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과사전 상세 본문

출처 다음백과

태평양 도서군 역사

다른 표기 언어

태평양 섬들은 민족적으로 구분이 명확하지 않다. 멜라네시아 서부지역은 BC 3000~2000년에 필리핀·인도네시아로부터 이주해온 오스트로네시아인들이 정착한 것으로 보인다.

BC 2000~1000년에 걸쳐 이들 민족은 동쪽으로 계속 이주하여 미크로네시아 서부, 멜라네시아 동·중부, 폴리네시아 서부로 이주해갔으며, 그후 인접한 무인도에까지 이주했다. AD 1000년까지 폴리네시아로의 대이주가 있었다. 폴리네시아와 일부 미크로네시아 문화는 추장의 지위가 세습되는 매우 계층화된 사회구조를 발달시켰다. 멜라네시아 문화는 세습되는 사회적 지위보다는 성취하는 개인적 지위에 더 역점을 둔다.

1520~21년 포르투갈의 탐험가 페르난두 마젤란이 유럽인으로는 처음으로 태평양의 섬들을 탐험했다. 그후 16~18세기에 스페인·네덜란드·영국인들이 탐험했고, 18세기 중반의 제임스 쿡 선장이 가장 잘 알려져 있다. 18, 19세기에 많은 섬들에서 유럽의 선교단과 무역상들이 정착하게 되었고, 19세기 후반에는 유럽의 주요세력들이 태평양 전역에 걸쳐 식민지를 건설했다. 독일은 미크로네시아에서 우세했고, 영국은 멜라네시아 일부 지역과 뉴질랜드를 포함한 폴리네시아에서 세력을 구축했으며, 프랑스는 타히티와 부근의 섬들을 합병하면서 프랑스령 폴리네시아를 형성했다.

1898년 미국은 하와이 섬들을 합병했고, 1899년 스페인-미국 전쟁에서 승리한 뒤 괌을 획득했다. 스페인은 미국과의 전쟁에서 패한 뒤, 신탁통치령이 될 예정이었던 마셜 제도, 캐롤라인 제도, 팔라우 등을 독일에 팔았다. 제1차 세계대전중 일본이 독일 소유지를 점령하고, 뉴질랜드가 사모아를 차지하면서 태평양 섬들의 식민 구조가 바뀌었다. 전쟁이 끝나면서 이러한 섬들은 국제연맹에 의해 일본과 뉴질랜드의 위임통치령이 되었다. 2차례의 세계대전 사이에 일본은 태평양 점령 지역들을 군사적으로 강화하여 제2차 세계대전중 미크로네시아와 멜라네시아의 다른 지역을 공격하기 위한 전진기지로 사용했다.

1947년 UN은 이전에 일본의 소유였던 미크로네시아를 미국의 전략적 신탁통치령으로 인정했다. 그리고 프랑스령 폴리네시아, 누벨칼레도니, 월리스푸투나는 프랑스의 해외영토가 되었다. 1959년 미국은 하와이를 50번째 주로 승인했다. 태평양의 많은 섬들이 제2차 세계대전 후 독립하거나 자치정부를 세웠다. 서사모아(1962), 나우루(1968), 피지, 통가(1970), 솔로몬 제도, 투발루(1978), 키리바시(1979), 바누아투(1980) 등이 차례로 독립했다. 미국의 신탁통치령이었던 국가들이 1980년 중반에 자치정부를 구성했고, 프랑스령 폴리네시아에서도 독립운동이 일어났다(→ 미국령 태평양제도).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으로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출처

다음백과
다음백과 | cp명Daum 전체항목 도서 소개

다양한 분야의 전문 필진으로 구성. 시의성 이슈에 대한 쉽고 정확한 지식정보를 전달합니다.

TOP으로 이동
태그 더 보기
태평양

태평양과 같은 주제의 항목을 볼 수 있습니다.



[Daum백과] 태평양 도서군 역사다음백과, Daum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으로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