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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1654년 9월 3일 의회를 소집하기에 앞서 크롬웰과 국무회의는 국내정책에 관한 80가지가 넘는 조례를 통과시켰다.
그가 목적한 바는 법률 개혁과 청교도 교회의 확립, 종교적 관용, 교육의 진흥, 통치의 분권화 등이었다. 법률가들의 반발이 있기도 했으나 크롬웰은 잉글랜드와 아일랜드에 훌륭한 재판관들을 임명했으며 사소한 범죄에 대해 사형을 내리는 관행에 강력히 반대했다. 또한 일부 국무위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유대인의 입국을 다시 허용했다.
교육에도 종사하여 옥스퍼드 총장직을 훌륭히 수행하고 더럼에 칼리지를 세웠으며 라틴어 문법을 가르치는 중등학교를 크게 육성했다.
외교와 경제정책
1654년 네덜란드와의 전쟁상태가 원만히 마무리되고 나서 군사력의 활용에 관한 문제가 제기되어 국무회의가 분열되자 그는 프랑스와 동맹하여 스페인에 대항한다는 최종결정을 내렸다(→ 색인:영국-네덜란드 전쟁). 그리하여 스페인령 서인도제도에 원정대를 파견했으며 1655년 5월 자메이카를 정복했다.
프랑스와 합세해 스페인령 플랑드르에도 원정대를 파견하여 됭케르크 항을 손에 넣었다. 스칸디나비아 지역에도 큰 관심을 쏟았는데 크롬웰 스스로는 스웨덴의 카를 10세를 존경했지만 우선적으로 고려한 것은 국가적 이익이었다. 경제와 산업정책은 주로 전통적인 노선을 따랐으나 독점제도에는 반대했다. 따라서 동인도회사는 독점체제에서 벗어나 3년 동안 완전히 자유경쟁체제하에 놓이게 되었다.
그러나 결국 재정적 어려움에 봉착하자 1657년 10월 동인도회사로부터 재정지원을 받고 그 대가로 새로운 특허장을 부여했다. 자금을 끌어올 만한 만족스런 방법이 없었기 때문에 유럽 다른 국가의 정부들과 마찬가지로 크롬웰의 공화국 역시 재정적 어려움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었다.
의회와의 관계
공화정하에서 의회가 처음 소집되자 크롬웰은 호국경체제가 내란 이후의 국가위기 극복을 위해 필요한 것이라고 역설했으며 자신의 정부가 혼란과 사회적 반란을 막아냈다고 주장했다.
그는 특히 수평파에 대해 비판적이었으며 국교회의 붕괴로 인한 정신적 무정부상태가 심각하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법률의 개혁과 같은 일부 측면에서는 급진적이었지만 왕정체제의 전복으로 인한 정치적 붕괴를 우려했기 때문에 한편으로 보수적인 태도를 취했다. 공화주의를 소리 높여 외치는 인사들이 새로 구성된 의회의 지도자로 부상했으며 이들은 입법에만 전념하지 않고 크롬웰 정부의 전체적인 기반에 의문을 제기했다.
크롬웰은 이들에 대해 새로운 체제의 4가지 근본적인 원칙, 즉 한 사람과 하나의 의회에 의한 정부, 의회의 정기적 소집, 양심의 자유 보장, 호국경과 의회 간의 무장군인에 대한 지휘권의 분할 수용을 역설했다. "신이 인정하고 인간이 승인한 이 정부를 멋대로 전복하는 것을 좌시하느니 차라리 무덤으로 굴러가 오명을 쓰고 묻히겠다"고 하면서, 의석을 계속 유지하고자 한다면 호국경과 의회에 대해 충성을 바칠 것과 아울러 체제의 근본 성격을 변경시키려고 하지 않을 것을 약속하라고 요구했다(→ 색인:성공회, 영국국교회). 공화주의로 무장된 100명의 인사를 제외하고 나머지 의원들은 그렇게 하기로 동의했으나 여전히 호국경이 바라던 대로의 법률 개혁보다는 헌법을 새로 작성하는 데 더 관심을 쏟고 있었다.
그러자 크롬웰은 1655년 1월 22일 의회를 해산했다. 1656년 소집된 의회와도 똑같은 문제로 충돌했으며, 1658년 2월 재차 의회를 해산했다.
크롬웰은 아일랜드 원정 이후 건강이 계속 악화되었으며 1658년 8월 총애하던 딸 엘리자베스가 암으로 죽은 후 자신도 말라리아에 걸려 런던의 세인트제임스 궁에서 요양할 셈으로 런던으로 돌아왔으나 9월 3일 3시에 화이트홀에서 죽었다. 그의 유해는 11월 10일 웨스트민스터 묘지에 비밀리에 안장되었으며 장례는 13일 뒤 국장으로 치러졌다.
찰스 2세의 즉위로 왕정복고가 이루어진 후인 1661년 크롬웰의 무덤은 파헤쳐져 그의 시신은 죄수들이 처형되던 타이번에 내걸렸다. 이후 그의 시신은 교수대 아래 매장되었으나 머리부분은 웨스트민스터 홀의 꼭대기에 내걸린 채 찰스 2세의 집권말기까지 그대로 있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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