동양학)의 귀한 자원을 보편적 학문으로 만들고 인..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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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궁금한 우리 예절
정말 궁금한 우리 예절 | 저자이창일 | cp명예담 도서 소개

그동안 뜻도 모르고 따라했던 관혼상제 속에 숨어 있는 의미를 찾는다. 우리가 알고 있는 전통 예절의 행위나 절차에 어떤 의미가 들어 있는지, 전통 예절 중에서 가례에 ..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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