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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예절
사잣밥을 차려놓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저승사자
망자의 숨이 멈춘 것을 확인하면 먼저 대문 밖에 '사잣밥'을 차립니다. 사잣밥은 사자상이라고도 하는데, 밥 세 그릇과 동전 세 닢, 짚신 세 켤레를 함께 놓습니다. 사자는 저승사자입니다. 사자라는 말은 뭔가 일을 대행하는 심부름꾼의 역할을 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지금 세상에는 다양한 종교를 믿기 때문에 저승사자에 대해 무관심합니다. 저승사자는 민속에 속하는 대상이 되었습니다. 저승사자는 단지 옛이야기나 전설, 민담 속에 등장하는 존재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어보겠습니다.
10년도 더 된 일이다. 마침 한여름이라 많은 사람들이 들로 바다로 떠나고 나도 피서를 갔다. 돌아와 형님 댁에 계신 어머니를 찾아뵈었더니, 팔이 아프니 주물러달라고 하시는 것이었다.
"아 글쎄, 간밤 꿈에 검정 옷을 입은 세 놈이 와서 자꾸만 어디론가 하도 가자고 해서, 내 그놈들 손을 뿌리치느라고 어찌나 팔을 세게 흔들어댔는지, 그만 팔이 다 욱신거리는구나."
꿈결이었지만 잠이 깨고서도 팔이 아프시다는 것이었다. 당시 어머니는 오랜 지병을 가지고 있기는 하셨지만, 그 꿈을 꾼 지 꼭 보름 만에 세상을 뜨셨다. 말씀하시지는 않았지만, 어머니는 그놈들이 저승사자일 것이라고 생각해 죽음을 예견하신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민속을 연구하는 어떤 분의 진솔한 경험담을 옮겨본 것입니다. '검정 옷을 입은 세 놈'은 저승사자를 말하는 것입니다. 흔히 죽음을 앞둔 사람들은 미래를 예견하는 예지몽을 꾼다고 합니다. 꿈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이지만, 이것 말고도 미래의 중요한 일을 먼저 접하게 되는 꿈이 살면서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나 지금과 같은 과학적 합리주의 시대에 이런 이야기를 즐겨 입에 올리는 것은 무언가 의심을 받을 일입니다. 또 그런 이야기를 하거나 그런 이야기에 심취하는 사람은 세상에 적응하지 못하는 괴짜나 바보로 오해받기 쉽습니다.
하지만 이런 꿈의 이야기는 사실 매우 엄격한 과학의 영역에 속합니다. 심리학, 특히 정신분석학이나 분석심리학 같은 분야에서는 이에 대해 많은 연구를 해왔습니다. 꿈이 미래를 예지하는가, 그렇다면 미래와 현재의 연결 원리나 방식은 어떤 것일까? 미래를 알 수 있다는 것은 우리의 삶과 세계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일까? 죽음 뒤의 세계를 알 수 있을까? 흥미진진하면서도 살아생전 풀 수나 있을까 싶은 문제들이 제기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모든 문제들을 괄호 속에 집어넣고, 계속 사잣밥을 이야기하기로 합시다. 제가 그것을 말할 실력도 없을뿐더러 아직 확실한 연구를 해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 확실한 것은 과학적 합리주의라는 우리의 관점이 유일한 관점은 아니라는 것이며, 우리 속에 놓인 깊은 마음의 세계는 우리가 소유한 것이 아니라 자연 그 자체라는 것입니다. 이 깊고 심오한 세계를 탐구하기 위해서 우리는 상식의 세계를 벗어나는 특별한 노력을 해야 할 것입니다.
저승사자와 염라대왕
저승사자는 죽은 자의 혼을 저승으로 인도하는 존재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호의적인 존재가 아니라 대개는 무섭고 차가운 성격을 가진 존재로 묘사됩니다. 보통 세 명이 함께 오기 때문에 밥이나 돈, 신발 등을 세 벌 준비한다고 합니다. 이들 사자에게 심부름을 시키는 존재를 염라대왕이라고 부릅니다. 염라대왕은 지옥을 주관하는 명부의 신입니다. 지옥은 극락의 반대 세계입니다. 지옥을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데 한자문화권에 사는 우리의 머릿속에 형성된 지옥의 개념은 불교와 도교가 합쳐져 생겨난 것입니다. 그리고 불교와 도교가 들어오기 훨씬 전, 그 생각의 밑바닥에는 언제 형성되었는지 알 수 없는 저승에 대한 우리의 생각이 있습니다.
염라대왕은 지옥의 열 분 왕 가운데 다섯 번째 왕입니다. 서울 용산에 있는 국립중앙박물관 2층에는 불교미술 관련 전시실이 있는데, 그곳에 염라대왕을 그린 그림이 있습니다. 이 열 분 왕을 한자로 '十王'이라고 쓰는데, 발음은 십왕이 아니라 '시왕'이라고 합니다. 불교에는 발음을 쉽게 하는 말들이 많습니다. 주로 입으로 되뇌기 쉽게끔 언어를 경제적으로 만들기 때문입니다. 시왕의 이름은 제1전에 진광(秦廣)대왕, 제2전에 초강(初江)대왕, 제3전에 송제(宋帝)대왕, 제4전에 오관(五官)대왕, 제5전에 염라(閻羅)대왕, 제6전에 변성(變成)대왕, 제7전에 태산(泰山)대왕, 제8전에 평등(平等)대왕, 제9전에 도시(都市)대왕, 제10전에 오도전륜(五道轉輪)대왕으로 불립니다. 이 시왕의 명령을 받고 일직사자(日直使者)와 월직사자(月直使者)가 이승에 와서 망자의 집을 찾아 망자의 이름을 부르고, 무섭게도 쇠사슬로 결박하여 끌고 갑니다. 아, 살아생전 사랑하던 가족과 정든 집을 떠나 대문 밖을 나서니 저승인 것입니다!
일직사자와 월직사자는 일월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원래는 태어난 연월일시 각각을 주관하는 일종의 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세 벌의 밥·엽전·짚신을 차리는 것은 이들 연월일시를 주관하는 저승사자를 대접하기 위한 것이라 합니다. 그러나 대부분 일직사자와 월직사자가 오고 연직사자(年直使者)나 시직사자(時直使者)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면 두 벌이면 되는 것을 왜 세 벌이 필요할까요?
왜 저승사자는 세 명일까?
이에 대한 답은 숫자가 가진 상징을 통해서 추리할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 사람이나 서양 사람이나 모두 마찬가지이지만 수는 양을 세는 도구에 머물지 않고, 수에는 제각각 고유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 오래된 습관이 있습니다. 이런 수에 대한 상징이나 고유한 의미를 연구하는 분야를 수비학(numerology)이라고 합니다. 수비학(數秘學)은 매우 어려운 말이지만, 그 뜻은 '수에는[數] 비밀스럽게 감춰진[秘] 의미가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1은 완전과 창조의 수이고, 2는 분열이나 차이 등을 의미하고, 4는 2+2의 형식을 가진 것으로 완전함의 분화라고 생각합니다.
각 민족은 그 민족의 오랜 역사적 경험에 따라 이 수에 대한 생각이 저마다 특이합니다. 그래서 수에 대한 상징을 살펴보면 그 민족의 고유한 생각을 알 수 있습니다. 예컨대 서양 사람들은 2를 악마의 수라고 생각합니다. 분열을 의미하고, 빛과 그림자처럼 타협할 수 없는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한자문화권에서 2는 음양처럼 서로 대립하면서 조화를 이루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악마나 사악한 것으로 생각한 적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3에 대해서는 생각이 비슷합니다. 3은 1과 2의 합이면서 완전함과 분열의 결합으로 생겨난 것이고, 수가 불어나면서 생겨나는 다양함의 시작을 알린다고 하여 매우 중시되었습니다. 사실 1은 홀수이기는 하지만 모든 수의 시작이면서 근본 토대가 되기 때문에 홀수나 짝수로 편을 가르기에는 적합하지 않습니다. '하나됨'은 완전한 하나이면서 동시에 모든 것이 포함되는 통일을 의미하기도 하니까요. 그래서 실제적인 홀수의 시작은 3이 됩니다. 이로부터 만물이 생겨나는 실제적인 반석의 역할을 2와 함께 수행하는 것입니다.
2가 짝수가 가진 모든 의미를 부여받는 짝수 중의 짝수라면, 3은 홀수 중의 홀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앞서 살펴본 대로 홀수에 대한 중시는 음에 대한 양의 지배력을 의미합니다. 음은 대체적으로 나쁜 것이고 재앙이고, 죽음과 결부된 어둑하고 음울한 세계입니다. 그래서 양의 기운으로 그것을 쫓아내는 것입니다. 따라서 3은 매우 중요한 수가 됩니다. 음이 죽음의 세계를 대변한다면 양은 삶의 세계를 대변하고, 음이 무언가 종료되어 움직임이 없는 고요한 세계를 대표한다면 양은 활발하게 움직이고 만들어내는 세계를 나타냅니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저승사자가 왜 세 명인지를 생각해보겠습니다.
저승과 이승, 거울에 비친 영상
저승으로 인도하는 저승사자들은 마치 이승에서 볼 수 있는 포도청의 나졸 같은 역할을 합니다. 포도청은 죄지은 사람을 잡아다가 형벌을 주는 기관입니다. 지금의 검찰과 비슷하다고 할까요. 그래서 그런가요, 검사 분들 중에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법대로 원칙에 따라 행동하는 사람에게 '저승사자'라는 별명을 붙이기도 합니다. 포도청이나 검찰에 불려가는 것은 가기 싫다고 안 갈 수도 없고, 가봐야 환대받을 일은 별로 없습니다. 이런 이미지가 저승사자에게 부여됩니다.
염라대왕도 마찬가지로 포도청의 수장과 같은 이미지로 그려져 있습니다. 염라대왕 앞에 불려가면 생전에 지은 모든 행적이 적혀 있는 장부가 있습니다. 이 책에는 속여보려야 속일 수 없는 망자의 모든 기록이 담겨 있습니다. 이 기록에 따라 죄를 지은 자는 지옥에 떨어지고, 착한 선업을 쌓은 사람은 극락에 가서 생전의 노고를 풀어주는 향응을 받고 다시 부귀한 신분으로 환생하게 되는 순서를 기다립니다.
간혹 이 장부가 잘못되어 데려갈 사람을 데려가지 못하고 다른 사람을 데려가거나 하는 에피소드가 생겨납니다. 이름이 같아서 저승사자가 착각하거나, 저승사자를 속이는 도력으로 잠시 염라대왕 전에 끌려가는 것을 유예하기도 하는 이야기들이 많습니다. 이를 보면 죽어서 만나는 세계도 살아서 겪는 세계와 비슷한 구조를 갖는 것 같습니다. 거울에 비친 모습처럼 매우 비슷합니다.
저승에서 태어남
사자상에 날된장, 날간장, 짠지 등과 같은 짠 음식을 함께 올리기도 합니다. 저승사자가 짠 것을 먹어 물을 들이켤 때만이라도, 저승사자를 본 망자가 놀라지 않도록 마음을 준비시키기 위한 짬을 벌어볼 생각에 그런 것입니다. 그러나 어쨌든 망자는 저승사자를 따라 저승으로 다시 못 올 길을 떠나갑니다.
저승은 이승의 거울상입니다. 그래서 이승의 죽음은 저승의 태어남입니다. 그러니 이승에서의 태어남, 곧 탄생의 예식에 대해서 살펴보지요. 이승에 태어날 때 우리가 아이를 맞이하는 절차는 어떤가요? 아이를 점지해주는 신을 '삼신할미'라고 합니다. 이때의 삼은 3이지만 세 명의 신을 뜻하지 않습니다. 여기가 중요한 점입니다. 태(胎)를 우리말로 '삼'이라고 합니다. 탯줄을 '삼줄'이라고 하고, 탯줄을 떼는 것을 '삼가르다'라고 합니다. 그리고 태를 태우는 불을 '삼불'이라고 합니다. 3의 의미가 계속 등장합니다. 더욱이 아이를 낳으면 그 자리에 흰밥 세 그릇, 미역국 세 그릇을 차립니다. 그리고 이때 쓰는 밥을 '삼밥'이라 하고, 아이를 낳은 지 사흘 만에 밥을 짓습니다. 이쯤 되면 왜 사잣밥이 세 벌로 되었는지 알 수 있지 않겠어요?
그렇습니다! 바로 재생과 부활의 상징이자 새로운 삶에 대한 축원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설명에 개운치 않은 분들께는 자연과 인간을 하나로 생각했던 옛사람들의 진솔한 생각을 전하도록 하지요. 하늘과 땅은 사람에게 전부입니다. 하늘과 땅이 없으면 사람은 의지할 곳이 없는 것이지요. 이 하늘과 땅의 힘을 대행하는 것이 해와 달입니다. 그래서 하늘과 땅, 해와 달은 하나로 묶여서 우주의 전체를 의미했습니다. 지금처럼 광막하게 펼쳐진 어둑한 공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생명을 길러주고 동시에 거두어도 가는 생명의 근원지로 생각한 것입니다.
하루의 변화는 해와 달의 교체입니다. 그런데 해는 서산으로 기울지언정 영원히 타오르는 변함없는 존재로 그려진 반면, 달은 밤을 밝히지만 늘 변화하는 존재를 대표합니다. 그래서 달은 나고 죽으며 다시 태어나는 존재입니다. 그믐달이 지면 다시 초승달이 차오릅니다. 초승은 저승이 '저생'인 것처럼 '초생(初生)'이 변한 말입니다. 그러나 초승달이 다시 생겨나는 것은 눈으로 보기에 사흘 정도 시간이 필요합니다. 3이 재생과 부활을 의미하면서 또한 새로운 창조와 시작을 의미하게 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사잣밥은 저승과 이승을 완전히 갈라진 것으로 보지 않는 한자문화권 사람들이 생각하는 생사관입니다. 더욱이 비록 영영 헤어지지만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저승에서의 태어남을 기리는 우리 민족의 독특한 생각이 담겨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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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뜻도 모르고 따라했던 관혼상제 속에 숨어 있는 의미를 찾는다. 우리가 알고 있는 전통 예절의 행위나 절차에 어떤 의미가 들어 있는지, 전통 예절 중에서 가례에 ..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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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사잣밥을 차려놓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 정말 궁금한 우리 예절, 이창일, 예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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